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관계를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적 사고가 문제다. 큰일이다. 북중관계는 남의 일이 아니다. 강화되는 북중관계가 한반도의 새로운 질서로 작동하고 있다. 정확하게 봐야 한다. 왜곡된 시선들을 몇 가지 쟁점으로 나누어 바로 잡고자 한다.
■ 후계 문제를 논의했을까?
세자책봉이라는 말은 선입견에 불과하다. 최소한 북중관계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하기 어렵다. 양국 관계에서 내정불간섭 원칙은 오랜 경험을 거치며, 확립되어 있다.
중국과 소련이 영향을 미친 1956년 8월 종파사건은 김일성 유일체제로 넘어가는 계기를 제공했으며, 1960년대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이 북한 체제를 비판하면서, 심각한 냉각기를 거치기도 했다.
후계 체제는 양국 관계에서 논의 사항이 아니다. 중국은 북한이 결정하면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중국에는 북한의 후계 체제를 승인할 권한도, 영향력도, 의사도 없다. 물론 김정일 위원장 입장에서 후계자의 경험을 쌓게 한다는 입장에서 데리고 갈 수는 있다. 김정은이 이번 방중에 수행했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면 북한은 정상회담 보도에서 왜 후대의 역할을 강조했을까? 선대, 당대, 후대로 이어지는 조중 친선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동북 지역은 동북항일연군으로 상징되는 선대 조중 친선의 상징적 장소다. 양국 정상 모두 이 지역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했다. 당대의 친선은 최근의 양국관계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고, 이러한 관계가 후대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것이 2009년 10월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발언이나, 현재 양국 지도부가 갖는 공통의 인식이다.
여기서 북한의 후계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정리될 필요가 있다. 김정은 후계 체제의 형성을 증명하는 증거들이 포착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의 후계 문제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우선적으로 김정일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의 국방위원회 진입과 더불어 후계 체제의 기반을 구축하는 단계가 이미 진행되었다. 9월 초 당 대표자회가 열리면, 장성택을 포함한 현재 국방위원회의 핵심 인물들이 당에서도 중추적인 지위를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언제, 어떤 직책으로 국정 운영에 참여할지의 문제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이번 당 대표자회에서 후계자로 공식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후계 체제는 앞으로 좀 더 많은 과정과 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다. 이번만 때가 아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 중의 하나는 여전히 김정일 위원장이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이번 방중을 통해 중요한 국정 운영을 감당할 만큼의 건강 상태를 보였다. 그리고 장성택 중심의 후계 과정 관리 체제가 제도화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김정일 위원장과 후진타오 주석의 만찬 장면 ⓒ중국 CCTV 화면 캡쳐 |
■ 6자회담을 북한이 결정할까?
현재의 북핵 상황에서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겠다고 하면 6자회담이 열리는가? 북한의 결정에 따라 6자회담이 좌지우지 되는가? 그것은 북핵 문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얘기다. 6자회담의 진전은 상호 관계다. 그것이 협상의 기본이기도 하다.
북한은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다. 9.19 공동성명에 따라 미국,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고, 에너지·경제 지원이 이루어지고, 한반도 평화체제가 이루어지면 북한은 핵을 포기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포괄적 접근이라고 하고, 방법론으로 동시병행 해결이라고 한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불분명하고, 대화에 소극적이고, 한미 양국이 제재 국면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선제적으로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이다. 다시 말해 현재의 상황에서 북한이 새로운 접근을 제기할 수 없다. 북한의 성의 있는 조치를 원한다면, 한미 양국도 그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6자회담의 기본 구도를 이해한다면 왜 김정일 위원장이 평양에 온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나지 않고 중국으로 갔는지에 대한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카터 전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방북 목적은 억류되어 있는 곰즈 씨를 석방시키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억류자 석방 협상의 원칙이 있다. 공식적으로 정치·경제적 보상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작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구금된 여기자들을 데리러 평양에 갔을 때도 말을 아꼈고, 돌아가서도 일체 양국간 현안 논의를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카터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미국 정부가 카터의 역할이 곰즈 씨 석방이라고 명확하게 선을 그은 이유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비공식적으로 카터 전 대통령이 북미 양국 관계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북한은 판단했을 것이다. 현재 오바마 행정부가 보여주는 태도로 보면,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다. 그렇다면 원론적인 차원에서 6자회담에 대한 북한의 기본 입장, 즉 참여할 의지는 있으나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카터 전 대통령에게 하는 것이 얼마만큼의 효과가 있는지를 계산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카터를 만나는 대신 중국에 가서 그 기본 입장을 전했다. 최소한 현재 국면에서 중국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이다.
6자회담 재개를 둘러싸고 중국이 움직일 것이다. 그러나 최종 판단은 미국이 해야 한다. 미국은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실질적인 효과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재확인시켜주었다. 6자회담에 또 다른 난관을 조성했다. 미국이 제재만큼이나 대화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6자회담 재개에 필요한 환경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 북중 경제협력은 중국의 시혜인가?
북중 경제협력을 중국의 시혜로 보는 시선이 있다. 북한이 6자회담에 대한 양보를 하고, 중국은 그 대가로 경제지원을 약속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북중 경제협력의 현주소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현재 북중 경제협력은 양국 모두 이익이 있다. 어쩌면 중국, 특히 동북 3성의 이해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동북 3성, 특히 창지투 개발 구상에서 북한은 핵심적 역할을 차지한다. 북한은 동북 3성이 동해로 나아가는 출구이며, 철광석을 비롯한 원자재 시장이고, 생산기지이기도 하다. 현재 북중 경제협력은 중앙정부 차원의 공적 지원보다 동북 3성의 경제적 필요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정치논리보다 경제논리가 현재 북중경협을 끌고 가고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북한 역시 남북 경제협력이 중단된 상태에서 유일한 경제협력의 상대가 중국이다. 동북 3성의 개발과 연계해 물류를 정비하고, 무역을 활성화하고, 자본을 유치할 수 밖에 없다. 남북경협 중단이 북한의 대(對) 중국 경제의존도를 빠르게 심화시키고 있다. 정치논리로 해석하는 잘못된 인식은 북중 경협 강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보지 못하게 했다.
■ 북중동맹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북중관계를 잘 봐야 한다. 전후 동북아 역사에서 지금처럼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양국의 전략적 일체감이 표현된 시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한미동맹 강화가 가져온 부산물이다. 중국이 북중관계를 공고한 동맹관계로 전환하고자 한 전략적 결정을 내린 시점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다.
그리고 천안함 이후 강화된 한미 군사동맹이 북중관계 밀착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번 북중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그 점을 분명하게 강조했다. 남북관계의 군사적 긴장 조성이 결국 한미동맹과 북중동맹의 대립 심화로 나타나고 있다.
북중 양국은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영역에서의 협조를 강조한다. 정치는 포괄적인 조중친선의 강조로 나타나고, 경제는 창지투와 북한의 협력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그러면 군사적 협력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양국 군사협력이 구체화될 수 있을까? 최근 양국 관계에서 이 부분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보이는 부분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예를 들어,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지만, 중국의 입장에서 경제가 아니라 군사적 측면에서 동해 쪽 출구를 갖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중국의 군사적인 측면에서의 태평양으로의 진출을 의미한다.
북중 경제협력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개방을 한다면 좋은 일이다. 그것이 북한의 경제 정책 변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북중 경협은 남북 경협과 경쟁관계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북한의 자원과 노동력은 한정되어 있다. 한정된 북한의 비교우위를 중국이 차지하면, 남쪽에게 돌아갈 몫은 줄어든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끝날 때까지 지금처럼 남북 경제협력이 중단된다면, 그리고 그동안 북중 경협이 활성화된다면 어떻게 될까? 통일비용이 증가할 것이다. 북한의 산업, 기술, 소비재의 중국식 표준이 정착된다면 우리는 통일이 되더라도 표준 통일에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북중 경협의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부정적 측면이 크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특히 통일비용에 대해 고민하는 정부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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