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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책의 몰락'을 말하는가…'책 세상'이 도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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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책의 몰락'을 말하는가…'책 세상'이 도래한다!

[좌담] '프레시안 books'…서평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한때 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여럿이 함께 공유한 적이 있었다. 이른바 '금서' 목록에 올린 책을 몰래 구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읽었던 적도 있었다. 출판사가 정식으로 찍지 못한 책을 제본해서 돌려 읽으면서 희열을 느끼던 적도 있었다. 그 때의 책은 '해방의 도구'였다.

시집 한 권, 소설 한 편이 세상을 들썩거리게 하던 때가 있었다. 서정시를 암송하는 일은 젊은이의 특권이었다. 짧은 단편소설 혹은 긴 대하소설은 늘 화제의 중심에 놓였다. 설사 책을 읽지 않는 이라도 신문에 나오는 책 기사에는 잠시 눈을 뒀었다. 그 때의 책은 '교양의 척도'였다.

오늘날 책에 '해방의 도구', '교양의 척도'와 같은 권위를 부여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한때 해방의 도구였던 인문·사회과학 책을 더 이상 찾지 않는다. 한때 교양의 척도였던 문학 책도 '위기'와 '몰락'이 얘기된 지 10년도 넘었다. 대화에서 책이 차지했던 자리를 드라마, 영화 그리고 연예인의 가십이 대체한 지도 꽤 되었다.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이야기, 특히 '서평'을 찾아볼 수 있는 공간도 크게 줄었다. 언론은 더 이상 예전처럼 서평에 신경을 쓰지 않고, 독자도 굳이 서평을 찾지 않는다. 인터넷 공간에 서평은 넘치지만 그것의 옥석을 가리는 일은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프레시안>이 다시 '책'을 얘기한다.

오는 7월 31일 <프레시안>이 수개월에 걸쳐 준비한 서평 웹진 '프레시안 books'가 독자를 찾아간다. 좋은 책에 딱 맞춤한 최고의 필자들이 공들여 쓴 신간, 구간을 다룬 권위 있는 서평을 중심으로, 독자·필자·출판사·도서관 등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말 그대로 열린 '책 세상'을 꿈꾸는 공간이다.

'프레시안 books'는 책이 뒷전으로 밀려난 것처럼 보이는 지금이야말로 '책으로 세상 보기'가 필요할 때라고 믿는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오늘날이야말로 책이 온전하게 힘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books'는 미처 이런 책의 힘에 압도당하는 경험을 못했던 독자까지도 책 세상으로 끌어들이고자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이런 '프레시안 books'의 계획을 미리 듣고서 세 사람의 책 동네 인사가 모였다. 강맑실 사계절 대표,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한승동 한겨레신문사 기자가 출판사 대표, 언론사 기자 등의 경험을 염두에 두고 바람직한 서평의 본보기를 놓고 두 시간에 걸쳐서 의견을 나눴다. 사회는 '프레시안 books'의 상임서평위원인 도서평론가 이권우 씨가 맡았다.

다음은 지난 7월 19일 오후 종로구 청운동 근처 카페에서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좌담 전문.


▲ 왼쪽부터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이권우 '프레시안 books' 상임서평위원, 강맑실 사계절 대표, 한승동 한겨레신문사 기자. ⓒ프레시안(손문상)

서평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권우 : 오는 7월 31일 새로운 서평 웹진 '프레시안 books'가 선을 보인다. 기존의 언론 서평 섹션과 다른 점을 여럿 내세우고 있지만, 그동안 '실종'되었던 서평을 통한 다양한 담론 제기라는 점에 특별히 비중을 두고 있다. 이런 정신을 내세운 '프레시안 books'를 준비하면서 서평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이 질문부터 얘기를 시작해보자.

한승동 : 서평은 무엇보다 우선 독자를 위한 것이다. 일단 내가 <한겨레>에 쓰는 기사를 서평으로 간주할 수 있다면, 그것을 쓰면서 염두에 두는 원칙부터 얘기해 보겠다. 내가 서평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게 하자', 바로 이것이다.

즉, 내가 쓴 서평을 보고 한 사람이라도 더 책을 찾게 된다면, 그것은 성공한 서평이다. 물론 가능한 한 좋은 책이어야 한다는 건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쓴 서평을 지면에 배치하는 편집을 할 때도 무엇보다 그런 생각을 염두에 두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맑실 : 서평이 독자를 위한 것이라는 데는 다들 동의한다. 그런데 그 독자는 누구인가? 매체의 성격에 따라서 독자의 상이 다를 수 있다. 오늘은 주로 언론 서평을 얘기하겠지만, 실제로 서평이 실리는 매체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프레시안>에 실리는 서평과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펴내는 <서평문화>의 그것은 상정하는 독자가 다르지 않을까?

어떤 독자를 위한 서평인가, 이것이 명확하지 않으면 서평의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또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책의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그 사이를 매개해주는 전달자, 좀 더 풀어서 얘기를 해보면 저자와 출판사, 독자, 또 서점과 도서관 등 독서를 운동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주체에 두루 영향을 줄 수 있는 권위 있는 서평이 있었으면 좋겠다.

강성민 : 서평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찾으면 자연스럽게 해당 서평뿐만 아니라, 그 서평이 실리는 매체의 성격도 생각해볼 수 있다. <프레시안>에서 서평 웹진을 새로 만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좀 더 도발적인 서평을 많이 볼 수 있겠구나, 이런 기대를 했었다. 서평의 비평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비평의 성격이 강한 서평의 1차 독자는 저자와 출판사 그리고 책이라는 매체를 우선순위에 놓는 사람일 것이다. 이런 사람의 눈길을 잡는 서평이 많이 실린다면 '프레시안 books'가 짧은 시간에 강한 반향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게 <프레시안>의 기존의 정체성에도 맞고.

책 소개에만 머무르는 서평, 곤란하다

이권우 : 방금 강성민 대표가 '프레시안 books'에 실릴 서평이 타깃으로 삼아야 할 독자의 상을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다른 분들의 의견은 어떠한지?

한승동 : 강맑실, 강성민 대표의 얘기를 들으면서 <한겨레>에 실리는 서평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이런 생각을 했다. 일단 누구를 위한 것이면 안 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있다. 먼저 서평이 출판사, 출판 산업 자체의 이해를 먼저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매체의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어서도 곤란하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역시 남는 게 아까 말한 바로 그 독자다. 서평이 생산자 쪽인 작가나 출판사, 출판 산업 또 매체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우선이라는 얘기고, 좀 다른 맥락이지만, 서평의 효과로 독자층이 넓어지면 결과적으로 작가, 출판사, 출판 산업, 작가 등 생산자 쪽도 발전시킬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독자 우선이다.

그런데 문제는 독자에는 정말로 다양한 성격, 다양한 계층,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 누구를 주독자로 상정할 것인가?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주일에 수백 권이 나오는 책 중에서 몇 권을 골라낼 때는 분명히 어떤 공감대가 있다는 것이다.

책을 고를 때는 당연히 책 자체의 가치를 먼저 보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자세를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개인의 가치 지향이나 선호가 자연스레 영향을 끼친다. 말하자면 개인 주관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건 사람인 이상 애초에 불가능하다. 마치 역사책이 역사가의 사료 선택 단계에서부터 주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듯이. 책 선정에서의 주관성이나 가치 지향의 개입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면 차라리 그 바탕 위에서 자기 정체성에 맞게 솔직하고, 그리고 성실하게 임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한겨레>다운 책이라고나 할까? 좀 거칠게 얘기하자면 예컨대 유한 계층에게나 호소력이 있을 법한 책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세상을 사회를 좀 더 나은 쪽으로 바꾸려는 의지, 고민 등이 배어 있는 책에 자연스럽게 손이 더 간다. 그런 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동력이 되리라는 바람이 들어 있다고나 할까?

이권우 : 한승동 기자가 서평의 주된 독자로 책을 소비하는 사람에게 방점을 찍는다면, 강맑실 대표나 강성민 대표는 서평이 책을 생산하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줘야 한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 얘기를 좀 더 해보자.

강맑실 : 물론 서평이 실리는 매체가 어떤 독자를 염두에 두느냐에 따라서 서평의 성격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술 잡지에 실리는 서평의 독자는 일반 독자가 아니다. 저자나 학문 공동체의 구성원이 자극을 받도록, 그래서 학술 활동에 도움이 되는 서평이어야 한다.

그러나 <프레시안>이나 <한겨레>와 같은 언론의 서평은 불특정 독자를 대상으로 하면서도 방금 한승동 기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암묵적으로 특정한 성향의 독자를 염두에 둔다. 이처럼 언론마다 최소한의 서평 독자에 대한 범주는 정해져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고 그 독자 범주에 따라 책의 선정도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또 서평의 역할과도 관계되는 것인데 다분히 서평이 책 소개에 머물러서 독자 확산에만 목적을 두는 것에서 더 나아가 바람직한 출판문화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와 출판사에 대한 자극제와 각성제로서의 역할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또 책을 생산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이 상호 소통하는 기회가 많아질 때, 저자나 출판사와 독자가 서로 활발히 교류할 때, 비로소 책을 둘러싼 바람직한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서평은 바로 이런 문화를 고무하는 것이어야 하고, 그렇게 되려면 아까 얘기한 것처럼 양쪽에 두루 정신이 바짝 들 수 있는 자극을 줄 수 있는 서평이 나와야 한다.

▲ 강맑실 사계절 대표. ⓒ프레시안(손문상)

'블로거 마케팅' 과연 바람직한가?

강성민 : 아까 비평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서평을 주문하긴 했는데…. 출판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성격이든 간에 책을 소개하는 공간이 많아지면 좋겠다. 지난 2년 새 신문에서 책을 소개하는 지면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프레시안 books'의 시작은 대환영이다. (웃음)

이권우 : 강성민 대표의 얘기를 받아서 그간 서평이 출판문화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 살펴보자. 시장에 미친 영향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이상을 해냈는지 현장에 계신 분들의 평가가 궁금하다.

강맑실 : 시대별로 달랐다. 2000년대 초까지 언론 서평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웃음) 종합 일간지 서평 섹션의 머리기사로 실리면 한 달 만에 2쇄에 들어가는 책이 많았을 정도니까. 그때는 언론 서평 외에는 책에 대한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독자도 언론 서평을 통해서 책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는 욕구가 강했다.

또 언론도 서평에 그만큼 신경을 썼다. 일본과 같은 나라와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종합 일간지에서 서평에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활자 문화의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신문과 책이 서로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기도 했고, 또한 한 신문이 독서 문화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한 사회에서 그 신문이 담당하는 문화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가늠하는 독자들의 인식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또 그 때는 <출판저널>이라고 하는 여론 주도층에게 영향력이 컸던 서평 전문 잡지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신문 서평의 영향력은 어떤가?

한승동 : 사실 언론의 서평 기사야말로 한국의 출판문화가 이 정도까지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국 사회의 변화, 인터넷의 등장 등 매체 환경의 변화가 맞물리면서 언론 특히 신문의 영향력이 예전에 비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서평 매체가 다양해지다 보니, 독자도 더 이상 책에 대한 정보를 언론 서평에만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 수요 변화는 서평의 영향도 있겠지만 한국 사회의 변화를 강하게 반영하는 면도 있다. 1980년대에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책이 폭발적으로 읽혔던 것은 그 시대의 대중적 욕구, 곧 군사 정권의 억압 체제에 저항하면서 한국 사회의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변화를 희구했던 사람들의 갈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특히 지금의 20~30대는 한 세대 전의 그들 연령대만큼 책을 읽지 않는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지난 시절 책은 세상을 바꾸는 수단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의미를 부여하기도 어려워졌다.

강맑실 : 20대는 책뿐만 아니라 신문도 읽지 않기 때문에 신문 서평의 영향력이 더욱 축소되고 있는 게 아닐까. 또 언론이 변화하는 출판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데도 원인이 있다. 2000년대 들어서 어린이, 청소년 책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그런데 언론에서 이런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어린이, 청소년 책은 쏟아지는데 언론이 그것을 외면하니 독자나 출판사는 다른 수단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 청소년 책을 추천하는 전문가의 네트워크가 등장하고 독자의 큰 호응을 얻은 것도 이 때부터다. 또 출판사에서 자체적으로 서평 매체를 창간하는 등 언론과 통하지 않고 독자와 만나려고 노력을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고. 여기에다 다양한 정보 전달자로서의 인터넷 환경이 덧붙여지면서 신문 서평의 영향력도 축소되어간 게 아닐까.

이권우 : 인터넷 공간에서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올린 서평의 영향력도 무시 못 할 정도로 커졌다. 강성민 대표가 아무래도 이 부분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해왔을 터니, 먼저 말해주면 좋겠다.

강성민 : 그런 서평은 영향력이 클 뿐만 아니라 지난 1, 2년 사이에 출판 시장에서 사실상 제도화되었다. 예를 들면, 이른바 '파워 블로거'라고 불리는 이들 중 몇몇은 출판 홍보 대행 회사의 홍보 목록에 이름을 올릴 정도다. 출판사가 언론과 대등한 자격으로 놓고 신경을 쓸 정도로 영향력이 커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과연 바람직한가, 이런 질문을 해본다면 아직은 유보적이다. 인터넷 공간의 서평이라는 게 수준차가 천차만별일 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출판사 마케팅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는데…. 인터넷에서 그런 서평이 대세가 되면 오히려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더 많아질 것 같아서 걱정이다.

독자들이 언론에서 주목을 받지 못한 좋은 책을 발굴해서 인터넷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이 읽도록 퍼뜨리는 일, 이런 긍정적인 일보다는 내용이 부실한 책인데 출판사의 이른바 '블로거 마케팅' 때문에 살아남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도 이런 일이 없다고는 말 못하고….

이권우 : 기자 처지에서 이런 인터넷의 서평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한승동 : 내가 하는 일만으로도 버거워선지 사실 다른 매체들 서평을 찬찬히 살필 여유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한다. 최근에 인터넷 커뮤니티 '비평고원'의 온라인에서의 작업을 묶은 책(<비평고원 10>)을 소개했다. 대단하더라. 나름의 힘과 활기를 느꼈다. 일부 코너의 고담준론들 중엔 내 식견 정도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많더라. (웃음)

비평고원은 상당한 깊이의 지식인이 교류하는 일종의 공동체로 자리를 잡은 느낌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들만 좀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그런 것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라캉이나 들뢰즈, 하버마스나 아도르노 등 유럽 지식인의 책이나 담론에 관한 수준 높은 의견을 주고받는 것은 그것대로 필요하겠고 우리의 사유 수준 향상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면이 있다. 하지만 때로는, 아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서로 겉돌기만 하는 자기과시적인 독백에 그칠 가능성은 없겠는가, 하는 걱정이 들 때도 있다.

여기 우리 현실이나 생활과의 연관 관계 또는 우리 전통의 사유에 대한 수준 높은 천착 쪽으로도 눈을 돌려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앞으로 이 공간이 어떻게 지금의 한계를 극복하는지 지켜봐야 할 듯하다.

▲ 한승동 한겨레신문사 기자. ⓒ프레시안(손문상)

전문가의 함량미달 서평, 대안은?

이권우 : 비평고원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누리꾼이지만 사실상 전문가로 봐야 한다. 방금 한승동 기자가 언급했으니, 자연스럽게 전문가 서평의 문제점을 짚어보자. '프레시안 books'는 가능하면 해당 책을 가장 잘 소화해서 독자에게 평해 줄 수 있는 맞춤한 필자에게 서평을 맡겨볼 예정이다. 사실 이런 서평 문화는 한국에서는 낯설다. 왜 그럴까?

강성민 : '프레시안 books'의 그런 계획이 성공하려면 우선 글을 잘 쓰는 전문가를 발굴해야 할 텐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소통의 문제가 제일 클 듯하다. 전문가, 보통 교수들이 쓴 서평은 재미가 없는 경우가 많고 도저히 읽을 수 없을 때도 있다. 전문가답지 않게 책의 주장에 휘말려들거나 단순히 요약 제시하는 글도 상당히 많아 실망할 때도 있다.

책의 특정 개념이나 오류를 물고 늘어지는 공격적인 글은 객관적인 평을 원하는 독자들을 배반한다. 이것은 가장 먼저 글쓰기의 문제일 수 있다. 두꺼운 책을 읽고 그 '소감'과 '평가'와 '가이드'를 원고지 10매 내외로 써내려면 말의 경제성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글의 구조에 대한 명확한 설계도가 필요한데 그런 것에 능숙한 필자들이 많지 않다. 특히 논문처럼 긴 호흡의 글에 익숙한 사람들일수록 말이다.

더구나 서평은 글을 잘 쓰는 것으로도 부족하다. 르네상스형 지식인만이 제대로 된 서평을 쓸 수 있다. 책이 다루는 주제에 대한 폭넓은 식견이 있어야 책에서 서평자 자신의 개성적인 논점을 추려낼 수 있고, 이를 통해 명확한 사고와 표현으로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 보통 내공이 아니고서는 이런 좋은 서평을 쓸 수 없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어떤 책에 대한 가장 맞춤한 평자가 꼭 그 책이 다루는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다. 오히려 폭넓은 교양을 갖춘 이가 더 자격이 있을 수도 있다. 일본의 <아사히신문>만 해도 그렇다. 우리나라로 치면 '철도공사 직원'이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를 읽고 평한다든지, 각계에서 전문서적을 읽고 자유롭게 논하는 문화가 있다. 그런 서평 문화가 한국에서도 등장해야 한다.

강맑실 : 일단 언론에 실린 서평만 놓고 본다면, 전문가의 글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기자가 소화하기 어려운 책을 전문가에게 맡길 때는 크게 두 가지를 기대할 것이다. 나는 이것을 십자형 서평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수직적으로는 그 책이 해당 분야에서 놓인 학문적 맥락을 설명해줘야 하고 수평적으로는 책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견해나 비판이 곁들여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거기에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글쓰기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이 세 가지 점을 다 소화할 수 있는 전문가가 과연 우리나라에 얼마나 될까, 따져보면 생각만큼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한승동 : 전문가 서평, 언론에서 담당하다 보면 정말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사실 전문적인 내용을 담은 서적들 중엔 기자들이 소화하기에 벅찬 것들도 적지 않고 또 그럴 만한 여유도 없다. 그래서 외부의 전문가, 즉 주로 대학 교수들을 찾게 되는데…. 내 경험만 보면 만족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

물론 앞에서 강맑실, 강성민 대표가 얘기하는 것처럼 전문가들이 대중을 상대로 한 글쓰기 훈련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언론사의 시스템도 문제다. 전문가가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서 글을 쓸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지금의 언론사 시스템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다. 예를 들어서 수백 쪽 되는 책을 내일, 모레까지 몇 매 정도 써 달라, 전문가에게 이런 요구를 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각 매체가 경쟁 관계에 있다 보니까,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러니,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적인 식견이 뒷받침된 대중과 소통하는 좋은 글을 고심해서 쓰기 어렵다.

사실 이것은 전문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조차도 불과 이틀, 사흘 만에 책을 소화해서 읽고서 서평을 써내는 게 결코 쉬운 노릇이 아니다. 제대로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서평을 써서 내보낸 적이 있다. 당연히 그런 서평이 독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리 없다.

출판 예고제, 왜 한국은 안 되나?

이권우 : 그런 문제 때문에 '프레시안 books'에서는 아예 속보 경쟁은 지양하기로 했다. 다른 언론에서 소개한 지 두세 주가 된 책이라도 좋은 책이라면 독자에게 좋은 서평으로 소개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을 정하면서 왜 우리나라는 이른바 '출판 예고제'가 정착되지 못할까, 이런 아쉬움이 들었다.

미국, 일본에서는 출판을 미리 예고하는 시스템이 정착해 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같은 언론은 최소한 출간 두 달 전에 원고를 출판사로부터 미리 확보해서, 평자가 충분히 책을 검토하고 숙고할 시간을 준다. 일본의 언론도 한 달 정도 미리 검토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대체 우리나라는 왜 그런 시스템이 정착이 안 되는 것일까?

강맑실 : 시도를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예전에 한 언론에서 출판 예고제를 하겠다, 이렇게 공언을 한 적이 있다. 몇 군데 출판사에서는 자발적으로 협조도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언론 간의 속보 경쟁이 문제였다. 해당 언론을 믿고서 중요한 책의 원고를 미리 공유하면, 어떤 식으로든 다른 언론에서 소개하기 전에 기사가 나갔다.

그 언론에서 그렇게 써버리면 다른 언론에서는 책의 중요성과 상관없이 무시하고…. 언론이 책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시간을 주자, 이런 선의가 오히려 피해로 돌아온 것이다. 이런 과정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해당 언론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결국 출판 예고제가 정착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었다.

또 다른 예도 있다. 사실 사계절은 자체적으로 출판 예고제를 한 적도 있다. 한 때 출간 예정인 책의 원고를 미리 보낼 수 있으니 요청하라, 이렇게 언론에 협조를 구했다. 그랬는데 원고를 미리 보고 싶다고 하는 기자도 별로 없더라. (웃음) 당연히 그 시도도 결국 정착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었다.

한승동 : 방금 강맑실 대표가 얘기한 한국 언론의 보도 관행은 정말로 큰 문제다. 특종 개념 자체가 잘못돼 있다. 아무리 함량 미달이라도 남보다 먼저 기사만 내면 특종이라는 생각이 지배하다 보니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동시에 내더라도 혹은 한걸음 늦더라도 다른 기사가 담지 못한 정보와 시각을 담았다면 그것이야말로 특종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정말 중요한 문제도 누군가 먼저 써버리면 다른 데서는 안 쓰거나 아예 문제 자체를 사장시킨다. 방금 강맑실 대표가 얘기한 사례는 그런 한국 언론의 고질적인 보도 관행이 서평에서 드러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관행이 바로잡히지 않으면, 출판 예고제는 결국 선의의 피해자만 낳을 가능성이 크다.

이권우 : 그렇다면, 출판계는 출판 예고제를 할 준비가 돼 있는가? 개인적으로는 회의적인데 말이다.

강맑실 : 출판사는 어느 정도 준비가 돼 있다. 예를 들면, 사계절의 경우에는 내부 인트라넷에 각 팀이 모든 원고를 공개한다. 언론과의 신뢰 관계만 마련된다면 그런 내부 인트라넷에 실린 원고 중 일부를 책이 나오기 한 달 전쯤에 언론에서 미리 검토할 수 있도록 보내줄 수 있다. 강조하지만, 출판 예고제의 가장 큰 전제는 출판계와 언론계의 상호 신뢰다.

물론 책만큼 마지막까지 여러 변수가 많은 문화 상품도 없다. 예를 들어서, 책을 낼 모든 준비가 돼 있는데 저자가 제목을 거부해서 또는 특정한 표기법이나 개념을 놓고 이견이 있어서 발행을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런 시행착오를 염두에 두더라도 조금만 노력한다면 한 달 전쯤에 출판 예고를 하는 것은 가능하다.

강성민 : 동감한다. 만약 언론에서 적극적인 의지를 보인다면, 출판사는 충분히 출판 예고제를 할 만한 준비가 돼 있다. 한 달 전쯤에는 출간 일정이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윤곽이 잡히기 때문에 가제본한 원고를 모든 언론에 보내서 검토를 요청하는 일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강맑실 : 솔직히 출판사 입장에서도 출판 예고제가 정착되면 긍정적인 점이 많다. 책마다 궁합이 맞는 언론이 있다. 요즘엔 언론 서평이 다양화되면서 이런 현상이 더욱더 두드러진다. <한겨레>가 좋아하는 책 또 다른 언론이 선호하는 책 등…. 만약 출판 예고제가 정착되면, 보도는 같은 시점에 되더라도 관심 있는 언론에서 훨씬 짜임새 있고 심도 깊은 서평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언론 입장에서도 책의 내용을 미리 검토할 수 있다면, 꼭 서평이 아니더라도 그 책을 다른 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사회적 의제를 던지거나 시사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책은 언론에서 굳이 서평이 아닌 다른 형식으로 다룰 수 있다. 새로운 시각, 새로운 정보가 곧바로 취재에 도움이 될 테니까.

한승동 : 언론에서는 거의 신간만 서평으로 다룬다, 이런 편견도 깰 필요가 있다. 구간 중에서도 좋은 책이 얼마나 많나. 주목받지 못한 좋은 구간을 적극적으로 발굴해서 독자에게 알리는 일도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구조적인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출판계가 취약하다 보니 새로 나온 책이 언론에 더 많이 노출되기를 바란다. 이런 요구에 맞서서 언론이 뚝심 있게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언론계도 출판계만큼이나 취약하다 보니 자기 원칙을 가지고 밀어붙이는데 한계가 있다. '프레시안 books'는 애초에 속보 경쟁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하니, 이런 구간을 적극적으로 발굴해서 소개하는 데도 신경을 쓰면 좋겠다.

▲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프레시안(손문상)

생산적인 논쟁이 부재한 이유는…

이권우 : 앞에서도 잠시 얘기가 나왔지만, 좋은 서평은 세상에 긍정적인 자극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서평이 '압박'이 되어야, 사회적 기능을 제대로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비평 서평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데, 역시 현실에서는 이것이 쉽지 않다. 강성민 대표는 <교수신문>에 있으면서 비평 서평을 시도했는데, 결과는 어땠나?

강성민 : <교수신문>은 독자 자체가 일단 대학의 구성원, 즉 학문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서평의 비평으로서의 기능을 강화한다, 이런 계획을 실행에 옮겼을 때 안팎으로 호응이 많았다. 평자에게 의도적으로 비판적인 서평을 주문했고, 그런 서평이 생산적인 논란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했다.

서평에 의한 담론 창출, 이런 목적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예를 들면, 고종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둘러싸고 비교적 생산적인 논의가 서평을 통해서 가능했다. 그런데 여전히 종합적으로 평가를 해보면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이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권우 : 서평지를 꾸려가는 사람이라면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 비판적인 서평이다. 우리의 논쟁 문화가 한 단계 성숙하는 데 큰 이바지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적 장애 때문에 의지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

강성민 : 서평을 통한 담론 창출, 이게 제대로 되려면 우선 비평의 기본이 담보되어야 한다. 우선 평자가 필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필자의 의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평자의 비판을 수용할 필자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비평에 대한 반응이 가장 격렬했다.

한승동 : 참 어렵다. 논쟁이 제대로 되려면 당사자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상당한 지적 훈련이 된 상태여야 한다. 이런 훈련이 제대로 안 돼 있어서인지 대개 비평을 통한 논쟁은 말싸움, 감정싸움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이런 풍토 속에서 비평 서평이 제대로 안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냥 좋은 말을 해주거나, 침묵하는 게 서로 속 편하니까.

강성민 : 더군다나 서평을 계기로 언론에서 논쟁을 하기는 더욱더 쉽지 않다. 사실상 불특정다수 앞에서 자신의 밑바닥을 드러낼지 모르는 논쟁에 뛰어들 용기가 있는 지식인을 찾기는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교수신문>에서 상당히 도발적인 주장을 담은 책의 서평을 쓸 필자를 찾느라 스무 명에게 청탁을 했는데 다 거절하더라.

그나마 거절의 이유를 밝힌 몇몇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이랬다. 그 책의 주장을 염두에 두면 논쟁적인 서평을 쓸 수밖에 없는데, 그 이후의 상황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논쟁을 하다 보면, 감정이 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진면목이 들어날 수도 있는데, 그걸 두려워하는 것이다.

한승동 : 한국의 논쟁 문화를 보면 그럴 만하다. 논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양측의 장점과 단점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런 논쟁을 성찰의 기회로 삼으면 족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마치 논쟁으로 승패를 갈라서, 승자는 칭송하고 패자는 죽인다. 이런 것도 1등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세상이란 말이 유행어가 되는 풍토와 상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이런 풍토 속에서 누가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낼 논쟁에 뛰어들겠는가? 논쟁을 반드시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라 서로 한 수 배우는 과정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수가 모자라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상대의 강점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도 좋고 전체를 위해서도 좋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기면 독식하고 지면 죽는다는 유아적 발상이 만연한 우승열패의 사회 풍조를 환골탈태해야 한다.

강맑실 : 그런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논쟁의 장과 경험을 늘여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편집자의 역량이 중요하다. 논쟁의 주제 설정과 발굴이야말로 편집자의 역할 아닐까. 편집자는 논쟁에 성냥을 긋는 자이다. 이렇게 말하면 좀 뭐하지만 사실 논쟁은 성질이 나야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야 또 불같은 논쟁으로 이어지고. 다만 이것이 소모적인 말싸움, 감정싸움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또한 편집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프레시안 books'에서 우리 시대 기억에 남을 빛나는 논쟁들을 자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이권우 '프레시안 books' 상임서평위원. ⓒ프레시안(손문상)

'권위' 있는 책 세상의 등장을 기대하며…

이권우 : 앞에서 예고했던 대로 오는 7월 31일 '프레시안 books'가 시작한다. 앞에서도 몇 가지 바람이 나왔는데, 의례적인 이야기라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한 번 더 당부의 얘기를 한다면….

한승동 : 지금까지 얘기한 언론 서평의 여러 문제만 피해가면 잘 될 것 같다. (웃음) 사실 나는 굉장히 반갑다. 온라인 매체든, 오프라인 매체든 <한겨레>가 추구하는 가치를 큰 맥락에서 공유하면서도 그간 <한겨레>가 시도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언론이 등장하면 나로서는 대환영이다.

그런 시도가 <한겨레>를 비롯한 기존의 언론을 자극할 수도 있을 테고,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다 보면 전반적으로 언론 서평 전체가 나아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프레시안 books'가 계획한 여러 가지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서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하기를 바란다.

한 가지 더 얘기하자면, <한겨레>와 같은 오프라인 매체는 지면의 제한 때문에 서평의 길이가 200자 원고지 8~12매, 한 면을 다 채워도 20매를 넘지 못한다. 긴장감 없이 늘어지는 위험만 피한다면, 독자가 읽는 맛이 있는 서평을 선보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기대해보겠다.

강맑실 : 앞에서 이런 얘기를 나눴다. 서평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렇다면, '프레시안 books'에 실리는 서평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프레시안> 독자부터 출발하자. <프레시안>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을 질 좋고 권위 있는 서평으로 알리고, 또 그들이 책을 매개로 다양하게 소통하는 놀이터로 '프레시안 books'가 자리를 잡는다면 일단 대성공이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온라인 매체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저자, 독자, 출판사가 자유롭게 소통하는 공간으로 발전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한승동 기자가 형식의 변화를 얘기했는데, 온라인 매체의 장점을 살려서 실시간 영상과 같은 다양한 형식까지 소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강성민 : 강맑실 대표, 한승동 기자는 소통에 방점을 찍었다. 소통도 중요하지만 서평은 권위가 있어야 한다. 정말 제대로 된 서평을 꾸준히 축적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의미에서 영향력이 커져야 많은 이들이 스스로 찾아와 자연스럽게 소통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books'는 <프레시안>이라는 언론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좀 다른 얘기가 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중국의 왕후이가 세계적인 잡지로 키워놓은 <독서(讀書)>의 사례를 보면 정말 부럽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이 잡지 30년치를 모두 소장하고 있다. 서평지를 소장하는 이유는 그것에 책의 가이드를 넘는 특별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books'는 '지면과 시간의 제약'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우니, '자본과 필자의 제약'을 극복하고 한 편의 글이 실리더라도 영향력이 큰 그런 공간으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이권우 : 긴 시간, 함께 해줘 고맙다. 현장 경험에서 비롯된 도움말이 이제 고고성을 울릴 '프레시안 books'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하나 더 있는 서평지가 아니라, 자기만의 색깔을 강하게 드러내는 하나만 있는 서평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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