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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이정도 판단력으로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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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안철수, 이정도 판단력으로는 어렵다

[이철희 칼럼] '대선 불출마 협박' 사태의 득과 실

이해된다. 그 억울하고 분한 심정이야 이해된다. 그러나 서툴다. 금태섭 변호사가 주도한 '안철수 불출마 협박' 관련 기자회견을 보고 든 생각이다. 이번 사건은 대선후보 안철수가 풀어야 할 숙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사건이다. 이런 정도의 판단력과 일 처리로는 대선판을 주도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준비가 시급하다.

새누리당 정준길 전 공보위원이 뇌물과 여자 문제 운운하며 안철수 원장에게 불출마하라고 한 것은 그가 인정한 발언 내용만으로도 협박이다. 그의 트위터나 여의도에서 돌아다닌 소문을 감안하면 친구 간의 허물없는 대화는 아니다. 설사 친구끼리의 사적 대화라고 하더라도 듣는 쪽에서 협박으로 받아들이면 그건 영락없이 협박인 것이다. 말한 사람이 억울하다고 느껴도 어쩔 수 없다. 그런데 협박 여부를 넘어 제3자의 관점에서 보면 좀 어색한 대목도 없지 않다.

사건의 성격을 지나치게 확대한 것이다. 새누리당이 안 원장 관련 검증 자료를 오랫동안 수집·조사해왔다는 의심이 들지라도 그것을 입증하거나 최소한 방증할 증거가 없다면 말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 그런 것 없이 대뜸 기자회견을 열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권력'이 배후라고 지목하면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일방의 주장만 듣고 거대한 권력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고 쉽게 믿기에는 보통사람으로선 설마 하는 심정에다 민주화에 대한 자긍심이 허락지 않기 때문이다.

대선일이 임박할수록 진영논리가 강해지기 마련이다. 또 진영의 덩치도 점점 커진다. 이미 진영을 선택한 사람들은 사실관계에 관심이 없다. 이미 어떤 입장을 선택할 것인지, 즉 누구 편을 들 것인지 정해져 있다. 여당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은 여당의 논리를 따를 것이고, 야권을 선택한 사람은 야권의 설명에 동조할 것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딱 부러지는 사실이라고 해도 극히 일부가 움직일 뿐이다. 좋은 예가 있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여성 인턴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게 사실로 밝혀졌을 때 공화당 지지자는 탄핵 사유로 받아들였지만, 민주당 지지자는 우파의 음모로 간주했다.

선거가 종반으로 갈수록 중간에 있는 부동층은 줄어든다. 이 부동층이 어디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대세가 달라진다. 이들은 진영논리에서가 아니라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이나 인상(perception), 느낌(feeling)에 의해 누구 손을 들어줄지 분별하게 될 것이다. 이 중에서 사실관계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꼼꼼하게 허실을 따져서 판단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이번 건처럼 진실공방이 벌어지면 사실적 판단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따라서 부동층은 대체로 감성적 평가에 따르게 된다. 부동층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새누리당에 대해 나쁜 감정이 새롭게 들은 건 별로 없을 것이다. 정당, 특히 새누리당의 경우 네거티브 검증에 이미 익숙한 정당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새누리당은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네거티브 공세에 몰입했다. 그러니 애당초 갖고 있던 생각을 확인시켜주긴 했으나 그것이 별로 새삼스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지지층이 견고한 새누리당으로선 이번 일로 별로 손해 본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안철수 원장의 경우엔 좀 다르다. 그것이 무엇이든, 서로 '네 탓'만 하는 정치적 공방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안 원장이었다. 새로운 사람이고 다른 사람이란 이미지는 안 원장을 신뢰하게 하는 기본 동력이었다. 또 소통과 공감을 강조한데다, 자기 이해 때문에 과도하게 흥분하거나 예민하지 않은 것도 안 원장이 던지는 좋은 인상이었다. 이번의 화난 대응은 이런 이미지나 인상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요즘 유행어에 비유하자면, 대중이 좋아하고 끌리던 '안철수 스타일'에서 많이 벗어난 대응인 셈이다.
▲금태섭 변호사의 6일 기자회견 장면. ⓒ연합뉴스

안철수 원장은 새로움과 다름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이번의 반격으로 새누리당의 근거 없는 네거티브 공세를 일시 차단하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론의 흐름을 보면 크게 득 본 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안 원장이 가진 새로움과 다름의 이미지가 다소 퇴색하는 느낌을 주고 있는 분위기다. 말장난 같지만 '안철수다움'을 잃어버리면 만사휴의다. 2002년 노무현도 영삼시계 운운하면서 '노무현다움'을 잃어버렸을 때 지지율이 급전직하했다. 2008년 미국의 오바마는 경선 초반의 돌풍에 취하지 않고 '오바마다움'을 끝까지 잃지 않아 마침내 승리했다.

정치는 진실공방이 아니다. 시시비비의 게임도 아니다. 특정한 견해나 해석을 스핀(spin)이라고 하는데, '스핀의 마술사(the wizard of spin)'라고 불리는 마이클 시트릭(Michael S. Sitrick)이 이런 말을 했다. "사실(facts)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정치에서는 진실이 뭔지보다 어떤 프레임에서 해석되느냐가 중요하다. 모름지기 사실은 프레임을 통해 말한다. 정준길 전 위원의 말은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거나 핍박하는 프레임으로 읽혀지도록 했어야 했다.

아주 간결하고 드라이하게 사실을 적시하고 일반 국민들이 그 성격에 대해 판단하도록 했다면 어땠을까? 가정이긴 하지만 그렇게 절제된 대응을 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안 원장 쪽의 주장에 공감했을 것이다. 기왕에 형성된 '나쁜 새누리당-착한 안철수'의 틀을 떠올리며 안 원장을 응원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성격과 의미를 과도하게 규정해서 불쑥 제시하면 일종의 강요가 되기 때문에 보통의 사람들은 불편하게 느끼기 마련이다. 이래선 소구력이 떨어진다.

또 하나 아쉬운 것은 이번 사건으로 아까운 사람 하나가 신뢰받는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이다. 금태섭 변호사는 밝은 심성에 능력까지 갖춘 것으로 보여 안 원장 옆에 서서 집단적 공신력을 높여 주었다. 누가 안 원장과 함께 할 것인지 불안하던 사람들에게 안심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 그가 진실공방의 당사자, 즉 과장과 독설을 일삼는 정당의 대변인처럼 비쳐지게 됐다. 무거운 손실이다.

이번 사건으로 안 원장이 잃은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나라 경영을 맡을지도 모를 집단으로서 '안철수 그룹'이 다소 어설프다는 느낌을 준 것이다. '사실'에 취해 국민들이 쉽고 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 없이 그냥 질러버렸다. 좀 흥분한 듯 보였고, 사건의 성격도 처음부터 너무 크게 설정하는 등 전형적인 과잉대응의 모습을 연출했다. 새롭고 달라도 미래의 5년을 맡기려면 기본적인 안정감은 있어야 한다. 이번 건으로 자칫 새로움과 다름이 불안함으로 해석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2008년 오마바가 바람을 일으킬 때 힐러리는 경험미숙을 불안함으로 읽히도록 노력했다. 그런 노력이 먹히지 않은 데에는 민주당의 거물 에드워드 케네디나 상원 원내대표를 지낸 톰 대슐 등의 지지가 적지 않게 역할했다. 지금의 안 원장에게 필요한 것은 경륜과 대중성을 갖춘 인물들이 옆에 서 주는 것이다. 또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있는 동지들을 규합해 집단적 정체성을 제시해야 한다.

9월이든 10월 초든 안 원장이 출마를 선언하게 되면 곧장 진검승부에 들어가야 한다. 시간이 너무 없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익숙해질 겨를이 없다. 언론도 허니문을 주지 않을 것이다. 선거 캠페인은 악마의 맷돌(Satanic Mills)과도 같다. 내공의 준비가 없으면 금방 으깨어진다. 이번의 사건이 던지는 교훈 중 하나는 안 원장이 믿고 신뢰하는 '철수팀'을 시급히 꾸리고, 공개하라는 것이다. 홉스봄이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고 했다. 빗대서 이렇게 충고하고 싶다. 승리는 함께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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