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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패권 시대의 국제관계, 6자회담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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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패권 시대의 국제관계, 6자회담을 다시 생각한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한반도포커스']

1.

미국 달러패권의 두 번째 종언이다.

첫 번째는, 1971년 8월 15일. 미국의 닉슨(R. Nixon) 대통령은 직접 연설을 통해 미국달러의 태환성을 "일시적으로"(temporarily) 중단시켰다. 미국 달러를 금과 고정비율(금 1온스당 35달러)로 교환해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2차 대전이 종료되기 직전인 1944년 만들어진 고정환율제를 근간으로 하는 국제통화질서인 브레트우즈체제, 즉 금-달러본위제의 폐기였다. 닉슨은 미국달러가 투기세력의 볼모가 된다면 국제적 통화 안정성이 저해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지만, 핵심은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의 평가절하였다. 존슨(L. Johnson)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과 미국-베트남 전쟁으로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는 경제위기 속에서 미국은 보호주의적 정책을 선택한 것이다.

패권국가가 이른바 국제적 공공재를 제공해야 국제정치경제가 안정된다는 패권안정론과 달리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했고, 결국 1973년 3월에 이르러 고정환율제는 완전히 붕괴했다. 그러나 달러 패권의 공식적 종언에도 불구하고, 금본위제의 폐기 이후의 1930년대 대공황(great depression)과 같은 사건은 나타나지 않았다. 패권 국가 몰락의 징후 가운데 하나인, 생산과 유리된 금융자본의 수익창출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는 위기를 회피할 수 있었고, 미국은 이른바 선진 금융제도와 달러주조의 차익(seigniorage)을 향유하면서 달러패권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 모순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이 소비와 군사적 패권을 지속하기 위해 달러를 공급하면 할수록, 달러의 신인도와 가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1985년 플라자 합의는, 일본의 엔과 독일의 마르크를 평가절상하는 방식으로, 다시금 미국의 달러 패권을 지속하게 한 미봉책이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금융자본 중심의 축적체제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었다면, 2011년 8월 5일 미국 달러 패권의 종언을 알리는 두 번째 사건이 발생했다. 사기업인 신용평가회사 스탠다드앤푸어스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한 것이다. 이 사기업이 1941년 국가신용등급을 발표하기 시작한 이후 처음 벌어진 사건이다. 미국 달러의 과잉생산이 빚을 수밖에 없는 재정위기의 산물인 것이다. 첫 번째 종언과 다른 점은 정부가 아니라 자본이 이 종언을 공식화했다는 사실이다. 첫 번째 종언이 비극이었다면, 두 번째 종언이 희극이자 참극인 이유다. 미국의 오바마(B. Obama) 대통령은, 2011년 8월 8일 연설에서 "정치체제의 행동능력"이 의심받았기 때문에 신용등급의 하락이 발생했음을 인정하면서, 금융자본가인 버핏(W. Buffett)이 실제로는 없는 AAAA라는 신용등급이 있다면 그 국가는 미국일 것이라고 했다고 강변한다. 그리고 미국의 미래에 대한 낙관의 근거를 8월 5일 아프가니스탄에서 목숨을 잃은 미국 군인들에서 찾는다.

재정적자와 달러가치의 하락이라는 닮은꼴 위기에 대한 대응에서, 닉슨의 1971년이 보호주의적이었다면, 2011년 오바마는 애국주의적이기까지 하다. 한 경제사학자의 말처럼, 1930년대 몰락하는 패권 국가였던 영국은 경제위기를 해결할 능력이 없었고, 부상하는 패권 국가였던 미국은 의지가 없었다. 1930년대 대공황의 정치적 결과는, 파시즘과 전쟁이었다. 미국은 딜레마를 겪고 있다. 재정건전성 확보와 달러의 평가절하는 미국인의 소비를 줄이는 선택이다. 군비지출을 줄이면 미국의 군사적 패권도 몰락할 수 있다. 국내정치적으로 진보와 보수 모두 저항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다. 다른 하나는, 플라자 합의의 경험을 살려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게 위안화를 평가절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중국도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중국이 보호주의적 선택을 하거나 또는 미국 때리기에 나선다면, 중국과 미국 사이의 태평양수지균형을 붕괴시킬 수 있다. 즉 중국과 미국이 함께 파국을 맞이할 수도 있다. 다른 한편 위안화의 평가절상은, 중국경제의 성장을 위협할 수 있다. 경제위기와 무관하게 중국의 분명한 선택 하나는, 항공모함의 발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미국의 군사적 패권에 도전하려 한다는 것이다.

탈패권 시대 국제관계의 향방은 미지수다. 유로존까지 위기를 겪고 있고, 재정긴축이라는 대안은 영국의 폭동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국제통화협력의 단초도 보이지 않는다. 세계경제의 연착륙을 유도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가 지적되곤 한다. 1930년대 공황의 경험이 주는 교훈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 리더십이 또 다른 선의(善意)의 패권 국가를 대망하는 것이라면 위험하다. 선의든 악의든 패권 국가가 제공한다고 하는 공공재는 패권 국가의 이익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탈패권 시대는 전인미답의 길이다. 그 형태는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파국이 아니라 평화와 번영을 원한다면, 금융 중심의 자본주의 경제의 근본적 수술과 상시 전쟁을 유발하는 세력균형 또는 힘의 우위 정책의 폐기를 유도해 낼 수 있는 다자적 또는 초국가적 협력질서가 창출되어야 한다. 가야 하는 그리고 갈 수밖에 없는 유일한 길이다.


▲ 6자회담 전경

2.

동북아는 다자적 안보협력과 경제협력이 제도화되지 않은 유일한 지역이다. 어느 지역보다 패권적 질서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동북아의 미래는 탈패권 시대 국제관계의 향방과 동의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의 정치군사 및 경제관계가 구성되는 대표적 지역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문제는 미중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이다. 예를 들어, 남한과 북한의 정치적 선택이 미중관계를 주조하는 변수가 될 수도 있다. 탈패권 시대의 국제관계에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북핵문제를 둘러싼 6자회담의 성패 여부는, 탈패권 시대의 국제관계를 구조화하는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문제는, 탈패권 시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국제구조가 부과하는 강제가 약화되면서, 국내정치의 자율성이 증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국가가 국내정치적 고려를 우선시하는 사태가 벌어질 때, 국제협력은 어려워질 수 있다. 물론, 국내적으로 위기를 근본 해결하고자 하는 대안적 정치경제모델을 구상하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미국이나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국제적 갈등이 심화된다면, 국내의 정치경제구조도 왜곡될 수밖에 없다. 6자회담을 매개로 북핵문제가 종착역을 향해 가는 것처럼 보였던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와 같은 6자의 국내정치는 국제적 합의의 이행을 가로막는 변수였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에는 동북아에서 세력균형의 정치가 부활하기도 했다. 북중동맹과 한미동맹이 동시에 강화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탈패권 시대에는 냉전적 진영대립이 유지되기가 힘들 수도 있다. 진영 참여국들의 이해관계가 분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북한은 북중동맹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러시아에 접근하고 있다. 국내총생산 대비 수출입 비중이 110%나 되기 때문에 세계경제의 변동에 민감하거나 취약할 수밖에 없는 한국이,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배제한 채 세력균형적 질서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과 중국은 안보와 경제의 측면에서 갈등하지만, 갈등이 심화되면 함께 파국을 맞이할 수도 있음을 안다. 6자회담 참여국 가운데 어느 국가도 6자회담의 재개를 반대하지 않는 상황이 전개되는 이유다. 북한조차 조건 없이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수요요인이 증가하고 6자회담 참여국 사이에 양자회담이 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6자회담은 열리지 않고 있다. 6자회담은 최초 제2차 북핵 위기의 산물이었지만, 이제는 동북아 질서를 규율하는 다자협의체로 전환되고 있다. 탈패권 시대의 도래가 6자회담의 위상을 바꾸어 놓고 있다. 6자회담이 새로운 국제협력의 모형을 제공한다면, 탈패권 시대 국제관계가, 국가들의 경쟁이 위기를 야기하고 위기가 갈등을 생산하는 악순환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탈패권을 세계정치경제의 불안정과 연관시키는 비민주적 문제설정을 넘어서게 할 수도 있다. 2012년 6자회담 참여국 모두 국내정치적으로 정권교체와 같은 의미 있는 변화를 가지게 된다. 탈패권 시대에 나타나고 있는 국내정치적 자율성이 국제협력을 저해하는 요소로 기능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6자회담이 참여국 국내정치에 순기능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탈패권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중견국가 한국의 선택이 중요한 이유이다.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발행하는 <한반도포커스> 2011년 9·10월호(제15호)에 실린 세 번째 글입니다. 이번 호의 전체 주제는 '발리 비핵화 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입니다.(☞전체보기)

* 원제 : 탈패권 시대의 국제관계, 6자회담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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