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 대표는 1990년 후반 북한의 대기근과 남한의 IMF 경제위기를 목도하면서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1999년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를 만들어 평화운동과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2006년 9월부터 2007년 8월까지 미국 조지워싱턴대 객원연구원으로 한미동맹과 북핵 문제를 연구했습니다.
이밖에 정 대표는 'MD 저지와 평화실현공동대책위원회' 공동 집행위원장, <한겨레> 언론비평위원,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 등을 지냈습니다. 2004년에는 <한겨레>가 뽑은 '미래의 한국을 이끌어나갈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고, 현재는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글로벌 아마겟돈: 핵무기와 NPT>(2010년, 책세상), <21세기의 한미동맹은 어디로>(2008년, 한울), <북핵, 대파국과 대타협의 분수령>(2005년, 창해), <동맹의 덫: 지독한 역설, 두 개의 코리아와 미국>(2005년, 삼인), <2003년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2003년, 이후), <오바마의 미국과 한반도 그리고 2012년 체제>등이 있습니다. <편집자>
▲ 지난 5월 24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특별담화를 발표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장성명 채택 후 이 대통령의 '5.24 담화'는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청와대 |
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천안함 사태 관련 의장성명이 지난 9일 나왔다. 절충과 타협으로 남북한을 비롯한 관련국들의 우려와 요구를 병기하고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준이다. 이에 관심의 초점은 천안함 침몰과 함께 좌초 위기에 놓였던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의 재가동 여부에 모아지고 있다.
우선 북한의 적극적인 대화 제의가 주목된다. 북한 외무성은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 하루 뒤인 10일 "우리는 평등한 6자회담을 통하여 평화협정 체결과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일관하게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선 9일에는 북미 장성급회담 개최를 협의하기 위한 대좌(대령)급 실무접촉을 13일 판문점에서 갖자고 미국 측에 제의했다.
이러한 북한의 발 빠른 행보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우선 북한은 한미 양국에게 천안함 침몰 사태로 조성된 전면적 대결 분위기를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을 계기로 조속히 해결하고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등 근본문제 해결에 나서자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입장에 한미 양국이 유연하고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호응한다면, 6자회담의 문은 의외로 빨리 열릴 수 있다.
모든 문제가 후계체제 때문?
더욱 주목할 것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검증해볼 수 있는 기회가 오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 양국 내에서는 작년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북한의 핵포기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다며, '전략적 인내론'과 '북한급변사태론'에 경도된 모습을 보여 왔다. 특히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북한의 후계체제 구축을 내세우면서 북한이 '2012년 강성대국론'의 핵심으로 핵무장을 선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공격으로 단정하고 북한의 공격 동기를 후계체제 구축 과정에서 김정은에 대한 군부의 충성을 확보하기 위한 도발로 보는 시각도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후계체제 환원론'은 근거도 부족할뿐더러 자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 북한이 말하는 '2012년 강성대국론'의 핵심은 먹고사는 문제 해결에 있다. 북한은 핵문제와 관련해서 공식적으로는 '조선반도 비핵화' 실현을 2012년 강성대국론의 목표로 삼고 있는데, 이는 미국의 대북 핵위협 해소를 포함한 평화체제 구축을 비핵화 달성의 조건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설명이 북한이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함은 아니다. 다만 '북한이 2012년 강성대국론의 핵심으로 핵무장을 삼고 있다'거나 '김정일이 후계자인 김정은에게 핵무기를 넘겨주려고 한다'는 식의 화석화된 선입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선입견에 사로잡힌 대북정책은 '자기 충족적 예언'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즉, 북한이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해 대북 강경책으로 일관하면 할수록 북한의 핵무장 능력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북한은 안보리 의장성명에 반발하지 않고 대화 제의에 나섰다. 이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검증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판문점 장성급 회담을 제안한 미국측의 요구를 사실상 수용해 북미 대좌급 실무접촉 수정 제의를 해온 것이나, 지난 1월 불법으로 북한에 들어갔다가 장기 억류 상태에 있는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가 자실을 시도했다고 보도한 것 등도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의지를 엿보게 한다.
천안함 사태, '재발 방지'에 주목하자
관건은 이명박 정부의 선택이다. '선(先) 천안함 해결, 후(後) 6자회담 재개'라는 기존의 경직된 입장을 고수할 경우 상황은 계속 꼬일 수 있다. 정부는 북한에게 시인과 사과, 그리고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 약속을 요구하고 있지만, 공격 행위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북한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한 MB 정부가 북한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국내외의 일부 전문가들이 합조단의 조사 결과에 대한 과학적 반박에 나선 상황이고, 러시아 정부도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의 공격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 북측 역시 남측에서 사과를 요구할수록 재조사 요구로 맞불을 놓을 것이다. 이는 한미 양국이 북한을 비난하면서 사과를 요구할수록, 이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책임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더더욱 커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 양국이 가능성도 없고 재조사 수용 부담을 야기할 북한의 시인과 사과에 집착하지 않고, '재발 방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천안함 출구는 열릴 수 있다. 북한은 미국에게 군사 실무회담을 제안한 배경에 대해 "미군측은 우리측에 '비극적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조미 군부 장령급회담을 가질 것을 거듭 요청하여왔다"고 설명한 것은 북한도 재발 방지에는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미 양국의 사과 요구와 북한의 재조사 요구라는 상호배타적인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남북미 3국이 재발 방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천안함 사태가 서해상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비핵화 의지는 대화로 확인해야 한다
북한이 6자회담 재개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보인 것에 대해, MB 정부 고위 관계자가 천안함 사태에 대한 북한의 사과와 함께 "북한이 먼저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6자회담 재개가 가능하다"고 말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설득하고 확인해야 할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삼는 것은 외교의 기본 책무와 목표를 도외시한 접근이기 때문이다.
MB 정부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면서 6자회담 재개에 소극적으로 나올 경우, 이미 갈등 관계에 빠진 대북·대중·대러 관계의 추가적인 악화는 물론이고 동북아에서 한국의 입지를 더욱 위축시키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정부는 한미공조를 맹신하고 있지만, 이번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 과정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동북아에서의 현실적인 힘은 미중관계에 있다. 이는 한국이 남북관계를 도외시하고 6자회담 재개에 소극적일수록 나타나는 동북아 지정학의 핵심적인 메커니즘이다. 미국도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을 계기로 냉각기를 거쳐 '6자회담을 통한 비핵화'에 초점을 맞추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MB 정부가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한다면, 이러한 동북아 정세의 흐름은 MB 정부에게 '환상적인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북-중-러 3국 모두 6자회담 재개에 관심을 보이는 만큼, MB 정부가 이에 호응하고 주도한다면 이들 나라와의 관계를 개선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MB 정부를 적극 도울 준비가 되어 있는 만큼, 한국 주도하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달성할 수 있는 한미관계의 조건도 상당히 성숙해 있다.
▲ 필자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
결론적으로 오늘날 한국 정부는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힘도 있고, 이를 주도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도 있다. 이러한 조건과 환경을 잘 살린다면, MB 정부는 20년을 넘긴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60년이 다가오는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는, 그래서 역사에 기리 남는 업적을 세울 수 있다. 임기의 반환점을 앞둔 MB 정부에게 지혜로운 선택을 거듭 촉구하고 싶은 까닭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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