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한국의 '좌빨'과 '수꼴', 번역기가 필요하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한국의 '좌빨'과 '수꼴', 번역기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books 인터뷰] 남재희와 조국, 한국의 좌파-우파를 말하다

제 17대 대통령 선거를 1년여 앞둔 지난 2006년 11월, 한 여론조사에서 가장 진보적인 대선 주자로 꼽힌 인물은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였다.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틀림없는 우파인 그가 왜 이런 평가를 받았을까. 무슨 오해가 있었던 것일까?

<좌우파 사전>(구갑우 외 14인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을 보면, 이런 결과는 '진보적이라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하기 때문에 진보적이라고 믿는다'는 사고틀의 작동 방식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는 그 내용에 상관 없이, 인기 있는 정치 상품이다.

반면 정치 이념상 진보와 동의어로 간주되는 '좌파'는 전혀 다른 대접을 받는다. 심하게 말하면 욕설이나 저주에 가깝다. 한 가수 출신 영화배우가 '한국 영화계는 본바탕이 좌파'라며 불만을 표현했다가 논란이 일자 '영화계가 냉소적이었다는 의미'라며 해명한 사건은 이 단어가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좌파와 우파 혹은 진보와 보수는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를 가르는 가장 강력한 기준점임에도, 위의 예처럼 한국 사회에서는 그 의미조차 제대로 공유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책이 바로 <좌우파 사전>이다. 한국 사회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22개의 핵심 쟁점을 놓고 명쾌한 좌파, 우파의 시각을 염두에 둔 비교, 분석을 시도한 것.

<프레시안>은 이 책을 염두에 두고 한국을 대표하는 좌·우 지식인의 대담을 마련했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과 조국 서울대학교 교수는 각각 보수와 진보 인사로 분류되지만, 상대 진영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이 두 사람이 <좌우파 사전>의 추천사를 쓴 계기로 처음으로 한 자리에 마주 앉았다.

남재희 장관은 전통적으로 좌파, 우파의 역관계가 우파 쪽에 치우쳐 있었던 데다가 최근에는 기업까지 가세해서 이런 비대칭이 더욱더 강화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조국 교수는 그런 지적에 동의를 표하면서도 한국 사회에서 점점 더 좌파의 발언권이 커지고 있음을 지적했고, 특히 복지국가 논의의 확산이 그 예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이명박 정권 이래 남북 관계 악화를 한목소리로 비판하면서도, 촛불 집회에 참여한 적극적 대중에 대해서는 다른 평가를 내놨다. 남 전 장관은 촛불에서 언제든 등 돌릴 수 있는 불안정한 대중을 봤으며, 조 교수는 대의제를 보완하는 적극적 목소리를 들었다.

이 외에도 두 사람은 한국 사회에서 좌파와 우파의 대립을 놓고 폭넓은 이야기를 나눴다. 대담은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진행했다. <편집자>


허공 보고 얘기하는 좌파·우파

프레시안 : <좌우파 사전>이 출간된 의미를 평가한다면?

조국 : 진보 대 보수든 좌파 대 우파든 서로 논쟁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개념이 통일돼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주제든 양쪽이 서로 다른 개념을 전제로 그야말로 허공을 보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아 논쟁의 합의점을 찾기 어려웠다.

<좌우파 사전>은 제목 그대로 사전이다. 우리가 쓰는 개념이 각각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확정해줬다는 데에 출간의 의의가 있다고 본다. 상대방이 어떤 의미로 저 말을 쓰는가, 그 사용엔 어떤 논리적 배경이 있는가를 양쪽 모두의 입장에서 충실히 소개했다.

▲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남재희 :
좌우 개념은 그 자체가 어렵고 애매하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좌파라는 범주는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까지 쓰인 '좌익'하고는 의미가 또 다르다. '좌익=공산당' 등식에서의 좌익이 배제된 상태의 좌파, '진보파'로 좁힐 수 있는 좌파가 그것이다.

조국 교수의 말처럼 좌우 논쟁은 기본적인 개념을 정리하는 것부터가 상당히 어려운데, 형이상학이고 종교적인 차원까지 끌고 가면 대개 우파를 자처하는 이들이 근본주의(fundamentalism), 좌파를 자처하는 이들이 불가지론(agnosticism)에 가깝다. <좌우파 사전>은 이런 차원의 논의까지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일상생활의 문제들 속에서 좌우 개념을 정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영어 공용화론과 영어 몰입 교육(19장)과 같은 문제까지 좌우파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선 좀 의문이다. 그건 좌우파로 나누지 않아도 될 문제라고 본다. 세상 모든 일을 좌우로 가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육 문제가 크게는 좌우의 문제이긴 하지만 (영어 공용화론과 영어 몰입 교육 부분에선) 좀 작위적이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면 책의 구분은 설득력이 있고, 필자들이 상당히 노력을 한 것 같다.

조국 : 말씀하신 대로 이 책은 좌파 또는 좌익에 대하여 고전적 정의를 전제로 하고 쓰인 책은 아니다. '좌파'라는 개념에 공산주의, 사회민주주의, 아나키즘 중 어디까지를 포괄하느냐 하는 문제는 빼놨다. 한국 사회에 크게 두 세력이 있고 넓은 의미에서 서로가 서로를 좌우라고 부른다는 정도의 맥락에서 그것을 다루고 있다.

프레시안 : 이 책이 해방 전후사를 비롯한 역사와 역사인식 문제를 다루지 않은 데 대해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다.

남재희 : 좋은 지적이다. 좌담에 오는 길에 '그러고 보니, 요즘 한참 뉴라이트가 문제 삼고 있는 대한민국 건국사관 문제가 빠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국 : 개인적으로 정통성을 정태적으로 보지 않고 동태적으로 본다. 건국 당시의 시점에서 정통성이 누구한테 있느냐 판단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가령 그 때엔 친일파 청산, 토지 개혁 등 정통성 문제에 있어서 북한이 남한보다 우위였을 수도 있다. 그러던 것이 남한에 민주화가 이루어진 1987년을 기점으로 정치, 경제적으로든 정통성 문제에 있어서는 남한 우위로 역전된다.

오늘 좌담의 주제는 아니지만, 이렇듯 정통성 문제는 동태적으로 접근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이승만이 나라를 세웠으니 그걸로 끝이라고 하는 뉴라이트의 관점과는 차이가 있다. 뉴라이트 눈으로 보면 대한민국 건국에 있어서 남한만의 정부 수립에 반대했던 김구나 김규식도 모두 배제된다. 그럼 이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정통성은 이승만과 김일성을 넘어서는 정통성이어야 한다.

▲ 조국 서울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언어에 의한 과잉 살상

프레시안 : 다시 책 얘기로 돌아가서 이 책은 진보-보수가 아니라 좌파-우파라는 개념을 쓰고 있는데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좌파란 '주류에 반대하는 나쁜 놈들', 척결 혹은 배제해야 할 대상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는가?

남재희 : 농담 하나 할까? 추천사에 길게 인용했던 일본의 정치학자 이노키 마사미치가 예전에 한국에 왔을 때 "우파는 독수리처럼 깨끗하고 좌파는 비둘기처럼 지저분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딱 맞는다. 이른바 인습적인 도덕률로 보자면 좌파 사람들은 참 지저분하다. (웃음)

1960년대에 읽었던 미국 글에서 "언어에 의한 과잉 살상의 시대(Age of verbal over-kill)"라는 표현을 본 기억이 있다. 적당히 하면 되는 말을 극단적으로 해서 상대방을 말로 살인한다는 뜻이다. 당시 베트남 전쟁 때문인지는 몰라도 언론에서 그런 표현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우리는 그때 뿐 아니라 해방 이후 지금까지 계속 언어에 의한 과잉 살상의 시대다.

한 쪽이 '좌빨'이라 불러대면 반대쪽은 '수꼴'이라 하기 시작한다. 특히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땐 그야말로 말에 의한 살상이 벌어졌다. 사실상 그렇게 진보적이지도 않은 두 대통령을, 반대 세력이 완전히 빨갛게 칠해버리지 않았나.

이와 관련해 얼마 전 흥미롭게 읽은 문장이 있다. 미국의 한 잡지가 8월 말에 천안함 관련 특집 기사를 실었는데 거기 나온 문장이다. "한국의 좌파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여당인 한나라당이 심각하게 걱정하는 것만큼 그렇게 친북적이지 않다."

한국에서 취재할 때 많이 들었을 '친북·좌빨' 표현을 의식하면서 쓴 얘기일 것이다. 왜 이걸 굳이 썼겠나. 김대중, 노무현 정권 당시에도 <타임>이나 <이코노미스트>를 보면 이들이 두 정권을 한국에서 어떻게 부르는지 의식하는 게 느껴졌다. 한국에선 두 대통령을 위험한 친북 좌파라고 몰아세울 때 이들은 온건 좌파, 중도 좌파 정도로 조심스럽게 규정했었다. 한국의 언론이나 여론이 언어로 과잉살상하고 있다는 걸 알고서 그런 것이다.

조국 : 우파가 공격적이라는 점에서 독수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깨끗하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웃음) 좌파가 지저분한 비둘기 같다고 하시니 서글프다. 송골매 정도로 해주시면 안 되나? (웃음)

외국에서 한국 사회가 과잉 정치화된 사례라고 많이들 얘기한다. 어떤 이슈든 정치화시켜서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고 권력을 획득하려 하니 말이다. '좌빨'이든 '수꼴'이든 정치 전략적 차원에서 상대방에게 딱지를 붙이면서 자기 표를 얻겠다는 전략이다. 외국 기준으로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좌빨'일 리 없지만 국내 보수진영이 그들을 좌파라고 부르는 것은 '빨갱이 콤플렉스'를 불러일으키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해방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결국 뿌리에는 '친(親) 김일성이냐, 친 이승만이냐'라는 질문이 있고, 뭘 선택하느냐에 따라 '친북' 아니면 '반북'이라는 식으로 논변이 재생산되고 있다. 그래서 반(反) 이승만이면서 반 김일성인, 즉 북한 노선도 아니고 이승만이나 이명박 같은 우파의 노선도 아닌 진보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인정되지 않고 있다.

좌파란 단어가 정치적으로 욕설 내지는 저주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이는 보통 사람들이 좌파라는 실체를 알기 전에 그 저주와 욕설을 받기 싫어서라도 사전에 왼쪽으로 가지 못하도록 하는 전략적 측면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바깥(외국)에서 봐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좌빨'일 리 없지만 국내 정치 구조 내에서 그들을 좌파라고 부른다면 아주 강력한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 <좌우파 사전>(구갑우 외 14인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위즈덤하우스
프레시안 :
<좌우파 사전>은 좌우파의 주장과 논리를 동등한 비율로 실었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우파의 힘이 더 센 것 같다. 실제 정치 과정에서 일어나는 좌우파 간의 경쟁이 공정하다고 보는가.

남재희 : 좌우파라고 하니까 비슷한 것끼리의 경쟁 같아 보이지만 한국에서 우파란 커다란 바윗덩어리다. 좌파는 그 바윗덩어리에 일으키는 풍화작용이고. 한국전쟁을 결정적인 계기로 이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집권으로 이어진 현대사, 미군이 주둔하는 상황이 압도적인 우파 사회를 만들었다. 그 가운데 4·19 혁명,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조금씩 풍화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도 절대 좌파 정권일 수 없었다. 본인들이 좌파 정권이 되려고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파의 힘이 압도적인 한국 정치 지형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두 대통령도 신자유주의를 거의 그대로 흡수하고, 재벌 문제도 그대로 방치하거나 오히려 의존하곤 했다. 이른바 '진보적인' 정책을 약간밖에 못했다.

조국 : 일부 동의한다. 전쟁과 분단을 계기로 한반도 전체는 물론이고 남한 내 정치 지형이 과잉 우경화란 형태로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쟁이란 경험의 집단무의식 속에서 사람들이 오른쪽을 택하도록 강요하는 제도, 의식, 문화가 남아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압도적으로 우편향된 정치 지형 속에서도 4·19혁명부터 최근의 촛불 집회까지 파열구를 계속 만들었다.

그런데 권위주의 시대 때는 파열구를 낼 때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민주화 운동은 하지만 결코 빨갱이는 아니야'라는 식으로. 여차하면 빨갱이로 몰려 진짜로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1987년 새 헌법이 만들어지고, 절차적 민주화가 이뤄진 뒤로는 사람들이 그렇게 겁을 내지 않고 한 발 더 나간 게 아닌가 생각된다.

비록 수는 적지만 시민들이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과 같은 진보 정당을 지지하고, 촛불 집회에 나가면서도 자신이 '좌빨'로 몰릴 것을 우려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적극적 시민 속에서는 '빨갱이로 몰린다고? 마음대로 해'라는 식의 정서상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무상 급식 논제를 예로 들어보자.

<중앙일보> 문창극 대기자는 칼럼을 통해 "무상 급식은 북한의 배급제를 떠올리게 한다. 공짜 점심이 실현된다면 도시락 싸가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한다"며 진보 세력이 주장하는 정책을 북한에 등치시키는 아주 전형적인 방법을 썼다. 그런데 많은 시민들이 이 주장에 대해 웃긴다고 생각했다.

과거에는 복지의 영역조차도 '무상'이란 단어 나오기만 하면 사람들이 빨갱이로 몰릴까봐 조심스러워했다. 그런데 지금은 무상 급식이 대중적으로 공유되고, 여기서 더 나아가 의사들과 사회복지학자들이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벌이면서 '좌빨'이 한다는 무상 의료 운동을 벌이는 상황이다.

이런 걸 보면 활동가뿐만 아니라 대중도 좌빨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비난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벗어난 게 아닌가, 파열구를 내는 작업이 더 세진 게 아닌가, 적어도 사회(민주)주의까지는 용인하는 정도는 된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 좌파를 단지 바위에 대한 풍화작용 정도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 그 바위에 정과 망치를 대고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남재희 : 진보 세력은 전쟁이란 상황에 약하다. 전쟁에 당면하면 사회주의 정당은 전부 딜레마에 빠지거나 분열한다. 전쟁의 위협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한반도는 전쟁을 겪었고 지금도 상시 전쟁의 위험이 있는 곳이니 좌파의 힘이 약할 수밖에 없다.

조국 : 우파가 바위처럼 굳건한 건 사실이지만 좌파의 풍화작용도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본다. 작용의 강도나 속도도 과거에 비해 높아지고 있다. 국민들 의식도 과거보다는 훨씬 '좌 클릭'을 한 것 같다. 활동가나 이데올로그들 말고 일반 대중들도 1970~80년대라면 다가설 수 없었던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에 공감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복지는 좌파의 것?

남재희 : 동의하지만 한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복지 차원의 개념과 사회민주주의 차원의 개념은 겹치기도 하지만, 복지에 공감한다고 해서 사회민주주의를 용인한다고 하긴 어렵다. 최근 집권한 영국 보수당도 다른 예산은 다 삭감하면서 의료 예산은 안 깎았다. 우파를 자처하는 보수당조차 복지를 중시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사실 복지라고 하면 레드 콤플렉스를 건드리지 않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지만 사회민주주의라고 하면 'No!'부터 나올 것이다.

말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요즘 '복지사회' 논의가 상당히 힘을 받고 있다. 그런데 보수 진영도 복지 얘기를 하고, 진보 진영 내에서도 시민정치포럼(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시민정치포럼)과 시민회의(복지국가와 진보 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로 갈려진 것처럼 이것이 꼭 좌파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없다.

복지는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문제다. 물론 현재 복지 의제가 확산되는 건 좌파에게 좋은 상황이고 좌파적인 생각이 힘을 얻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지만 복지사회 논의가 풍선처럼 부풀다가 펑 터질 수가 있단 생각이 든다. 말로는 쉽지만 세금 문제가 있지 않은가. 세제를 철저하게 공부해서 분석을 하는 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국 : 말씀하신 대로 복지 자체가 사회주의는 아니다. 영국 사회보험의 토대가 된 <베버리지 보고서>도 좌파 작품이 아니며, 독일 복지 체제도 우파인 비스마르크가 만들었다. 한국도 국민건강보험, 국민연금 제도는 박정희 정권 하에서 시작됐다. 복지 자체는 좌우 모두 쓸 수 있는 도구인 게 맞다.

그렇지만 적어도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무상 급식, 무상 의료 문제는 넓은 의미에서 좌파의 것이다. 과거 우파 중의 우파인 박정희 대통령이 정통성 보완과 지지층 확보 차원에서 시작했던 복지 정책을 현 시점에서 진보 세력이 계승·강화하려고 하는 것이 아이러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복지 얘기를 시작했다. 양극화 문제가 공공의 적으로 대두하면서 일종의 정치적 판단을 내린 것 같다. 결국 우파도 우파의 관점에서 복지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시기가 온 거다. 이렇게 좌우를 떠나 복지 담론 자체는 성장하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는 박근혜표 복지와 민주당표 복지, 민주노동당표 복지는 각각 어떻게 다르고 무엇이 좋은가, 어떤 세제로 뒷받침할 것인가 등에 대해 좌우파 간 경쟁이 중요해질 것 같다.

남재희 : 맞는 얘기다. 박근혜마저 앞으로 대선 캠페인에서 복지를 이슈화할 것처럼 하고 있는 걸 보면 대세는 이미 복지로 기울었다. 그런데 어떤 학자가 아주 재밌는 지적을 했다. 박근혜가 과거에 국가 재정 지출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세금은 적게 받는다는 '줄푸세'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었는데 복지랑 전혀 안 맞는다는 지적이었다. 줄푸세에서 복지 사회로, 과연 궤변 없이 전환할 수 있겠는가. 일관성이 있겠는가. 그 문제에 부딪칠 것 같다.

덧붙여서 한 마디만 더하자. 강조했다시피 복지가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세제 문제를 확실히 해야 한다. 민주당 내에서도 복지의 방편으로 부유세를 두고 찬반 논쟁이 뜨거운데, 부유세가 다가 아니다. 그 외의 세제에 대해서도 철저한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나아가 우선순위를 어떻게 매길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복지 논의가 하루아침에 가라앉을 수 있다.

조국 : 정확한 지적이다. 세금 문제를 외면한 상태로 복지만 얘기할 수 없다. 진보 진영에서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면서 재정 충원 방안으로 부자 증세를 얘기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 그룹의 주장을 실행하려면 부자 증세만으론 부족하다. 중산층 증세도 반드시 감수해야 하는데, 중산층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세금은 적게 내되 복지는 많이 받고 싶은 것이 모든 시민의 속성이다. 그러므로 증세가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지 유권자들에게 알리고 설득하느냐가 복지 정책의 관건이다. 무상 급식까지는 액수 문제가 그리 크지 않아 감당 가능하겠지만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려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닐 것이다.

조직화되지 않은 시민의 문제

남재희 : 해외의 선례 중 유럽 모델과 미국 모델이 있는데 우리 좌파는 주로 유럽 모델, 더 좁게는 스칸디나비아 모델이나 노르딕 모델을 (좋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이 책 <좌우파 사전>의 추천사에서도 소개했지만 근래 읽은 조선대학교 김미경 교수의 논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한국은 유럽형 복지국가가 될 수 없고, 미국형이 될 수밖에 없다.

유럽에서는 "국가와 조직된 노동과 자본 사이의 협상된 동의"라고 정리할 수 있는 전통이 존재하는 반면 미국에서는 "원자화된 개인과 국가와의 직접적 관계를 전제하고, 경제 정책 결정에 조직된 노동의 제도화된 참여를 배제하는 다수결 투표에 의한 정책 결정 패턴"이 있다. 유럽의 경우 봉건시대와 길드 조직의 전통이 겹쳐서 그러한 코포라티즘(Corporatism, 사회적 합의주의)의 전통이 남아있을 수 있었다. '미국형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김 교수의 결론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인데….

복지 관련 학자들이 이처럼 어떤 모델이 더 좋다, 나쁘다 할 게 아니라 그 모델이 성립된 시대적, 사회적 배경과 한국 사회의 배경을 검토해서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게 부재하면 복지국가론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엄청난 장애물을 만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프레시안(최형락)
조국 : 한국이 국가와 원자화된 개인 사이에 중간 집단이나 시민사회가 없는, 미국식 전통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말씀하신 대로 유럽 모델의 기본 전제는 강력한 노동조합과 강력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다. 노조가 90% 이상 잘 조직화되어 있고 그에 기초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장기 집권하다보니 자본이 막강한 노동자와 집권당(사민주의 정당)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구도다. 그런데 한국은 노조 조직률이 10% 겨우 넘는 수준이고, 사회민주주의 경향이 있는 정당 세력을 다 합쳐봤자 소수세력에 불과하다.

그 부분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변화의 여지도 보인다. 요즘 학생들이나 20대 젊은 세대를 보면, 전반적으로 생각이 좌 클릭 되어있다. 전(前) 세대가 봤을 때 우리 세대가 더 왼쪽에 있을 것이고, 우리 세대가 봤을 때 다음 세대가 더 왼쪽에 있다. 이념적으로 그렇다기보다 어릴 때부터 개방적으로 여러 가지 보고 들은 게 많아서다.

내가 중·고등학교 때만 해도 오로지 미국 모델만이 가능하다고 여겨졌다. 사회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유럽식 복지국가는 너희들 죽고 난 뒤에도 안 올 거야"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래서 우리 세대는 그것을 아예 오지 않을 '유토피아'로 여기며 살았다. 그런데 지금 복지국가 논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변화가 있었다는 얘기다. 우리에게 유럽형 전통이 없다는 말씀에 동의하고 그 모델을 당장 실현할 수 없음을 인정하지만, (유럽형) 복지국가가 대중에게 고려 가능한 대안으로 던져진 것도 사실이다. 변화는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남재희 : 젊은 세대의 시민들이 계몽됐다는 얘기엔 동의하나 그들이 의지할 대상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대중은 굉장히 가변성이 크다. 좀 진보적인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보수로 돌아서곤 한다. 매스미디어가 어떤 캠페인이나 트릭을 쓰느냐에 따라 여론의 정치 좌표는 변한다. 만일 시민이 노동조합이나 정당과 같은 조직된 세력이라면 그 트릭을 견뎌내겠지만 조직되지 않은 '촛불 시민' 같은 세력이라면 굉장히 쉽게 변할 수 있다.

나아가 좌우파 담론을 담당하는 이들의 문제를 보면, 최근 우파 담당자들이 착실하게 힘을 키워나가고 있다. 대기업의 힘이 엄청나게 커지지 않았나. 세금 문제를 잘못 다뤘다가는 외국 수출에 주력는 대기업과 정부가 문제를 빚을 것이고, 정책의 우경화를 추진할 수도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도 (정권이) 대기업 손바닥 위에서 놀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확한 진상은 모르지만 노무현 정권의 경우 삼성 손바닥 안에 있었다는 증언이 많이 나오고 있다.

거기다 대기업이 광고로 매스미디어를 좌지우지하고 대학의 교육 방침까지 바꾸고 있지 않은가. 그만큼 힘이 막강하다. 학계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비교적 진보적 학자들이 많지만 앞으로 그런 사람들은 연구비가 끊기거나 하는 식으로 상당한 제약을 받을 것이다. 적극적 시민이라든가 젊은 세대가 막연히 부유하는 층이라면 힘이 없다. 그들이 조직이 되어야 한다.

조국 : 지적하신 대로 한국 사회는 '기업 사회'가 되었다. 과거 국가 권력이 컸던 권위주의 정부 때는 시민들이 국가에 맞서 싸웠지만 지금처럼 자본이 권력을 먹은 시대엔 심지어 시민조차 기업에 자발적으로 복속하고 있다. 또 조직화되지 않은 대중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고, 정당,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으로 조직화된 시민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100% 동의한다.

촛불 대중의 의미

프레시안 : <좌우파 사전>에서도 집단지성과 전문가 권위를 비교하면서 엘리트-대중 관계에 대한 좌우파의 접근법을 소개했는데, 촛불 집회 때 드러난 광장 정치에 대해서 좌우파는 정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남재희 : 앞서도 강조했지만 대중에 의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냥 대중'은 히틀러가 등장하면 히틀러로 조정 가능한 존재다. 그게 의미 있는 대중이기 위해서는 기둥과 주춧돌이 있어야 한다. 역시 조직이고, 특히 중요한 건 정당이다. 길거리 정치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좀 접고 좌파가 과소 대표되는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우파의 특권을 좀 줄여서 좌파의 숨구멍을 터 주려면 비례대표 의석을 늘려야 한다. 만약 개헌을 한다면 첫째로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 지지율 30%짜리 대통령이 안 나온다. 연합의 정치를 통해 이전에 분산됐던 50% 이상의 지지를 낼 수 있도록 훈련을 해야 한다. 그러한 훈련을 통해 정당의 뿌리도 튼튼해질 수 있다. 내각제로 갈 것인지 아닌지는 그 다음 논의 대상이다.

조국 : 일단 비례대표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보고, 개헌을 하게 되면 대통령 중임제에 결선투표제가 결합된 형식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연합정치가 될 수밖에 없다. 60~70% 이상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 다수 대중이 '우리 대통령'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통령, 반대파가 함부로 흔들지 못하는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

광장 정치에 대한 생각은 다르다. 대표적으로 촛불 집회는 이 책이 짚은 것처럼 한쪽은 대중지성이라고 찬양하고 한쪽은 폭도의 난동으로 규정하는 사이에서 논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라고 하기보다 그것이 변화한 과정을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촛불이 처음 나온 게 2002년 효순이·미선이 추모 집회 때였다. 그 전엔 없다가 갑자기 출현한 시위 방식이었다. 굉장히 새로웠는데 8년이 지나면서 하나의 시위 형태로 안착이 되고 그 자체로 문화가 됐다. 2008년에는 이명박 정부에 촛불 알레르기를 안겨줬을 정도로 실질적인 힘을 발휘했다. 이 정부가 1년 동안 아무 것도 못하게 만들지 않았나.

이런 모습을 볼 때 조직화되지 않은 대중은 미약하고 위험할 수 있다는 말씀에는 동의하지만 무조직 대중인 촛불도 나름의 기능을 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2008년 당시 사람들이 확 들고 일어나니까 대의제 속에 있던 권력자들이 깜짝 놀랐다. 촛불이 매일 발생하는 현상은 아니지만, 어느 정권이 나오든 대의민주주의제의 외곽에서 정권을 견제, 비판, 통제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 같다.

촛불이 왜 일어났을까를 생각해 보면 대의제 내에서 진보의 목소리가 과소 대표되는 상황과 연관이 있다. 자기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스트레스가 쌓인다.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해도 사표가 되거나 원치 않는 정권이 등장하니, 자기가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모든 대중은 아니고, 비교적 적극적인 대중의 의사 표현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비례대표제가 안착되면 촛불은 오히려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재희 : 촛불 집회 당시 최장집 교수가 촛불을 위주로 한 시민운동론의 부상을 우려한 바 있다. 한쪽에선 사회주의 정당운동, 노동운동을 땀 흘려가며 하는데 촛불 한 번 들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식으로 사고가 기울어지면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다. 또 독재자가 출현했을 때 촛불 대중이 오히려 반동적인 탄압 정책에 동원될 우려도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좌파만의 경제 정책

프레시안 : 경제 정책 얘기를 해보자. 앞서 복지 문제를 언급하면서 이슈 자체는 좌파가 선점했지만 우파와의 경쟁이 심해질 거라고 했다. 그런데 실제로 시프트(장기 전세 주택) 정책만 해도 우파 정권에서 나온 거고, 좌파 정권에선 차별화된 주택 정책조차 없었다. 과연 이명박과 노무현의 경제 정책에 무슨 차이가 있느냐, 좌파만의 경제 정책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나온다.

조국 : 현 시점에서 복지 이슈는 '좌파의 것'에 가깝지만 이건 언제든 변할 수 있다. 좌파들이 복지 안을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 우파가 집권해 선별적으로 뺏어 쓰며 자기들 기반을 강화할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좌파의 경제 정책은 노동과 복지의 결합이다. 평소에도 '노동 없는 복지'는 위험하다고 자주 강조해 왔다. 아무리 정책상 보편적 복지라 하더라도, 노동이 뒷받침돼 주지 않으면 자본이 베풀어주는 식이 될 수밖에 없다.

거슬러 올라가면 1987년에는 6월 민주화 투쟁과 7~8월의 노동자 대투쟁이 있었지만 6월의 문제만 해결됐고 노동 문제는 잊혀졌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두고 모두가 헤맸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이 문제를 그냥 잊고 싶어 했다. 그러나 실업과 비정규직, 노동 시간 단축 문제, 분배의 문제는 복지가 해결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좌파는 복지에만 '올 인' 하고 노동 문제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결국 좌파의 경제 정책은 노동3권에 그치지 않고 각종 노동 관련 문제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면서 복지를 병행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남재희 : 최근 한 언론에서 임기 절반을 지낸 이명박 정권에 대해 평가해 달라고 해서 첫 번째로는 남북 관계가 틀어진 것을 지적했고 두 번째론 조국 교수가 방금 지적한 얘기를 그대로 했다.

지금 정부에서 '균등 사회' 운운하는데 뭐 얘기는 좋다. 기본적으로 중요한 건 소득의 분배 문제다. 정부가 나서서 재분배 얘기를 하는데, 그거에 앞서 분배가 중요하다. 그러나 균등 사회는 근본적으로 복지를 통한 재분배가 아닌 소득의 분배를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다. 분배는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문제다. 그런데 지금 노동자들을 완전히 조이고 있지 않나. 분배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고.

조국 : 진보 진영에서 조심해야 될 게 있다. 삼성 무노조 정책의 뿌리가 된 미국 월마트의 사례다. 월마트는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높은 임금과 각종 복지를 베풀면서 노동자 복지를 강조하지만 노조는 금지한다. 그런 식으로 한국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공 여부를 떠나 과거 김대중 정부에서 노사정 위원회가 만들어진 건 아주 높이 평가한다. 그런 위원회를 통한 합의가 일종의 코포라티즘이다. 그게 나중에 민주노총의 반발로 반쪽짜리로 전락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디어와 발상은 중요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자로 사는데, 이걸 해결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지금의 진보 진영은 내버려둔 상태다.

노·사뿐만 아니라 정부가 개입해서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 구조화가 안 되니까 지금도 '빨간 띠'로 시작해 총파업, 단식과 구속으로 이어지는 1987년 7~8월의 모습들이 반복되고 있다. 노·사 모두가 지치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라도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아주 강하게 한다.

비합리적인 이명박의 대북 정책

프레시안 : 이번 정권과 지난 두 정권은 남북 관계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그동안 개선된 남북 관계가 이명박 정부 들어 후퇴했는데, 어떻게 보고 있는가?

남재희 : <좌우파 사전>에도 나와 있지만 소위 친북이라고 불리는 범주엔 크게 '대북 화해 협력', '통일 지상주의', '북한 추종' 세 가닥의 흐름이, 반북이라 불리는 범주엔 '대북 적대', '흡수 통일', '전쟁 불사'의 흐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북 화해 협력은 엄밀히 말해 친북이라 할 수 없고 통일 지상주의도 애매하다. 그런데 (현 정부는) 대북 화해 협력 정책을 펼쳤던 전의 두 정부를 '친북좌빨'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명박 정권이 2년 반 동안 꽉 막혀서 북한과의 관계를 거의 다 단절했는데 이것도 외교 전략의 일부이기는 하다. (웃음) 한번 크게 화내고 시치미 뚝 떼는 것도 다 전략이다. 게다가 2009년부터는 미국에 오바마 정권이 들어서면서 좀 변하리라고 생각했는데 부시 정권과 다를 게 없다. 이스라엘과 관련된 이란이나 중동 문제 해결이 더 급하니까.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북한 문제는 나중에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미국은 우리랑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러니 남북 관계는 우리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스스로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게 바람직한데 그러지 않고 있다. 형식상 6자회담에서 나온 기본 틀이란 게 있지 않나. 남북 간 평화협정 맺고 북미 간 외교하고, 구(舊) 유럽의 그것과 비슷한 (동북아) 안보 체제 구성하고…. 현재로선 그 틀 말고는 없는데, 6자회담은 등한시하면서 자꾸 미국 눈치만 보는 것 같다.

일부에선 흡수 통일을 얘기한다. 그게 말이 되나. 난 안된다고 본다. 한국전쟁 때 미군도 많이 죽었지만 중국에서도 희생자가 많았다. 마오쩌둥(毛澤東) 아들까지 싸우다 죽었다. 그런 희생을 치른 중국이 북한을 그냥 내줄까? 안 내 준다. 요즘 자주 나오는 말대로 북한이 '동북4성'이 되면 됐지. 흡수통일론은 망상이다. 그렇게 안 되려면 6자회담에서 비춰진 로드맵대로 나가면 된다. 그러면 우리 민족 문제니까 미국보다 한 발 앞서 나갈 수 있다.

프레시안 : 한국의 우파들은 여전히 북한이 곧 붕괴할 거라는 믿음을 강하게 갖고 있다.

남재희 : 강경파들이 흡수 통일에 대해 착각하는 모양이다. 거꾸로 생각해 보자. 북한이 남한을 공산화한다는 믿음 역시 완전히 '천만에'지 않나. 한국전쟁 때 미국 사람이 한국에서 얼마나 많이 죽었는가. 서로 착각하는 셈이다.

올해 남한 강경파들이 목소리를 키운 천안함 사건만 해도, 나는 진상은 모르겠다만, 그렇게 (대북 대응 조치를) 강하게 밀고 나갈 수 있는 건가? 근래에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가 천안함 사건을 가리켜 "베트남전 확전의 계기가 됐던 1964년 통킹만 사건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는데 이건 굉장한 발언이다. 그레그가 보통 사람도 아니고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인데, 정보도 많겠지만 말 함부로 하는 사람도 아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조국 :
전적으로 동의한다.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의 대북 대응은 한심하다. 아니라고는 주장하지만 사실상의 흡수 통일을 얘기하고 북한 붕괴를 기대하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아주 무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비핵·개방·3000' 구상은 마치 코끼리를 어떻게 냉장고에 넣느냐는 질문에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넣는다. 문을 닫는다."라고 답하는 것처럼 들린다. (웃음)

왜 무능하냐면, 이전 정권 같은 경우 한미 동맹을 기초로 하되 북한을 우리 쪽으로 당겨오려고 했는데 지금은 북한을 욕하고 구박하면서 중국으로 떠밀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선 얼마나 고맙겠나. 북한 항구 사용권, 광물 자원 계약 다 중국이 가져갔다. 이명박 정권이 친미파를 위장한 친중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웃음)

이 사람들 왜 이럴까 따져보니, 한국의 우파들도 정치 과잉인 것 같다. '과거 정권을 엎어야 한다', '잃어버린 10년이다', 이런 구호들에 매몰돼 있는 거다. 표를 얻기 위한 구호로는 성공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실제로 그걸 실행하고 있는 게 문제다. 정권을 잡기 위해 전 정권을 비판하면서 사용했던 구호와 집권 후 실제 한반도 관리를 혼동하고 있다. 제대로 된 통일 정책이 없고, 통일부 장관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결국 무정책이 정책이고 결과적으로 친중 정책인 셈이다.

남재희 : 옛날 소련이 망하기 전에 외교 정책에서 말이 참 고약했다. 그때 미국의 현명한 학자들은 '프로파간다(말)와 프랙티스(실천)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소련이 말로는 세계 혁명, 전 세계 공산화라고 하더라도 그걸 실제로 그렇다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거다. 시원찮은 평론가들은 소련이 하는 말을 그대로 옮겨서 반박하곤 했다.

예전에 대만에 두 번 정도 갔는데, 중국에 대해 '대륙 수복'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가 막혀서 친한 학자한테 그게 말이 되냐고 물었더니 "그게 우리의 공격적 방어(offensive defense)"라고 설명하더라. 공격이 곧 방어, 공격적인 말로 자기 방어를 한다라! 썩 납득됐다.

지금 북한을 대하면서도 그런 걸 염두에 둬야 한다. 1970년대까지는 말과 현실이 같을 수 있었다 하더라도 현재 북한은 어떤가. 국민총생산(GNP)이나 국방 예산, 무기 다 형편없는 수준이다. 거기에 비하면 한국군은 최신 수준인데다가 주한 미군까지 있다. 주한 미군은 북한이 상대인 정도가 아니다. 중국을 상대할 군사력이다.

다른 나라들의 군사 예산을 합친 것만큼 많은 돈을 쓰는 게 미국이다. 군사 기술도 엄청나다. 최근 동해에서 조지워싱턴 호까지 동원돼 한미 연합 훈련을 하지 않았나. 군사 훈련은 전쟁 반보 전까지 가는 거다. 북한이 위협을 안 느낄 수가 없다. 미국 같은 어마어마한 군사력이 북한을 타이르고 해야지….

물론 북한의 핵 보유는 용인될 수 없는 일이고 위협적인 일이다. 그런데 그 해결에 있어서도 주거니 받거니 딜(deal)을 해야 한다. 북한을 권총 강도로 생각해 보자. 권총을 쥐고 돈을 내놓으라는 상대한테 "권총 내놓으면 돈 줄게"하면 순순히 내놓겠나. 주고받기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점점 신뢰를 구축하고, 마지막 단계에서 핵 폐기가 되어야 현실적이지. 핵 먼저 폐기하면 돈 주겠다는 논리는 흥정 하지 말잔 얘기다.

조국 : 얼마 전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 통일 비용을 계산했는데 북한이 급격히 붕괴해 통일에 이를 경우, 북한이 서서히 개방하여 경제 발전 과정을 거치는 경우에 비해 7배 이상의 비용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런 비용을 감당할 수도 없으면서 북한의 붕괴를 기대하거나 기대를 드러내는 건 매우 위험하다.

북한이 붕괴되면 곧바로 미군의 보병들이 두만강에 배치되는 건데, 베이징(北京) 코앞까지 미국 군대가 와 있는 상황을 중국이 용납하겠는가. 미중 전쟁으로 치달을 게 아니라면 붕괴론은 폐기하고, 6자회담이라는 틀을 통해 북한을 연착륙시킬 수밖에 없다. 통일·외교 쪽은 좌우파 상관없이 합리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문젠데 이명박 정권은 참 이상하게 가고 있다.

프레시안 : 끝으로 한국 좌파와 우파에 충고 한마디씩을 부탁한다.

남재희 : 도덕 교과서 같은 얘기지만 좌우파 모두 존재 의미가 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묵살하지 않고 상호 존중하고 비판하는 속에서 발전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것은 토론과 투표를 통해서만 달성된다. 그 외의 쿠데타나 폭력과 같은 방법으로는 악순환만 야기할 뿐이다.

우리 좌파 중에서는 북한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하지 않고 있는 부류가 있다. 그 인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특히 강정구 교수 같은 사람은 언행에서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본다. '미국이 한국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한국은 통일됐을 텐데'라는 식의 언행은 정말 신중하지 못한 것 같다.

예전 서슬 퍼런 시절에 신상초 씨가 내게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는 요령을 가르쳐준 적이 있다. 글 앞부분에 북한에 대한 욕을 꼭 하고 그 다음에 박정희 욕을 한다는 것이다. 그에 앞서 박정희 비판하다가 중앙정보부 서너 번 끌려갔던 내가 '그 장사 비법을 왜 이제야 가르쳐 주냐'고 했었다. (웃음)

그런 비법이 우리 진보한테도 꼭 필요하다는 얘기다. 북한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서 남쪽 비판을 하면 강정구 교수의 말처럼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파에게는 "보수란 수구나 반동이 아니라 전통과 질서를 존중하며 점진적 개혁을 모색하는 것"이라는 보수주의의 원류, 에드먼드 버크의 말을 되새기라고 하고 싶다. 기득권에 거머쥐고 못 내놓겠다고 하는 게 보수가 아니다. 그걸 내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변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홍세화 씨가 강조하는 똘레랑스(관용)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진보 세력이 국회의 3분의 1 이상인 상황에서 좌파와 우파가 잘못 충돌한 가운데 촛불 대중까지 동원되면 파시즘이 나올 수도 있다.

조국 : 반대파란 절멸해야할 적이 아니라, 논쟁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틀이다. 한마디로 '적과의 동침'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하고 생각이 다른 이들과의 공존이다. 서로의 진영 간에 큰 차이가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합의의 영역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본다. 합의의 영역이 많아질수록 논쟁의 진폭이 좁아진다. <좌우파 사전>도 거기에 일조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한국 좌파들은 현실적으로 북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한민족이기 때문에 옹호하는 논리나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하는 태도는 경계해야 할 것이다. 북한을 교류와 통일의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체제의 억압성과 후진성은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억압성과 후진성을 모두 '미제'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민족주의는 원래 우파의 것인데, 한국의 우파는 반민족주의적인 것 같다. 미국의 이해와 자신의 이해를 동일시하고, 나아가 북한을 중국에 넘겨주는 선택은 그만해야 한다. 그리고 전 세계의 우파가 강조하는 도덕과 전통이라는 가치도 제대로 지켜주었으면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