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체제가 공식 출범하였다. 2010년 9월의 당대표자회에서 후계자로 모습을 드러낸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불과 1년 7개월여 만에 김정은은 당과 국가의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과거 김일성 사후, 3년상을 치른 이후에 김정일이 당과 국가의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것과 비교하면 대단히 빠른 속도로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이처럼 빠른 승계는 무엇 때문일까? 김정일 사후, 북한은 과거 김일성의 사망 시와는 다르게 '정상'을 유독 강조하였다. 모든 것을 정상적으로 처리하고, 정상적으로 진행하고자 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김정일 생존 시에 이미 사후에 대처하기 위한 매뉴얼이 만들어졌을 것이고, 그러한 매뉴얼에 따라 행동했을 것이다. 이는 김정일 사후, 당의 정치국 결정에 의해 '10.8 유훈'에 따라 김정은이 곧바로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된 것 등에서 알 수 있다.
또한, 김일성 사망 시에 닥쳤던 체제의 위기와 같은 공포와 불안정을 반복하지 않고자 했을 것이다. 여기에 김정일과 달리 아직까지 충분한 경험과 권위를 쌓지 못한 김정은으로의 신속한 권력 이양의 필요성이 겹쳐졌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북한은 김정일의 100일 추모대회가 끝나자 바로 당대표자회를 개최하고, 연이어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해서 김정은으로의 권력 집중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선택과 등극은 광범위한 '인민'들의 참여에 의해 결정되기 보다는 당내 엘리트에 의해 합의와 조정을 거쳐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의 후계자론에 따르면 전임 '수령'에 의해 후계자가 선택된다. 북한의 <노동신문>은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우리 혁명대오의 진두에 세워주신 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인민, 김일성 민족을 위해 이룩하여 놓은 최대의 업적'으로 주장하고 있다(3월 23일자). 이렇게 본다면, 전임 수령이라 할 수 있는 김정일에 의해 김정은의 후계자로의 선택이 최종적으로 이루어졌고, 후계자의 선택과 동시에 후계자의 유일지도체제가 구축되기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소수에 의한 후계자의 선택과 추대가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어야 할 필요성은 있다. 즉, 당 및 국가, 그리고 군대에서의 합법적인 최고지도자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절차적 합법성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당대표자회와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하여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체제를 구축하고, 당적, 법적 정당성을 부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절차적 정당성의 구축은 당대표자회와 최고인민회의의 의제에서도 나타난다.
즉, 지난 2010년의 당대표자회에서 수정된 당의 규약은 당의 총비서는 당대회를 통해서 추대(선출이 아닌 추대)하도록 되어 있었다. 물론, 당대표자회에서 당의 최고지도기관을 선거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으나, 당 총비서는 추대된다는 점에서 당대표자회에서 총비서의 선거라는 점은 어색하다. 이번의 당대표자회가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하는 문제 이외에도, 당규약 개정문제, 당 조직문제 그리고 김정은의 제1비서 추대 문제 등의 의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은 곧 김정은의 제1비서로의 추대를 위한 규약 개정과 이에 따른 조직문제, 제1비서 신설 등이 논의되었고, 결정되었음을 의미한다. 북한으로서는 당 규약의 개정을 통해 최소한의 절차적, 합법적 정당성을 갖추었다는 것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최고인민회의에서도 헌법 개정이 있었고, 이러한 법적 뒷받침 속에서 김정은이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서의 합법적인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당대표자회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김정은은 당의 제1비서, 그리고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서 당 및 국가의 최고 영도자가 되었다. 그리고 4월 15일 김일성 100회 생일을 맞이하여, 직접 대중 앞에서 연설을 통하여 최고영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제 적어도 정치적 상부구조에서 김정은은 최고의 권력자이자 동시에 과거 김일성, 김정일이 가졌던 최고의 권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북한의 최고영도자는 제도적으로 주어진 최고 권력자를 넘어서야 한다. 그것은 권력자로서의 지위와 동시에 '수령'이라는 혁명에서의 절대적 지위와 결정적 역할을 부여받고 있는 최고 권위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김정은에게 남겨진 과제가 지도-대중의 관계에서 획득되는 '인격적 리더십'의 확보라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북한은 김정일 사후, 곧바로 김정은에 대한 권위 부여를 위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인민적 품성'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 그리고 선군정치를 한치의 흔들림 없이 지속하고 있는 '강인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위로부터의 선전 및 교양'과 더불어 김정은의 연설과 담화를 중심으로 한 '아래에서의 조직적인 학습'이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북한 당국이 진행하는 김정은의 '인격적 리더십' 구축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아직 섣부르게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새로운 젊은 지도자의 등장이 주민들에게 일정한 기대감을 주고, 이것이 북한 당국의 선전과 결합한다면 어느 정도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북한의 김정은체제가 당면하고 있는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현실의 과제를 얼마나 성과적으로 추진하고, 성과를 낳느냐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도 김정은체제는 경제재건 - 강성대국 건설의 물질적 토대에 우선의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 북한 인민군 창건 80돌 경축 중앙보고대회가 25일 4.25문화회관에서 열렸다고 조선중앙TV가 전했다. ⓒ연합뉴스 |
광명성 3호 발사와 대남 위협의 함의
반면, 현재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북한의 행동은 이러한 현실의 과제의 실현과는 동떨어져 보인다. 즉, 광명성 3호 발사의 실패와 연이은 대남 강경 위협은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경제적 노력과는 정반대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광명성 3호의 발사는 대미 협상에서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카드로서의 의미도 갖고 있지만, 그보다는 김일성 100회 생일과 김정은체제의 등장이라는 국내 정치적 성격이 보다 컸다고 할 수 있다. 인공위성 발사와 관련한 국제기구에의 통보와 자료 공개, 그리고 국외의 취재진까지 불러들여 최대한의 투명성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인공위성 발사에 대한 국제적인 합법성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광명성 3호 발사를 계기로 불거질 국제사회와의 갈등을 최소화하고자 했던 노력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광명성 3호의 발사 실패는 내부적으로는 4월의 국가이벤트 행사를 극대화하고자 했던 의도를 물거품으로 만들었고, 대외적으로는 미국과의 합의 이행 지연 - 현재 북한과 미국은 모두 2.29 합의의 무효화를 선언하지 않고 있다 - 및 남한과의 갈등을 고조시키고 말았다. 여기에 최근 일련의 대남 강경 위협 조치는 이미 신뢰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있는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으며, 국지적 충돌의 위험성까지 증대시키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4월의 행사를 통해 김정은체제를 공식 출범한 조건에서 남북관계에서는 원칙적이고, 새로운 지도자의 강인함과 단호함, 그리고 결단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유엔 의장성명에서 별다르게 언급되지 않고 있는 남북한의 충돌 - 유엔 의장성명은 소위 '트리거 조항'으로서 앞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에 대한 자동 개입, 압박이 명시되어 있지만, 남북관계에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 은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관심 유도 그리고 빠른 협상 재개를 위한 카드로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의 남북 충돌의 위험은 북한의 대미 협상에 대한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북한의 정치문화에서 최고지도자의 존엄에 대한 모욕과 체제에 대한 비판은 두고 보기 힘들 것이고, 더욱이 이제 막 등장한 김정은체제의 입장에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유연성을 발휘하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광명성 3호 발사 이후, 미국과의 합의 이행 중단 및 지연, 중국과의 지속적인 경제협력의 필요성, 그리고 내부적으로도 경제건설에 최대한의 노력을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금의 대남 강경 위협은 미국을 향한 신호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문제는 현재의 북한의 행동이 단순한 '말대 말'의 위협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언제든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는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고, 자칫 한반도에서 남북 모두 '의도치 않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북한경제 재건과 북미관계 개선의 딜레마
한편, 우리는 앞으로 북한이 경제 건설을 위해 어떤 노력을 전개할지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김정은의 연설문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강력한 군력에 신세기의 산업혁명'을 더하면 강성국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강력한 군력은 핵과 미사일로 상징되는 김정일시대의 최대 업적으로 선전되고 있다. 김정은은 강력한 군력을 물려준 김정일의 뒤를 이어 이제는 '신세기의 산업혁명'을 본격적으로 전개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김정일의 사망 직전, '발은 자기가 사는 땅에 붙이고 눈을 세계를 보라'는 말이 북한의 과학기술 혁명을 통한 경제발전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면, 김정은은 이를 구체화하고 실제 성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신세기의 산업혁명'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과학기술 혁명'에 기초한 '지식경제산업'일 것이다. 또한 여기에 '함남의 불길'로 상징되는 과학기술에 뒷받침된 생산성 증대의 성과가 결합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의 당대표자회에서 곽범기가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기용된 것은 '함남의 불길'을 당적인 사업으로 추진할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곽범기는 '함남의 불길'의 진원지인 함경남도 당 책임비서이기도 하다. 이러한 '신세기의 산업혁명'의 결과는 곧 인민생활의 향상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민생활의 향상이 앞으로 김정은의 '인격적 리더십'을 확립하는데서 커다란 변수가 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북한의 의도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대외적으로 평화적 환경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중요하게는 미국과의 관계, 중국과의 지속적인 경제협력 및 강화 등이 요구된다. 이미 광명성 3호 발사 이후, 북한은 김영일 국제부장을 중국에 파견하여 북-중 우호관계를 재확인하고, 김정일 시대의 북-중관계를 지속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남는 문제는 미국과의 문제이다. 2.29 합의가 사실상 중단된 조건에서 일정기간 동안의 냉각기는 필연으로 보인다. 더욱이 미국은 올해 말 대선을 앞두고 한반도 문제에 집중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또한, 미국은 광명성 3호 발사 이후의 대북 압박과 동시에 최소한의 관리에 머물고자 할 가능성이 높다. 대선 정국에서 한반도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반면 북한으로서는 지금의 냉각기를 최대한 짧게 끝내고, 미국을 협상에 끌어들이고자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미국과의 관계정상화가 목표이겠지만, 지금의 시점에서는 미국과의 2.29 합의를 되살려내고 협상 국면으로 복귀하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가 될 것이다. 물론, 평화적 환경이 마련되지 않는다고 해서 북한이 자신들의 경제전략을 포기하거나 수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들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5년간 보아왔던 것처럼,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가동하거나 북방영토를 부단히 개척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길을 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있었던 북미 대화에서 리용호 부상이 '새로운 지도자는 미국과 싸울 용의가 없다'고 한 것이나, 김정은의 연설에서 비록 자주권과 존엄이 더욱 중요하다고 전제를 달기를 했지만, '평화가 더없이 귀중하다'고 한 발언은 북한의 입장에서 한반도 평화와 북미관계 개선은 북한의 경제재건을 위해서도 당면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그것은 김정은에게 남겨진 현실의 과제 즉, 인민생활의 향상을 위해서는 대외적인 환경과 내부의 노력이 동시에 요구되기 때문이다.
남북, '시중(時中)의 지혜'를
따라서 지금 북한이 보여주는 심각한 위협을 북한 내부의 단결을 위한 조치로 좁게 해석하거나, 광명성 3호 발사 이후의 국제적인 대북 압박을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강경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남북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북한의 변화에 대한 기회의 창도 닫아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압박을 통한 북한의 변화는 지난 5년간의 경험이 보여주었듯이, 별다른 성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커다란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김정은체제는 이제 갓 출범하였다. 그리고 그에게는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가 지워져 있다. 광명성 3호 발사를 통해 강성대국의 위엄을 뽐내고 싶어 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실패하였다. 4월 15일의 대규모 열병식과 이어지는 축포 야회를 통해 김정은체제의 출범을 성대히 축하했지만, 김정은의 북한이 가야 할 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관계는 실제적인 충돌을 우려할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 그에게 남겨진 과제의 실현을 위해서도 현재의 남북관계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우리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북 모두 지금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시중(時中)의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 원제 - 김정은 체제의 출범: 광명성 3호, 대남 강경위협 그리고 현실의 과제
* 코리아연구원(연구기획위원장: 이정철)은 네트워크형 싱크탱크로 정치·외교, 경제·통상, 사회통합분야의 정책대안을 제시합니다.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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