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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명 연쇄 살인, 환경부와 산자부는 왜 침묵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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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명 연쇄 살인, 환경부와 산자부는 왜 침묵하나?

[현장]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간담회

"사랑하는 자식이나 아내를 잃은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내 손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정말 열심히 넣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잠자리에 누웠다가도 가습기 살균제를 넣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 벌떡 일어나서 넣곤 했다. 딸을 잃고 나서 자살까지 생각했다. 너무 괴로워서 문제를 피하려고 했지만 이제 정신 차리고 처음으로 이런 자리에 나왔다." (3살 딸 아이 잃은 아버지 백승목 씨)

15일 오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 8명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단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는 신계륜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민주당), 장하나 민주당 의원,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이 참석해 피해자들의 사연을 들었다.

정부, 아직도 "소관 부처 정리 안 돼"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CMIT/MIT,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의 유독성이 밝혀진 지 2년이 지났지만 정부와 제조 업체 측은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7일에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대책 예산' 50억 원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전액 삭감됐다. 환경노동위원회가 피해자 대책 예산을 신규 증액하는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지만 결국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조정소위원회의 심사 과정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 15일 오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간담회'에 피해자인 임성준 어린이가 산소 호흡기를 착용한 채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과정에서 기획재정부는 근거 법이 없고 정부 내에 소관 부처가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산 지원이 불가능하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와 환경보건시민센터를 통해 접수된 사망 사례만 127건인 초대형 참사임에도 소관 부처 간 떠넘기기로 사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 무심코 사용한 일상생활 용품으로 건강과 재산을 송두리째 잃은 피해자들의 사연은 절절했다.

휠체어에 탄 신지숙 씨는 산소 튜브를 코에 낀 채 말을 이었다. 지난 2011년, 그는 임신 9개월의 몸으로 원인 미상 폐 질환을 앓은 탓에 결국 아이를 강제 출산해야 했다. 아이는 다행히 건강했지만 그의 몸 상태는 갈수록 악화했고 의사는 폐 이식 수술을 권했다. 그는 거부했다. 1억 원이 넘는 수술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고 수술을 받아도 죽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더럭 겁이 났기 때문이다.

지금은 몸이 약해져서 수술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상태다. 신지숙 씨는 약 5분 동안 말을 이어가는 동안에도 가쁘게 숨을 들이쉬며 힘들어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의원들이 불안해서 "천천히 말씀하시라"고 만류할 정도였다.

신지숙 씨는 "이런 모습으로 국회까지 온 나를 보고 왜 국회에 왔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내 대답을 들은 사람들이 '그러면 기업이 책임져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기에, '그게 안 되니까 국회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엄마 잃은 아이, 아직도 분리 불안 장애에 시달려

최승영 씨는 아내를 잃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날 당시 4살, 2살이던 두 아이와 1년 동안 울면서 지냈다. 아이들은 아직도 분리 불안 장애에 시달리는 탓에 자다가도 옆에 사람이 없으면 깜짝 놀라 일어난다.

그동안 최승영 씨는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입 밖에 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는 다 잊고 살려고 했지만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피해자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습을 보고 나서 힘을 보태기로 했다.

3살짜리 딸을 잃은 백승목 씨는 "히틀러처럼 독가스를 살포한 것만 살인이 아니"라며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업체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피해자 구제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그래도 한국은 나름대로 선진화, 민주화된 나라인데 이렇게 아무도 해결에 나서지 않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꼬집었다.


정부 부처 나 몰라라…"국회가 나서달라"


피해자들은 "국회가 나서서 정부를 압박하고 감독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 사건이 발생한 지 햇수로 3년이 되도록 소관 부처 타령을 하는 정부에는 기대를 하려야 할 수 없으니 국회가 나서달라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정부가 피해자 구제에 나서야 무시 전략으로 일관하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업체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피해자들은 △피해자에 대한 긴급 의료 지원 및 생활 지원 △2014년도 정규 예산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 기금 포함 △청문회 등의 방식으로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업체 책임 추궁 △환경피해보상법 제정 △환경노동위원회의 원안대로 화평법(화학물질등록및평가에관한법률제정안)과 유해법(유해화학물질관리법개정안) 개정 등을 국회에 요구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강찬호 씨는 "이제까지 피해자들이 국회를 6, 7번 쯤 공식 방문했고 지난해에는 국정 감사에 가서 증언까지 했다"며 "그런데도 공식적인 문제 해결의 흐름이 최근에야 겨우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에 심상정 의원('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를 위한 결의안' 대표 발의)은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을 직접 만나 이야기한 결과, 긴급 복지 지원 기금으로 중증 환자와 가계 곤란자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유관 기관 중 보건복지부는 제한적으로 자기 역할을 추진하는데 환경부는 아직도 정확하게 자기 책임을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24일께 관련 3부처 공식 입장 표명 예정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책임이 있는 부서는 환경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전 지식경제부)다. 환경부는 독성 물질을 관리해야 하고 보건복지부는 질병 발생에 대해 역학 조사를 시행한 뒤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공산품을 관리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가습기 살균제 제품에 국가 인증 마크를 내준 책임이 있다.

그나마 보건복지부는 지난 4월 24일 관련 부처 장관 중 최초로 피해자를 면담하는 등 사태 해결에 나서는 모양새다. 그러나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현재 피해자들은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환경성 질환으로 다루고 윤성규 환경부 장관과의 면담을 주선해달라고 환경부에 요구하고 있다.

환경부를 향한 성토가 이어지자 환경부 이호중 과장(환경보건정책관실 환경보건정책과)은 "관련 정부 부처의 의견을 수집 중이며 아직 환경부의 공식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한공식 환경노동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24일께 환경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의 공식 입장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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