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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파괴된 남자의 눈물 "그녀를 앗아간 회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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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파괴된 남자의 눈물 "그녀를 앗아간 회사는…"

[가습기 살균제가 짓밟은 행복] 아내 잃은 최윤수 씨

지난 2011년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햇수로 3년째에 접어들었다. 일상 속의 생활용품이 영·유아 36명을 포함한 78명(2012년 10월 8일 기준, 환경보건시민센터 집계)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이내 사그라졌다.

하지만 무심코 가습기에 넣었던 살균제 때문에 소중한 아들딸, 아내, 남편을 잃고 남아 있는 가족도 건강이 만신창이가 된 피해자는 여전히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제조업체는 사건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피해자에게 사과 한마디 없이 시종일관 당당하다.

정부도 "가습기 살균제 사용을 자제하라"는 권고 수준의 대책만 내놓은 채 피해자를 외면하고 있다. 1994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국민은 약 874만 명(전체 국민의 18.2퍼센트)에 달한다. 실제 피해 사례가 몇 건인지는 파악조차 할 수 없는 규모인 것이다.

<프레시안>은 모두가 외면한 채 신음하는 피해자를 만나 피눈물 나는 '그들만의 싸움'을 들었다. <편집자>


● 첫 번째 인터뷰 : 아내와 아기를 잃은 이 남자, "살인자는 바로…"
● 두 번째 인터뷰 : '옥시싹싹'이 망가뜨린 이 남자, 그 기막힌 사연은?

"아빠. 나 비행기 타고 엄마 만나러 하늘나라 가고 싶어."

보름달이 뜬 어느 밤,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보던 둘째 아들이 말했다. 3살 때 엄마를 잃은 아들의 말에 최윤수 씨의 가슴이 턱 막혔다. 부인 이현숙 씨는 지난 2010년 사망했다.

당시 5살, 3살이었던 두 아들이 마지막으로 본 엄마는 산소통에 연결된 줄을 코에 낀 채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두 아이에게 "엄마는 코가 아파" 하고 말해주긴 했지만 정작 최 씨 자신도 아내의 폐가 병들어가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는 2011년 여름에야 알았다. 아내를 죽인 살인자가 '원인 미상의 폐 질환'이 아닌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이라는 사실을.

▲ 첫째 아들과 찍었던 가족 사진. ⓒ프레시안(남빛나라)

"커튼, 침대, 소파, 심지어 집까지 바꿨지만…"

지난 5일 오후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최윤수 씨의 집을 찾았다. 두 아들을 어머니에게 맡긴 채 혼자 사는 터라 마치 이사를 앞둔 집처럼 별다른 가구 하나 없이 집안이 휑했다. 기자에게 마실 것을 주려고 냉장고를 연 그는 "정말 주스 한 병 없이 온통 술밖에 없네요" 하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아내가 죽은 후 술 없이는 잠들지 못한다.

-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나요?

"아내와 저는 2005년 12월에 결혼했어요. 임신한 상태에서 뒤늦게 결혼했죠. 그때부터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는데 2006년에 첫째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 호흡 곤란 증세가 부쩍 심해지더군요. 수원 아주대학교병원에서는 '기흉'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내과 의사인 사촌 동생이 서울아산병원을 권하더군요.

아내의 상태는 훨씬 더 심각했습니다. 이미 폐 섬유화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서울아산병원에서도 정확한 원인을 짚어내지 못했어요. 의사는 '환경을 바꿔야 한다' 이런 원론적인 말을 할 뿐이었어요. 바꿀 수 있는 것은 다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당시 살고 있던 집의 커튼, 침대, 소파를 모두 버렸어요."


아내는 나아지지 않았다. 의사는 다시 "집이 문제일 수도 있다" 이렇게 말했다. 그는 혹시 '새집증후군'일까 싶어서 "지은 지 30년이나 되는 다 쓰러져가는 집"에 월세로 들어갔다.

- 의사의 모호한 말 한마디에 이사까지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데 많은 노력을 했네요. 차도가 있었나요?

"아니요. 걸핏하면 병원에 가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주말마다 전국 각지의 공기 좋은 곳을 찾아 아내를 데리고 다녔어요. 차츰 몸이 안 좋아진 아내가 어느 날 '피곤해서 그런 데 갈 힘도 없다'고 하더군요. 결국 2009년 12월, 서울아산병원에 한 달 반이나 입원했어요. 그러다 산소통을 가지고 퇴원했는데 그땐 이미 앉아만 있어도 숨이 찬다고 헉헉댈 정도였습니다."

최 씨는 절박했다. 병원 관계자에게 "몇백만 원이든 몇천만 원이든 다 줄 테니 일단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다해 달라"고 말할 정도였다. 결국 의사는 폐 이식을 준비하라는 최후통첩을 내렸다. 그를 비롯한 온 가족이 폐 기증이 가능한지 검사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가족들의 검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아내는 사망했다.

"3일 내내 울고 또 울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고…"

- 갑작스러운 죽음에 모두 공황 상태에 빠졌을 것 같습니다.

"다들 '참 운 없이 갔다' 이렇게 말하더군요. 젊은 사람이 원인도 모르는 채 점점 숨을 못 쉬는 병에 걸려 죽었으니 그럴 만했지요. 너무 예상치 못한 일이 닥치니까 예전에 사주팔자를 봤을 때 '두 번 결혼할 팔자다' 이런 결과가 나왔던 것까지 생각나고 별생각이 다 나더군요.

장례식에서 '사람이 이렇게까지 눈물이 날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3일 내내 울었어요. 제 아버지가 정말 좋은 아버지였거든요. 그렇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게까지 눈물이 나지는 않았는데 아내가 죽었을 때는 정말…. 밥도 먹을 수 없고 잠도 잘 수 없고 그저 앉아서 눈물만 비 오듯이 흘리면서 장례식을 버텼습니다."


아내와 공기 좋은 곳에 살고자 모은 돈을 쏟아부어 전원주택까지 지었던 그다. 아내의 발길이 한 번도 닿지 못한 그 집은 지금도 그 자리에 덩그러니 옛 모습대로 남아 있다. 어머니와 아이들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서 살 생각도 해봤지만, 그 집만 보면 부인 생각이 나서 도저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휠체어 탄 여성의 시위하는 모습에 아내가 오버랩"

- 부인이 세상을 뜨고 나서 하던 사업을 접고 닭발 장사를 시작했죠? 지난 1월 인수위원회 앞에서 열린 기자 회견에서 가게 손님으로부터 가습기 살균제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가게를 차리고 나서 일부러 아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정말 일만 했어요.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잔 날도 많았죠. 그래서 텔레비전을 볼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2011년 여름에 제 사정을 아는 한 단골손님이 '텔레비전을 보는데 민수(가명) 엄마 같은 사람이 나오더라' 이러더군요. 텔레비전을 보고야 아내가 사망한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저도 이런 식으로 알았으니 지금까지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나중에 동네 마트에 가서 가습기 살균제를 구매했을 당시의 영수증을 뽑아달라고 했지만 구매 내역을 찾을 수 없었어요. 그러다 예전에 집에서 찍었던 가족사진 귀퉁이에 가습기 살균제가 우연히 찍힌 것을 발견해 피해를 입증할 수 있었습니다."


-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피해자 중 이렇게 공개적으로 나서는 이들은 매우 적어요. 대부분 가슴 아픈 이야기라 묻어두고 싶어 하죠.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나서서 싸우고 있나요?

"솔직히 말하면, 돈 때문은 아닙니다. 사는 꼴은 말이 아니지만 밥벌이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소송이 잘된다 한들 우리나라에서 기업이 개인에게 손해 배상을 해주는 게 정말 잘해봐야 1~2억 원이라고 하더군요. 우리 애 엄마가 목숨을 잃은 일이 그까짓 1~2억 원으로 보상이 되나요?

어느 날 집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는데 가습기 살균제로 피해를 입은 여성이 시위하고 있더군요. 몸은 말랐는데 얼굴은 퉁퉁 부은 채 산소 호흡기가 달린 휠체어에 앉아 있더라고요. '저 사람도 얼마 남지 않은 건 아닐까' 하면서 아내 생각이 났습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죽어가면서도 나와서 싸우는데 나는 뭔가' 싶었습니다. 그때부터죠. 이렇게 싸우기 시작한 게."


▲ 최윤수 씨. 아내가 죽기 전보다 살이 10킬로그램 정도 빠져 못 알아볼 정도로 얼굴이 변했다. ⓒ프레시안(남빛나라)

"아내 잃은 슬픔이 '옥시' 향한 분노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한 옥시레킷벤키저는 3년 내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 기업은 '옥시크린' '물 먹는 하마' '데톨' '개비스콘' 등으로 유명한 영국계 초국적 기업 레킷벤키저의 한국 법인이다. 지난 4일 기자가 직접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담당하는 팀은 여전히 따로 없었다. "연락처를 알려주면 나중에 다시 전화를 주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최윤수 씨 역시 제조 기업의 이러한 무시 전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제는 아내를 잃은 슬픔이 옥시를 향한 분노로 바뀌어 간다"고 털어놨다.

- 사측의 무관심한 태도에 많은 이들이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 2011년에 옥시 측에 전화를 걸어본 적이 딱 한 번 있는데 그때 전화를 받은 사람이 '그런 큰일을 겪으셨다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하며 아내의 인적 사항을 묻더군요. 그 이후로 아무 연락이 없지요. 아마 그때는 사건 초기라서 일반 사원이라도 나서서 저런 말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조차도 못하나 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별생각이 다 듭니다. 가게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아내 생각에 눈물이 납니다. 갑자기 공황 상태에 빠질 때도 있고요. 이렇게 혼자 눈물을 흘리고 불안해하다 보면 저절로 옥시 측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죠. 얼마나 분통이 터지면, 저와 친한 동생들이 "우리가 그 회사에 가서 종일 죽치고 앉아 깽판을 놓겠다"고 하더군요.

제 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 사장의 출퇴근길에 차를 막고 서서 닭발을 집어던질까, 회사에 가서 불이라도 지를까 하면서 별생각을 다 합니다. 보상은 둘째 문제입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됐으면 일단 사장을 포함한 회사 사람이 피해자의 집을 돌면서 무릎 꿇고 사과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살아남은 자의 슬픔, 멈추지 않는 눈물

현재 최윤수 씨의 가장 큰 걱정은 역시 두 아이다.

- 아이들은 다행히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검사를 해봤나요.

"둘째 아들이 크게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어서 CT를 찍어봤는데 괜찮다더군요. 첫째 아들은 아직 아무 증세가 없어서 검사를 해보지 않았어요. 병원에 데려가서 방사선 쬐는 검사를 굳이 하기 찝찝해서요. 그렇지만 불안하죠. 아이들이 가끔 헉헉대면서 집으로 뛰어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제 가슴이 쿵쾅쿵쾅 뛰어요. 불안해서 '왜 그러냐?' 하고 물으면 아이들은 웃으면서 '놀이터에서 여기까지 뛰어와서 그래' 하고 답합니다."

- 집에 아이들의 사진만 있고 아내의 사진은 없네요. 아이들에게 엄마 이야기는 잘 해주지 않나요?

"엄마 사진은 다 창고 구석에 넣어 놨어요. 도저히 아이들과 그것을 같이 볼 수가 없더군요. 제가 아내가 없다는 사실보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더 걱정입니다. 유치원에서 하는 아이들 재롱 잔치에 가면 아빠만 온 집은 항상 저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면 아이들이 창피해할까 봐 신경이 쓰이고….

다행히 어제(4일) 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에는 아빠가 함께 온 집이 많아서 저만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았어요. 그렇지만 딴 아이 집에는 엄마가 사다 놓은 책들이 한 가득인데 저는 일하느라 바빠서 챙겨주지도 못하잖아요. 그런 차이를 느낄 때 정말 걱정됩니다. 동네 어른들이 아이를 보고 '불쌍하다'며 혀를 차는 것도 정말 싫고요.

얼마 전에는 큰 아이가 "아빠. 엄마가 필요해" 하더군요. 많이 허전한가 봐요. 아이들을 생각하면 재혼해야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아직 그 사람이 있는데…."


말을 잇던 최윤수 씨는 잠시 눈을 감았다.

"사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말하면서 계속 옛날 생각이 나서…."

- 지금 무슨 생각이 떠오르나요?

"우리 가족이 주말에는 집에 있는 날이 없을 정도로 정말 많이 돌아다녔어요. 그런 좋은 기억들이 납니다."

어제(12일)는 최 씨의 부인이 죽은 지 꼭 3년이 되는 날이었다. 시간이 약이라고들 한다. 그 시간이 3년이나 지났다. 3년 전 죽기 직전 아내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을 만나서 정말 행복했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하지만 살아남은 자는 여전히 슬프다. 그는 여전히 다른 사람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아내와의 기억을 되새기며 매일 밤 눈물을 흘린다. 이 눈물을 도대체 누가 닦아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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