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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과학자 사망은 암살 아닌 국가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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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과학자 사망은 암살 아닌 국가 테러"

[해외시각] "테러 용의자 고문은 안되고 살해는 괜찮아?"

다음은 지난 16일자로 <가디언>에 게재된 '이란의 핵과학자들은 암살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살해되고 있는 것이다'라는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필자 메디 하산은 영국의 좌파 성향 정치전문지 <스테이츠먼> 편집장으로 최근 이란의 핵개발과 관련된 한 과학자가 수도 테헤란의 도심 한복판에서 살해된 사건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는 흔히 이런 사건에 대해 서방에서는 '암살'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국가가 지원하는 테러에 의해 살해된 것을 가리려는 완곡 어법"이라면서 이런 상황을 방치할 경우 우리가 처하게 될 위험에 대해 경고했다. <편집자>

▲ 지난 11일 살해된 이란 핵과학자 로샨.이 죽기 전 어린 아들과 함께 한 사진. ⓒAP=연합

이란 과학자 살해에 "훌륭한 일"이라는 반응들

지난 11일 아침 모스타파 아마디 로샨이라는 이란의 과학자가 출근길에 타고 있던 자신의 차에서 살해됐다. 누군가 차 옆에 자석폭탄을 부착한 뒤 폭발하면서 이란의 나탄즈 우라늄 농축 시설의 부감독이었던 그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올해 32세로 아내와 어린 아들이 있었다. 무장한 것도 아니고, 전쟁터 부근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2010년 이후 이미 3명의 이란 핵과학자들도 비슷한 상황에서 살해됐다. 지난해 6월 35세의 전자공학 전문가 다리우슈 라자에니네자드의 경우 자기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 부근에서 총격에 의해 살해됐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에 대해 우리는 분노하거나 비난하는 대신 드러내 놓고 기뻐하는 발언들을 접해왔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릭 샌토럼은 지난해 10월 "이란의 핵과학자들은 때때로 죽은 채 발견된다"면서 "아주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떠벌였다.

로샨이 살해된 날 이스라엘의 국방부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이란 과학자를 누가 처리했는지는 모르지만, 눈물 한 방울 나지 않는다"고 썼고, 마이클 벌리라는 역사학자는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쓴 글에서 "이같은 과학자들이 오토바이를 탄 냉혹한 사람들에게 당할 때라면 눈물따위를 흘릴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사형선고는 국가에 의한 살해라는 사람들도 침묵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은 '암살자'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암살은 살인을 보다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서구의 정치인들과 보안당국 관료들은 이란의 과학자, 가자지구의 정치인 등을 불법적으로 살해하는 기획을 은밀히 하고 있다.

그들의 목적은 외국인들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받는 폭력에 무감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미군 장교 출신으로 '살해' 행위의 심리적 과정에 대해 탁월한 책을 쓴 데이비드 그로스먼에 따르면, 우리가 이런 살인에 대해 무감각해지거나 심지어 기뻐하게 만드는 장치들이 있다.

문화적 거리감(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킬러가 희생자를 인간이 아닌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도덕적 거리감(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느끼게 한다), 기계적 거리감(닌텐도 게임처럼, 조준경 등 기계적 장치를 거치면서 희생자가 인간이라는 것을 부정하게 만든다) 등이 그것이다.

'살인자들을 사형시키는 것은 국가에 의한 살인'이라고 외치는 서방의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은 변호인의 지원과 재판 등의 혜택을 누리고 있어서인지, 국가의 지원 속에 외국에서 핵과학자들이나 테러 용의자들이 살해되는 것에는 침묵하고 있다.

인권변호사로 무인폭격기(드론)에 의한 살해에 대해 반대운동을 펼치는 클리브 스탠퍼드 스미스는 "표적살해는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사형선고"라고 말한다.

인지적 부조화가 만연하고 있다. 예를 들어 테러용의자를 고문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이라면서, 비디오게임 하듯 원격조정되는 드론에서 발사되는 미사일로 그를 죽이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된다.

공포와 불안에 사로잡혀 우리는 어느덧 정부가 외국에 있는 우리의 적들을 살해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에 살게됐다.

미국 국적 시민들도 살해되는 은밀한 절차들

외국인들뿐이 아니다. 알카에다의 미국 국적 지도자 안와르 알올라키의 사례를 들어보자. 지난해 9월 30일 CIA의 드론은 올라키와 또다른 미국 국적 시민 사미르 칸을 살해했다. 2주 뒤 또다른 CIA 드론은 올라키의 21세 아들 압둘 라만을 살해했다. 이들 올라키 부자는 어떤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기는커녕 기소된 전력조차 없다.

두 사람의 미국 국적 시민들이 "누구도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생명을 박탈당하지 않는다"는 미국 헌법을 위반해 미국 정부에 의해 암살된 것이다.

지난해 10월 <로이터> 통신 조사에 따르면, 오바마 정부 하에서 테러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미국의 시민들은 "정부 고위 관료들로 구성된 비밀 위원회에 의해 살해 또는 체포 명단에 오를 수 있으며, 이 명단은 대통령에게 보고된다. 이 비밀위원회의 활동이나 결정 사항에 대해서는 어떠한 공식적인 기록도 없으며, 이런 비밀위원회가 존재할 어떠한 법적 근거나 활동에 관련한 규정도 없다.

자유민주주의, 법치 사회에서 '비밀위원회'와 '살해 명단'이라는 게 도대체 용납될 수 있는 것인가? 미국을 건국한 선조들은 대통령이 재판하고 법을 집행하는 권한을 갖는 나라를 세운 것인가? 견제와 균형의 원칙은 어떻게 된 것인가? 정당한 절차는 어떻게 된 것인가?

나중에 누가 '살인 정부'를 견제하나?

만일 이란이나 북한에 의해 서구 과학자들이 암살을 당하고 있다면 우리의 정치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국가가 지원하는 살해 행위에 대해 뻔뻔한 이중잣대가 등장할 것이다. "어떤 행위가 좋은 것이냐 아니냐는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누가 그 행위를 하느냐에 달렸다"고 말이다.

조지 오웰은 "그래서 우리 편이 저지른 것이라면 도덕적 문제나 분노 같은 것은 생기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안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가치들을 망가뜨릴 것인가? 정부가 시민들, 인간들을 은밀히, 감시나 책임추궁도 받지 않고 살해하도록 허용하는 순간, 다른 어떤 힘으로 그들을 제지할 수 있을 것인가?

문제가 복잡한 게 아니다. 국가가 지원하는 살해는 테러일 뿐이라고 끊임없이 비판할 것인지, 아니면 눈을 감고 야만적인 무법천지로 가도록 내버려둘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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