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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 대만 총통 선거를 보면 한국 대선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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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 대만 총통 선거를 보면 한국 대선이 보인다

[분석] 닮은꼴 '수두룩' 대만 선거를 보는 한국인들의 '기시감'

대만의 선택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14일 총통 선거에서 펼쳐질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현 총통과 민주진보당(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후보의 대결이 초박빙 양상을 띨 것으로 전망되면서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두 후보도 이를 의식한 듯 마지막 날까지 고삐를 늦추지 않고 서로 상대방의 안방으로 과감히 공략하는 유세 전술을 펼쳤다. 마 후보는 13일 민진당의 텃밭인 대만 남부의 가오슝(高雄)에서 대규모 유세전을 벌였다.

차이 후보도 이날 전통적으로 국민당 성향이 강한 북부에서 수도 타이베이(臺北) 거리 유세에 전념했다. 차이 후보는 친중(親中) 성향이 강한 마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중국 거주 대만인들이 벌이는 '귀국 투표'에 맞서 타이베이에 거주하는 남부 출신 대만인들에게 '귀향 투표'를 호소하기도 했다.

국민당과 민진당 모두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국민당은 이날 41만~69만 표 정도로 마 후보가 이길 것이라고 주장했고, 민진당은 15~20% 차이로 차이 후보가 승리할 것이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12일 유세 중인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의 모습. ⓒ로이터=뉴시스

'747' 공약의 이명박과 '633'의 마잉주

이같은 열띤 선거전보다 더욱 한국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한국 정치와 대만 정치의 묘한 '닮은꼴'이다. 현재 집권중인 마 총통의 국민당 정권은 지난 2008년 대선에서 정권 재탈환에 성공하며 세워졌다.

사회·경제 정책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서민층 기반의 민진당 정권을 끌어내리고 '경제 총통'을 내세운 국민당의 마잉주가 승리한 2008년 대만 대선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후 '경제 대통령' 슬로건을 앞세운 이명박 후보의 한나라당이 정권을 탈환한 2007년 한국 대선과 유사했다는 평이다.

마잉주 정권이나 이명박 정권은 모두 '부(富)의 낙수효과', 이른바 '트리클 다운'을 통한 경제 살리기에 주력했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정책 성향을 가지고 있다. 반면 대만이나 한국의 야당은 상층부가 잘 살면 하층부도 잘 살게 된다는 '트리클 다운'은 없을 것이며 양극화와 불평등만 심화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민진당의 차이 후보는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사회적 격차 해소'와 '공평정의'를 내세우며 빈부격차 문제를 집중 제기한 바 있다.

또 마잉주는 2008년 총통 선거에서 그 전해 이명박 후보가 내세운 '747' 공약을 벤치마킹한 '633' 공약을 내놨었다. '경제성장률 6%, 1인당 소득 3만 달러, 실업률 3% 이하'라는 뜻이다. 두 공약 모두 임기 중 달성이 불가능해 보인다는 점이나, 올해 치러질 총·대선을 앞두고 야당이 실패에 대한 공세를 폈다는 점도 한국과 대만의 공통점이다.

마잉주와 이명박 두 지도자는 선거 슬로건 뿐 아니라 대선 후보로 선출되기 직전 수도 서울과 타이베이의 시장을 역임했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마잉주는 타이베이 시장 시절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과 만나 청계천 사업 등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다만 마 총통이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나 대만 최고 명문고와 하버드 법대에서 수학한 법조인 출신인데 반해 이명박 대통령은 어려운 환경에서 '안 해본 것 없이' 성장해 기업가로 활동했다는 성장 배경은 대조적이다. 부패·비리가 없다는 뜻에서 '미스터 클린'이라는 별명을 내세우고 있는 마 총통에 비해 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부터 온갖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도 차이점이다.

또 마잉주 정권은 중국과의 화해협력 정책을 유지하며 양안관계를 원만히 관리하고 있는데 반해, 이명박 정부는 대북 강경 정책을 폈다는 점도 다르다. 평화가 가져다 줄 경제적 이득을 강조하면서 '사실상의 통일상태'를 지향하는 국민당의 대외정책은 오히려 한국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포용정책에 더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12일 선거 유세 중 수도 타이페이의 한 시장을 찾아 소탈한 모습을 강조하는 마잉주 후보. 2007년 한국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국밥 TV광고'를 연상시킨다. ⓒ로이터=뉴시스

현대정치사도 유사

한국과 대만 정치의 공통점은 마잉주와 이명박 두 인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권 교체를 전후해 여당인 국민당과 한나라당이 2008년 총선에서도 압승을 거뒀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러나 집권당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면서 그 다음의 지방선거에서는 야당인 민진당(2009년)과 민주당(2010년 6.2 지방선거)이 대약진해 여당에 타격을 가하는 '반전'이 바로 이어졌다는 점 역시 그렇다.

구 집권세력이 정권을 내준 계기도 유사하다. 중국 본토 출신을 뜻하는 외성인(外省人)이 지지기반인 국민당은 1949년 대만 정부 수립 이후 51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정권을 놓쳐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2000년 대선에서 처음으로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에게 총통 자리를 내주며 야당으로 물러났었다.

이 선거에서 정권 교체를 이룬 가장 큰 요인이 집권 세력 내의 분열이었다는 점 역시 '최초의 정권 교체'가 일어난 1997년 한국 대선을 연상시킨다. 이번 대선에도 출사표를 던진 국민당 원로 출신 쑹추위(宋楚瑜) 후보는 2000년 당시 보수 야당 친민당을 창당, 무려 466만표(36.8%)를 득표하며 오랜 여당이었던 국민당을 3위로 주저앉혔다. 민진당 천수이볜의 득표율은 쑹추위보다 겨우 31만표 앞선 39.3%였다. 3위 국민당은 292만 표(23.1%)를 얻었다.

한국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이인제 경기도지사가 여당 신한국당 후보 경선에서 패한 후 당내 민주계 의원들이 다수 참여한 국민신당을 창당했다. 승리자인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얻은 표(1034만 표)는 신한국당의 후신인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994만 표)와 이인제 후보(493만)의 표를 합친 것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쑹 후보는 올해 대선에서도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대외관계에서는 친중, 사회·경제정책에서는 보수 성향인 쑹 후보는 국민당의 마 후보와 지지층이 겹치는 만큼 그가 10% 전후를 득표할 경우 국민당에는 치명타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뚜렷한 지역구도

남부는 민진당, 북부는 국민당으로 뚜렷이 나눠진 지역 구도가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대만과 한국 정치의 유사점으로 꼽힌다. 1940년대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공산당과의 국공 내전에서 패배한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은 대만에 중화민국 망명 정부를 세우는데, 이 과정에서 장제스를 따라온 외성인들은 중국과 가까운 대만 북부에 주로 살게 됐다.

반면 남부에는 대만 원주민들, 이른바 본성인(本省人)이 다수를 형성하게 됐다. 1986년 계엄령 해제 이후 설립된 야당 민진당은 바로 이들 본성인들의 정당을 표방하며 국민당과 정치적으로 맞서 왔다.

민진당은 민주화 운동에 큰 기여를 했으며 야당 시절 국민당에 비판적인 자세를 이어 왔으나 막상 집권 후에는 무능과 부패 문제를 드러냈으며 보수 야당에 의해 국정 수반에 대한 탄핵(파면) 공세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 또한 한국의 민주당 정권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그밖에 1940년대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여성 국가수반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던 '선거의 여왕'이 마침내 올해 대선에서 본인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점 역시 한국과 대만의 공통점이다. 차이 후보는 2008년 대선 패배 직후 당이 어려울 때 주석(당 대표)에 취임해 지난 3년간 9차례의 크고 작은 선거 중 7번의 승리를 이끌어 내 한국의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과 같은 별명을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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