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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인종청소 '훌라 학살', 무기력한 국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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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인종청소 '훌라 학살', 무기력한 국제사회

[분석] 외교관 추방령이 고작, 국제사회 무기력 대응 비판 고조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시리아의 '훌라 학살'의 끔찍한 진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유엔이 공식 발표한 사망자만 108명이고 그 중에서 어린이가 무려 49명, 여성 34명이 포함됐다. 어린이 49명에서 32명은 10살 이하다. 추가로 시신들이 발견되고 있어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나고 있다.

29일(현지시간) <알자지라> 등 외신들이 유엔 관계자들을 소식통으로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번 학살은 주로 시리아의 친정부 민병대가 한밤중에 한 마을 주민들을 마치 처형하듯이 사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엔은 시리아 정부군의 포격과 탱크의 발포 등으로 숨진 사람의 수는 20명 이내라고 밝혔다. 생존자들의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이번 훌라 학살로 최소한 116명이 죽었다"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11살 된 한 소년의 증언을 소개했다. 이 소년에 따르면 새벽3시에 집에 들이닥친 민병대의 무차별 발포로 가족 6명이 살해됐으며, 소년은 자신을 겨눈 총알이 빗나가자 피바다가 된 바닥에 죽은 채 누워있어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민병대는 집집마다 가족수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듯, 방안에 없었던 가족들까지 집밖에서 찾아내 모두 죽였다고 이 소년은 증언했다.

▲ 시리아 정부군의 포격을 받은 훌라 주민들이 황급히 대피하는 긴박한 순간. 시리아 인권운동가가 간신히 촬영한 영상 캡처다.
서방국들, 일제히 시리아 외교관 추방령

이번 학살로 시리아와 외교관계를 중단하는 조치들이 잇따르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 호주,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들이 개별적인 방식이 아니라 협의를 거쳐 일제히 자국에 있는 시리아 외교관들에 대해 추방령을 내렸다. 이들 나라는 시리아 외교관들에게 하루 이틀내에 모두 주재국을 떠나도록 통보를 했다.

유엔의 시리아 특사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과 직접 만났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현재의 시리아 사태는 특단의 조치가 없이 대화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런 만남이 '한가한 행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난 특사는 시리아 정부와 반군간의 휴전을 이끌어냈으나 처음부터 유명무실한 휴전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은 아난의 중재로 지난 4월 12일 휴전에 합의했지만 이후 양측의 충돌로 800명 이상이 숨졌으며, 휴전 준수 여부를 점검하겠다는 유엔 감시단이 현지에 있어도 시리아 유혈사태 이후 최악의 학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휴지조각' 휴전 중재자가 다시 나서는 게 대책

이에 따라 시리아 정부와 휴전 협상을 하고 훌라 학살 이후에도 '휴지조각이 된 휴전'의 중재자인 아난 특사가 다시 알아사드 대통령을 만난 것은 시리아 정부가 그래도 타협이 가능하다는 인상을 줘 오히려 시리아 정부를 도와주는 격이라는 회의론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아난 특사가 알아사드 대통령를 만나서 한 일이라고는 유혈사태 종식을 위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 정도다. 이런 아난 특사에게 아사드 대통령은 "아난 특사의 평화협상안은 테러리즘의 종식에 달렸다"고 응수했다. 훌라 학살도 시리아 정부나 친정부 민병대의 소행이 아니라, 시리아의 내부 혼란을 부추기는 어떤 테러리스트들의 소행으로 치부하는 시리아 정부의 공식 입장과 다른 게 없었다.

이에 따라 시리아 정부로부터 아난 특사가 요구한 신속한 조치가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시리아에서는 지난해 3월 알아사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1만2600명 이상이 사망한 유혈사태가 계속되는 동안 국제사회가 실효성이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프랑스 "국제법과 유엔 지지 전제로 군사적 개입 가능"

이때문에 '훌라 학살'을 계기로 군사적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얘기가 심각하게 나오고 있다.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은 외교적 노력이 우선되어야 하고 군사적 개입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단서를 붙이면서도, "군사적 개입이 심각하게 검토돼야할 상황"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리비아 사태 때 프랑스의 주도로 군사적 개입이 이뤄진 것처럼, 일부의 시각이라면서도 뎀프시 합참의장은 리비아식 해법도 가능하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훌라 학살'로 인해 군사적 개입에 대한 여론은 조성돼 있다고 보지만, 어디까지나 국제법을 존중하고 유엔의 지지 안에서 이뤄져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백악관은 "현재로선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 "이는 더 큰 혼란과 대학살로 이어질 것"이라고 일단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다만 이번 훌라 학살이 군사행동을 비롯해 어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을 보였다.

"학살 주범과 대화하며 시간만 끄나"

그러나 논의만 무성할 뿐 국제사회가 시간만 끌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시리아와 군사적 관계가 밀접한 러시아 정부는 '훌라 학살'과 관련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등 여전히 미온적인 입장이다.

더 큰 문제는 시리아 일대 아랍국들의 지역기구인 아랍연맹 등에서도 나중을 생각해서인지, 말로는 뭔가를 하겠다고 하지만 소극적이거나 실효성이 의심되는 대책이나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에 근거지를 둔 시리아의 반정부 단체들은 "현재 국제사회가 보냈다는 감시단이 하는 일이라고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면, 현장에서 구체적인 숫자나 명단을 작성하는 일"이라고 개탄하고 있다.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훌라 학살에 대해 논의를 마친 후 오는 7월 '시리아의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서방국들이 모여 군사적 개입을 포함한 모든 방안을 다시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21세기에 '인종청소'에 해당하는 끔찍한 학살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대응은 한가하고 무력하게 보인다는 비판은 면키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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