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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왜 김만복 전 국정원장을 정조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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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왜 김만복 전 국정원장을 정조준했나?

[기자의 눈] 서해 평화 정착에 대한 보수언론의 알레르기 반응

노무현 정부 말기 국정원장을 지낸 김만복 씨가 일본 월간지 <세카이>(世界) 2월호에 기고한 글을 가지고 보수언론들이 공세를 펴고 있다.

김 전 국정원장은 기고문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오늘날의 한반도 상황은 '지난 10년 진보정권의 대북 포용 내지는 화해·협력 정책의 부메랑'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북한 붕괴론을 확신하고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결과'라는 평소의 소신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동아> "노무현 정부의 안보 불감증에 분노 치밀어"

김 전 원장의 기고 내용을 13일 처음 보도한 <조선일보>는 14일 사설을 통해 "이러 뇌(腦) 구조를 가진 사람이 2006년 11월부터 2008년 2월까지 대한민국 최고의 정보수집과 방첩기관 수장을 지냈다"며 "그때 이 나라 안보의 속사정이 어땠을까"라고 비난했다.

<조선> 사설은 이어 "김 씨가 원장으로 있는 동안 국정원이 간첩 한 명 제대로 잡지 못했던 수수께끼가 이제 풀리는 것 같다"며 "(그가 국정원장일 때) 그 기관이 어떻게 돌아갔는지를 엄밀하게 되짚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신문의 사회부 차장은 별도의 칼럼에서 <세카이>를 '친북반한 잡지'로 규정하고 "아무리 노무현 정권 때라고 해도 대북 최전선을 지키라는 자리에 있던 사람이 어떻게 북한의 선전매체 같은 잡지에 제 이름을 올리겠다는 발상을 할 수 있는지 놀랍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도 이날 사설에서 김 전 원장이 천안함 침몰 사고에 대한 민군(民軍)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 대부분을 부정했다면서 "도대체 이런 사람을 국정원장으로 임명한 노무현 정부의 안보불감증과 무원칙 인사에 새삼 분노가 치민다"고 했다.

<세계일보>는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북의 기습도발을 옹호"했다고 비난했고, <서울신문>은 "최근 쓰나미처럼 쏟아지는 북한의 대화 공세에 날개를 달아주는 듯한 발언 수준이라면 곤란하지 않은가"라고 지적했다.

▲ 김만복 전 국정원장 ⓒ뉴시스

서해 문제에 대한 평범한 주장

김만복 전 원장이 논쟁적인 인물인 것은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 초기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낸 고(故) 서동만 교수는 2006년 11월 노 대통령이 김 씨를 국정원장으로 내정하자 "민주화운동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김 전 원장이 1970년대 중반 중앙정보부 직원으로 있으며 서울대 운동권 학생들을 관리하고 탄압했던 이력 때문이었다.

또한 그가 2007년 12월 18일 방북해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만난 뒤 작성한 대화록을 외부에 유출한 것도 문제적인 행동이었다. 그해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인질로 잡힌 샘물교회 교인들을 석방시킨 후 귀국길에 자신의 모습을 노출시킨 것도 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 적절한 처신은 아니었다. 국정원장 재임중 고교 동창회 홈페이지에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올려놓았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같은 '부적절한 처신'과, 국정원장 퇴임 3년 후 외국 잡지에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더군다나 김 전 원장이 <세카이>에 쓴 글은 천안함·연평도 사건 후 수많은 이들이 지적했던 이명박 정부의 문제점을 종합 정리한 것에 불과했다.

김 전 원장은 '전쟁의 바다 서해를 평화·번영의 바다로'라는 이 글에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기로 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합의 과정과 그 의의를 설명했다. 이어 이명박 정부가 이전 정부의 남북 합의를 무시하고 대북 강경 정책을 쓴 결과 서해가 '전쟁의 바다'로 변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김 전 원장은 기고문에서 천안함 침몰 사고가 일어나고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있기 전 자신이 했던 말을 소개했다. 그는 당시 "NLL(서해 북방한계선) 해역에서 남북한간 군사적 충돌이 또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되며 이를 위해 이명박 정부는 안보 태세를 강화하는 한편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에 관한 남북 정상간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필자는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침몰 사고를 교훈삼아 NLL 해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실효적인 조치를 취할 것으로 내심 기대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주문과 기대는 너무나도 상식적이어서 식상하기까지 하다. 김 전 원장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민들이 원하고 기대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그처럼 당연한 요구조차 무시했고, 서해의 긴장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천안함이 북한에 의해 폭침됐다고 주장하면서도 연평도 포격 같은 도발을 막으려는 군사적 대비 태세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햇볕정책 책임론' 재점화?

그러나 보수언론들은 김 전 원장의 이같은 평범한 주장을 두고 마치 나라라도 팔아먹은 것인 양 악의적이고 과장되게 비난하고 있다. 정부의 천안함 조사 결과를 국민 30%만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기고문의 한 대목에 대해서는 "어디서 찾아냈는지 모르겠다"(동아일보), "듣도 보도 못한 편향된 조사 결과"(세계일보), "출처 불명의 무책임한 말"(서울신문)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가 작년 9월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천안함 정부 조사 결과를 믿는다고 답한 응답자가 32.5%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조선일보>도 이 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

언론들이 난데없이 김 전 원장을 표적으로 삼는 것은 서해 평화 정착에 대한 보수세력의 알레르기 반응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또한 '김만복'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현재의 안보 불안이 햇볕정책에서 비롯됐다는 '과거 정부 책임론'에 또 다시 불을 지피려는 시도로 읽힐 뿐이다. 김만복 전 원장의 이번 글에 대한 공격은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상식적인 국민들에 대한 공격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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