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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강용석과 '강간범' 폴란스키의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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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성희롱' 강용석과 '강간범' 폴란스키의 차이는?

"스위스는 부자 유명인에게 특권 부여하는 나라"

국내 영화감독 중 가장 뛰어난 예술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스타감독이 있다고 하자. 그가 영화 촬영을 미끼로 13세 소녀를 집으로 끌어들여 술과 마약을 먹이고 강간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면, 그것도 이 범죄를 포함해 아동 성추행, 남색 등 6가지 중범죄 혐의로 기소된 상습범이라면 국내 언론들은 어떻게 보도할까.

설마 그가 재능이 뛰어난 예술가이기에 용서해줘야 한다거나 애써 침묵하거나 축소 보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지난 24일 영화배우이자 가수인 부인 엠마누엘 자이그너의 공연장을 찾았다가 카메라에 포착됐다. ⓒEPA=연합뉴스

폴란스키가 국내 유명 감독이었다면?

또한 그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기다리던 중 외국으로 도피했으며, 이 나라가 우리나라와 범죄인 인도 협정을 맺었는데도 혐의를 입증할 완벽한 서류를 보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감독의 추방을 거부하고 자기 나라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었다면, 우리 언론은 이 나라를 "예술가를 알아주는 문화의 나라"라고 칭찬하기보다는 "법의 정의를 짓밟는 나라"라고 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 로만 폴란스키는 바로 이런 사건의 장본인이지만 국내 언론으로부터 사실 보도의 대상에 머물러 있다. 국내 언론들이 강용석 의원과 고창군수의 성추문 사건에는 그토록 추상같은 비판을 쏟아내면서, 그보다 훨씬 심각한 유명인사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남의 일'처럼 다루는 이유가 단지 외국인의 행위여서라면 이해하기 힘들다.

<피아니스트> 등 전세계가 알아주는 수많은 영화를 감독하고 아카데미 감독상까지 수상한 폴란스키를 둘러싼 사건들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폴란스키는 지난 24일 영화배우이자 가수인 부인 엠마누엘 자이그너의 공연을 보러 스위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 참석하며 자유의 몸이 된 기쁨을 만끽했다.

프랑스 <AFP> 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영화 <피아니스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폴란스키는 스위스 정부가 미국의 추방 요청을 거부하고 가택연금도 해제해준 이후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외출한 이날 스위스로망드 TV와의 인터뷰에서 "스위스와 특히 나를 확고하게 지지해진 사람들에게 깊은 우정을 느끼고 있다"고 기쁨을 표현했다.

재능 있는 예술가는 성범죄 정도는 눈감아달라?

우디 앨런, 마틴 스코세이지, 왕가위 등 전세계 유명 영화인 150여명이 폴란스키의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서에 서명하고 나서준 것에 감사를 표시한 것이다. 이들은 폴란스키처럼 재능있는 예술가를 수십년전에 저지른 성추문으로 옭아매는 것은 너무하다는 취지로 스위스 정부에게 폴란스키를 조속히 석방해줄 것을 요청했다.

폴란스키는 여전히 188개국에서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인터폴에 수배된 신세는 면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폴란드 출신의 프랑스 국적자인 폴란스키는 프랑스와 폴란드, 스위스에서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

특히 스위스는 상당히 모순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스위스 정부는 지난해 9월 미국의 요청에 따라 폴란스키를 체포한 뒤 가택연금 조치를 한 뒤 지난 12일 돌연 미국의 인도 요청을 거부하고 폴란스키를 자유의 몸이 되게 했다.

이들 나라의 논리는 사뭇 초법적이고 노골적이다. 프랑스의 프레데릭 미테랑 문화부 장관은 지난해 9월 폴란스키가 체포되자 "폴란스키가 느다없이 사자굴에 던져졌다"고 비난했으며, 자크 랑 전 문화부 장관은 "미국 사법체계의 과도한 형식주의"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의 이런 태도는 프랑스 국민들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 <르 피가로>의 여론조사에서도 70%가 넘는 프랑스인들이 "폴란스키는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응답했다.

유럽의 수많은 예술계 인사들은 폴란스키를 적극 옹호하고 있다. 하지만 그 논리는 누구나 법의 심판을 거쳐야 한다는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기껏해야 13세 소녀를 강간한 지 33년이나 지났고, 이제는 40대 중반의 나이가 된 피해자 사만사 가이머가 "어린시절부터 이 사건으로 너무나 큰 고통을 받았으며 이제는 나 스스로 이 사건에서 해방되고 싶다. 그를 용서한다"고 말했으니 용서해줘도 되지 않느냐는 논리다.

올해 베니스영화제 최우수감독상에 빛나는 상습성범죄자

이것은 사실 자체를 왜곡하는 논리다. 폴란스키는 사만사 가이머를 성폭행했다는 1건의 혐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초 여러 건의 아동 성추행과 남색 등 6가지의 중범죄 혐의로 기소됐으나, 유죄를 하나라도 인정받기 위한 사법당국과의 협상(플리 바겐)에서 사만사 가이머 건 하나로 줄여준 것이다.

당시 재판관할법원인 LA지방법원 판사는 다른 혐의들을 제외해주고 폴란스키에게 우선 90일간의 정신감정을 받도록 했다. 하지만 정신감정 결과는 정상이었다. 다만 재범 우려가 적다는 의견이 첨부돼 42일만에 가석방됐다. 하지만 폴란스키가 정신이 멀쩡한 상태에서 성폭행을 했기에 판사가 유죄판결을 내리려는 의지를 보이자 폴란스키는 외국으로 도피했다.

이에 따라 폴란스키 사건은 범죄 시효가 성립하지 않은 채 그동안 그는 감독으로서 별다른 구애를 받지 않고 수많은 영화를 만들어 왔다. 지난달 2일 국내에도 개봉한 <유령작가>는 올해 제60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은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 법조계 인사는 "누구든지 범죄 혐의자로 만들 수 있는 법은 있어도, 힘 있는 자를 처벌하는 법은 없는 게 현실인 것 같다"고 개탄했다. 사법기관이나 집행기관은 중범죄의 혐의가 있는 사람도 그가 특별한 사람이면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강의에 대해 일각에서는 '지적 유희'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하는 이유가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스위스의 이번 결정에 대해 스위스의 현지의 한 신문도 "폴란스키에 대한 스위스 정부의 결정은 초갑부들에게 낮은 세율의 혜택을 주는 나라로 잘 알려진 이 나라가 부자이자 유명한 인사가 스위스에서 특권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신문은 "이번 사건의 주인공이 로만 폴란스키가 아니라 무명의 배우였다면 이미 그는 미국의 법정에 서있을 것"이라는 LA 검찰 관계자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 특히 엄격한 미국의 여론은 폴란스키가 법의 심판을 정식으로 받아야 한다는 입장에 기울어 있다. 미국에서는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은 사람은 강간에 의한 것이 아닐지라도 정신병자, 아동성도착증으로 간주하고 강력한 처벌 규정을 적용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폴란스키가 과연 미국의 이런 법망을 끝내 피하지 못하고 법정에 다시 서게될지, 그리고 그의 영화 팬들은 이런 사정들을 다 알면서도 여전히 그의 영화를 편하게 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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