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검증위는 이 보고서에서 '최소한 버블제트는 없었으며, 천안함은 모종의 사건이 발생한 후에도 일정 시간 기동했다'는 제한적인 결론을 내렸다.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이 남하, 천안함에 어뢰를 발사해 파괴했다는 국방부의 결론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언론 검증위는 특히 최대 쟁점인 천안함 흡착물질을 자체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 국방부가 주장하는 비결정질 산화알루미늄이 아니라 바스알루미나이트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바스알루미나이트는 상온이나 저온에서 생성되는 물질로 어뢰 폭발 같은 고온 환경에서는 나올 수 없다. 이는 '1번' 어뢰와 천안함을 연결시켜주는 핵심 고리가 끊어졌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종합 보고서가 발표된 다음날인 13일 노종면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장을 만나 천안함 보고서에 관해 못다한 얘기를 들어봤다. YTN 노조위원장으로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벌이다 해고된 노종면 위원장은 언론 검증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 노종면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
"물기둥 위치를 물었더니 '물기둥이 있었다'고 대답하나?"
프레시안 : 언론 검증위가 12일 발표한 '천안함 종합보고서'에 대해 국방부가 반박을 했다. 재반박한다면?
<국방부 입장 전문> 초병 진술을 물기둥 증언으로 왜곡하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합조단에서는 '초병이 물기둥을 보았다'고 발표한 사실이 없으며, 초병의 백색 섬광 진술을 물기둥이라고 판단한 것은, ①백령도 초병들이 높이 100m, 폭 20~30m의 하얀색 섬광 불빛을 2~3초간 관측했다고 진술하면서, 수중폭발 장면과 유사하게 'V자형 그림'으로 표현한 점, ②생존자들이 구조 직전 넘어진 선체 상단부의 좌현 현창에 물이 고여 있었다고 진술한 점, ③좌현 견시병이 함정과 같이 넘어졌을 때 얼굴에 물방울이 튀었다고 진술한 점 등을 종합 분석하여 수중폭발로 발생한 물기둥 현상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스크루 변형 분석과 관련된 오류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스크루의 부분적인 손상(일부파손 및 긁힘 현상)은 선체가 침몰 및 인양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입니다. 우현 스크루가 손상된 이유는, 짧은 시간에 추진축이 뒤로 밀림과 동시에 급격한 정지에 따른 관성력으로 스크루 날개 다섯 개가 앞 쪽으로 구부러진 상태로 변형되었고, 좌현 축은 상대적으로 정지시간이 길어 적은 관성력이 작용함으로써 손상이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천안함 선체 하부에서 수중폭발이 발생하여 천안함 추진축에 연결된 기어박스 하부에 충격을 가하여 감속기어가 손상되어 발생한 것으로 2차에 걸친 시뮬레이션 결과에서도 동일한 형태의 변형을 확인하였습니다. 흡착물질 분석 결과를 신뢰할 수 없습니다. 합동조사단이 이정희 의원에게 제공한 흡착물질 시료는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제3의 기관으로 하여금 합조단 전문가 입회하에 개봉 및 분석하는 조건으로 제공하였으나, 이를 어기고 일방적으로 양판석 박사에게 단독 분석 의뢰한 것으로서 분석 결과를 신뢰할 수 없습니다. 또한, 흡착물질이 "비결정질 바스알루미나이트로 상온 또는 저온에서 생성되는 수산화물이므로 폭발과 무관하다"는 주장은, 정량적인 분석 결과 없이 특정 물질로 단정하는 것으로서 비과학적이며, 뿐만아니라 알루미늄 첨가 폭약의 폭발 없이는 바스알루미나이트 내의 알루미늄 원소 성분의 출처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
노종면 : 반박을 하려면 상대방의 주장을 꼼꼼히 살펴보고, 그 주장의 근거를 반박해야 한다. 그런데 국방부의 반박은 반박이 아니다. 우리 주장의 근거가 어떻든 예전에 했던 결론만 되풀이했다.
물기둥 문제의 경우, 백령도 초병이 봤다는 섬광을 물기둥으로 본 여러 판단 요소가 있을 것이다. 크게 보면 섬광을 본 시점과 형태, 위치가 있다. 언론 검증위가 문제 삼는 것은 바로 섬광의 위치다. 백령도 초병들은 분명히 두무진 돌출부(폭발원점과 전혀 다른 방향) 쪽에서 섬광을 봤다고 일관되게 진술했고, 거기는 늘 관측하는 곳이어서 아무리 시야가 안 좋아도 착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비유하자면 종로 살인 사건의 목격자를 찾는데 동대문 살인 사건의 목격자를 내놓았다. 우리는 그걸 문제 삼은 것이다. 정부가 반박을 하려면 '위치'에 대한 반박을 했어야 한다. 초병들의 진술을 물기둥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이유를 되풀이 하지 말고, 위치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 최소한 '우리가 위치를 착각한 것 같다' '초병들이 착각했다' 이런 말이라도 해야 그게 반박이나 해명으로 성립되는 것이다.
스크루 문제에 대해서도 언론 검증위는 왜 관성력으로는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는지를 합조단이 내놓은 자료를 정밀 분석해 근거로 제시했다. 합조단은 스크루가 돌다가 서면서 배 후미 쪽으로 축이 밀렸고, 급정지로 인한 관성력 때문에 스크루가 손상됐다고 주장한다. 이 두 가지 변수를 시뮬레이션에 대입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축이 밀린 방향과 날개가 회전한 방향이다. 그런데 우리가 시뮬레이션 화면을 보니까 날개가 정반대로 회전하게 시뮬레이션을 해 놓고 스크루의 변형 상태가 똑같다고 한 사실이 드러났다.
우리가 그렇게 주장하면 국방부는 하다못해 '너희가 영상을 잘못 봤다. 제대로 된 방향으로 돌았는데 너희가 잘못 분석했다'는 식의 반박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그런 얘기는 하나도 없이 '축이 밀리면서 관성력이 작용해 휘었다'는 점만 강조했다. 국방부가 그렇게 말해왔다는 건 우리도 충분히 알고 있다.
흡착물질에 대한 국방부의 반박은 더 심각하다. 언론 검증위가 정량분석을 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우리는 분명 기자회견에서 정량분석과 정성분석을 다 했다고 밝혔다. 그 근거로 정량분석에서 얻어낸 빼곡한 수치표를 공개했다. 그런데 정량분석을 안 했다니. 이런 식으로 반박하는 주체는 논쟁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이런 말 밖에 못 하는 국방부를 국민들이 어떻게 믿을까. 우리 사회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반박이었다.
국방부의 입장에서 그나마 반박으로 성립될 수 있는 건 '알루미늄 첨가 폭약의 폭발 없이는 알루미늄 원소 성분의 출처를 설명할 수 없다'는 부분이다. 이건 맞든 틀리든 반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이 문제였다. 알루미늄이 어뢰 폭발로만 나올 수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알루미늄은 여러 곳에 들어간다. 설령 어뢰에 들어 있는 알루미늄이 흡착됐다고 해도, 폭발로 유출됐는지, 무기가 유실된 후 깨져서 나왔는지를 조사해야 한다. 정부의 조사는 그 모든 가능성을 다 따져보는 것이어야 하고, 그걸 하라고 세금을 들여서 조사를 시켰다. 그런데 여러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사 자체를 안 하고, 어뢰에 알루미늄이 들어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어뢰에서 나온 알루미늄이라고 결론 내렸다.
황(S) 성분도 어디에서 왔는지 규명하지 않았다. 안 했는지 못 했는지 모르겠지만, 군은 '황은 진실 규명에 핵심이 아니기 때문에 조사하지 않았다'고 했다. 말이 안 된다. 과학 분석에서는 물질의 주성분보다 미세성분이 더 중요하다. 특정한 이유 때문에만 생겨나는 원소 하나하나에 주목하고 같은 알루미늄 산화물이라고 해도 천안함 현장에서 발견된 것이 일반적인 알루미늄 산화물과 어떻게 다른지를 규명해야 한다. 그게 과학 수사의 기본이다.
또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다양한 분석 기법을 동원해 물질을 규명하고 성질을 밝히고 기원을 찾는 게 화학 분석의 기본이다. 중요한 원소로 판명된 황을 알고도 조사하지 않았다는 건 전반적인 조사를 안 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우리한테 정량분석을 안 했다고 했는데, 우리는 했다. 합조단이 안 했다. 할 수 없었던 게 아니라 안 한 것으로 보인다.
흡착물질 얘기가 나온 김에...합조단장을 했던 윤종성 국방부 조사본부장이 얼마 전 언론에 '이젠 천안함 함체에 흡착물이 없다'고 말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흡착물질처럼 중요한 것은 반드시 보존돼야 하는데 비 때문에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래 놓고 빗물에 녹았기 때문에 흡착물은 (민간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수산화알루미늄이 아니라고 했다. 우선 흡착물이 정말로 빗물에 녹은 건지, 비의 세기 때문에 떨어져 나간 건지도 불분명하다. 9월 태풍과 폭우가 평택에도 지나갔는데, 그 비를 다 맞게 해서 중요한 흡착물질을 잃어버려 놓고, 아전인수로 자신들의 주장이 맞다고 하는 것이다.
양판석 박사가 흡착물을 바스알루미나이트라고 특정했는데, 바스알루미나이트는 수분을 흡수하면 물 분자의 숫자가 늘어나서 결정 구조가 느슨해져 떨어질 가능성이 큰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학계의 보고가 있다. 즉, 흡착물이 바스알루미나이트라면 비를 맞아서 떨어져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국방부는 이 문제를 좀 더 정밀하게 공부하고 조사한 다음 입장을 내놓길 바란다.
ⓒ프레시안(최형락) |
노종면 : 기본적으로는 이정희 의원실과의 문제이다. 우리는 언론단체로서 흡착물질을 입수했을 뿐이다. 이정희 의원실이 독자 분석을 하지 못하고 우리에게 넘긴 이유는 분석기관을 선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내 기관 선정이 여의치 않아 해외에서 찾았는데 해외 기관에서 하는 건 합조단이 반대했다고 한다.
국내 분석기관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못하겠다고 했다고 들었다. 정부가 실험에 동의한다는 공문 하나만 보내주면 할 수 있다는 분석기관이 있었는데, 합조단이 공문 발송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우리한테 넘긴 것이다. 합조단 전문가가 입회한 상태에서 분석하길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같이 하면 된다. 우리한테 흡착물질이 남아 있으니까. 우리는 시료의 일부를 분리하고 재밀봉하는 전 과정을 다 녹화해 놨다. 그걸 보고 시료의 상태를 판단해서 같이 분석하자고 하면 기꺼이 하겠다.
프레시안 : 이정희 의원실이 천안함에서 가져온 흡착물은 합조단이 분석했던 바로 그 흡착물이 아니라 이 의원실 관계자들이 새로 떼어 낸 것이다. 합조단은 두 물질이 같은 것이라고 인정했나?
노종면 : 그렇다. 두 물질이 같아야 한다고 인정했다. 다르면 안 된다.
프레시안 : 언론 검증위가 가지고 있는 흡착물질을 독자적으로 분석하고 싶은 언론사가 있다면 분석 결과를 공유한다는 전제 하에 제공하겠다고 했다. 신청한 언론사가 있나?
노종면 : 의지를 밝힌 곳은 있다. 그러나 아직 분석기관을 선정하지 못했다. 분석기관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줄 수는 없다. 기관을 선정하고 분석 결과를 공유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그래야 분석 결과가 사장되지 않는다.
결론 맞춰 끌어다 쓴 '근거', 현실과 상충돼도 '나 몰라라'
프레시안 : 언론 검증위 종합보고서는 폭발원점, 물기둥, 스크루, 흡착물질 문제 외에도 정부가 어뢰의 출처를 북한으로 지목한데서 발견되는 오류를 지적했다. 폭약 성분의 제조와 사용 국가 문제, 어뢰 설계도와 출처 문제, 연어급 잠수함 제원 문제, '1번' 글씨 문제를 거론하며 북한으로 지목할 근거가 빈약하다고 말했다. 폭약 성문 문제는 무엇인가?
노종면 : 천안함에서는 TNT, RDX, HMX 세 종류의 폭약 성분이 나왔다. 언론들은 RDX에 주목했다. 정부 최종 보고서에 RDX는 구 소련제 어뢰에 들어가는 것으로 나와 있다. 천안함에서 폭약 성분이 나왔고, 그 성분은 소련 어뢰에 들어가는 물질이라는 것이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정보다.
그러나 보고서를 꼼꼼히 봤더니 폭약 성분 중에서 HMX는 RDX보다 7~8배 더 많이 검출됐다. 또 RDX는 6~7군데에서 발견된 반면, HMX는 28곳에서 발견됐다. 그럼 폭약의 주성분은 HMX로 보는 것이 맞다. 정부 보고서를 보면 HMX가 들어간 어뢰는 "미국 등"에서 제조가 되고 아군 무기에 장착 되는 것으로 분명히 적혀 있다. HMX가 동구권 무기, 북한 무기에 쓰였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RDX는 소련뿐만 아니라 한국의 거의 모든 어뢰에도 들어간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RDX가 소련제에 쓰이니까 북한의 소행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비약이다.
프레시안 : RDX가 나온 것은 어뢰가 북한제라고 말할 수 있는 필요조건은 돼도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에 '빈약한 증거'라고 표현한 것인가?
노종면 : 필요조건만 따져도 아군 무기에 더 많이 걸린다. 정부보고서에도 RDX와 HMX가 주로 쓰이는 무기는 아군의 무기라고 적시되어 있다.
▲ 다량 검출된 HMX는 한국 어뢰와 탄약에만 들어가고, 소량 검출된 RDX는 소련을 포함한 거의 모든 어뢰에 들어간다. ⓒ언론 검증위 |
프레시안 : 어뢰 설계도와 연어급 잠수함 등 나머지 문제는?
노종면 : 합조단은 어뢰 설계도가 북한이 만든 무기 소개 문건이나 CD에서 나왔고, 설계도의 수치와 건져 올린 어뢰추진체의 실제 크기가 같기 때문에 북한산이라고 특정했다. 그런데 누구도 실측에 참여하지 않았다. 어뢰 설계도의 출처도 번복됐다. 처음엔 무기 소개 책자라고 했다가, 낱장 형태의 인쇄물이라고 했다가, CD에서 출력했다고 했다.
무기 소개 책자나 낱장 인쇄물의 경우는 의미가 다르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시간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위조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CD는 언론에서 언제 만들어졌는지를 검증하기는 쉽지 않다. 설계도의 출처가 무기 소개 책자라고 하면 사람들은 '저것까지 조작했을까' '언젠가는 보여주겠지' 등의 생각을 할 것이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칼라 프린트 요약본을 언론에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나중에 CD에서 나왔다고 말을 바꿨고, 그 CD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북한산 어뢰의 설계도가 맞다고 해도, 어뢰는 어느 나라나 사이즈와 모양이 거의 비슷하다. 북한산 어뢰가 7m가 조금 넘는다고 발표했는데, 소련제나 미국제도 마찬가지이고, 국내에도 그런 어뢰가 있을 것이다. 쌍날개 프로펠러와 모터는 여러 어뢰 기종에서 공히 발견된다. 북한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도 없지만 북한이라고 특정한 근거도 빈약한 것이다.
연어급(130톤) 잠수함에 대해서는, 우리가 접촉한 다양한 군사전문가들도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군 내부에서도 들어본 사람이 있는지 의문이다. 그런데 국방부는 이미 2004년인가 2005년부터 파악했다며, 유일한 증거로 구글 위성사진을 내놨다. 우리가 그 사진을 보고 직접 측량해 보니 안 맞았다. 사진의 그림자 문제 등 정부가 얘기하는 모든 조건을 최대한 수용해서 보수적으로 측량해 봐도 300톤 상어급 잠수함과 비슷했다. 우리가 계산한 수치를 가지고 가디르급(120톤)과 상어급 중 어디에 가까운지 초등학생한테 물어봐도 상어급을 고를 것이다.
어뢰 추진체의 '1번' 글씨는 잉크의 성분, 표기 방식, 필체, 표기 시점 등이 쟁점인데 논란거리가 될 수는 있어도 북한 소행의 증거는 될 수는 없다. 잉크 성분에 대해서는 북한제인지를 규명하는데 실패했다고 합조단 스스로 인정했다. 모나미 잉크인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한국의 소행인지 북한의 소행인지를 입증할 수 없는 것이다. '번'이라고 표기했는지 '호'라고 표기했는지의 문제도 북한을 특정하는데 증거가 되지 못한다. 필체로도 북한을 특정할 수 없다. 육안으로 볼 때 비슷하다고 하는 건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어뢰가 터졌는데도 1번 글씨가 남아 있는 문제에 대해 국방부는 카이스트 송태호 교수의 가설을 공식 채택했다. 추진체가 급격하게 밀려서 열에너지가 작용하는 구간을 순간적으로 탈출했기 때문에 1번 글씨가 남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송 교수의 가설은 버블이 생성돼 수면에 노출되는 시간, 버블을 형성시키는 압력 등의 조건에서 그간 합조단이 주장했던 버블제트 물기둥을 설명하지 못한다. 또 열에 의해 금속 물질이 액체 상태가 돼서 달라붙은 게 흡착물질인데, 파편이 그렇게 급속하게 냉각됐다면 흡착될 수 없다. 1번 글씨가 있는 곳보다 뒷부분에 흡착물이 붙었는데, 그런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국방부가 그 가설을 왜 채택했는지 이해되지 않지만, 유리한 부분만 취한 것 같다. 전반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모르겠는데, 상충되는 부분이 있으면 안 된다. 그러나 상충되는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국방위 국감 파행, 정부·여당에 나쁠 게 없다"
ⓒ프레시안(최형락) |
노종면 : 그 정도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우리가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특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 활동의 목적은 정부 조사의 모순점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모순이 없다면 모순이 없다고 인정하는 것도 활동의 목적에 포함된다. 거기에서 더 나갈 이유도 능력도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모순을 밝히는데 필요한 구체적인 근거들을 찾아왔다. 다만 그 근거를 명확하게 전달하는데 필요했기 때문에 제한적인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럼 당신들은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은 일반적이고 상식적이고 이해되는 질문이다. 독자나 시청자가 그런 말을 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이 아니라 정부가 그런 질문을 하면 안 된다. 정부는 언론에 '너희는 왜 못 찾아내느냐?'고 하면 안 된다. 자기들이 밝혀야 한다. 그건 정부의 책임이다. 언론의 반박이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재반박을 하면 된다. 그러나 정부는 대화할 자세가 전혀 안 돼 있고, 논리학의 기본도 모른다.
반박하는 사람한테 '우리는 북한이라고 지목했는데 당신은 북한이 아니라는 거야?'라고 대응하는 것은 정치적·이념적 색깔을 씌우려는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 굉장히 천박한 대응이다. 천박하다는 말밖에 달리 설명이 안 된다. 생각이 다르고 정치적 견해가 다르더라도 논리가 있으면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반박에 근거를 가지고 재반박할 생각은 안 하고 '그럼 당신은 뭐라고 생각해?'라거나, 한 발 더 나가서 '그럼 북한이 아니란 얘기야?'라면서 반박하는 사람들을 모두 종북주의자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프레시안 :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이 '천안함에 대한 정부 발표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더니 한나라당 의원이 '그럼 북한이 안 했다는 것이냐?'고 나오면서 국감이 파행됐다.
노종면 : 정부와 여당은 그런 식으로라도 이 사건을 덮고 싶어 하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국감장이건 어디에서건 더 이상은 논쟁이 벌어지지 않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 국감장이 파행이 되면 정부와 여당에 나쁠 게 없다.
프레시안 : 천안함은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고 보나? 천안함에 천착하게 된 이유와 계기가 있다면?
노종면 : 이 사건의 성격을 규정할 만한 능력과 권위와 의지가 나에겐 없다. 분명한 것은 천안함은 우리 사회가 규명해야 할 중요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위원장인 내가 정부 주장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은 의무다.
프레시안 : 그런 문제들은 우리 사회에 많다. 왜 유독 천안함에 그토록 집중하느냐는 질문이다.
노종면 : 이명박 정부 들어 언론과 권력의 관계를 정립하는 문제는 중요한 현안이 됐다. 정권이 언론을 탄압하고 있는데, 그 탄압은 언론인과 보도 전반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그런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 이슈가 바로 천안함와 4대강 문제라고 생각한다. 두 문제에 대한 보도가 가장 심각하게 침해되고 위축되어 있다.
그렇다면 언론 단체라도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단체의 역량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바로 천안함이다. 천안함을 선택할 당시 지방선거와도 맞물려 있었고, 정치와 선명하게 맞닿아 있었다. 국민들도 그렇게 느꼈다.
프레시안 : 조직적인 결정에 따랐다는 말인데, 개인적인 계기는 없었나?
노종면 : 천안함 사건 당시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중이었다. 병원에서 가끔 뉴스를 봤는데, 굉장히 중요한 일이 일어났는데, 핵심적인 팩트들이 계속 바뀌었다.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저런 일을 하고 있었다면 관심이 분산됐을 텐데, 병원에 있다 보니 하나의 뉴스에 관심이 집중됐던 것이다.
사건 발생 위치에 대한 논란을 보고 구글 어스로 좌표를 찍어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YTN> 앵커를 할 때 구글 어스를 방송에 활용했던 경험이 있어서 좌표를 확인하는 것만큼은 자신 있었다. 구글 어스라는 툴을 다루는데 익숙했기 때문에 국방부에서 발표된 좌표를 찍어 봤더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점들이 드러났다. 그 와중에 공교롭게도 세 단체(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언론노조)가 천안함과 관련한 활동을 벌이기로 했고, 실무 책임을 내가 맡게 됐다.
▲ 12일 언론 검증위의 천안함 종합 보고서 발표 당시. ⓒ뉴시스 |
"상식 가진 국민이라면 언젠가는 들여다 본다"
프레시안 : 지난 주 타블로 허위 졸업 의혹이 사실 무근으로 발표되자 보수언론들은 광우병과 천안함 문제도 타블로 의혹처럼 근거 없는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노종면 : 몇 가지 사안을 묶을 수 있는 근거가 있다면 언론이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묶어서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사안별로 접근하지 않고, 편의대로 묶으면 안 된다. 이 세 가지는 묶으려야 묶을 수가 없다.
광우병 문제는 대통령이 사과까지 하고, 정부가 검역 조건을 바꾸고, 이웃 나라 대만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만들어 냈다. 인터넷에서 시작된 문제 제기를 정부가 인정한 것이다. 그것과 타블로 문제를 어떻게 묶을 수 있나. 그런 식으로 하자면, 나한테 하루만 주면 인터넷이 만들어 낸 긍정적인 효과들을 얼마든지 묶어서 기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프레시안 : 천안함에 대한 언론 보도를 평가한다면?
노종면 : 기자들한테 책임이 있다는 말로 들릴지 몰라 평가가 부담스럽다. 천안함 보도의 문제가 기자 때문인지, 전반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외부의 압력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보도 양태에 일정한 유형이 있었다.
우선 정부의 입장을 더 크게 쓴다. 정부 발표에 대해 근거 있는 반론이 나와도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투표로 선출된 정부의 권위를 인정해서 정부의 발표를 더 크게 쓰고 반론을 작게 쓸 수는 있지만, 그래도 너무 적었다. 특히 주류 언론들이 그랬다.
반론을 보도하더라도 그에 대한 정부의 반박이 나왔을 때나 기사를 썼다. 애초부터 반론을 쓰려고 했다면 그 반론이 나왔을 때 곧바로 취재해서 쓰는 게 보도의 ABC다. 그런데 정부의 반박이 안 나오면 반론에 대한 기사를 아예 쓰지 않았다. 다 그랬다는 건 아니지만 그런 양태들이 많았다. 물론 그때도 정부의 반박을 더 크게 쓴다.
언론 검증위의 종합보고서에 대해서도 그렇게 쓴 주류 언론이 있었다. 우리의 주장은 기사 제목에만 들어가거나 결론만 쓰고, 국방부의 해명에는 근거가 들어간다. 우리가 보기엔 근거가 아니지만,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근거 있는 해명처럼 기사가 구성된다. 우리는 새로운 주장을 했고, 정부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했는데, 그렇다면 새로운 주장을 먼저 싣고 그에 대한 정부의 주장을 붙이는 게 기사의 ABC다. 나는 이렇게 된 책임이 기자한테 있다고 보지 않는다. 한국 언론의 현주소가 기자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그런 기사가 양산됐다.
또, 천안함에 대한 정부 입장을 상대적으로 크게 보도하더라도 생중계가 아닌 이상 기자가 걸러야 한다. 인용을 보도할 때도 그 인용이 정확한지 확인해야 해서 책임져야 한다. 국방부가 어제 '언론 검증위는 흡착물을 정량분석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걸 그대로 전하면 일반 독자·시청자는 검증위가 정량분석을 안 한 줄 안다. 그러나 국방부가 그런 말을 하면 '정량분석을 안 한 게 맞아?'라는 기본적인 의문을 가지고 취재를 해봐야 한다. '사실 언론 검증위는 정량분석을 했다'고 넣어야 한다. 그게 균형 잡힌 보도인데 우리 언론은 그러지 못했다. 국방부가 불러주는 대로 썼다.
수박 겉핥기식 보도도 문제다. 기자가 이해되는 것, 대중이 이해할 수 있을 것만 쓰는 것이다. 대중을 이해시키는 게 기자의 책무다. 어려우면 자기가 이해해서 최대한 쉽게 알려줘야 한다. 반론을 쓰겠다고 해도 기자가 반론을 하는 사람만큼 그 반론을 이해해야 한다. 거기서 핵심을 추출해야 한다. 언론 검증위의 반론을 보도할 때도 가령 언론 검증위가 인용한 정부 보고서의 내용이 맞는지, 과장한 건 아닌지 검증하고 써야 한다.
폭약 성분에 관한 보도가 그런 식이었다. HMX에 대해서는 공부하지 않고, 여기저기서 RDX를 쓰고 국방부가 좀 더 강조하니까 그냥 따라서 썼다. 또 폭약 성분 보다 흡착물질이 더 중요한데 얘기가 어려우니까 언론이 임의로 중요한 쟁점 자리를 폭약 성분으로 대체해 버렸다. 정부 발표 이후 보도를 찾아보면 어뢰 폭발의 근거로 폭약 성분이 제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폭약'이란 말이 나오니까 기자들이 임의로 추출해서 무게를 실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천안함 보도는 너무 부족했고, 정부에 의한 언론 위축과 탄압의 결정판이었다.
프레시안 : 프레시안을 비롯해 이른바 진보 매체의 천안함 보도에서 지적할 점은?
노종면 : 언론 검증위든 누구든 어떤 주장을 하면 정부의 입장도 취재해 답변을 넣어야 한다. 정부가 답을 안 하면 '답을 안 했다'고라도 넣어야 한다. 치명적인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런 문제가 꽤 보였다. 어떤 주장이 맞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것만 보도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독자들에게는 정부의 입장과 비교할 권리가 있다. 상당 부분에서 정부가 답변을 회피한 걸로 알고 있는데, '답변을 회피했다'고 써 주면 기사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국방부의 반론도 넣어야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노종면 : 언론 검증위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생각해 봐야겠지만, 천안함 문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내놓은 근거를 정부가 합리적으로 반박한다면 그때 가서야 끝날 것이다. 군은 자신들을 지지하는 층이 있다고 자신할지 모르지만, 이런 공방이 진행되면 상식을 가진 국민들이라면 군의 주장에서 이탈하게 된다. 정부 발표를 불신하는 비율이 30%에서 70%로 증가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부는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대중은 특정 이슈가 상당 기간 지속되면 피로감을 느낀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또 저 얘기야?' 할지 몰라도, 언젠가는 누구 말이 맞는지 들여다보게 된다. 자기 판단을 분명히 해야 할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계기가 작용해 공방을 들여다보게 되면 그때 우리가 한 주장은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될 것이다. 국방부는 변죽도 못 울렸다. 우리를 보고 얘기해 달라고 했더니 뒤돌아서서 얘기한 격이다.
과학에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 있듯, 언론의 취재 에너지도 불변이라고 본다. 언젠간 표출된다. 천안함을 다루고자 했던 무수한 기자와 피디들이 그간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다루지 못했다면 언젠가는 다루게 된다. 그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