카를 마르크스는 과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을 2위로 밀어내고 상당한 표차로 1위를 차지했다.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 방송국은 2005년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를 시청자에게 다시 물었다. 역시 1위는 마르크스였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한 금융 위기로 전 세계 경제가 지금까지 휘청대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평가에 토를 달 이들은 더 이상 없을 듯하다. 마르크스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아니, 2003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최근의 상황은 "자본주의의 오류에 대한 마르크스의 지적이 많은 부분에서 옳았다"는 것을 한 번 더 확인시켰다.
'마르크스 르네상스'를 지켜보면서 눈을 한국으로 돌려보자. 유럽은 물론이고 일본, 중국, 러시아, 타이, 이란 등 세계 곳곳에서 '마르크스 재조명'이 한창이라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찾아볼 수 없다. 대중은 물론이고 학계도 마르크스를 '죽은 개' 취급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강신준 동아대학교 교수(경제학)가 <자본> 번역을 마무리했다. 지난 2008년 1권을 펴낸 데 이어서 최근에 3권이 나왔다. 1987년 <자본> 번역과 첫 인연을 맺고 나서 23년 만의 일이다. 그는 "20년 동안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이제야 내려놓는 기분"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지난 27일 서울 통인동의 한 카페에서 강신준 교수를 만났다. 그는 1978년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대학교 2학년 때 <자본>을 첫 대면했다. 왜 그는 30년이 넘게 마르크스의 <자본>에 매달려 왔을까? 21세기에 다시 <자본>을 번역해 펴낸 까닭은 무엇일까? 그에게 직접 물었다.
▲ 강신준 동아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
<자본> 때문에 바뀐 인생
프레시안 :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 1권이 '김영민'이라는 가명으로 번역돼 나온 게 1987년이다. 23년 만에 <자본>을 완간했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강신준 : 그렇다. 지난 1000년 동안 출판된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로 꼽히는 귀중한 지적 유산이 이제야 한국에서 올바른 자리를 찾게 되었다. 사회과학의 큰 조류의 출발점이 되는 책이 <자본>인데,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 책의 원본을 제대로 소개할 수 있어서 20년 넘게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이제야 일부나마 내려놓은 기분이다.
프레시안 : 엄혹한 시대에 <자본> 1권이 가명으로 출간되다 보니, 그 뒷얘기를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다.
강신준 : 개인적으로는 <자본> 때문에 내 인생이 바뀌었다. 나는 1974년에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 입학했다. 나중에는 독일에 가서 철학을 공부할 생각이었다. 당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재에 대한 반대 운동을 막고자 긴급 조치를 연달아 발표할 때라서 결국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끌려갔다. 군대를 다녀와서 1978년에 학교에 복학했다.
철학을 공부하려던 학생이니까, 당연히 마르크스의 <자본>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마침 독일에 누님이 있어서, <자본>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책을 그대로 보냈다가는 당장 검열에 걸릴 테니까, 누님이 <자본>의 표지를 벗기고 괴테 책의 표지를 입혀서 보냈다. <자본>의 주요 내용을 발췌한 문고본이었는데, 그게 <자본>과 나의 첫 대면이었다.
그 책을 읽다 보니 <자본>을 제대로 보고 싶다, 이런 욕구가 더 커졌다. 제대로 된 <자본>을 보고자 서울 시내의 대학 도서관을 다 뒤졌다. 당연히 어느 대학에서도 책을 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성균관대학교에서 사서가 <자본>을 찾아주었다. 독일어 원본을. 사서가 실수를 한 것 같은데….
그렇게 구한 책을 학교 앞에서는 복사를 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중앙정보부 요원이 학교 안팎을 사찰할 때니까. 의정부까지 가서 책 전체를 한 번에 복사하고 나서 파지까지 전부 다 수거하고서야 나만의 <자본>을 가질 수 있었다. 1978년 여름방학 때 마산의 경남대학교 도서관에서 그렇게 복사한 <자본>을 읽기 시작했다. <자본>과 정식 인사를 하는 순간이었다.
프레시안 : 그렇게 만난 <자본>과 인생이 엮이기 시작했는데….
강신준 : 그렇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내가 <자본>을 번역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같은 대학의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자본> 3권에 나오는 '이윤율 저하 경향'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다. 그런데 나는 석사 학위를 마치고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 없었다. 집안이 넉넉지 않아서 빨리 돈을 벌어서 어머니를 부양해야 했기 때문이다.
석사 학위를 받자마자 한국전력공사를 거쳐서 1985년에 농업협동조합(농협)에 취업했다. 당시에 농협은 아주 좋은 직장이었다. 본부의 대졸 직원 중에는 진보적인 이들이 많았다. 그들과 어울려서 공부도 하고, 동아리 활동도 하고, 그렇게 평범한 직장인으로 농협을 잘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자본>이 내 인생으로 들어왔다. 1986년의 어느 날이었다. 출판사를 경영하던 오랜 고향 친구가 만나자고 하더라. 그 친구가 바로 출판사 이론과실천의 대표였던 김태경 씨다. 김태경 대표와 최광열 편집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한테 원고 뭉치를 보따리에 싸서 주었다. 가타부타 얘기도 없었다. "집에 가서 한 번 읽어봐!"
집에 와서 원고를 살폈더니, 그게 바로 <자본> 1권의 원고였다. 깜짝 놀라서 사정을 들어보니, 김 대표의 얘기가 이랬다. "운동권 학생 6명이 오랫동안 강독을 하면서 나눠서 번역을 한 원고다. 그 원고를 출판하고 싶은데 출판을 해도 될 상태인지 한 번 봐 달라." 당시 이론과실천은 시국 사건으로 제적된 대학생의 집합소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이해가 되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틈틈이 살폈는데 원고가 들쭉날쭉했다. 어떤 부분은 번역이 상당히 좋은데, 어떤 부분은 매우 나쁘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독일어 실력도 편차가 있고, 한국어로 쓰는 데도 차이가 있었을 테니까. 검토 끝에 이 상태로 내기는 힘들다, 이런 결론을 김 대표에게 전했다. 그러자 김 대표가 이렇게 제안했다. "그럼, 자네가 교열을 봐!"
직장을 다녀야 하는 처지에 난감했지만 <자본>이 아닌가. 시간을 낼 만큼 의미가 있었다. 수개월 동안 초벌 원고를 고치는데 매달렸다. 분량이 많아서 나중에 일부는 산업은행에 다니는 후배도 참여했다. 그렇게 최종 원고가 만들어졌는데, 여전히 마음에 안 들었다. 애초에 남의 원고니까, 고쳐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자본>을 거칠게나마 해독이 가능한 한글로 옮겨놓았다는 것일 텐데…. 김 대표가 고민을 많이 했다. 결국, 김 대표가 원고가 좋은 상태는 아니지만 찍어내는 게 의미가 있다, 이런 결론을 내렸다. <자본>을 출간하는 게 '검열'이라는 지적 족쇄를 깨는 역사적 의미가 있지 않나, 이런 생각도 했었고.
당연히 찍으면 고발이 되고, 유죄가 될 가능성이 크니까. 애초에 김 대표가 나는 철저히 보호해 주기로 했다. 그래서 가명으로 출판을 했다. 어차피 문화공보부에 납본을 하고 1주일쯤 뒤 검열을 받으면 판매 금지가 될 테니까, 딱 한 주만 팔자, 이런 각오였다. 실제로 그 한 주일 동안 전국에서 상당히 팔렸다. 물론 그러고는 바로 고발되었고.
ⓒ프레시안(손문상) |
강신준 : 그렇다. 김태경 대표와 최광열 편집장은 곧바로 따로 도망을 갔다. 나중에 들으니 김 대표는 충청남도 서산의 외진 곳에서 회만 실컷 먹었다고 하더라. (웃음) 그 와중에 당시 김 대표의 아내였던 강금실 변호사가 남편을 변호하고자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로 개업을 하고.
프레시안 : 결국 담당 검사가 기소를 못했다.
강신준 : 그렇다. 검사가 기소를 하려면 <자본>이 이적 표현물이라는 걸 입증해야 했다. 그런데 검사가 대여섯 번을 읽어봐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니까 답답했겠지. 사실 <자본>은 경제학 전공자가 읽어도 어려운데, 검사가 단숨에 이해를 할 수가 있었겠나. (웃음) 그래서 검사가 자문을 구할 전문가를 찾았다.
1987년 당시에 <자본>에 대해서 얘기를 해줄 만한 학자가 진보 측에서는 김수행, 박영호, 고(故) 정운영 교수가 있었다. 모두 다 한신대학교에서 재직 중이었다. 이분들이야 검사 측에 유리한 얘기를 해줄 리가 없었다. 그래서 검사가 서울대학교에 재직 중이던 학자들 그러니까 경제학과의 안병직 교수, 고 배무기 교수 두 분에게 자문했다.
그런데 안병직 교수, 배무기 교수 모두 검사의 자문 요청을 거절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설사 두 분이 자문에 응할 의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당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의 분위기가 그런 것을 용인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만약 검사 측에 유리한 증언을 하면, 당장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을 테니까.
결국 검사가 기소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상황에서 도망을 다니던 김태경 대표는 서대문경찰서에 자수를 했고, 조서를 꾸미던 도중에 검사가 마침내 기소를 포기했다. 우여곡절 끝에 <자본>을 옥죄던 족쇄가 풀린 것이다. 이렇게 <자본>이 한국의 독자를 처음 만났다.
프레시안 : 이렇게 <자본>과 인연을 맺고 나서 1990년까지 이론과실천에서 <자본> 2권, 3권도 번역해 펴냈다.
강신준 : 뒷얘기를 더 하자면, 원래 김태경 대표가 <자본>을 그렇게 낼 생각은 없었다. 김 대표가,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상당히 권위 있는 학자에게 <자본>의 번역을 의뢰하려 했었다. 그런데 결국은 그 분에게 일을 맡길 수 없었다. 위험 부담을 염두에 두고 영세한 출판사가 감당할 수 없는 상당한 금액의 선인세를 요구했으니까.
아무튼 <자본>의 족쇄가 풀리고 나서 이론과실천은 당연히 2권, 3권의 번역을 의뢰했다. 마땅한 역자를 못 구한 상황에서 다시 김태경 대표가 나한테 제안을 했다. "2권, 3권도 자네가 번역을 하게!" 1권을 검토, 교열했던 인연도 있었고, 대학원을 다니던 나는 싸니까, 김 대표가 쉽게 제안을 할 수 있었겠지. (웃음)
프레시안 : 그 제안을 곧바로 받아들인 건가?
강신준 : 마침 내 신상에 변화가 있었다. 당시 나는 농협에 다니면서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박사 논문 때문에 휴직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휴직을 하는 도중에 생활비를 벌 방도를 찾아야 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었던 김태경 대표가 많지는 않지만 매월 생활비를 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그래서 휴직하는 기간 동안 하루의 반은 논문에, 나머지는 번역에 할애를 하겠다, 이렇게 약속을 하고서 <자본> 2권, 3권의 번역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렇게 번역을 해 놓으니까, 이론과실천에서 2권, 3권은 실명으로 내자고 제안했다. 물론 이미 족쇄는 풀린 상황이었지만, 나로서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실명으로 <자본>의 번역을 출판하는 순간 학계랑은 영영 인연이 없어지는 것이니까. 애초에 대학 교수할 생각은 없었지만, 나에게는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게 농협에 복직하는 데도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농협의 여러 선배들과 공식, 비공식 면담을 통해서 양해를 받고 나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있었다. '그래, 이런 역사적인 일에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내 이름을 올리는 게 얼마나 영광인가. 설사 <자본> 때문에 농협에 복직을 못한다고 하더라도 밥이야 굶겠나.' 그래서 2권, 3권을 번역해서 1990년까지 순차적으로 이론과실천에서 펴냈다.
사실 나중에 당시의 원고 상태를 살펴보면서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다. 그 때는 박사 과정을 막 마쳤을 때니까, 아직까지 <자본>은 물론이고 마르크스의 사상 자체에 대한 이해가 일천할 때였다. 사실 <자본>은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그 면모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데…. 젊으니까 무모했고, 무식이 용감했다. (웃음)
프레시안 : 학계는에선 엄두도 못 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동아대학교에 1991년에 임용되었다.
강신준 : 그러니까 <자본> 때문에 내 인생이 바뀌었다고 하지 않았나! 1990년에 <자본> 번역도, 학위 논문도 끝내고 나서 1991년 9월에 농협 복직이 예정된 상황이었다. 그 즈음에 (그 뒤 한나라당 국회의원,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박형준 씨가 나한테 이런 얘기를 했다. "형, 동아대학교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칠 교수를 뽑는데 지원해 봐요."
1978년에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입학한 박형준 씨는 내가 아끼던 동아리 후배였다. 하도 강권을 해서, 밑져야 본전이니까 교수 지원 서류를 준비해 그에게 줬다. 자기가 지원을 하면서 내 것도 낸 모양이었다. 정말로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동아대학교 교수로 채용이 되었다.
알고 보니, 동아대학교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자를 교수로 채용하려고 했는데 지원자가 거의 없었던 모양이다. 당시에는 <자본>을 제대로 읽은 사람도 없었고, 심지어 그것을 논문으로 쓴 사람은 더 귀했으니까. 그나마 있었던 몇몇은 이미 다른 대학에 자리를 잡았고. 그런 상황에서 <자본>의 역자가 지원을 했으니 학교에서는 맞춤하다고 생각을 한 거다. (웃음)
프레시안 : 학계와 인연을 만들어준 1등 공신이 <자본>과 박형준 씨인데, 그와도 여전히 친분이 있나.
강신준 : 1991년에 같이 동아대학교 교수로 채용이 되었으니까 학교에 있을 때는 친하게 지냈었다. 그 때까지는 박형준 씨도 좌파 성향의 학자였으니까. 그러다 2004년에 부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출마한다고 얘기를 해서 덕담을 주고받고 헤어졌다. 그 뒤로는 우연히 공항에서 한 번 본 것 빼놓고는 연락을 끊었다. 자기 갈 길을 간 거지.
ⓒ프레시안(손문상) |
독일어 원전 번역 완간의 의미
프레시안 : 그렇게 인연을 맺은 이론과실천의 <자본>은 지금 출판사 사정 탓에 절판 상태다. 그리고 약 20년 만에 다시 새로운 번역의 <자본>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미 비봉출판사에서 나온 김수행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의 <자본>이 널리 읽히는 상황이다. 또 북한에서 번역한 <자본>도 있고….
강신준 : 우선 김수행 교수의 <자본>은 독일어 원본이 아닌 영어판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예전에 읽던 소설 중에는 일본어판을 중역한 것이 많았는데, 그것의 문제점이 여러 차례 지적되지 않았나. 하물며 1000년 동안 출판된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꼽히는 <자본>의 원본 번역본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독일어 원본과 영어판은 그 자체로 많이 다르다. 게다가 김수행 교수의 <자본>은 원전에 충실한 번역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독자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원전의 화폐 단위를 전부 다 한국식으로 옮겨 놓았다. 독일 사람이 썼는데 '근'이 나오고, '필'이 나오고.
프레시안 : 북한에서 번역한 <자본>은 어떤가?
강신준 : 그것도 문제가 많기는 마찬가지다. 잘 알다시피 해방 직후에 마르크스, 엥겔스가 잠시 주목을 받다가 곧바로 전쟁이 났다. 마르크스, 엥겔스에 관심을 가지던 이들이 남조선노동당(남로당) 계열이었는데, 전쟁이 끝나면 이들이 숙청을 당하면서 북한에서는 사실상 마르크스, 엥겔스 연구의 명맥이 끊겼다.
우리나라에서 <자본>을 한글로 최초로 번역한 학자는 역시 남로당 계열이었던 전석담 교수다. 전 교수는 국민대학교, 동국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다 월북해서, 나중에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전 교수도 <자본> 1권의 일부를 번역하다 말았고, 이후에도 작업의 진척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북한의 <자본>은 러시아판을 중역한 것인데, 이 러시아판 자체가 문제가 많다. 레닌 사후 스탈린의 해석이 대폭 반영된 책이기 때문이다.
▲ <자본>(전5권, 카를 마르크스 지음, 강신준 옮김, 길 펴냄). ⓒ길 |
강신준 :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김수행 교수의 <자본>을 비롯한 기존의 번역은 학술적인 면에서 보자면 부족한 점이 많다. 그래서 최대한 독일어 원본에 충실한 학술적으로 문제가 없는 번역을 하고자 신경을 썼다. 번역의 대본인 MEW(Marx Engels Werke) 판의 쪽수를 병기해, 누구나 학술적 인용을 할 때 원본의 출처를 밝힐 수 있도록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20년 전에 번역을 할 때는 가능하면 원전을 직역했었는데, 이번에는 독자들이 읽기 쉬운 방향으로 했다. 오랜 공부로 뜻을 확실히 아는 것은 자신 있게 풀고, 독일어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 원전 속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경우에는 다소 어색하더라도 엄격한 독일어식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다.
독자들이 읽기 쉬게 하면서도 학술적 엄밀함을 놓치지 않는 번역으로,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으려고 했는데…. 굳이 점수를 매기자면 한 80점은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계속해서 보완해 나가자고 다짐하면서 일단 책을 내놓았다.
지금 왜 <자본>인가?
ⓒ프레시안(손문상) |
강신준 : 그 질문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준비된 답변이 있다. 대개 지금까지 마르크스의 사상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자본>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데만 주력했지,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을 놓고는 침묵했다'고 입을 모았다. 과연 그런가? 나는 20년 넘게 현장의 노동자와 <자본>을 같이 읽으면서 이런 평가에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 생각해 보자. 오늘도 밥벌이에 지친 노동자들이라면 자본주의가 잘못된 체제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택시 기사는 12시간 맞교대로 일해서 하루 14~5만 원을 번다. 그 중 11만 원을 회사에 사납금으로 바치고, 자기는 고작 4~5만 원을 가져간다. 그 택시 기사들이 과연 이런 어처구니없는 자본주의 체제를 정상이라고 생각할까?
850만 명이나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어떤가? 자동차 공장에서 정규직 노동자인 옆의 동료는 연봉 6~7000만 원을 받는다. 그런데 자기는 그들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고작 연봉 2000만 원을 가져가는 게 전부다. 이런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본주의 체제는 잘못된 것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마르크스가 <자본>을 쓴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자본주의 체제의 임금 노동자라면 누구나 자본주의 체제가 잘못돼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 왜 그는 번역을 해보면 3000쪽이나 되는 어렵고 방대한 책을 썼을까? 단지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 이런 책을 썼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프레시안 : 그럼, <자본>에서 진짜로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강신준 :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에는 변증법이 있다. 그에 따르면 봉건 사회의 모순이 폭발하면서 자본주의 사회가 등장했다. 그 논리대로라면, 바로 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하나씩 점검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 이후에 등장할 사회, 즉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의 모습도 찾을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그의 기획이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의 구체적 상(긍정의 미래)이나 혹은 그런 사회로 이행하는 방법에 대한 지침(이행 수단)을 쓰지 못한 대신에, <자본>의 곳곳에 그런 '긍정의 미래'의 모습과 '이행 수단'의 내용을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간접적으로 남겨 놓았다.
노무현, 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진보 진영에 절실히 필요한 게 바로 '대안' 아니었나? 바로 그 대안의 단초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파헤친 <자본>의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한국 사회는 <자본>의 제대로 된 번역도 가지지 못한 채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한국 사회에서 <자본> 1, 2, 3권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나? 특히 <자본>에서 가장 대안의 단초가 많이 들어있는 부분은 3권인데, 그것까지 읽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단언하건대, 한 다섯 명 정도일 것이다. 대안에 대한 가장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을 안 읽었으니 진보의 수준이 낮을 수밖에….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로 촉발된 대공황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적으로 드러난 상황에서 <자본>은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를 준비하는 대안 논의의 출발점이다. 지금이야말로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본>을 읽어야 한다. 바로 지금이 <자본>의 시대다.
금융 위기 예고한 <자본>
프레시안 : 방금 지적한 대로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로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마르크스의 <자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정체를 해명하는 데 <자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1970년대부터 얘기했던 이들도 머쓱해진 상황이다.
강신준 : <자본> 3권을 읽다보면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현대 금융의 특징을 얘기할 때 빼놓지 않고 언급되는 게 '레버리지(leverage, 지렛대) 효과'다. 개인이나 기업이 차입금 등 타인의 자본을 지렛대처럼 이용해 이익을 올리려다 결국은 금융 위기와 같은 일이 발생한다.
그런데 바로 이 레버리지 효과가 <자본> 3권에 등장한다. 마르크스는 이 레버리지 효과가 결국에는 공황을 낳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보았다. 얼마나 놀라운가? 140년 전의 마르크스가 오늘날 금융 위기의 본질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류 경제학의 상황을 보자.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다는 <맨큐의 경제학>이나 요즘 대안 교과서로 많이 읽히는 <스티글리츠의 경제학>은 항상 시장에서 시작한다. 현실의 경제는 생산-교환-소비의 3단계로 이어지는데 주류 경제학은 '생산'이 빠지고 '교환(시장)'부터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황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마르크스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공황은 생산 영역에서 시작된다. 자본가는 더 많은 이윤을 얻고자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 이상의 상품을 생산한다. 이렇게 과잉 생산된 상품을 소비하려면 더 많은 소비가 필요한데, 이를 금융 자본이 부풀린다. 여기서 아까 언급한 레버리지 효과가 등장하고.
그러다 더 이상 과잉 생산된 상품을 소비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는데 바로 여기서 공황이 발생한다. 생산을 자신의 체계에서 뺀 주류 경제학이 공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1847년 대공황, 1929년 대공황, 2008년 대공황, 이런 전 세계적인 공황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지적한 학자는 마르크스가 유일하다.
이런 공황의 메커니즘을 설명한 부분이 <자본> 3권이다. 이곳을 보면 의미심장한 대목이 있다.
"(공황을 촉발하는) 신용의 주요 대변인들은 협잡꾼과 예언자의 얼굴이 함께 뒤섞인 모습을 하고 있다."
'예언자'라는 표현에 주목하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공황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것을 통해서, 자본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의 경제의 조건을 따져보려고 했던 것이다. 공황이 일어나는 원인을 파악하면 그것을 극복할 수단을 궁리할 수 있으니까.
프레시안 : 예를 들자면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 게 가능할까?
강신준 :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과 소비가 불일치한다. 시장을 맹신하는 주류 경제학자의 바람과는 달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항상 생산이 소비보다 많이 이루어진다. 생산과 소비가 시장에서 균형을 딱 맞춘다면, 왜 기업이 그렇게 많은 비용을 소비자를 현혹하는 광고에 쏟아붓겠나?
이런 불일치의 파국적인 결과가 바로 공황이다. 그렇다면, 공황을 극복하는 방법은 생산과 소비가 가능한 한 일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두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시장을 맹신하는 이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이다. 100개의 상품을 빌 게이츠 같은 이들이 승자 독식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는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다른 방식은 1929년 대공황을 겪으면서 케인스가 단초를 제시했던 방법이다. 바로 100개의 상품이 생산되면 무조건 50개를 떼서 사회의 구성원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 방법이다. 그 50개를 '사회 임금'이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그것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복지 제도다.
실제로 1998년부터 전 세계가 금융 위기로 큰 충격을 받았을 때, 가장 피해를 덜 본 국가들이 독일, 덴마크, 스웨덴과 같은 유럽의 복지 국가들이다. 바로 이렇게 <자본> 곳곳에 숨어있는 대안의 단초를 찾는다면,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한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손문상) |
마르크스가 꿈꿨던 사회는…
프레시안 : <자본>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마르크스가 꿈꿨던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강신준 : <자본>을 오랫동안 공부하면서 확실한 답변을 얻었다.
먼저 생산 부분부터 살펴보자.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사회주의'라는 말도, '공산주의'라는 말도 쓴 적이 없다. "생산 수단에 대한 공동의 통제"라는 표현을 쓰긴 했는데, 이것을 "생산 수단의 국유화"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생산은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는 것이고 마르크스는 그것을 명확히 인식했다.
"생산 수단에 대한 공동의 통제"는 노동자 전체가 의사 결정을 포함한 생산의 전 과정에 참여하는 모습을 뜻한다. 그게 무엇인가? 바로 민주주의다. 흔히 마르크스주의하면 즉각적으로 소련의 볼셰비키가 보였던 소수에 의한 독재,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연상한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절대로 마르크스가 얘기했던 그것이 아니다.
실제로 레닌을 포함한 당대 최고의 마르크스주의자는 모두 다 이 사실에 공감했다. 내가 2006년에 번역한 칼 카우츠키(1854~1938년)의 <프롤레타리아 독재>(한길사 펴냄)를 보면 이런 사실이 잘 나온다. 이 책은 레닌이 1919년 10월 혁명을 통해서 정권을 잡은 후의 행보를 놓고 진행된 논쟁 속에서 나온 것이다.
레닌은 정권을 잡자마자 제헌의회를 해산하고, 비밀 정보기관을 가동해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탄압한다. 프랑스 혁명 때 로베스피에르가 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간 것이다. 이런 레닌의 행보를 놓고 당시 제2인터내셔널의 걸출한 마르크스주의자 세 사람(로자 룩셈부르크, 카우츠키,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이 모두 반대하고 나섰다.
그런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보면 레닌 역시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공개적으로는 카우츠키에게 "배신자"라고 손가락질했지만, 정작 카우츠키와의 논쟁 속에서는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임을 레닌 자신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카우츠키는 이 책 속에서 그런 고민이 담긴 레닌의 글을 인용하면서 주장을 편다.
역사가 말한다. 똑똑한 소수가 "좋은 사회"라는 답을 내놓고 다수가 그것을 따라가는 식으로는 절대로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그런 사회는 '천국'보다는 '지옥'이 되기 십상이다. 마찬가지로 사회 전체의 수준, 그러니까 그 사회의 노동자의 역량이 사회주의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결코 사회주의의 이상향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러시아의 상황이 그랬다. 결국 소수의 정치인이 다수의 노동자를 이끌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독재와 폭력으로 귀결되었다. 그 체제를 바로 노동자들이 1991년에 끝장내지 않았나?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소련을 비롯한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는 민주주의를 강조한 마르크스주의가 옳았다는 걸 입증하는 사건이다.
그렇다면, 소비 부분은 어떨까? 마르크스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일하고, 필요에 따라서 소비하는 사회"를 말했다. "능력에 따라서 일하는 사회"는 앞에서 얘기한 대로 생산의 전 과정에서 노동자의 의사가 반영되는 것이다. 한편,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욕망을 사회가 더 많이 채워주는 것이 바로 "필요에 따라서 소비하는 사회"다.
독일, 덴마크, 스웨덴과 같은 복지 국가는 교육, 보육, 의료 등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욕망을 사회가 채워주려고 노력했다. 이런 기반에서 생산의 영역에서 개인의 창의성이 마음껏 발현되는 사회야말로 마르크스가 가려고 했던 바로 그런 사회다. 마르크스의 이상은 이미 부분적으로 실현되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이 실현할 수 있다.
마르크스 르네상스
ⓒ프레시안(손문상) |
강신준 : 난리다. 독일의 베를린에 있을 때 새로운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을 준비하는 학자들과 교류가 많았다. 그 중에 게랄트 후프만 박사가 대학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을 강의하는데, 금융 위기 이후로 수강 인원이 세 배로 늘어서 나중에는 인원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독일의 디츠(Dietz) 출판사는 금융 위기 이후 <자본>의 판매량이 2007년에 비해 세 배나 늘었다. 심지어 2009년 기독교민주동맹(기민당)과 사회민주당의 대연정이 깨질 때까지 사민당 소속으로 독일의 재무부 장관이었던 페어 슈타인브뤼크가 "마르크스가 여전히 옳다"고 선언을 하기도 했고.
독일에서는 사민당이 1959년 고데스베르크에서 채택한 강령에서 마르크스주의를 폐기한 이래로 현실 정치에서 마르크스가 설 자리가 없다. 그런데 최근에 오스카 라퐁텐을 중심으로 한 좌파가 사민당을 나와서 결성한 좌파당(LINKE)의 강령에 마르크스에 대한 재해석을 반영하려는 논의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흐름 속에서도 얼마나 마르크스가 되살아날지는 의문이다. 여전히 수십 년의 분단을 경험한 독일 대중에게, 특히 서독 사람에게는 마르크스에 대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마르크스에 대한 거부감을 마치 한국의 마르크스에 대한 거부감과 똑같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독일의 금속산업노동조합에서 펴내는 일반 노동자를 위한 교과서 중 한 권을 보면, 임금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노동자가 받아야 할 임금을 이론적으로 따져보면 '지불노동'과 '부불노동(不拂勞動)'으로 나뉜다." 지불노동, 부불노동, 이런 개념을 사용한 이는 마르크스밖에 없다.
이렇게 독일에서는 마르크스를 명시적으로 내세우지 않지만, 자신들도 모르게 일상생활 곳곳에서 마르크스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것은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도 마찬가지다. 즉, 이런 나라에서는 마르크스를 얘기하지 않아도 모든 논의의 전제에 마르크스의 사상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대중은 물론이고 학자 중에도 마르크스의 주저인 <자본>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사회에서 '마르크스 이후'를 얘기한다.
프레시안 : 요즘에는 마르크스 대신 소스타인 베블런, 칼 폴라니, 생태주의자를 거론하면서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강신준 : 아까 얘기한 것처럼, 마르크스는 그 모든 사람의 출발점이다. 베블런, 헨리 조지, 발터 베냐민, 폴라니, 생태주의자 모두 서양이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한 세기 동안 소화한 마르크스의 유산 위에서 마르크스가 단초로만 제시했던 것, 혹은 그가 생전에 보지 못했던 자본주의의 모습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채우면서 자신의 사상을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들 모두의 출발점이 되는 마르크스의 유산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시류에 휩쓸려 마르크스 이후를 얘기한다. 여러 번 강조하지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본주의 비판과 대안의 출발점이 되는 마르크스, 특히 그의 주저인 <자본>을 다시 읽는 것이다.
냉전 시대 마르크스 연구의 한계
프레시안 : 1960년대부터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자본>의 재해석에 목소리를 높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의 사상 전체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위상을 낮춰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런 흐름은 한국의 지식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줬는데….
강신준 : 냉전 시대 마르크스의 사상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었다. 1917년에 혁명이 일어나고 정권을 탈취하자마자 레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당대 최고의 문헌학자 다비드 랴자노프에게 유럽 곳곳에 흩어져 있는 마르크스의 원고를 모아서 정리토록 한 일이었다. 비록 랴자노프는 레닌 사후 스탈린에게 숙청을 당했지만 이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원고가 소련으로 집중됐다.
얼핏 생각하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적자였던 독일의 사민당이 마르크스의 원고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정이 그렇지 않았다. 1930년대 사민당이 도피 중에 마르크스의 원고의 상당 부분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독지가에게 넘겼기 때문이다. 이 원고의 상당 부분을 지금 네덜란드의 국제사회사연구소(IISG)에서 보관 중이다.
심지어 이때 사민당이 경매 시장에 내놓은 마르크스의 원고 일부는 일본으로도 넘어갔다. 당시 일본의 오하라 연구소의 구성원을 비롯한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유럽까지 와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고를 수집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은 지금도 대단해서 한 권에 1500부 정도 찍는 MEGA의 절반 정도가 일본에서 소화된다.
이런 얘기를 길게 하는 것은 냉전 시대 마르크스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해서다. 마르크스의 유고 중 상당 부분, 특히 <자본>을 비롯한 후기 원고의 대부분이 소련을 비롯한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 상황에서 서구의 마르크스주의 지식인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경제학-철학 수고>(강유원 옮김, 이론과실천 펴냄)와 같은 초기 저작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에 대한 이들의 관심은 <자본>과 같은 후기 저작을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는 스탈린에 대한 문제제기의 의미도 있었다. 이러다 보니,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자본>을 폄훼하는 흐름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 중심에 바로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등의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있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프레시안 : 마르크스 사상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위상을 간단히 설명한다면….
강신준 : 앞에서도 언급한 MEGA를 예를 들어보자. MEGA는 현재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고를 보유하고 있는 네덜란드, 독일, 러시아, 일본 등이 공동으로 펴내는 새로운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이다. 총 116권으로 출간될 예정인데 현재 절반인 58권이 나왔다. MEGA는 1부, 2부, 3부, 4부로 구성돼 있는데 이중 2부는 전적으로 <자본>에만 할애됐다.
그런데 이 2부의 권수가 전체 116권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자본>이야말로 마르크스 사상의 모든 것이 용해된 그의 주저인 셈이다. 경제학뿐만 아니라 철학, 역사학, 문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이 <자본>에 달려들어서, 마치 금맥에서 금을 찾듯이 마르크스 사상의 정수를 추출해야 한다.
ⓒ프레시안(손문상) |
<자본> vs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프레시안 :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월급쟁이들 사이에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샤론 레히트 지음, 형선호 옮김, 황금가지 펴냄)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그 책을 읽고서 많은 이들이 "아, 이건 거꾸로 읽는 <자본>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책의 메시지는 "노동자로 살면 만날 그 모양 그 꼴이니, 자본가(자산가)가 되어라" 이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착취를 당하는 노동자에게 저항하기보다는 차라리 자본가가 되라고 유혹하는 책이었다. 1980년대에 마르크스와 <자본>에 열광(만) 했던 많은 이들이 이런 유혹에 넘어갔다.
강신준 : <자본>에 엥겔스가 오늘날의 '재테크'를 놓고 이렇게 주석을 써놓았다. 재테크는 노동자가 만들어 놓은 잉여가치를 자본가가 나눠 먹고자 경쟁하는 것이라고. 물론 이런 경쟁에 노동자도 참여할 수 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이런 경쟁에 참여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책이다.
그런데 노동자가 그런 자본가 사이의 경쟁에 참여해 돈을 벌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마르크스가 <자본> 3권에서 개별 자본가가 자본가 사이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은 지배할 수 있는 자본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써놓았다. 워런 버핏이나 조지 소로스가 대자본을 이용해서 버는 돈과 이른바 '개미'가 버는 돈은 비교할 수가 없다.
여기에서 또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1997년 외환 위기를 지나면서 2000년대에 본격적으로 재테크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1997~98년에 주식 시장, 부동산 시장의 폭락했다가 오르면서 현금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엄청난 차익을 챙기면서 모든 사람이 재테크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버핏이나 소로스나 또 개미들의 몫이 커지려면, 마르크스의 설명을 염두에 두면, 잉여가치가 커져야 한다. 잉여가치가 커지려면 노동자를 착취해야 한다. 누군가의 '대박' 뒤에는 노동자의 '착취'가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1997~98년을 기점으로 한국 사회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정부의 공식 통계를 봐도, 1997년 이전에는 비정규직이 250만 명이 안 되었다. 그런데 2009년도 비정규직은 570만 명이다. 정부 통계를 그대로 따라도 노동자 300만 명이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 (학자들은 비정규직이 350만 명에서 850만 명으로 약 500만 명이 늘어난 것으로 본다.)
1997년 이전에 월 250만 원을 받았던 노동자 300만 명이 이제는 150만 원씩 월급을 받고 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에게 애초에 월급으로 갔어야 할 돈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 돈이 다 재테크 시장에서 대박 터뜨린 이들, 그러니까 버핏, 소로스 같은 사람의 주머니로 돌아간 것이다.
정상적으로 받아야 할 월급 100만 원을 300만 명이 덜 받았다고 치자. 한 달이면 3조 원이다. 1년이면 36조 원, 13년이면 수백조 원이라는 엄청난 규모가 된다. 이렇게 노동자에게 착취한 돈이 다시 그 노동자, 즉 대박을 꿈꾸는 개미에게 돌아올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나는 15층 빌딩에서 뛰어내려 살아남을 확률과 비슷하다고 본다.
물론 개미도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 15층 빌딩에서 뛰어내려도 살아남는 사람이 가끔씩 뉴스에서 화제의 인물로 등장하는 것처럼. 자, 15층 옥상에서 뛰어내릴 자신이 있는 사람은 계속 재테크에 몰두해라. 그럴 자신이 없는 사람은 이 잘못된 자본주의를 가만히 둬서는 안 된다.
나한테 소박한 꿈이 있다. 제대로 된 노동조합이라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이렇게 변했으면 좋겠는데, 조합원에게 '노동 계급의 성서'인 이 <자본>을 선물로 줘야 한다. 지금도 노동조합 창립 기념일에 많은 돈을 들여서 조합원에게 선물을 준다. 텐트 같은 것. 그런 데다 돈을 쓸 게 아니라 이 <자본>을 조합원에게 나눠줬으면 좋겠다.
만약 그런 일이 현실이 된다면, 10주든 20주든 노동자들이 원하는 만큼 강의를 할 의향이 있다.
노동자가 <자본>을 읽는 방법
ⓒ프레시안(손문상) |
강신준 : <자본>은 앞부분이 어렵다. 보통 제1편(상품과 화폐)을 읽다가 더 이상 진도가 안 나가는 경우가 많다. 나는 뒷부분부터 읽기를 권한다. 1권 제4편(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부터 읽으면 좋다. 4편의 앞부분도 읽기 힘들면 12장 정도부터 읽으면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다.
제7편(자본의 축적 과정)도 읽어볼 만하다. 특히 7편의 제23장(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 법칙)은 나라와 연도만 빼면 한국의 얘기와 똑같다. 노동자를 정규직/비정규직으로 가르고, 임금을 깎고, 해고를 하고…. 이렇게 1권도 앞이 아니라 뒤부터 읽다 보면 <자본>에 익숙해질 수 있다.
2권은 경제학 공부를 하지 않은 독자라면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반면에 아까 언급했듯이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를 고민할 때 자극이 될 만한 부분이 많은 3권은 읽어볼 만하다. 특히 공황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을 설명한 부분이 중요한데, 한국 사람들은 요즘 화폐 금융 쪽에 상식이 많아서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3권을 읽다 보면 재테크에 눈을 뜰 수도 있다. 나 같으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같은 책을 읽을 게 아니라 자본주의의 핵심 비밀을 파헤친 <자본>을 읽겠다. (웃음)
프레시안 : 최근에 낸 <그들의 경제 우리들의 경제학>(길 펴냄)을 포함해 <자본>에 대한 해설서를 몇 차례 펴냈다. 그 책들은 <자본>에 대한 정확한 설명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자본>을 읽을 때 같이 보면 좋을 만한 책이 또 있는가?
강신준 : 요즘에는 <자본> 해설을 하는 책이 많이 나와서 그 중에서 한두 권만 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처음에 폴 말러 스위지의 <자본주의 발전의 이론(The Theory of Capitalist Development)>(이주명 옮김, 필맥 펴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정리가 아주 잘 된 책이다.
그러나 어떤 해설보다도 <자본>을 직접 읽는 게 좋다. <자본>을 강의하는 독일의 교수들에게도 의견을 물었는데, 나랑 똑같은 의견이었다. 한 번 마음먹고 1권의 23장부터 천천히 읽어보라. 답답한 현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될 뿐만 아니라, 본인이 찾고 있었던 해답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 번역은 진행 중
프레시안 : 오랫동안 <자본> 번역에 매달려 왔다. <자본> 완간 이후에 계획하는 일이 있나?
강신준 : 이렇게 번역한 <자본>을 노동자들과 같이 읽는 일이다. 지난 학기에 전국금속노동조합 조합원 100여 명과 8주 동안 <자본> 강의를 했다. 앞으로 그들과 <자본>을 같이 읽으면서, 그들의 문제의 해답을 같이 찾아볼 생각이다.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자본>에서 단초처럼 제시된 대안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축적된 성과를 논문으로도 발표하고, 구체적인 정책으로도 내놓을 예정이다.
프레시안 : <자본> 외에도 번역이 안 돼 있거나, 번역이 다시 되어야 할 마르크스의 저작이 있는가?
강신준 : 사실은 MEGA를 펴내는데 참여하는 일본 도호쿠 대학교 오무라 이즈미 교수 등이 중심이 돼 마르크스의 원고 중에서 공황과 관련된 부분만 편집해서 책으로 펴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일본에서 그 작업이 이뤄지면 그것은 번역을 해서 국내에 소개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의 저술 계획 속에서 <자본>의 4권에 해당하는 <잉여가치학설사>도 번역해야 하는데, 분량이 많아서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언젠가는 해야 할 작업이다.
프레시안 : 인터뷰 중에 MEGA 얘기가 종종 나왔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철학자들을 포함해 MEGA 번역에 관심이 있는 학자들, 출판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본> 역자로서 MEGA 번역에 직접 참여할 의사가 있는가?
강신준 : 고민도 하고, 준비도 하는데 엄두가 안 난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를 MEGA 번역을 시작하려면 장애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두 권 하고 그만둘 수 없으니까. 장기간 번역에 몰두하려면 기금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사실 개인적으로 제일 급한 건 <자본>의 문헌 비판이다.
이번에 번역한 <자본>은 일반 독자를 염두에 두고 1957년과 1968년 사이에 소련과 동독이 중심이 되어 발간한 MEW 판이다. 이 <자본>은 엥겔스가 정리한 원본을 놓고 소련, 동독의 학자들이 주를 다는 등의 작업을 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이 <자본>을 완성하기까지 세 벌의 초고가 있었다.
이것을 일일이 검토해서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 확인하고, 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자본> 번역도 아직 끝난 게 아닌 셈이다.
프레시안 : <자본> 역자로서 MEGA 번역을 비롯해서 마르크스의 저서의 번역에 나서려는 이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가? '함부로 시작하지 마!'와 같은…. (웃음)
강신준 : 한국에는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학자가 없다. 시류에 자꾸 흔들린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정체를 규명하는 데 마르크스만큼 중요한 학자가 막스 베버인데, 한국에서는 베버를 제대로 연구하는 학자도 없는 것 같다. 그나마 최근에 베버의 주저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김덕영 옮김, 길 펴냄)이 제대로 번역돼 나왔으니까….
초심을 버리지 않고,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마르크스를 연구하다 보면 언젠가는 광맥에 닿는다. 내가 그렇다. 20년 동안 동아대학교에서 마르크스를 강의하면서 <자본>을 읽었다. 또 해설서를 펴내느라 꼼꼼히 본 것도 여러 번이다. 그런데 한 15년이 지난 2004~5년에야 <자본>에 대한 깨달음이 오더라. '아, 이 책의 구조가 이렇구나.' 그 때야 어렴풋이 감이 왔다.
내가 존경하는 학자 중에 고 김진균 선생이 있다. 그 선생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고향 마을의 느티나무는 내가 동네를 떠날 때도 그 자리에 서 있었고, 타지에서 산전수전 다 겪고서 지쳐서 찾아가도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내가 죽을 때도 그 자리에 서 있다고. 이 느티나무처럼 한 곳에 뿌리를 내려라. 한 길로 매진하면 반드시 열매가 나타난다.
ⓒ프레시안(손문상) |
우리의 천국은 우리가 만든다
프레시안 : 마지막 질문이다. <자본>과 같은 공부를 위한 책 외에 즐겨 읽는 책은 무엇인가?
강신준 : 나는 원래 문학을 좋아한다. 특히 소설을….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끊임없이 옆에 두고 반추한 소설이 이청준의 작품이다. 군대에 있을 때,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견해가 다르겠지만, 나는 이 소설을 굉장히 정치적인 작품으로 여긴다.
그 안에 마르크스가 얘기했던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핵심이 들어 있다. 한 사람이 소록도로 내려가서 나병 환자를 위한 천국을 건설한다. 그런데 정작 그 사람에 천국은 소록도의 환자들에게는 지옥이다. 당신의 천국이 우리의 지옥이다. 천국은 누가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나는 이게 바로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청준의 소설은 여러 번 읽으면서 음미해 볼 만하다.
다른 책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최근에는 레닌 관련 책이 여럿 나오지 않았나? 지젝 등이 공저한 것을 비롯해서. 나는 비교적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는데 사실 쏙 마음에 드는 책이 없었다. 마르크스만큼은 아니어도 레닌의 글에서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찾을 수 있을 텐데, 지금까지의 시도는 불만족스럽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