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북한 노동당 당대표자회와 13일 최고인민회의를 거치면서 김정은 후계체제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안정되고 있다. 보수 언론에서는 29살짜리가 어떻게 나라를 끌어가겠냐면서 곧 밀려나고 군부 쿠데타가 일어날 거라고 전망했지만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없다.
북한 정치체제의 특성상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북한의 정치문화는 3대 세습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으로부터 세습받을 때까지만 해도 상당히 긴 설명을 해야 했고 오랜 세월 정지작업이 필요했다. 그러나 혈통을 통한 세습이 아니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조선노동당이 계속될 수 없다는 교육이 계속되어 왔기 때문에, 김정은은 당연한 후계자로 쉽게 받아들여졌다. 김정일 세습 당시 '백두혈통'을 강조했기 때문에 이제 와서 그 혈통이 아닌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정통성과 상징성을 인정받기 곤란한 문화가 굳어졌다. 조선시대에 혈통으로 왕위가 계승됐던 것과 같다.
민주주의 관점에서 세습왕조를 비판하는 건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비판은 북한한테 의미가 없다. 비판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비판을 해서 부끄러운 줄 알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북한의 정치문화는, 적어도 경제사정이 바뀌기 전까지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세습을 통해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김정은은 유훈통치를 통해 자기의 정치와 정책을 전개해야 한다. 유훈을 뒤집으려면 복잡하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김정은의 권력이 독자적으로 공고화했을 때가 되어서야 유훈을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 등소평도 모택동과 각을 세우긴 했지만, 나중에 모택동의 유훈과 방침을 뒤집을 때는 모택동의 발언을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정당화했다. 레닌-스탈린 이후 공산주의 국가의 전통이다. 정책을 바꾸면서 '그 분 말씀의 본래 뜻은 이거다'라는 식으로 둘러댄다. 그러지 않으면 노선 투쟁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잘못하면 권력을 잃을 수도 있다.
유훈통치가 얼마나 강력한지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첫째, 남북 철도 연결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했지만 북한 내부적으로는 1994년 6월 30일 김일성이 벨기에 노동당 대표단을 만났을 때 이미 철도 연결 방침을 천명했다. 김일성 전집에 나와 있다. 그 결심이 있었기 때문에 김정일 위원장이 2000년 6월 정상회담에서 쉽게 합의할 수 있었다. 이번 장거리 로켓 '은하 3호' 발사도 김정일의 유훈이다. 김정일은 2009년부터 '2012년 4월 15일 수령님(김일성) 100회 생일을 기념해 위성을 발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을 통해 못 쏘게 해야 한다는 말은 있을 수 없는 얘기다.
▲ 민간인 출신으로 군 총정치국장이 된 최룡해의 15일 열병식 연설 장면 ⓒ연합뉴스 |
김정은식 '실용주의'의 조건은?
김정은은 다시 선군정치를 강조하고 나섰다. 앞으로 선군정치의 기조를 견지할 거라고 본다. 그런데 선군정치의 개념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군을 강조한다고 해서 호전적인 정치를 하는 거라고 보면 안 된다. 북한에서 군대의 의미는 첫째, 국가안보를 위한 무장력이다. 둘째, 군은 경찰보다 더 강력한 폭력장치(Gewalt Apparatus)이다. 국민들이 말을 안 들으면 위수령, 계엄령을 내려서 군대를 풀어 진압한다. 이 두 가지 의미는 북한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들의 군대에 다 해당한다.
그런데 북한의 경우 군대의 의미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 경제의 주축이다. 117만 조선인민군은 전체 인구의 5%에 불과하지만, 17~27세의 가장 양질의 노동력이고 경제 건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노동력이다. 인민무력부 부부장 4명 중 반은 건설공사나 농사에 군 노동력을 동원하는 일을 책임진다. 아예 '군인건설자'라는 표현이 있다. 바로 이 세 번째 의미가 북한의 선군정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요컨대, 사회주의 경제발전 전략이 한계점에 이르고 동원 가능한 내부 자원 부족한 상황에서 선택한 군 중심의 개발독재 방법이 선군정치다. 과거 박정희 정부에서도 군 중심 개발독재를 한 적이 있다. 선군정치는 그와 유사한 개념이다. 호전적인 노선이 아니라 경제발전을 위해 선군이 전제돼야 한다는 게 북한의 현실이다.
미국 조지아대 박한식 명예교수가 지난 20일 한반도평화포럼에서 최근 북한에 갔다 온 얘기를 했는데, 김정은이 소위 '군의 인민화' 즉, 군이 인민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군이 인민들의 경제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시 한 번 노력해 달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경제 발전 전략으로서 선군정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김정은은 실용주의 노선을 채택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북한은 그동안 사상강국, 정치강국, 군사강국이 됐다면서 경제강국만 마무리하면 된다고 주장해왔다. 사실 순서상 경제를 먼저 일으키는 부국강병이 맞는데, 어쨌든 북한은 순서는 거꾸로 잡았지만 사상강국, 정치강국, 군사강국을 밑받침하는 경제강국 건설을 위해 실용주의 노선을 채택할 가능성 상당히 높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김정은의 지난 1월 발언을 보도했는데 '자본주의 방법이라고 해서 무조건 거부하지 말라'는 취지로 말했다. 상당히 의미 있게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김정일도 생전에, 2000년 남북 정상회담 후에 상당히 전향적이고 실용적인 발언을 했다. 2001년 1월 초 소위 '신사고론'을 주문했다. '21세기에는 21세기의 문제가 나오게 돼있는데 70~80년대 수령님(김일성) 시대의 방식을 고집하지 마라. 우리 간부들 중에는 과거 방식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그해 10월 '사회주의 원칙을 지키되 실리를 찾을 수 있는 방식을 찾으라'고 지시했고, 이듬해 2002년 7월에는 사회주의 원칙을 지키되 시장경제 원리를 상당히 도입한 7.1 경제관리개선조처를 국가 방침으로 발표했다. 그때부터 조심스럽게 소규모의 시장화가 시작됐다. 중국 신화통신을 비롯한 많은 외신들이 '자본주의 싹이 올라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은 오래 가지 않아 중단됐다. 핵심적인 이유는 미국과의 관계가 안 풀렸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실용주의 노선이 대외적인 개방과 대내적인 제도 개혁으로 이어지려면 대미관계 개선이 필수 조건이다. 동유럽도 1970년대 후반 헬싱키 프로세스를 통해 동유럽-서유럽-소련이 공존하고 관계를 개선하면서 본격적인 개방을 시작했다. 중국이 78년 말 본격적인 개방‧개혁을 결심했던 것도, 이듬해 1월 미국과의 정식 수교 방침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베트남의 '도이모이(刷新)'라는 개방‧개혁 정책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가시권 내에 들어온 85년 말 당의 방침으로 결정됐다.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공부했으니까 개방‧개혁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은 조건 중에 하나만 얘기하는 것이다. 충분조건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다.
대외정책, '벼랑끝'은 계속된다
대외정책과 관련해서는, 김정은도 김정일처럼 핵과 미사일을 카드로 삼아 미북 수교, 평화협정 체결을 시도할 것이다. 94년 북미 제네바기본합의 때 북한은 핵활동 중지의 대가로 미북관계 개선과 경수로를 받아냈다. 2005년 6자회담에서 나온 9.19 공동성명도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그 대가로 미‧일과의 관계 개선, 경제지원, 평화협정을 주는 것이다.
대미관계 개선은 북한의 안보 문제와 경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해외 차관을 받으려면 미국이 승인해야 한다. 그런데 북한에는 '벼랑끝 전술'이 미국에 통했던 '성공의 추억'이 있다. 제네바합의나 9.19 공동성명이 다 그렇게 해서 나왔다. 그러니 북은 앞으로도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벼랑끝 전술'을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약속을 안 지키는 나라라느니 국제 규율을 안 지키고 도덕적이지 않다느니 하는 소리들을 많이 하는데, 다 소용없는 얘기다. 불량국가라고 낙인찍어 놓고, 불량 학생이라고 퇴학시켜 놓고 교칙 안 지킨다고 하는 것과 같다. 학교 밖에서 지나가는 애들 불러서 돈 뺏어서 빵 사먹고 있는데, 교칙 안 지키니까 제재해야 한다? 아무 소용없는 소리다.
미국 오바마 정부로서는 대선 기간 중에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북한은 협상이 이뤄지지 않는 '틈새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다음 협상에서 몸값을 올리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는 점이다. 미사일 사거리를 늘리거나 핵실험을 하거나, 플루토늄을 재처리해서 다음 협상에서 더 큰 걸 받아내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미국은 '악행(惡行)에 보상 없다'는 말만 할 게 아니라 이걸 알아야 한다. 미사일 추가 발사설이나 3차 핵실험 강행설은 과거 선례를 감안해서 나온 전망인데, 이번에도 그럴 건지는 예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북한은 미국과는 벼랑끝 전술을 쓰는 동시에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대미관계 조절의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 높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이이제이(以夷制夷) 외교에 능하다. 1950년대 중소분쟁 때부터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양쪽에서 다 받아냈다. 나쁘게 말해서 양다리 외교라고 하는데, 사실 작은 나라의 외교는 양다리가 제일 좋다.
다만 최근 김정은이 로켓 발사를 보라고 해외 참관단을 초청하고, 발사 실패를 즉각 시인하면서 투명성과 공개성을 강조하는 걸 보면 김정일과는 다른 대외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가능성도 예고하고 있다.
"'통중봉북', 비현실적인 희망사항"
북한은 당분간 대남정책을 대미정책의 종속변수로 관리하고 운영할 것이다. 남북관계가 좋아서 남북관계가 북미관계 개선의 디딤돌이 될 수 있을 때는 남쪽을 종속변수로 놓지 않고 대등한 자격으로 상대했지만, 지금 우리 정부가 너무 미국 편향으로 나가니까, 어차피 미국이 앞장서야 남쪽도 따라온다고 보고 있고 종속변수로 관리하려 할 것으로 본다. 이명박 정부 임기 중에 북한이 대남 유연 노선을 택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오히려 대내 결속 위해 호전적이고 위협적인 비난 공세를 지속하거나 심화시킬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그러면 남쪽에서도 말이 거칠게 나간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일 "이제 통미봉남(通美封南)은 지나간 과거사다. 나는 오히려 통중봉북(通中封北)이 맞다고 본다"라고 했다. 한중간 경제관계가 좋다고 해서 정치적으로도 중국이 북한을 봉쇄한다? 그건 아니다. 중국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 경제는 남쪽하고 하지만, 정치‧군사 차원에서는 북한이 아무리 괘씸해도 절대 괄시하지 않는다. 자기네 필요 때문이다. 이 원리를 알아야 하는데 경제관계가 좋으니까 중국이 우리 편이 될 거고, 그래서 우리가 중국한테 북한 도와주지 말라고 하면 안 도와준다? 그렇지 않다. 북한 상황이 힘들어지면 탈북자가 어디로 가겠나? 중국으로 간다. 중국으로서는 더 복잡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넘어오지 않을 정도로 뒤를 열어줘야 한다. 이 원리를 알아야 하는데 통중봉북 같은 얘기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전망이다.
북한은 앞으로 미국과 남한의 대선 관련 정세를 예의 주시하면서 차기 정부를 상대한 전략을 구상하는데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
북한은 우리의 안보, 평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상대이니만큼 우리의 대북정책은 제3국의 대북정책과 같을 수 없다. 미국‧일본의 대북정책하고는 철학부터 달라야 한다. 우리가 북한에 대한 비난과 제재를 선도하는 게 아니라 한반도 상황을 주도적으로 관리하면서 북한이 개방‧개혁과 변화의 길로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 남북간의 상호 의존도를 키우는 것이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관건이다. 9.19 공동성명이 나오게 된 것도 우리가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북한, 미국, 중국을 조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북한이 미국,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도록 권하고 그 쪽으로 유도하는 아량이 우리에게 있어야 통일도 기대할 수 있다.
남북의 상호 의존도에 대해 최근 북한의 변화를 가지고 설명하자면 이렇다. 이번에 군 총정치국장에 임명된 사람이 최룡해다. 그 아버지는 김일성과 함께 빨치산을 했던 군인 최현이었지만 최룡해는 군 경험이 없는 민간인이다. 과거 직업 군인이 차지했던 군 총정치국장을 최룡해한테 시키는 걸 보면, 군의 인력을 인민경제 향상에 동원해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장성택도 과거 두 번 만난 적이 있는데 남북 경제협력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 장성택도 지금 군에 간섭하는 걸 보면, 최룡해와 장성택 같은 민간인들이 군을 장악한 것을 보면, 경제 역량으로서의 군의 역할이 점점 더 커지는 상황을 만든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가 나서서 북한의 군이 무장력이 아닌 경제 인력으로 활동하는 길을 열어줄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남북의 상호 의존도를 키우는 것이다. 과거 보수적인 분들이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돈을 퍼주니까 북한이 무기나 만든다'고 비판했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 지난 5년 간 아무 것도 안 줬는데도 북한은 핵실험도 했고, 3차 핵실험할 준비도 되어 있다고 하고, 미사일도 개발했다. 퍼주지 않아도 다 한다.
그런데 과거 정부에서 북에 줬을 때는 어떤 효과가 있었나? 쌀과 비료가 매년 일정하게 가던 시절에는 북한이 우리 조언을 잘 들었다. 9.19 공동성명이 나올 때도 이미 2002년부터 쌀 40만 톤, 비료 20만 톤이 매년 고정적으로 가는 상황에서 우리가 '이런 것 좀 해봐라. 이건 고쳐라. 다음 6자회담에 나가서는 미국 얘기 잘 들어 보고 해석이 안 되면 우리 대표단한테 자문이라도 구해서 접점을 빨리 만들어라' 같은 요구를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9.19 공동성명이 나온 것이다.
쌀과 비료가 다음 해에는 안 올 수도 있다는 걸 걱정하게 되면 그게 바로 카드가 되는 것이다. 아무 것도 안 주면 아무 카드도 없게 되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비난했지만, 우리가 북에 줄 때와 안 줄 때 보여줬던 북한의 남쪽에 대한 태도와 정책, 미국에 대한 정책은 차이가 컸다. 이 정부는 안 주면서 '북한의 버릇을 고치겠다'고 했는데, 계속 확인되는 것이지만 아무 버릇도 못 고쳤다. 다음 정부에서는 보수가 됐건 진보가 됐건 남북의 상호 의존도를 키우는 정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 정세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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