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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원자력공학과 나오면 다 '핵 마피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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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나오면 다 '핵 마피아'냐?"

정홍원 총리 "원전 비리와 전쟁" 선포…뿌리 뽑힐까?

정부가 핵발전 산업계 비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핵발전소 부품 납품 과정에서 빚어진 시험서 위조 사태와 관련해 정홍원 국무총리가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 사태로 위험성이 재인식된 핵발전 자체보다는 '비리'에만 초점을 맞추며 핵발전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산업부 장관은 핵발전소 11기의 추가 건설 계획을 재확인했고, 원자력안전위원장은 정 총리마저 언급한 '핵 마피아'라는 용어에 대해 "마피아라는 개념을 이해 못하겠다"고 딴청을 피우기도 했다.

정홍원 총리는 7일 서울 정부청사에서 관계부처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정 총리는 "최근에 드러난 원전 비리 문제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린다"며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원전 비리와의 전쟁이라는 강력한 의지로 원전산업의 구조적 비리를 혁파하겠다"고 천명했다.

정 총리는 "전등 한등 한등을 아끼고 무더위를 참아가며 전기절약에 나서주신 국민 여러분이 느끼실 배신감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며 "새 정부는 국민 안전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자행하는 범죄행위에 대해 그 뿌리를 뽑는 강력하고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결연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 정홍원 국무총리는 7일 원전 비리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정 총리를 기준으로 왼쪽으로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 오른쪽으로는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장이 자리했다. ⓒ연합뉴스

"고강도 수사로 관련자 전원 엄벌…부품시험서 12만 건 전수조사"

정 총리는 "정부는 오늘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원전비리에 대한 책임소재 규명과 원전안전에 대한 조사계획, 그리고 원전비리 재발방지대책을 논의했다"면서 향후 대응 방침을 설명했다. 그는 "정부는 우선 원전비리와 관련한 범죄 행위와 그 책임소재를 명백히 가리겠다"며 "강도 높은 검찰수사 등을 통해 비리관련 범법 행위를 끝까지 추적, 관련자 모두를 법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하겠다"고 천명했다.

이와 관련해 황교안 법무장관은 정 총리의 발표 이후 진행된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모든 형사법적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며 "관련자들의 제보를 통해 수사(범위)를 넓히기 위해서 제보 전화와 이메일을 마련했다. 내부 제보자에 대해서는 최대한 관용 조치를 하고 관련된 범법자들을 처벌하는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핵산업계의 폐쇄성을 고려, 내부 제보를 적극 유도하기 위한 조처로 평가된다. 황 장관은 다만 "이제 막 개설했기 때문에…(아직 들어온 것은 없다)"면서 "(앞으로) 들어올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간 축적했던 수사 기법을 활용해 자체 인지(수사)에도 애쓰겠다"고 덧붙였다.

정 총리는 또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운영 중이거나 건설 중인 28개 모든 원전을 대상으로 지난 10년간의 시험 성적서 12만6건에 대해 전수조사를 거쳐 진위를 낱낱이 밝히도록 하겠다"며 "시험성적서 조작에 대한 내부고발과 자진신고 제도를 일정기간 운영하면서 내부고발자 등은 정상이 참작되도록 해 원전비리뿐만 아니라 안전에 관련되는 모든 진상이 밝혀지는데 적극 협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혀 후폭풍을 예고했다.

정부 "한수원·검증기관 퇴직자, 부품업체 재취업 금지…구매·품질관리 개선"

이어 정 총리는 "원전비리는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며 "부품제작사와 시험기관, 그리고 발주처 사이에 폐쇄적인 구조로 사슬처럼 얽혀있는 유착형태가 대표적인 것"이라고 핵산업계 전반으로 화살을 돌렸다.

그는 "부품 조달과정에서 특정기관의 설계에 전적으로 의존해 독점과 나눠먹기가 오랜 관행이 되어 왔다"면서 "시험기관마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상호 감시와 견제라는 공정한 경쟁문화가 실종됨으로써 '원전 마피아'라는 말까지 등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부 최고위관료인 국무총리의 입에서 '핵 마피아'라는 용어가, 그것도 비판적 맥락에서 언급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정 총리는 "원전 산업계의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폐쇄적 운영구조와 뿌리 깊은 순혈주의, 견제와 균형이 없는 고질적 문제점을 확실히 바로 잡아 나가겠다"면서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타파하지 못하면 어떠한 대책도 일시방편에 불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크게 세 가지 방안이 이 자리에서 발표됐다.

먼저 정 총리는 △"한국수력원자력과 검증기관 퇴직자들이 부품업체나 협력사에 재취업하는 것을 금지하고, 퇴직자를 활용한 입찰참여도 제한하겠다"며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수원과 검증기관의 안전관련 주요보직에 개방직을 대폭 확대하고, 관련기관 조직과 인사시스템을 전면 개편해 원전산업계를 투명하고 개방적인 구조로 바꾸겠다"고 했다.

다음으로 그는 △"구매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며 "원전 부품을 구매할 때 수의계약을 최소화하고, 적격심사제를 도입하는 등 입찰제도의 투명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품질 검증 시스템을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개선하겠다"며 "기존 시험기관의 검사결과를 국책기관이 재검증하는 '더블체크' 제도를 도입하고, 납품업체가 시험기관을 직접 선정하지 못하게 하는 등 연결고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방안도 언급했다.

원안위원장 "핵 마피아, 그게 뭐죠?"

그러나 불과 한 시간도 안돼, 정 총리가 섰던 자리에 서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던 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장은 '원전 마피아' 관련 질문에 대해 "마피아라는 개념이 저도 잘 이해를 못하겠는데,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나오면 다 마피아 되는 것인가? 마피아에 대한 규정부터 명확하게 해주시면 제가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다"며 딴청을 피워 빈축을 샀다. 이 위원장은 바로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출신이다.

이 위원장은 "(핵산업계는) 타 분야하고 다른 점이 있다"며 "수익성이 다른 업체에 비해서 좋지 않다. 그러다 보니 제조업체들이 잘 참여를 안 하고 있다. (…) 다른 분들이 참여도가 낮다 보니까 아는 사람들끼리 하지 않느냐, 그런 것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그런데 그것이 근본적으로 개선할 문제라는 것은 우리로서는 답을 드리기가 어렵고, 원안위로서 거기에 대한 조치를 할 생각은 당분간 없다"고 하기도 했다.

정부 합동 기자회견에서 원안위 위원장이 '핵 마피아 관련 조치를 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뒤에서 다른 정부 관계자와 귓속말을 주고받던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다급히 나서 "원전 마피아라는 것은 원전과 둘러싼 유착관계로 보고 있다"며 "우리는 원전 마피아라는 개념보다는 원전과 관련된 유착관계를 끊는 쪽으로 일을 하고자 한다"고 진화를 시도했다.

이 위원장은 '원안위가 규제를 제대로 못 한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대해 "규제인력이 너무 적게 잡혀 있었고, 특히 현장에서의 규제인력은 극히 극소수만 나가서 어떻게 보면 '형식적으로 왔다갔다 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취약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정부 "전력수급은 원전보다 수요예측 잘못 탓…적정수준 원전 불가피"

정부는 그러나 탈핵이나 핵의존도 축소 등 장기적인 비전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갔다. 윤상직 장관은 '핵발전소 몇 개 멈췄다고 전력난이라니, 의존도가 너무 큰 것 아닌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전력 수급과 관련된 부분은 원전과 직접 연결시키기보다, 지금까지 우리가 수요 예측을 좀 잘못한 부분이 있고 또 공급 확충이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답했다.

윤 장관은 "96%의 에너지를 수입하는 한국 입장에서 적정한 수준의 원전은 불가피하다고 본다"며 "지금 (핵발전소) 23기가 건설되어 있고, 앞으로 11기가 추가적으로 건설 계획되어 있다. 거기까지가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으로 확정되어 있고, 추가적으로 더 건설할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검토를 새로 또 해야 될 부분들이 있다"고 말을 이었다. '새로 검토해야 할 부분'으로 윤 장관은 "국민의 수용성이라든가 제반 여러 가지, 특히 또 송전선로 부분도 중요한 변수"라고 언급했다.

윤 장관은 신고리 3호기 재가동 시기에 대해서는 "원안위 조사 결과를 지켜보자"며 말을 아꼈고, 신고리 2호기 등 케이블 교체 작업이 진행 중인 곳과 관련해서는 "기간을 잘라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현재로서는 넉 달 정도 예상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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