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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의 달콤한 속삭임, MB 외교는 성공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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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의 달콤한 속삭임, MB 외교는 성공했나?

[기자의 눈] 미국만 바라본 '천안함 외교'가 치러야 할 대가

이명박 정부는 또 다시 성공했다. 미국을 자기네 편으로 꽁꽁 묶어 놓는 데 성공했다. 취임 후 2년 동안 북핵과 한반도 평화체제를 빅딜하려는 미국의 발목을 잡았던 게 첫 번째 성공이었다면, 천안함 외교전의 승리는 두 번째 성공이다. 21일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을 통해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무너지거나 제 발로 고개를 숙이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전략에 미국을 확실히 동참시켰다. 미국은 '전략적 인내'라는 그럴싸한 말로 이명박 정부와의 영합을 포장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있어 천안함 외교의 대상은 오로지 미국이었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부차적인 상대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에 의한 천안함 피격'을 공인받으려 했지만 그건 액세서리 같은 것이었다. 공인받으면 좋고 안 받아도 그만이었다. 안보리 의장성명에 천안함 공격의 주체가 빠졌기 때문에 천안함 외교가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와도 아프지 않았다. 애초부터 중요한 것은 '대미 외교전'이지 '유엔 외교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미 외교전은 녹록치 않았다. 진땀 깨나 뺐다. 미국은 틈만 나면 6자회담을 얘기했다. 천안함 문제가 해결된 뒤에야 6자회담이 가능하다는 이명박 정부는 그런 미국이 야속했다. 못 미더웠다. 미국은 또 꽤 오랫동안 간접화법을 사용했다. '천안함은 북한의 공격으로 침몰했다'고 하지 않고 '그렇다는 한국의 조사 결과를 존중한다'고 했다. '천안함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겠다'고 하지 않고 '한국이 회부하면 지지하겠다'고 했다. 안보리에서 한국을 전폭 지지한 것도 아니었다.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안보리에서 대북 비난 결의안이 채택되길 원하는 한국의 바람에 곤혹스러워 했다고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미국은 대규모 합동 군사훈련으로 대북 무력시위를 하고 싶어 하는 한국의 제안에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훈련은 세 차례나 연기됐다. 훈련 내용을 언론에 흘리는 한국에 미국은 짜증을 냈다.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은 대북 심리전을 재개하겠다는 한국의 방침에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가 참가하는 대규모 연합훈련은 결국 동해에서 하는 것으로 절충됐다.

▲ 21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오른쪽)이 한덕수 주미대사(왼쪽)의 영접을 받으며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미국을 향한 그 구애의 가슴앓이는 사상 최초의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을 통해 완전히 치유됐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더 이상 달콤할 수 없는 언어로 미국이 배신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숯검댕이 된 이명박 정부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유엔 안보리가 권고한 '대화와 협상'이란 말은 한 번도 입에 담지 않고 '제재와 압박'만을 이야기했다. 금융제재까지 시사하는 대목에서 이명박 정부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미 합동 군사훈련은 <경향신문>의 기사 제목대로 "웬만한 국가 총력전 규모"로 치르기로 했다. 동해로 장소를 옮긴 데 따른 서운함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외교·국방장관 공동성명에는 "동해와 서해에서 향후 수개월에 걸친 일련의 연합 군사훈련"을 한다고 돼있다. 오히려 동해로 옮기길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지도 모른다. 비무장지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전쟁기념관으로 이어지는 장관들의 한국 방문 코스는 천안함 외교의 승리를 자축하는 레드카펫이었다. 그러고 보면 지지층이 오매불망 꿈꿔왔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까지 쟁취하지 않았던가.

물론 정부가 완전히 마음을 놓기는 이르다. 미국의 선물은 북한 때리기로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려는 이명박 정권을 달래기 위한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수개월에 걸친 일련의 연합 군사훈련"은 정세가 바뀌면 언제든 축소·백지화될 수 있다. 미국이 북한에 특사를 보내려 한다는 소리도 들려온다. 미국이 내놓은 대북 조치의 강도는 클린턴 장관의 4월 23일 '에스토니아 발언'을 넘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전쟁 얘기가 나오지 않길 바라고,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응을 유발하는 행동이나 오판이 없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대화 쪽으로 정세를 갑자기 바꿀 것 같지도 않다. 적어도 당분간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동맹국의 의견을 중시하고 우선순위가 앞서는 다른 일을 막기에 바쁜 오바마 정부의 기존 일처리 방식이 변경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가 한반도 정책을 새롭게 정립했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이해가 없다시피 한 '비확산파'들은 여전히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문제는 '천안함 대미 외교'라는 좁은 목표의 성공이 '이명박 외교'의 실패를 잉태했다는 점이다. 첫째, 중국을 잃었다. 중국은 이번 국면에서 겉으로는 한국과 미국을 동시에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본심을 드러내는 관영 언론들이 최근 그 과녁을 한국에 맞추고 있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다. 국내 일류 기업들이 '대중 외교 이렇게 하면 우리 중국에서 사업 못 한다'는 보고서를 청와대에 올렸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암울한 전조다. 비단 경제 관계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적 관계에 있어서도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둘째, 미국에 치러야 할 비용이 커졌다. 오바마 정부의 전폭적인 협조를 얻어낸 만큼 돌려줘야 한다. 한미 FTA, 아프가니스탄 파병, 그리고 드러나지 않은 여러 분야에서 한국은 미국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끝으로 가장 심각한 것은 역시 북한의 핵 능력 강화다. 서울에 온 클린턴 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의 강경 발언을 접한 북한이 선택할 카드는 이제 다른 게 없다. 핵융합 실험에 성공했다는 북한은 머잖아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에 이르렀다는 성명을 발표할 것이다. 이번 국면에서 한·미 양국에 단단히 뿔이 난 중국은 제어가 가능한 선에서 북한의 행동을 묵인할 공산이 크다. 이명박 정부의 천안함 외교, 성공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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