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 부채 비율이 100%가 넘는다고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정부 부채는 개인의 부채와 다른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기침체 때는 정부 부채를 늘려서라도 효과적으로 사용해 경제를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처방도 이런 논리에서 나온다.
포르투갈 등 '제2의 그리스' 후보 속출
하지만 현실을 살펴보면 정부 부채 비율이 100%가 넘어가는 나라들은 대체로 효율적인 공공지출에 의문이 제기되고, 막대한 외채, 경쟁력 상실, 경기침체라는 문제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부채더미에 오른 유로존의 이른바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국가들 중 부채비율이 120%가 넘어가며 부도설이 나도는 그리스 사태는 '부채발 위기'가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지난 15일 <뉴욕타임스(NYT)>는 PIIGS 중 포르투갈을 '제2의 그리스'로 가장 유력한 후보로 지목했으며,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스페인을 그리스나 포르투갈과는 차원이 다른 '중량급 부도 후보'로 꼽기도 했다.
이와 관련, 금융위기 전망에 관한 한 정평 있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최근 '죽음의 부채 덫(The Debt Death Trap)'이라는 글을 통해 그리스를 비롯한 PIIGS 국가들이 이번 위기를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이유를 분석해 주목된다.
다음은 이 글의 주요 내용이다.<편집자>
▲ 아테네 판테온 신전 앞에 휘날리는 그리스 국기. ⓒ로이터=뉴시스 |
그리스를 포함한 PIIGS 국가들은 10년 전부터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수출 공세에 밀려 시장을 잃어갔다. 생산성보다 임금 상승률이 높아 단위노동 비용이 급증하고, 이에 따라 실질 환율도 올라갔다.그 결과 경쟁력이 상실돼,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가 쌓이고, 성장이 둔화됐다. 게다가 2002~2008년 사이 유로의 평가절상이 이뤄진 것이 치명타가 됐다.
이에 따라 그리스를 비롯한 'PIIGS' 국가들이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고 해도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재정적자를 줄이려면 대대적인 지출 삭감과 세금 인상을 할 수밖에 없는데, 정치적 저항을 무릅쓰고 이런 정책을 관철시킨다고 해도 총수요가 감소해 현재의 경기침체가 더욱 심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GDP가 감소하면, GDP 대비 부채비율을 줄이려는 목표는 불가능해진다. 1998~2001년 아르헨티나를 삼킨 '죽음의 부채 덫'이 바로 이런 과정이었다.
'부도 선배' 아르헨티나보다 심각한 상황
지속적인 성장세를 회복하려면 실질 환율이 평가절하되어야 한다. 이런 조정이 이뤄지는 경로는 3가지뿐이다. 첫번째는 물가와 임금이 20~30% 낮아지는 디플레이션이다. 하지만 디플레이션은 아르헨티나에서 일어났듯 장기간의 경기침체에 동반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나라도 화폐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긴축재정 정책을 수용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 오기 훨씬 전에 디폴트와 유로존 탈퇴가 일어날 것이다.
두번째 경로는 독일 모델을 따르는 것이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업 등 사회 전반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임금 상승은 적절히 통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독일이 이런 방식으로 단위노동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얻기까지 10여년이 걸렸다. 그리스나 스페인이 독일 모델을 지금부터 추진한다면 자원 배분의 비용은 단기적으로 높아지는 반면 성장 효과를 거두기에는 많은 세월이 걸릴 것이다.
마지막 경로는 유로화 가치가 급격히 평가절하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 주로 혜택을 보는 것은 독일이다. 유로 가치가 충분히 하락하기 위해서는 그리스의 부도가 초래할 위기가 매우 커야 하고, PIIGS로의 위기 확산이 심각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경우 유로화 가치 하락의 이득을 보기 전에 유로존 전체가 더블딥에 빠질 것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short of miracle), 그리스는 부도를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르헨티나 위기가 발생했을 초기, 아르헨티나의 재정적자, 공공부채, 경상수지 적자는 GDP 대비 각각 3%, 50%, 2%였다. 현재 그리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12.9%, 120%, 10%다.
따라서 그리스가 디폴트를 피하고, 유로존에서 퇴출될 가능성을 줄이려면 엄청난 노력, 행운, 그리고 유럽연합(EU)와 IMF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리스는 파산하도록 내버려두기에는 유럽 전체에 초래할 시스템 리스크가 매우 크다. 4000억 달러에 달하는 그리스의 공공부채 중 4분의 3은 대부분 유럽의 금융기관들의 자금이기 때문에 급격한 부도 사태는 막대한 손실과 유럽 전체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IMF식 지원만으로는 구제 가능성 희박
따라서 독일과 유럽중앙은행(ECB)는 '구제금융' 형식의 지원을 극구 피하려고 하지만, 그리스는 대규모 공적 자금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하지만 공적 지원만으로는 기껏해야 내년까지 버틸 수 있을 뿐이다. 부채와 부채 비율을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통제하고, 실효 환율을 높이고, 성장을 회복하는 '세마리 토끼잡기'는 공적 자금 지원으로도 가능성이 희박하다.
멕시코, 한국, 태국, 브라질, 터키 등 금융위기에서 성공적으로 빠져나온 나라들을 보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지속성과 성장 회복에 필요한 긴축재정과 구조개혁에 대한 신뢰할 만한 의지, 만기가 도래한 공공과 민간의 단기 부채에 대한 우려를 차단할 만큼 충분한 공적 지원이 바로 그것이다.
당장 필요한 현금을 보여주지 않고 개혁만 해서는 효과가 없다. 신경이 곤두서 있는 투자자들의 우려를 불식할 만큼 외환보유고가 충분하지 않으면, 단기 채무의 만기 연장을 거부하고 앞다퉈 돈을 빼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로존이 지난 9일 처음 내놓은 해법은 완전히 엉터리였다. 자금 조달을 못할 위기를 겪을 때나 자금을 지원한다는 것은 이미 시기가 늦은 것이고, 시장 금리로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것은 부채 상환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EU는 지난 15일 전형적인 IMF 자금 지원 조건에 가까운 새로운 계획을 내놓았다. 초기 자금 지원과 함께 추후 분할 지원을 약속하고, 적절한 금리로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 계획이 효력을 발휘해 그리스가 신뢰할 만한 긴축재정과 구조개혁, 그리고 대규모 자금 지원이라는 조건을 갖춰 지급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러시아, 에콰도르의 사례처럼 부채 상환 능력과 성장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데 실패하면 그리스 역시 부도를 면치 못할 수 있다.
현재 유로 공동체는 플랜 A를 밀고 나가기로 결정했다. 만일 이 계획이 실패하면 그리스의 부채 탕감을 위한 부도,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 환율 상승 허용 등으로 경쟁력과 성장 회복을 도모하는 플랜 B로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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