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2차 남북비핵화회담 평가
제2차 남북비핵화회담이 지난 9월 21일 중국 베이징 장안구락부에서 개최되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제1차 남북비핵화회담 이후 2개월여 만의 회담이다. 주요의제는 UEP(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미사용 연료봉, 그랜드바겐, 천안함·연평도, 남북관계 문제 등이었다. UEP 문제에 대해, 남측은 유엔안보리 대북결의안 1874호 및 9.19 공동성명 위반이므로 6자회담 재개 전에 반드시 중단되어야 함을 강조한 듯하다. 북측은 저농축에 의해 경수로 발전소의 연료를 생산하는 평화적 핵활동이며, 고농축에 의한 핵융합 활동은 아니라고 대응한 듯하다. 미사용 연료봉에 대해, 북측은 남측의 구매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보이고, 남측은 현시점에서 논의의 대상이 아님을 강조한 듯하다. 그랜드바겐에 대해, 남측은 비핵화와 경제지원 뿐만 아니라 관계정상화 등 9.19 공동성명의 핵심요소를 하나의 테이블에 올려놓고 일괄 타결안이라는 점을 강조했고, 북측은 경수로 문제와 함께 그랜드바겐도 6자회담 내에서 논의할 수 있음을 밝힌 듯하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해, 남측은 북측의 책임적 조치가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이 됨을 강조하였고, 북측은 천안함 사건과는 무관하며 조건 없는 6자회담이 재개되고 남북대결 국면이 끝장나면 두 사건 해결의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고 대응한 듯하다. 남북관계에 대해, 남측은 상호비방 중단과 비핵화회담이 남북관계 개선에 긍정적으로 기여함을 강조하였고, 북측은 5.24 조치를 해제하고 6.15와 10.4 선언의 성실한 이행만이 남북관계 발전을 담보할 수 있음을 역설한 듯하다. 제2차 남북비핵화회담에서 세 가지의 의미 있는 발견을 할 수 있다.
첫째, 북측이 1만 4800개의 미사용 연료봉을 남측이 구매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타진이다. 영변 원자로를 가동하지 않고 연료봉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폭파한 냉각탑 부지에 경수로 시설과 지원 지설을 건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변 핵단지의 플루토늄 핵시설과 장비의 불능화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중단만이 한국과 미국의 입장을 충족시킬 수 있는 대목이다. 둘째, 비핵화에 대한 남북간의 대화 모멘텀이다. 북한은 그 동안 핵문제를 미국하고만 이야기하려고 하였으나 북미대화 이전에 남북비핵화 대화가 열렸다는 것은 의미있는 변화이다. 셋째, 북핵문제와 남북문제 선순환관계의 복원 가능성이다. 남북비핵화회담이 6자회담의 틀 내에서 이루어졌지만 남북관계 문제도 논의되었다는 점에서 앞으로 6자회담이 재개된다면 남북관계의 전면복원에도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임을 예고한다. 늦은 감이 있지만 남북간, 북미간 비핵화 대화가 재개된 것 자체와 남북간 논의를 북미간 논의와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여건을 만든 것은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향후 북미간 대화의 진전여부에 따라 남북비핵화 대화에 대한 유용성 문제가 제기될 것이며 따라서 남북대화, 북미대화 간 전략적인 역할분담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2. 제2차 북미고위급회담 평가
제2차 북미고위급회담이 지난 10월 24일부터 25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되었다.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제1차 북미고위급회담 이후 3개월여 만의 회담이다. 미국은 신·구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신임 6자회담 수석대표가 참여하였다. 북한은 6자회담 이용호 대표단장이 참여하지 않았다. 제2차 북미고위급회담의 성격에 대해 미국은 6자회담 틀 내의 양자회담으로, 북한은 6자회담 틀 밖의 양자회담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핵심적인 의제는 비핵화 사전조치(핵·미사일 모라토리엄, IAEA 사찰단 복귀, 우라늄 농축 활동 중단)와 대북식량지원 문제였고, 부수적인 의제는 남북관계 개선 문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대미관계 개선의 신뢰구축 차원에서 정전협정준수, 9.19 공동성명 이행,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선언할 수 있으나 우라늄 농축 활동은 중단할 수 없으며, 단지 미국이 경수로 제공을 보장한다면 우라늄 농축활동 중단을 검토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 것으로 추측된다.
미국은 우라늄 농축활동 중단을 포함한 사전조치가 이행되지 않으면 6자회담 재개와 북미관계 개선이 어려우며, 경수로 문제는 핵무기 폐기와 함께 북한이 NPT와 IAEA에 복귀 시 논의할 수 있음을 밝힌 것으로 추측된다. 대북식량지원 문제에 대해, 미국은 모니터링 조건에 합의한다면 영양식을 중심으로 지원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면서, 미국은 원칙적으로 정치적 사안과 인도적 사안을 분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연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전조치를 포함한 북한의 비핵화조지가 이루어지면 대북식량지원에 속도를 낼 수 있음을 역설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인도적 문제가 정치적 문제와 연계되어서는 안되며, 단지 미국이 먼저 식량지원을 결정한다면 신뢰구축조치를 포함한 비핵화에 속도를 낼 수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에 대해, 북한은 대화와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남한은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지적하였고, 미국은 북미관계 개선에 앞서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하고, 북한의 진정성이 더욱 필요함을 역설한 것으로 보인다. 제2차 북미고위급회담은 북한이 사전조치의 일부분을 수용하고 미국이 대북식량지원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점에서 다소 진전된 회담으로 평가된다. 또한 6자회담 재개 및 비핵화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빠른 시일 내의 추가 회담을 약속한 것은 유익한 회담임을 보여준다.
6자회담 재개 전망은 밝다. 연내 제3차 남북비핵화회담과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을 거쳐 내년 초 6자회담이 재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제3차 북미고위급회담에서 북한은 사전조치를 수용하고, 미국은 대북식량지원을 결정하는 소위 북미간 '빅딜'이 예상된다. 단지 빅딜의 이행순서는 북한이 먼저 모라토리엄 선언과 사찰단을 받아들이고, 다음으로 동시행동의 원칙에 따라 영변의 우라늄 농축활동 중단과 미국의 대북식량지원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6자회담 재개 전망이 밝은 근거는 많다.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북미간 유해발굴사업 협상에서 발굴 비용과 기간, 발굴 장소에 대해서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발굴사업은 추운 겨울에 할 수 없기 때문에 내년 3월부터 10월까지 예상된다. 11월 중순쯤 대북식량지원의 모니터링을 최종 담판하기 위해 북미간 접촉이 예상된다. 대북식량지원이 결정되면 내년 1월부터 매달 일정규모의 지원이 1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간 적십자회담을 비롯한 다방면의 실무회담도 개최될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활발한 셔틀외교도 예상된다.
역사적 경험에 비춰 보면 북한의 전략은 강경전략과 유화전략을 반복해 왔다. 현 단계 북한의 전략은 유화전략기로 볼 수 있다. 유화전략기를 잘 활용한다면 남북관계 복원과 비핵화 진전의 단초가 마련될 수 있다. 유화전략기를 놓친다면 북한은 내년 초 공개적으로 UEP 활동을 강화하면서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을 순차적으로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경전략으로의 전환은 국제적 고립을 이끌면서 북한 주민들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최대의 피해자가 북한 주민임은 자명하다. 북한 주민들의 어려움은 지도자인 김정일 위원장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 동족인 남측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예상된다. 핵 없는 세상이 아니라 핵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의 책임도 피할 수 없다. 비핵·개방 3000 정책은 실패했고, 핵안보 정상회의는 그들만의 잔치로 변질될 수 있고,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이 크지 않을 수 없다.
내년은 한국, 미국 등 정치적 변동성이 큰 해이다. 정치적 변동에 따른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남북대화를 기본축으로 한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의 균형발전이 요구된다. 북한도 실질적인 핵포기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지원만을 염두에 두고 협상을 벌인다면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거나 다시 핵실험과 같은 도발적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중국도 단순히 6자회담 재개를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북한이 돌출행동을 하지 않고 핵문제 관련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북한을 설득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미국도 대화의 모멘텀만 가지고 북한을 관리하겠다는 소극적인 전략을 빨리 버려야 한다. 신뢰형성을 위해 적극적인 전략만이 북한의 비핵화와 개혁·개방을 촉진시킬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비핵ㆍ개방 3000을 내걸고 북핵 폐기를 공약한 만큼, 임기 중 대결을 통한 북핵 관리보다는 대화와 협력을 통한 북핵 폐기의 단초를 마련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도 중요하지만, 평화체제구축을 통한 비핵화라는 역발상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동북아 균형자로서 주한미군의 주둔을 용인한다면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수훈)가 발행하는 <한반도포커스> 2011년 11·12월호(제16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번 호의 전체 주제는 '기로에 선 남북관계'입니다.(☞전체보기)
* 원제 : 제2차 남북 비핵화 회담 이후 북핵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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