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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 박근혜, 참 독한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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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불통' 박근혜, 참 독한 정치인

[이철희 칼럼] 민주주의 빠진 민생은 공염불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내걸고 있는 트레이드마크는 민생이다. 틈만 나면 민생을 외친다. 물론 누구를 위한 어떤 민생인지 불명료하다. 하지만 어쨌든 기왕에 형성된 신뢰성 이미지를 강화시켜주는 위력적 무기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과연 그의 민생이 민의 생, 즉 보통사람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일까?

얼마 전 박 의원은 국가관이 의심스러운 국회의원을 제명하자고 했다.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한 언급이다. 무식함을 넘어 위험한 발언이었다. 놀란 이상돈 중앙대 교수가 나섰다. 방송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 의원이 국회법 조항에 오해가 있었는지 이런 게 제명대상이 된다고 해 증폭됐는데 그런 부분이 좀 잘못됐다고 봐 바로 잡아드렸다."

비민주란 말을 흔히 쓰는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법에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임의로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추진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민주적 절차를 보장하는 한편 동시에 그 절차를 준수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해진 절차를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부정 내지 그것에 위협이 된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상돈 교수가 재빨리 박 의원의 제명 발언을 실언으로 '마사지'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잘못된 생각까지 바로잡아진 것 같지는 않다.

최근 박근혜 의원에게서 보이는 핵심 키워드는 민생과 비민주다. 과연 비민주와 민생이 공존할 수 있을까. 이것이 문제다. 민생은 민주주의의 그 '민'이 먹고 사는 것을 말한다. 즉, 민생은 최소한의 생존권을 넘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물질적 기본조건이라 하겠다. 사회적 시민권이라고 부르는 것도 민생을 포괄하는 개념에 다름 아니다.

주의할 것은 이 민생이라는 것이 물가 잡고, 부동산 가격 안정 등의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민생은 기본권이기 때문에 출산, 보육, 교육, 의료, 노후, 주거 등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보장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렇듯 민생은 시혜나 배려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민생 안정의 첫 번째 전제는 시장의 전횡을 막는 것이다. 돈의 논리가 좌우하는 시장을 제어하지 않으면 보통사람들의 삶은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두 번째 전제는 사회경제적 약자가 정치를 통해 스스로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두 전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보면 민생은 곧 민주주의와 뗄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해서 다수의 서민들이 정치를 통해 압력을 행사할 때 민생이 제대로 보장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사회적 약자들의 이해와 요구가 정치인에 의해서나 정부 정책에 의해 제대로 대표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실증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결국 미국 사회의 극심한 양극화와 빈곤은 불평등 민주주의(unequal democracy)에서 비롯되고 유지되는 셈이다.

요컨대 민주주의를 제대로 해야 민생이 온전하게 지켜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 의원이 표출하는 비민주성은 스스로 강조하는 민생과 배치되는 것이라 하겠다. 아무리 민생을 외쳐도 민주주의를 하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치게 된다. 조건이 괜찮으면 좀 베풀다가도 어려우면 언제든지 희생을 강요할 수 있는 것이 박 의원의 민생관이다. 적선인 것이다.

누구로부터 어떤 조언을 듣는지를 두고 조언 정치(advice politics)라고 말하기도 한다. 훌륭한 참모를 옆에 두어야 한다. 곁에 두되 방치하지 말고, 다양한 의견이 주저 없이 개진되도록 해야 한다. 누구라도 보스의 눈치 보지 않고 아니오(no)라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좋은 리더, 훌륭한 대통령은 조언정치에 능했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태평성대를 열었다고 하는 당 태종의 치세는 위징이라는 참모의 직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 태종이 왕위를 놓고 형제들과 다툰 싸움에서 위징은 상대편에 있었다. 측근들의 반대에도 그런 위징을 발탁해, 자신의 허물을 비추는 거울로 삼았기 때문에 당 태종이 성공할 수 있었다.

미국의 프랭크린 루즈벨트가 소아마비 장애를 딛고 대통령이 되고, 대공황의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루이 하우라는 참모의 조언 덕분이었다. 루이 하우는 대통령에게 직언을 넘어 싫은 소리를 대놓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얼마나 반대를 많이 했던지 미스터 노맨(Mr. No man)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양약고구(良藥苦口)라 했던가. 하우를 파트너로, 하우의 반대를 쓴 약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루즈벨트가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의원의 조언정치는 좁고 폐쇄적이다. 따라서 위험하다. 고분고분한 예스맨, 최근 종박(從朴)이라 일컬어지는 사람들만 지근거리에 두고 있다. 그 외의 사람들은 의사결정 라인에서 아예 배제해버렸다. 안 그래도 거두절미한 단문에다 불충분한 의사소통, 취약한 쌍방 커뮤니케이션이 걱정인데, '아니오'라고 말할 사람이 곁에 없다면 어떤 의사결정이 이뤄질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지난 8일 열린 새누리당 연찬회에 참석한 박근혜 의원. 흰 '배경' 가운데 박 의원만이 녹색 옷을 차려입은 것이 눈에 띈다. ⓒ뉴시스

카스 선스타인의 책을 보면, 케네디 대통령 시절 왜 피그만 사태라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저질러졌는지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내부적으로 그럴 위험성을 인지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다른 의견을 내는데 주저했기 때문이다. 이런 게 동조현상이다. 멀쩡한 조직도 이견을 내기 힘든데, 아예 일방의 사람들로만 채워놓으면 이견은커녕 강경론만 득세하게 된다.

박 의원은 최고위원 1명, 대변인 1명 외에 거의 모든 주요 당직에 친박 일색의 인사구도를 짰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강부자나 고소영보다도 더 심한 편향이다. 정상적인 의사소통, 건강한 토론이 일어나기 어렵다. 견제가 없고 균형이 이뤄지지 않는 시스템은 어떤 경우에도 폐해를 낳기 마련이다. 민생은 아랑곳 않고 철지난 이념공세에 정신 팔린 여당의 당대표나 원내대표의 하는 꼴이 그 생생한 증거다.

민생이 보장되는 전제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인데, 그 민주주의는 다름과 차이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다름과 차이를 억압하거나 배제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름과 차이가 의사결정 시스템 안에서 제도적으로 보장되도록 해야 민생이 온전하게 지켜지는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 의원이 당을 1인 사당화하는 것은 다소 아쉬운 수준이 아니라 민주주의, 민생을 저해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 어떤 변명도 불가능한 100% 독재자로 변신한 것이 유신체제다. 그 유신은 긴급조치 등으로 일체의 반대나 저항을 봉쇄하려 했다. 그로 인해 어떤 비극적 결과가 초래됐는지 박 의원은 깊이 성찰해야 한다. 히틀러가 패한 것도 의사결정 시스템의 폐쇄성 때문이라는 지적도 새겨들어야 한다.

이 땅의 보수가 그렇게도 숭배하는 대상이 '철의 여인' 대처다. '여인은 돌아서지 않는다'는 소신정치로 승승장구하던 그가 망한 것도 내각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몰아내는 등 폐쇄적인 조언정치에 함몰됐기 때문이다. 그는 반대 여론이 들끓는 인두세를 끝내 밀어붙인 후과로 실각했다. 그런데 그의 그 고집도 인성 때문이 아니라 반대나 이견을 억압한 의사결정 구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집권 초기부터 줄곧 대처의 곁을 지킨 제프리 하우가 떠나면서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총리에 대한 충성심과 자신이 진정한 국익이라고 믿는 것에 대한 충성심 사이의 갈등을 더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떠난다고 했다.

박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했다. 당내의 이른바 비박 주자들을 대하는 박 의원의 모습을 보면 '참 독한 정치인'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같은 당의 동지들조차 생각이 다르다고 저렇게 다루는데, 하물며 반대당이나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를 훗날 어떻게 다룰지 생각해 보면 참 끔찍하다. 친박이 종박(從朴)으로 변질된 것을 보면서 "곧 MB 정권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올 것"이라고 말한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말이 허언은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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