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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홍준표 개성공단 방문이 역사에 기록되려면…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한반도포커스']

지난 9월 30일 단행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개성공단 방문은 방문이 실행되기 전부터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북한이 '반역패당'이라며 비난해 온 한나라당의 대표가 개성공단을 방문하는 것이 처음이고, 지난해 발표된 5·24 대북 제재조치 이후 남한 정치권 인사가 개성공단을 방문하는 것이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홍준표 대표는 지난 7월 대표 취임 후 줄곧 대북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정치·군사 분야에서는 현재의 기조를 유지하되, 경제 및 인도적 협력 분야에서는 유연하게 접근하자는 '분리 대응'을 주문해 왔다. 홍 대표 개인의 인식도 작용했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여당 대표의 현실적 고민도 담겨 있었다. 현 정부 내내 계속되어 온 남북관계 경색이 여권에 불리하다는 정치적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북한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해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직접 나서서 대북정책의 전환을 모색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따라서 여당 대표가 개성공단 방문을 통해 애드벌룬을 띄우며 정부에 정책전환을 촉구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많았다. 이런 행보가 류우익 통일부 장관과의 교감 하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관측도 있었다. 나아가 홍 대표의 전격적인 개성공단 방문이 통일부 장관 교체와 맞물려 5·24 대북 제재조치의 완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존재했다.

이러한 관측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홍준표 대표가 개성공단을 방문하고 돌아온 지 열흘이 지난 10월 11일, 통일부는 개성공단에 대해 5·24 대북 제재조치를 약간 완화하는 듯한 조치를 발표했다. 이는 크게 보아 다음의 세 가지이다.

첫째, 5·24 대북 제재조치로 인해 건축 공사가 중단된 기업들의 공사 재개를 허용하기로 했다. 이 경우, 공장건축 승인 등 관련 절차를 거쳐 공장건축을 진행하다가 5·24 조치로 공사가 중단된 7개 사에 대해 공사 재개를 우선 허용키로 했다. 아울러 기존 공장의 증축공사가 중단된 5개 사에 대한 공사 재개 허용 문제도 추후 검토키로 했다.

둘째, 개성공단 내 소방서와 응급의료시설 신축을 조속히 추진키로 했다. 개성공단 소방서는 곧 시공업체를 선정하고 11월 중에는 착공하여, 내년 말까지는 완공키로 했다. 개성공단 소방서는 지난 2009년 12월,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 의결을 거쳐 33억원의 예산을 확보해 부지 1천 평을 매입하고 설계까지 완료한 상태이다. 응급의료시설도 기본 의료장비를 갖춘 10개 병상 규모의 시설을 내년 초에 착공, 내년 말에 완공키로 했다.

셋째, 개성시와 개성공단을 잇는 출퇴근 도로 보수 공사를 시작하고, 원거리 북측 근로자 수송을 위해 출퇴근 버스를 확대,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우선 북측 근로자들의 수송을 위해 개성시-개성공단 간 출퇴근 도로(4.5km)를 북측과 실무협의가 마무리되는 대로 금년 내 완공 목표로 착공할 계획이다. 출퇴근도로는 2005년 11월 우리 측이 자재· 장비를 지원하고 북측이 완공한 도로인데 현재는 훼손상태가 매우 심각해 보수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와 함께 근로자 부족 문제 해소를 위해 출퇴근버스도 확대키로 했다. 그간 주로 반경 20km 이내 지역인 개성시와 그 인근지역에만 운영해왔으나, 버스 운영 지역을 반경 40km까지 확대키로 했다. 이 경우 황해도 금천· 봉천· 평산 지역 등 보다 먼 거리에 있는 북측 주민들도 개성공단까지 출퇴근할 수 있어 결국 근로자들의 추가 공급이 가능하게 된다. 현재 개성공단에는 250여 대의 출퇴근 버스가 운영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여유분 45대가 새 노선에 투입될 예정이다.

▲ 개성공단 둘러보는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뉴시스

통일부가 이날 내놓은 조치에 대해 이른바 보수진영에서는 달갑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조치들이 개성공단에 대한 신규투자를 금지한 5·24 대북 제재조치를 위반하는 것들이라는 주장이다. 나아가 그동안 힘겹게 지켜온 대북정책의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도 가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이 두 달 전 금강산 지역 소방서와 소방차를 포함해 남측 재산 4,800억 원을 몰수한 상황에서 개성공단 소방서 건립을 허용한 것은 문제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이러한 비판이 있을 수 있음을 사전에 의식이라도 한 듯 통일부 당국자는 "이번 조치는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개성공단 방문 후 정부에 요청한 사안을 신중하게 검토한 결과, 입주기업 애로해소 차원에서 시행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번 조치는 류우익 장관이 말한 '대북정책 원칙을 지키되 유연성을 발휘한다'는 방침의 연장선상"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개성공단의 신규투자를 제한하는 5·24 조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정부와 여당은 대북정책 전환 모색의 출발점으로서 왜 개성공단을 선택했을까. 우선 개성공단은 5·24 대북 제재조치에서 사실상 제외되어 있다. 물론 5·24 조치에 개성공단 관련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기업의 신규진출과 투자확대가 불허되었고, 개성공단 밖 임가공(외주)사업이 금지되었으며, 공단 체류 남측 인원이 축소되었다. 하지만 기존에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던 기업들의 활동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일반물자교역과 위탁가공교역이 전면 중단된 것에 비하면 개성공단은 5·24 대북 제재조치의 대상에서 빠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개성공단의 사업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각종 정책적 조치들은 5· 24 조치의 위반이냐 아니냐 하는 논란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것이다. 정부로서는 운신의 폭이 어느 정도 넓은 셈이다. 물론 신규투자 금지 조치의 위반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해당업체가 12개 사에 불과하고, 또 공사가 진행 중인 상태에서 중단된 만큼 유연성을 부여할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다고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일반물자교역과 위탁가공교역이 전면 중단되고 금강산관광 및 개성관광도 중단된 상태에서 개성공단은 남북경제협력의 유일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남과 북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 된 것이다. 게다가 개성공단은 이제 10여 년의 역사 속에 남한의 입주기업 123개사, 남한 근로자 800명, 북한 근로자 4만 8천 명이 함께 생활하는 거대한 협력의 공간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남북화해협력의 상징이자 대표주자로 성장한 것이다.

더욱이 북한으로서도 주요한 외화벌이 수단인 개성공단에 여전히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북한은 개성공단의 폐쇄 카드를 내보이며 남한을 압박해 왔던 상황에서도 근로자들을 추가 공급해 왔던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특히 5·24 조치 직후인 2010년 5월 말에는 북측 근로자 수가 43,448명이었던 것이 2011년 5월말에는 47,172 명으로 1년 동안에 8.6% 증가했다. 개성공단에 대한 북한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개성공단에 대해 한국정부가 사업여건 개선을 위한 몇 가지 초보적인, 하지만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 그것도 정부 돈을 투입해 가며 사업의 유지, 확대를 추구하는 것은 작지만 분명한 '변화'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이 개성공단에 대해 여러 압박조치를 취했던 것은 총론적으로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반발했지만 각론적으로는 개성공단 사업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의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기 때문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도 이명박 정부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할 리 없다. 그리고 이는 홍준표 대표가 말했듯이 "남북경협을 통해 남북간 신뢰를 구축해 보자는 뜻"으로 읽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물론 아직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개성공단 사업과 관련해서 어떠한 후속조치가 나올지 아직은 불확실하다. 통일부 당국자는 개성공단 사업의 최대현안인 근로자 공급 부족 문제를 풀기 위한 핵심고리인 근로자 기숙사 신축 등 추가적 조치는 현재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부정책의 유연성이 개성공단을 넘어 여타 분야로 확산될지 아직은 불명확하다. 남북관계의 급진전을 기대하는 사람도 많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신중한 관측도 만만치 많다. 천안함 및 연평도 사건, 그리고 금강산관광 재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다만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작은 움직임이 결국 큰 흐름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 것"이라고 밝힌 것은 주목할 만하다. 홍준표 대표의 개성공단 방문이 "큰 흐름을 만들어 낸, 최초의 작은 움직임"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기대한다.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수훈)가 발행하는 <한반도포커스> 2011년 11·12월호(제16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번 호의 전체 주제는 '기로에 선 남북관계'입니다.(☞전체보기)


* 원제 : 홍준표 대표 개성공단 방문과 남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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