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소 불량 부품 후폭풍이 거세다.
지난 28일 신고리 핵발전소 1·2호기와 신월성 핵발전소 1·2호기에 시험 성적표가 위조된 제어 케이블(비상사태 발생 시 핵발전소 안전 계통에 동작 신호를 보내는 안전 설비)이 사용된 사실이 드러났다. 핵발전소 부품 검사를 담당한 업체의 직원이 이를 위조했다는 점에서, 사소한 오작동으로도 대참사를 불러올 수 있는 핵발전소가 누구의 감시도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 3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 행동'이 연이어 발생한 핵발전소 비리를 규탄하는 기자 회견을 열었다. ⓒ프레시안(남빛나라) |
이에 환경 단체 등 7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은 3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을 해임하고 국정 조사를 실시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부분이 지적하는 것처럼 핵발전소의 비리는 일부 사람의 문제만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뿌리 깊이 내재하여 있는 고질병"이라며 "이번 핵발전소 비리 사태는 이제 더는 핵발전소 운영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 자체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조직임을 증명했다"고 비판했다.
"추진 세력이 스스로 내놓은 대책, 봉합 수준"
이들은 "고리 1호기 정지 사고 은폐, 불량·짝퉁 부품 납품, 뇌물 수수, 한국수력원자력 직원의 마약 복용, 시험 성적서 위조 등 계속해서 핵발전소 문제가 터져 나올 때마다 한국수력원자력, 원자력안전위원회, 정부는 대책을 내놓았다"며 "하지만 핵발전소를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내놓은 대책은 상처를 봉합하는 수준에 불과했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핵발전소 납품 비리와 시험 성적서가 위조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은 이 모든 구조의 정점에 독점 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이 있기 때문"이라며 "시험 검증 기관이나 규제 기관 모두가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핵발전소의 감독·규제를 담당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자력 진흥 업무를 관장하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이라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 또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은 차관급이기 때문에 핵산업의 진흥·개발을 담당하는 미래창조과학부 등의 장관을 상대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핵발전소 부품 제조사, 검증 업체, 승인 기관(한국전력의 자회사인 '한국전력기술') 간의 기이한 3각 구조도 문제다. 이번 사건에서도 'JS전선'이 불량 부품을 납품했지만 검증 기관인 '새한티이피'가 시험 성적서를 위조해 오히려 불량 부품 사용을 덮어줬다. 시험 기관이 납품 업체로부터 검증 물량을 받아야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JS전선과 새한티이피 간에 일종의 갑을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게다가 한국수력원자력 전 임원들이 퇴직 후 시험 검증 기관에 취업하는 관행이 만연해 시험 검증 기관과 한국수력원자력은 유착 관계를 형성한다.
핵발전소 마피아 문제 심각…"국정 조사 실시하라"
이들은 "예전에 해오던 방식대로 한국수력원자력의 하청 업체 팀장 서너 명을 구속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며 "이번 사태의 본질은 핵발전소 건설과 운영, 규제까지 모두 장악한 '핵 마피아'들이 온갖 비리와 검은 커넥션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핵 마피아란 안전 문제를 은폐하며 핵 발전 산업에서 막대한 경제적인 이익을 얻는 세력을 일컫는다. 지영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핵 마피아는 핵발전소 업계만의 검은 커넥션이 아니"라며 "전기를 엄청나게 써대는 산업계, 학계, 핵발전소 문제에 눈감거나 외려 핵발전소 확대를 부추기는 언론계까지 포함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국회는 국정 조사를 통해 이번 사태의 본질을 밝혀내고 핵발전소 안전에 대한 종합적인 개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정부와 국회는 한국수력원자력을 비롯한 원자력 계가 더는 국민의 안전을 볼모로 한 돈 잔치와 비리를 저지를 수 없도록, 관련 법 규정의 개정 등을 포함한 강도 높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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