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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이석기에게 악수 거절당했을 때 느낌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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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심상정 "이석기에게 악수 거절당했을 때 느낌은… "

[열린인터뷰] "민주당 왼쪽방으로는 진보 정치 어렵다"

통합진보당에 불어닥친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선 심상정 의원. 그런 그가 간만에 '무장해제'된 모습으로 당원이 아닌 일반 유권자들을 만났다. 심 의원은 13일 저녁 프레시안 1층 강의실에서 진행된 '월요살롱-열린 인터뷰'에서 현 상황에 대한 자신의 고민과 결단을 담담한 어조로 풀어냈다.

심 의원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받은 220만 표의 의미에 대해 "국민들이 '이거 종자돈 삼아서 해 봐, 잘하면 더 왕창 밀어줄게' 이런 주문이었다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저희가 혁신에 실패했음을, 이 당의 이름으로 하는 게 불가능함을 인정·고백해야 하고 현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단호한 결별"이라고 털어놓았다.

통합진보당 해산 후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자는 '혁신모임' 측 핵심 인물인 심 의원은 "현실적 노선을 추구하는 진보주의자와, 시장 통제에 대해 분명한 전략을 갖고 있는 진보적 자유주의자, 이 연대세력이 잘 융합된다면 한국사회에서 성공적인 대중적 진보정당이 가능하지 않겠나"라는 구상을 밝혔다.

그는 당초 통합진보당 창당 이후, 또 당직선거 이후 '언젠가'는 재창당을 거쳐 당 내 이질적 세력 간의 화학적 결합을 도모하려 했으나 결국 이 지경이 났다면서 "역사는 비약이 없다는 아픈 성찰을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심 의원은 구 당권파에 대해서는 "신념이 너무 확고하고 완고해서 세상의 변화는 주목하지 않고 국민 소통도 외면한다"면서 "정치보다는 종교에 가까운 정체성", "대중정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낡은 요소"라고 강한 톤으로 지적했다. 심 의원은 열성 지지자로 보이는 한 청중이 구 당권파에 대해 '도대체 그들의 정체가 뭐냐'며 격한 반응을 보이자 '우리 어머니도 그러시길래 이렇게 말씀드렸다'며 이같이 말했다.

다음은 심 의원의 이날 '열린 인터뷰' 중의 주요 내용이다.

▲통합진보당 심상정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김제남 사태, 기만당했다는 충격…역사에 비약은 없더라"

프레시안 : 심상정 의원 인사말부터 들어보겠다.

심상정 : 지난 총선에 220만 국민이 저희에게 힘을 보태주셨다. 그 책임을 통합진보당 이름으로 다할 수 없게 돼서 국민들께 너무나 송구스럽다. 당이 파국으로 치닫는 와중에서 무력감, 책임감, 두려움, 이런 것들 때문에 피하고 싶고 물러서고 싶고 이런 생각이 복잡하다 보니 잠도 잘 안 왔다.

이 순간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하는 문제다. 국민들이 주신 220만 표는 '이거 종자돈 삼아서 해 봐, 잘하면 더 왕창 밀어줄게' 이런 주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후한, 많은 기대가 잠재된 표였다 생각하고 잘하면 국민들도 더 이상 인색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왜 안 됐는가. 혁신을 거부하는 세력을 악마화함으로써 미래의 진보 정당화하는 것은 옳지 않고, 그런 반정립의 길은 또다른 실패로 갈 수 있다. 저희가 혁신에 실패했음을, 이 당의 이름으로 하는 게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한다. 현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단호히 결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문제 인식을 갖고 있다.

원래 통합진보당을 만들 때, 선거 때 종자돈을 만들어 그 이후 시간을 갖고 차근차근 풀어나가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강기갑 대표 체제가 출범하면서는 혁신지도부를 세워서 국민께 약속한 진보적 정권교체의 길에 최선을 다하고 그 후에 제대로 된 재창당 과정 거쳐야하지 않냐는 합의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대중적 진보정당이 뭘 하자는 거냐, 진보주의자와 자유주의자가 만나서 뭘 어디까지 하겠다는 거냐 선명하고 분명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이기 때문에 대중적 지지기반의 위기를 어떻게 돌파해 나갈 것이냐 하는 주체의 혁신 측면에서도 적극적 프로그램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통합진보당의 틀 안에서 순차적으로 이뤄지기 어렵게 됐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역사는 비약이 없다'는 아픈 성찰을 많이 하게 된다. 진보정치에 의지하고자 하는, 진보정치가 잘 되는 것이 한국사회 변화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고 지켜봐 주시는 국민들의 바람을 최대한 좇아서 길을 내 보겠다.

프레시안 : 과거, 현재, 미래. 크게 이 정도로 나눠서 질문드리겠다. 먼저 과거다. 지난 연말 창당 이후 지금까지 과거를 복기해 보면 무엇이 가장 후회되는가?

심상정 : 많은 분들이 첫 출발부터 불안정하지 않냐는 말씀을 하셨고 저도 상당히 공감을 했다. 하지만 구 민노당이나 참여계나 통합연대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아주 어렵게 하나가 됐기 때문에, 적어도 그 안에서 많은 미해결 문제들을 순차적으로 풀어나갈 정도의 리더십은 되지 않겠나 하는 판단을 하고 시작했다. 그 결과가 최근 정당의 이름에 걸맞는 내용과 절차가 충실하지 못했던 것이다.

▲심상정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한편 (그러나) 2008년 분당과 비교하면, 당시 저희는 절박했지만 국민들은 무엇 때문인지 잘 몰랐고, 노동진영에서도 분당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어서 혁신 실패에 분노하는 사람조차 분당에 대단히 비판적이었으며 다수가 그대로 민노당에 남아있었고 탈당한 분도 진보신당에 참여하지 않았다. 또 의석 하나 없었다. 진보정당으로서 확고한 중장기적 헤게모니를 확보할 수 있는 전략 없이 무모하게 길을 선택한 면이 있다.

지금은 오히려 (국민이) 진보정당 내의 다양한 과제 중에서, 비록 한 부분이긴 하지만 패권으로 대표되는 정파 문화와 관련해 선명히 판단할 수 있게 됐다. 통합진보당의 이후 진로에 대해 대다수 국민들이 확신을 갖고 주문하고 있다. 지금(13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가 열리고 있는데 예정대로라면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치적 결정이 이뤄지게 된다. 민주노총은 저희에게도 강력하고 단호한 비판의 견해를 전달해오고 있다.

또 제3당이 되면서, 의석 수보다는 3당으로서 갖는 정치적 공간의 위상이 다르더라. 정권교체를 통해 공동여당이 될 가능성 때문에 주어진 공간이라 본다. 진보정당이 과거에 골목의 후미진 데 있을 때는 아주 큰 소리가 나야 국민이 쳐다보지만, 지금은 메인스타디움에 들어가 있는 것과 다름없다. 관중석에서 일거수일투족을 다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책임윤리를 당의 운영원리로 빠르게 정착시킬 수 있는 조건이 돼 있다. 이런 많은 긍정적 조건들을 잘 살려서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뿌리 깊게 설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와 관련한 전략들을 좀더 충실히 준비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프레시안 : 좀 구체적으로 '이 때 이걸 바로잡았으면 나아지지 않았을까' 생각 드는 게 있다면 언제였는지?

심상정 : 단편적으로 어떤 것을 말씀드리기에는 상황이 너무 크다. 결국 오늘에 와서 보면 보다 근원적 수준의 문제라는 게 드러났다. 그때그때의 판단이나 조치는 '부정경선이 있었을 때 (해결을) 총선 후로 미루지 않았다면', '중앙위 사전조치가 있었다면' 등 여러 생각은 있다. 하지만 (구 당권파들은) 너무도 신념이 완고해서 그 어떤 노력도 결과적으로 지금의 상황을 피하기 어려웠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하나 말씀드리면 의원총회에서의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 처리 실패다.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순진한 얘기 같지만 '정치라는 건 선한 의도만 갖고 되는 건 아니구나' 했다. 거듭 확인하고, 크로스로 확인하고,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합의도 했는데…. 누구나 자기 신념과 판단이 있고 그것이 제 뜻이나 국민·당원의 뜻과 다를 수 있지만, 충격적이었던 것은 '기만당했다'는 것이었다.

인간에 대한 이해나, 중요한 문제를 처리하게 될 때 (확인을) 어디까지 해야 하는가 등의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 제명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좀더 깊은 확인의 과정이 있었어야 하지 않나 한다. 이는 오롯이 제가 책임져야 할 일이었다. 그에 대해 수도 없이 복기가 되고 또 괴롭고 그랬다.

ⓒ프레시안(최형락)

"대중적 진보정당, '성찰적 자유주의'+'성숙한 진보주의' 결합돼야"

프레시안 : 앞으로 당면한 문제라면 구 당권파의 당내 저항도 있을 수 있지만, 외부에서 보기에 국민참여당 출신의 자유주의 세력과 과연 어디까지 함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다. 어떻게 풀어나갈지?

심상정 : 자유주의 세력과 진보주의 세력이 만나서 몇 개월을 겪어봤다. 그 과정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가능성을 확인했다. 진보신당 내에서 '통합하자'고 설득할 때 한국사회에서 진보적 대중정당의 비전·노선·전략 등에 대해 좀더 화통하게 전면적으로 대화를 나누지 못한 점을 많이 후회했다. 추상적인 정의나 선(善)이 아닌, 구체적 성과로서 책임지는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의 성찰과 진보주의의 성숙이 결합된 틀 속에서 성공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봤다.

진보주의자들이 성숙했다는 것은 책임지는 정치세력으로서 (스스로) 구체화되는 것인데, 노선적으로 말하면 현실 속에서 수용될 수 있는 최대한은 사민주의라고 본다. 노동을 바탕으로 시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사민주의 노선. 그리고 자유주의의 성찰이란 일종의 진보적 자유주의다. '사민주의 더하기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이념 범주다. 보다 성숙하고 현실적인 노선을 추구하는 진보주의자와, 시장 통제에 대해 분명한 전략을 갖고 있는 진보적 자유주의. 이 연대세력이 잘 융합된다면 한국사회에서 성공적인 대중적 진보정당이 가능하지 않겠나 했다.

다만 통합 당시의 진행 과정은 이정희 대표 체제의 민노당과 국민참여당의 전략적 제휴로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제가 갖고 있던 커다란 문제인식을 전면화해서 얘기하기에는 복잡한 현실이었다. 지금 사실 패권 문제가 제기돼 있지만, 참여당과 진보정당의 결합이 대중적 진보정당 안에서 어떤 노선·전망·주체로 융합할 수 있는가가 보다 분명히 정립돼야 한다. 통합 이전에 '봉합'적 관점에서 유보됐던 과제들이, 새 정당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구체적 합의가 돼야 할 것으로 남아있다.

프레시안 : 그 전제는 '패권주의' 세력과의 결별인가? 당면 과제가 뭘까?

심상정 : 통합진보당과 관련해서 여러 수준에서 문제가 제기돼 있다. 첫째, 도덕성 위기다. 그 동안 보수정치가 사익을 추구하면서 수구·보수 정치인들이 신뢰를 잃어온 반면 진보정치는 공익·헌신·신뢰가 중요한 기반이었는데 이번에 무너졌다. 둘째, 민주주의 위기다. 폭력사태 등 이런(민주적) 책임을 완성하지 못하는 당이 과연 민주주의를 운영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셋째가 정체성 문제다. 한편에선 북한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한 의제들이 있고, 참여당 결합 문제가 있다. 어느 범위에서 어떤 합의를 통해 길을 낼 것이냐가 국민들께 명료하게 제시되 있지 못하다. 넷째, 지지기반의 위기다. 사실 정당이라면, 정치활동을 통해 노동자와 서민의 지지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정립돼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 단계까지 가지 못했다. 그러니 민주노총의 입장과는 별개로 지지기반의 허약성이 크게 제기돼 있는 상태다.

앞으로 진보정당을 새롭게 만들 때 이 네 가지 문제에 대한 구체적 전략이 뒷받침돼야 할 것 같다. 다만 지금은 대선을 앞두고 있어, 대선에서 진보정치가 감당해야 할 몫을 얼마나 책임 있게 하느냐가 전제조건처럼 돼 있다. 대선에서 진보정치의 역할을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노동에 기반한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은 차분하게 중기적 과제로, '투 트랙'으로 해야 한다.

프레시안 : 신당이 만들어진다면 민주노총이 이를 지지할까?

심상정 :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 지지를 완전히 철회하게 되면, 배타적 지지로 뒷받침됐던 전략적 관계는 끝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후에는 오히려 민주노총 안팎에서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노동정치에 대한 노력과 진보정당의 정치활동을 매개하는, 실천 과정을 통해 결합되는 단계로 나가지 않겠나.

민노당이 만들어질 때, 민주노총의 결의를 종자돈으로 진보정당이 여기까지 왔다. 그 젖줄을 떼고 당이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가지고 정치활동의 결과로 지지를 모으고 결합력을 강화하는 단계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로 인해 결국 그 길이 아니면 진보정당이 노동의 확고한 신뢰를 획득하기 어렵게 됐다. (다만) 지지 철회는 쉽지만 새로운 정당 건설에 노동계가 얼마나 힘을 보탤 것이냐에 대해선 (서로 다른) 진단이 많다.

프레시안 : 민주노총이 진보정당 아닌 민주당으로 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심상정 :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주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그 결합을 자기 실력으로 확보해 나가야 할 단계가 됐다는 것이다. 1차적으로, 그간 진보정당의 필요성에 공감해오고 동참했던 분들을 모아내는 것이 과제다.

프레시안 : '미래'는 곧 자연스럽게 대선과 연관된다. 대선 국면에서 진보정당의 역할을 얘기하셨다. 문제는 지지층의 붕괴다. 이들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하느냐가 대선에서의 역할과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고 보인다.

심상정 : 너무나 뼈아프다. 지금 잘 아시다시피 통합진보당은 야권연대의 걸림돌로 돼 있는 상태다. 새롭게 주체를 형성해 나선다 해도 이미 붕괴된 지지기반이 회복되는 것은 대단한 난제가 될 것 같다. 적극적인 목표나 욕심보다는, 통합진보당이 야권연대의 걸림돌이 된 이 상황을 진보정치 세력이 스스로 타파해야 하지 않겠나. 진보적 정권교체에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

(당의) 지지자들 대부분은 분산되고 안철수 원장 지지로 돌아섰다고 한다. 하지만 대선 때 투표율이 60%대에 머무는 것을 보면, 정치 변화를 열망하는 더 아래쪽, 왼쪽의 잠재적 유권자들이 굉장히 많다. 이번 대선에서 진보정당이 큰 역할을 갖는다기보다는, 애당초 책임지려 했던 만큼은 아니라도 최소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민주당이나 안 원장이 모으기 어려운 지지자들을 묶어냄으로써 자기 역할을 다해야 하지 않겠나.

ⓒ프레시안(최형락)

"안철수 성향? 민주당-통합진보당 중간쯤 되는 듯"

청중 1 : 개인적으로 대선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가 쟁점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진보정당이 내부 문제로 바쁘더라도 대선 차원에서 FTA 폐기 논의를 일궈나가야 하지 않는가.

심상정 : 처음 추진할 때, 협상 진행 중일 때, 종료·완료된 때는 'FTA가 폐기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도 구체적 전략이 다를 수 있다. 한미 FTA가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복지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민감한 부분에서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내놓은 복지, 대형마트 관련 정책은 한미 FTA의 구체적 조항과 다 충돌된다.

제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총선에서 민주당이 FTA 폐기 등 강한 주장 때문에 중간층을 잃어버린 것처럼 자평하는 것이다.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지 않았을까? 폐기냐, 찬성이냐, 조건부 재재협상이냐 이런 '선언'이 아니라, 지금 주장하는 경제민주화·복지·노동 정책과 구체적으로 충돌된다는 점을 전면적·결사적으로 제기했더라면 오히려 민생현안 중심으로 한미 FTA를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표를 잃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에 대한 더 견고한 지지로 돌아올 수 있지 않았겠나.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컸다.

아직 구체적 정책을 검토하지는 않았지만, 대선에서도 어설프게 폐기냐 아니냐 하는 식으로 다뤄서는 효과적으로 국민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 각 정당의 유력 주자가 내건 구체적 정책 공약과 FTA가 어떻게 충돌하는지 전면적 정책 공방을 통해, 한미 FTA가 복지나 경제민주화와 별개가 아니며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국민들께 잘 설명할 수 있는 준비가 돼야 할 것이다.

청중 2 : 두 가지 묻겠다. 지난달 26일 의총 때 의원님 악수 요청을 이석기 의원이 거절는데 그때 느낌 어떠셨나? (웃음) 또 하나, <안철수의 생각>을 읽으셨는지 모르겠는데 (심상정 : 읽고 있어요) 안 원장을 어떻게 평가하시나?

심상정 : 이석기 의원에게 악수를 거절당할 때는 철벽같은 완고함, 이런 게 느껴졌다. 감정적으로 섭섭하거나 하다기보다는 참 어떤 방법으로도 손잡기 어려운, 상징적인 한 장면이 아니었나 하는 느낌이었다.

안철수…. (웃음) 제가 안 원장을 만난 적도 없다. 책에서 드러난 구체적인 정책을 액면 그대로 보면 민주당과 진보당의 중간쯤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정치는 구체적인 실행에 대한 신뢰가 더 중요하다. 안 원장이 그런 정책을 어떻게 누구와 실현할 것인지, 또 대통령은 개인이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지지기반도 있어야 하고 반대세력 설득도 해야 하니 당적 기반이 매우 중요한데 대선 주자로 나설 때 누구와 함께할 것이며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등이 책에 나타난 정책의 견고성·책임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 같다. 정치인의 구상을 책만 가지고 판단하기는 어렵지 않나.

청중 2 : 안 원장의 정책 중 어떤 게 가장 진보적인가? 반대로 뭐가 가장 오른쪽인가?

심상정 : 대부분은 진보정당이 보통 추구하는 가치 측면에서 상당히 근접해있다는 느낌이다. 보편적 복지의 개념이라든지 생태환경에 대한 인식, 이런 것은 근접해 있다. 그런데 FTA 문제나 원전 문제에 대해서는 좀 차이가 있다. 안 원장이 그 동안 구체적인 정책을 실행하는 입장이 아니고 가치 중심의 멘토 역할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가치 부분에 있어서는 상당히 깊이 있는 고민과 성찰이 있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실현 문제에서는 대선 후보로서 누구와 어떤 방법으로 실현할 것인가를 밝혀야 평가될 수 있지 않겠나.

청중 3 : 참여계와의 통합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시던데, 이에 비판적인 진보신당을 통합에 동참하도록 설득하실 방안이 있는지 궁금하다.

심상정 : 참여계와의 통합을 긍정적으로 봤다기보다는, 한국에서 책임 있는 대중정당으로 성장하려면 그런 결합을 잘 구현할 때 가능하지 않겠나 하는 판단을 갖고 있다는 것이고 구체적 실현 과정에서 많은 검증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의 진보신당은 사회당과도 결합했고 제가 있을 때와는 차이가 있다. (통합은) 진보신당 내에서 어떤 정치, 어떤 정당을 구상할 것인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진보신당 내에서도 현실정치에 적극 참여코자 하는 분들은 이번 과정에서 하나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 분들은 진보주의자와 자유주의자가 어떤 범위까지 노선과 정책의 합의를 볼 것인가가 확인되면 합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반면 현실정치보다는 '등대정당'으로서 좀더 추상적인 선을 강조하는데 중점을 두는 분들은 꼭 참여당 때문에 안 된다기보다 (지향하는) 정당의 상이 다르다. 권력 자원을 적극적으로 확보해서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고 책임을 지는 그런 '대중정당'과는 다른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참여당과의 결합 문제만으로 진보신당 내의 여러 의견 갈래를 정리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청중 4 : 한국 정치는 정당명부제, 결선투표제도 없는 승자독식 구조다. 그런 면에서 진보정치의 미래를 봤을 때, 민주당에 들어가는 게 낫지 않냐는 의견도 있다. 어떻게 고민하는지?

심상정 : 최근에 '민주당 왼쪽 방'을 쓰는 게 어떠냐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민주주의가 발전하려면 갈등의 사회화가 폭넓게 이뤄져야 한다. 또 노동이 정치 영역에서 얼마나 중심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의 발전 정도가 규정된다 본다. 한국 같은 보수 양당 체제, 노동 대표성이 최소화된 하에서 민주당 내 왼쪽 방만 가지고는 노동을 비롯한 광범위한 사회적 약자들이 대변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본다.

ⓒ프레시안(최형락)
한국 사회에서 오랜 시간 배제된 광범위한 보통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힘 있게 조직될 때 사회경제 민주화도 가능한 것이고 새로운 대한민국도 가능하지 않나. 그런 점에서 진보정당 없는 정치구조로 회귀한다면 지금 대전환기라 하는 한국사회 변화가 대단히 참혹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의 변화를 제대로 주도할 능력을 갖지 못한다면 디스토피아의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다만 '현실의 진보정치 세력들이 진보적 대중정당을 제대로 세워낼 수 있느냐' 하는 문제 제기는 가능하다. 저는 그래도 좀더 고집해보겠습니다만. 그러나 세계에서 우리나라 정당처럼 물갈이가 과감한 나라가 없고 18대 총선 때 46%, 17대 때 64%가 물갈이됐지만 여전히 비정규직 눈물은 닦아지지 않고 맞벌이 부부 고충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왜냐. 정당 개방이 아니라 정당 체제의 개방이 중요하고 진보정당도 성장할 수 있는 정치체제가 돼야 민주주의를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정치제제가 사회적 요구와 괴리되고 있기 때문에 '연합정치'를 매개해 보수-진보 구도로 갈 수 있도록 제도개혁을 해야 한다. 진보정치세력의 역량 문제도 있지만 더 강력한 규정력을 갖는 게 비례대표 확대 문제와 결선투표제 등 제도라는 것이다. 결론만 말씀드리면 능력이 있느냐는 의구심도 있지만 '한국의 왼쪽을 책임지겠다'는 고집을 좀더 계속해 볼 생각이다.

"구 당권파, 신념이 너무 확고…정치보다는 종교에 가까운 정체성"

청중 5 : 총선 때 모델하우스를 보고 220만 명이 계약해서 입주하기로 했는데 부도가 난 상황이다. 시간이 대단히 없고 대선이 코 앞인 상태에서, 그렇게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면 사람들이 기대를 버리지 않을까 우려된다.

심상정 : 바로 그런 부도사태에 대해 적어도 최소한의 처방을 하자는 취지로 새로운 대안 주체를 세워서 선거에 임하자는 것이다. 여러 궁리를 해봤는데, 통합진보당 이름으로는 후보 안 내는 방법도 있다. 그렇다 해도 민주당 입장에서 가장 좋은 것은 안철수-진보진영과 연대하는 것 아니겠나. 역대 대선을 봐도 야당이 당선될 때는 몇십 만 표 차이다. 이번 대선 때는 진보정치세력이 실체로 있는데 이 부분이 안철수나 민주당에 온전히 흡수될 것인가?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러면 통합진보당을 대체하는 진보정치 세력을 만들어 다만 얼마라도 결집해 역할을 해야 하지 않느냐, 이런 각오로 임하고 있다. 노동을 규합하며 노선을 폭넓게 하는 등 진보정당에 제기되고 있는 여러 가지 많은 문제들은 대선 이후 제대로 차분하게 점검하고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나 한다.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 순조롭지 않고 매우 험난한 과정이 예정돼 있지만 고민을 모아가겠다.

청중 6 : 은평구에 산다. 그간 지역구에서 후보는 민주당, 비례는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을 찍다가 이번 총선에선 녹색당을 찍었다. 저는 심 의원을 대중성과 가치지향을 같이 갖고 있는 유연성 있는 정치인으로 본다. 멀리 봐서 대중적 진보적 정치인으로 꿈이 무엇인가 묻고 싶다. 왜 자꾸 실패하는가, 가치 때문은 아니라고 본다. 먼 미래를 보면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당이 필요하다 보는데 노동 안에도 녹색, 청년, 비정규직 등 여러 가치가 있다. 총체적 그림을 그려놓고 대중에게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풀뿌리, 지역에서의 바닥 민주주의 등 방법론적 대안도 고려 봐야 하지 않을까?

심상정 : 노동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전제돼야 사회가 바뀐다. 그간은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에 채찍과 당근을 어떻게 줄 거냐 하는 수준에서 논의됐지만 이제 그게 아니다. 모든 사람은 노동을 통해 자기 실현을 하고 그게 제대로 평가돼야 행복하다. 노동이 헌법적 가치다. 모든 사람에게 일할 권리를 주는 게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 과제다. 19대 국회에서 환노위를 맡았는데 비정규직 등 현안도 절박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노동에 대한 인식 변화가 없는 한 사회경제적 민주화는 어렵다고 본다.

말씀하신 것, 저희 어머니와 똑같은 말씀이시다. 저에 대해 많은 애정을 갖고 보시는 분들은 다 비슷한 조언을 하시는데, 꿈이라는 게 수단·방법의 문제와 맞물리면 선택과 결단의 문제로 나온다. 그런 점에서 아직은 좀더 고집을 하고 있다 말씀드린다. 다만 한국사회에서 대중적 진보정당의 길을 개척하더라도 적어도 중단기적으로 진보정당의 단독 집권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연합정치를 잘 제도화함으로써 진보정당이 더 적극적 실험을 해나갈 수 있게 하겠다.

청중 7 : 솔직히 진보정당이 가진 자본이 아무래도 제한돼 있으니, 대선보다 총선이나 지방선거 같은 풀뿌리 민주주의에 역량을 집중하는 게 좋지 않겠나?

심상정 : 작은 권력을 나누는 공간도 더 적극적으로 전면적으로 진출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진보정당이 좀더 의미있는 대안 세력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비판능력도 중요하지만 통치능력을 경험하고 키워나가는 게 중요하다 본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보다는 지지율이 낮더라도 정권을 만들고 참여하고 함께 운영하고 책임지는 그런 과정에 연합정치를 통해 동참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그렇게 해서 진보정당이 국민들에게 권력을 맡길만하다는 신뢰를 줄 때 풀뿌리도 확장될 수 있는 거지, 풀뿌리만 세운다고 그 위에 큰 권력이 저절로 오는 것은 아니다. 병행해야 한다.

▲이날 행사는 서울 마포구 프레시안 1층 강의실에서 진행됐다. ⓒ프레시안(최형락)

청중 8 : 전에 제천 영화제에서 한 번 뵈고 지금 두 번째 뵌다. 저 같은 지지자들은 사태를 정서적으로 받아들인다. 폭력사태 이후로 주변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어머니는 이인제만 6번 찍으셨지만 이번에 비례투표는 통합진보당 찍으셨다. 저 때문이다. 어머니나 주변에 왜 이렇게 됐는지, 사고친 게 누군지 설명해줘야 한다. '찌라시'(증권가 정보지)에서는 종북이라고 하고 <나꼼수>에서는 주사파라고 하는데, 그 얘기가 듣고 싶다. 심 의원께 물어볼 게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통합을 합의한 파트너잖나. 어떤 세력인지 알려주셨으면 한다.

심상정 : 저희 어머니한테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신념이 너무 확고하고 완고해서 세상의 변화는 주목하지 않고, 국민 소통도 외면하고, 그래서 제가 얻은 결론으로는 정치보다는 종교에 가까운 그런 정체성으로 느껴졌다고 이렇게 얘기했다. 과거의 운동권이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면서, 그 때는 공개적 활동이 제약을 받게 되니 조직보위 차원에서 비공개 서클활동이 많았고 지금도 오랜 유산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공직 출마하고 국회에도 진출하고 하면서 결국은 정파적인 담합정치가 아닌 공개적 체계적 실천을 하는 대중정당으로 가지 않으면 어렵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진보정치세력 가운데 대중정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낡은 요소라 보시면 될 것 같다.

청중 8 : 지지자는 단순하다. 13명 중 이름 아는 사람이 심상정 밖에 없었다. 심 의원 믿고 찍었는데…. 통곡하고 싶다.

심상정 : 7월 초·중순에 제 지역구 야산 약수터를 가면 아침에 어르신들이 전부 몰려오신다. 너무 하실 말씀이 많은 거다. 제가 총선에서 전국 최소 차인 170표로 당선됐는데, 어떤 분은 "지금 투표하면 170표 아니라 1만7000표로 이긴다. 그 동안 진보정당을 불투명하게 생각했지만 이번 과정을 보니 '너는 좀 확실하네' 이게 각인됐다"고도 하셨다. 그런데 최근에 가면 뭐라고 하시느냐 하면 "그 당하고 계속하면 다음번에 당선 안 돼"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민 분들이 보수든 진보든 완고하든 어쨌든 잘 보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고, 그 지역구 의원이다 보니 당신들도 지역 대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전망을 갖는지 '열공'하고 계신다는 걸 주민들과의 관계에서 느낀다.

제가 드리고픈 말씀은, 어떤 책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얘기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정치가의 소명을 이룰 수 있다고 했는데, 제가 그런 각오로 지금 국면에 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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