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남북관계? 일본이 북한에 의해 납치된 일본인 문제만을 소리치다가 결국 6자회담에서 별다른 역할도 못하고 소외됐던 시절을 기억해보자. 소리는 요란하지만 아무런 실익도 얻지 못하고,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는 그것이 바로 소외된 일본의 모습이지 않았는가? 어느덧 한국도 그 길을 가고 있는 듯하다. 북·중·러 경제협력을 둘러싼 우리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자.
최근 북한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 및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커져가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13일 하산-나진의 철도 시범운행을 했고, 중국은 훈춘-라진 도로 개보수를 마쳐가고 있다. 북한 라선 지대의 열악한 인프라가 개발의 큰 장애물이었던 지난날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최근 활발한 인프라 건설 협력은 이 지역의 개발이 비관적인 전망을 극복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만족할만한 수준의 인프라가 갖춰지지는 않았고, 그러는 데에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프라부터 차근차근 진행되는 최근의 북·중·러 협력은 장기적인 계획과 청사진에 의해 추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내 일부 언론이 전하고 있듯이 북한은 중국과 함께 전반적인 개발 청사진을 그려 라선 지대, 황금평, 위화도, 신의주 지구에 대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대풍그룹은 대풍그룹대로 대규모 투자와 건설을 계획해 추진하고 있고, 일부는 이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계획들이 얼마나 현실성을 가지고 있는지,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불안정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얼마나 계획대로 추진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장기적인 계획과 청사진 하에서 진행되는 일련의 사업들이 현재까지는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류우익 통일부 장관을 임명했을 때 새로운 남북관계에 대한 예상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소리만 요란했을 뿐 새로워진 것은 사실상 없다. ⓒ연합뉴스 |
현재 한국 사회에는 북·중 경제협력을 둘러싸고 두 가지 시각이 대립하고 있다. 즉, 북·중 경협을 통해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서게 되고, 그럼으로써 북한 체제가 변화한다면 결국 한국에도 이득이 된다는 시각이 하나다. 다른 하나는 북한 경제의 중국 의존도의 심화와 북한 자원에 대한 중국의 선점으로 인해 향후 남북 경협에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며, 나아가서는 우리의 통일문제에도 큰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현 시점에서는 어느 시각이 보다 더 현실적이고, 미래의 한국에 바람직할지는 미지수다. 북·중 경협으로 인해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서게 된다면 이는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북한의 중국 경제에의 의존도가 심화된다면 남북 경협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전자의 입장에 선다면 북·중 경제협력을 환영하고 이를 적극 지지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북한의 개혁·개방의 진행에 따른 남북관계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북한이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후자의 입장에 선다면, 북·중 경협에 버금가는 남북 경협을 지금 당장 추진해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남북관계 개선과 대북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어느 입장이든 남북관계의 적절한 관리와 대책, 중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요구된다. 그런데도 한국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중국과의 관계는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고, 북·중 경협에 대해서는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지 않은가? 최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아슬아슬한 발언마저 했었다.
전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중국과의 관계에서 실패하고 있고 동시에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해 별 다른 대책도 없어 보인다. 특히, 최근 금강산 관광에 대해 한국 정부가 중국·일본에 투자 자제를 요청한 것은 결과적으로 북한의 개혁·개방을 가로막는 모순된 입장이 아닐까?
후자의 입장에 선다면, 현재의 남북관계가 증명하듯이 그저 우려와 걱정 이외에는 아무런 대책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더욱 답답한 것은 우려·걱정 외에 별달리 할 일이 없다는 점이다.
남북관계에서 할 일이 없다는 것은 겉보기와 달리 한반도 문제에 대해 한국이 소외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비록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대한 이러저러한 요구 사항을 내걸고, 자신들의 정책을 요란하게 말하고 있다 하더라도 남북이 모여 머리를 맞대지 못하는 한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다. 남북이 머리를 맞대지 못한 가운데 북한과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협력이 강화되고 있고, 최근에는 북한과 미국의 대화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 않은가?
과거 김영삼 정권 시절 북한에 대해 요란하게 떠들기는 했지만,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철저히 소외된 채로 임기를 마쳤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지금 역시 그와 유사하다 하겠다. 최근 홍준표 대표의 개성공단 방문이 이러한 소외에서 벗어나는 길이 될 수 있을까? 아직은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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