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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은 그랜드 바겐의 필요조건"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한반도포커스'] 정상회담서 북핵 실마리 찾으려면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발간하는 <한반도포커스> 6호(2010년 3~4월호)를 전재합니다.

<한반도포커스>는 극동문제연구소의 교수진과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한반도 문제 관련 정책소식지입니다. 이번 6호는 '남북정상회담, 가능성과 조건'을 주제로 6편의 글이 실렸습니다. 3월 첫째 주 동안 매일 1편씩 소개됩니다.

1972년 설립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북한·통일 문제에 관한 연구와 정책 제안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최고의 민간 연구기관입니다. <편집자>


<전체 내려받기>

제1호(2009년 5~6월호) 북한의 미래와 한반도

제2호(2009년 7~8월호) 2차 북핵실험 이후 한반도 정세

제3호(2009년 9~10월호) 한반도 정세, 국면전환은 가능한가?

제4호(2009년 11~12월호) 북핵문제 해결의 전망과 과제

제5호(2010년 1~2월호) 2010년 북한 신년 공동사설과 한반도

제6호(2010년 3~4월호) 남북정상회담, 가능성과 조건

북핵 협상전략의 재검토 방향: 新ABC정책

2002년 10월 북한의 우라늄 농축프로그램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작된 2차 북핵 위기는 이듬해부터 6자회담의 틀 속에서 해결이 모색되어 왔다. 하지만 1∼3차 6자회담까지 미국은 "악행에는 보상 없다", "대화는 하되 협상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우라늄 농축문제를 포함한 북한의 모든 핵 프로그램을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 방법으로 포기(CVID)'하는 것을 북한이 받아들이는 전제 하에 이른바 '입구전략'에 따라 협상에 임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3차 6자회담을 끝으로 북한은 6자회담 복귀를 거부하였고, 부시 대통령의 2차 임기가 시작된 직후인 2005년 2월 10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무기 제조 사실과 6자회담 참가의 무기한 중단을 선언했다. 이렇게 되자 미국은 2기 부시 행정부에 들어와 CVID 원칙을 철회하고 최종단계에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이른바 '출구전략'으로 전환하였으며, 그 결과 「9.19공동성명」을 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에 들어와 6자회담은 중단되었고, 북한은 제2차 핵실험을 단행하고 불능화 조치를 원상회복시켰다. 그리하여 미 국무부 내에서는 기존의 대북 협상방식을 반성하며 이른바 '新ABC(New Anything But Chris - 크리스토퍼 힐)'의 방향에서 북핵 협상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미국 측의 평가를 중심으로 볼 때 4~6차 6자회담은 다음과 같은 한계와 과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제한적 합의였다는 점이다. 5개국은 근본적인 비핵화 조치도 없고 검증도 없는 가역적인 불능화에 불만을 품고 있는 반면, 북한은 5개국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에너지·경제지원과 북한체제의 존폐와 관계되는 핵 포기를 교환하는 데 대한 불공정성을 제기하고 있다. 6자회담에서 제공하기로 한 당근은 북한에겐 안전보장이 빠진 '너무 적은 보상'이어서 불만인 반면, 약속 위반 시 가해질 채찍은 나머지 5개국으로선 위약에 대한 제재수단이 마땅치 않아 '너무 약한 제재'여서 불만이다. 새로운 포괄적 합의로서 한국은 '비핵·개방·3000 구상'에 따른 대규모 경협 제공과 신평화구상을, 미국은 평화협정과 같은 안전보장을 추가로 제시하고 있다.

둘째, 비핵화의 핵심조치가 후반치중형(back-loaded) 합의였다는 점이다. 「9.19공동성명」은 최종목표가 제시되어 있지만 이행계획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매 단계마다 별도의 핵협상을 필요로 하였다. 그 결과 북한의 살라미 전술에 이용당하거나 핵심적 비핵화 조치가 시한 없이 계속 뒤로 밀리는 문제점이 나타났다. 그래서 한국과 미국은 가급적 비핵화 핵심조치를 전반치중형(front-loaded)으로 앞당기고자 하고 있다. 여기서 한국은 핵심적 비핵화 조치로 추출된 플루토늄의 해외반출, 원자로의 시멘트 봉입 등을 고려하고 있고, 미국은 불능화 완료 및 NPT 복귀를 제시하고 있다.

셋째, 회담의 형식과 관련하여 1∼4차까지의 6자회담이 6자회담의 틀 속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압박하는 1:5 구도라며 북한이 불만을 제기했었다. 1차 북핵 실험 이후에는 북·미 양자회담의 합의사항을 6자회담에서 추인하는 구도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국과 일본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였으며, 2008년에 열렸던 마지막 6자회담의 경우 한·미·일 3자 협의가 열린 뒤에 북·미 회담을 갖고 6자회담을 개최하는 모양새를 취하기도 하였다. 2차 핵실험으로 인한 대북 국제제재 속에서 열릴 6자회담에서는 한국과 미국 공히 북한을 제외한 5자 협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원칙과 '그랜드 바겐' 방안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작년 9월 이명박 대통령은 새로운 북핵 해법으로서 '그랜드 바겐'이라는 일괄타결 방안을 내놓았다. 그랜드 바겐이란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 부분을 폐기하면서 동시에 북한에게 확실한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국제지원을 본격화하는 일괄타결"을 의미한다. 청와대 김태효 비서관은 통일연구원 주최 세미나의 기조발표에서 그랜드 바겐의 추진방향에 대해 '미·일·중·러 협의를 통한 일괄타결 방안의 구체화 → 6자회담을 통한 일괄타결 방안 논의'의 2단계를 제시하였다. 아울러 그랜드 바겐의 성공조건으로 △북핵 폐기에 대한 진정성, △명확한 의제, △북핵 폐기의 비가역성과 투명성, △목표시점 설정 등 4가지를 제시했다.

작년 10월부터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를 둘러싼 물밑접촉 사실이 알려지면서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그랜드 바겐의 실현 방안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국방연구원은 『KIDA가 보는 2009년 안보환경 평가와 2010년 전망』 보고서를 통해 "그랜드 바겐 방안을 이행할 수 있도록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다양한 접촉을 통해 북한을 설득하는 등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한 일정 수준의 전략적 개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혀 남북정상회담을 그랜드 바겐 방안을 협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간주하고 있다. 통일연구원도 『통일환경 및 남북한관계 전망: 2009∼2010』 보고서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북핵문제의 일정한 진전과 이명박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 제안에 대한 북한의 호응이 전제돼야 한다"며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그랜드 바겐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지난 1월 29일 <BBC> 인터뷰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연내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만나는 데 대한 조건이 없어야 한다"는 발언에 대해 일각에서 '원칙의 훼손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2월 2일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의 원칙들을 제시하였는데,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회담, △핵문제 해결을 전제로 그랜드 바겐 논의,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반대급부 불용, △상시적인 대화채널 구축, △만남을 위한 만남 지양 등 다섯 가지이다.

한국 정부의 입장도 이와 같은 5대 원칙에 따라 정리되었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2월 5일 국회 외교·안보·통일분야 대정부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 경우 다뤄져야 할 의제와 관련,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고, 인도적 차원에서 국군포로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북핵문제가 정상회담의 주요의제가 되어야 함을 분명히 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도 "정상회담이 열리면 (북핵문제의) 실질적인 성과가 이뤄질 것"이라며 "만약 북한이 북핵 포기에 확고한 결심이 서고 그것이 그랜드 바겐이라는 대타결 논의 속에 들어올 수 있다면 평화협정도 그 안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을 정리하면, 한국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개최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거나 복귀를 약속하는 등과 같은 북핵문제의 일정한 진전을 제시하고 있고, 정상회담에서 북핵문제의 해결을 전제로 '비핵·개방·3000 구상'의 5대 프로젝트와 함께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평화협정도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북한의 핵심적 비핵화는 2012년까지 완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월 29일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조건없는'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한 뒤 '원칙 훼손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러한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이 대통령은 2월 2일 국무회의에서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회담, 핵문제 해결을 전제로 그랜드 바겐 논의 등 다섯 가지 원칙을 재확인했다. ⓒ연합뉴스

남북정상회담의 원칙 견지와 탄력적 적용

북핵문제의 해결을 논의하게 될 6자회담의 재개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조건을 놓고 북한은 제재 해제와 평화협정 논의를 복귀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반면, 미국은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경우에 대비해 한반도의 비핵화, 평화협정 체결, 대북 경제지원 등 3가지 사항을 동시 실현시키는 포괄적 해결책을 마련해 놓고 있다. 중국도 평화협정 논의 착수와 국가개발은행 후원 등을 통한 제재의 회피 등 타협안을 통해 북한을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6자회담이 재개된다고 해서 과연 북핵문제가 완전한 해결의 길로 들어설 것인가 하는 데 있다. 북한과 다른 참가국들 사이의 협상목표가 다르다면 6자회담이 다시 열리더라도 비핵화의 커다란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초부터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확고히 하는 방향으로 정책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에 비핵화의 진전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비핵화를 대북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놓았던 중국의 태도가 점차 비핵화와 안정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방향으로 바뀐 점도 난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선 안보확보, 후 개혁개방' 노선에 따라 핵무기를 개발했던 중국으로서는 대북 압박만으로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꺾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리하여 중국 지도부는 북한체제의 안정을 우선으로 하면서 북핵문제 해결을 평화적으로 추진한다는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재정립했다. 미국 내에서도 단기간 내 북핵 해결이 쉽지 않다고 보고 북핵 폐기를 중·장기과제로, 핵확산방지 등 사태악화 방지를 당면한 과제로 놓는 '전략적 관리론'이 등장했다.

하지만 북한의 핵무기 보유 때 직접 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한국으로서는 비핵화와 비확산의 분리 처리에 반대하고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추진할 수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랜드 바겐 방안이 나온 것도 바로 북핵문제의 완전해결을 위한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북한이 이 방안을 받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조선반도 핵문제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산물로서 철두철미 조미 사이에 해결돼야 할 문제"라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고, "핵문제는 전 조선반도와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될 때에라야 진정으로 해결될 수 있다"며 그랜드 바겐 제안을 일축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북한의 반응을 보고 그랜드 바겐 방안을 지레 포기할 필요는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략적 결단이 필요한 그랜드 바겐을 차관보급인 6자회담 수석대표간의 회담을 통해서 실현하기는 어렵지만, 남북의 두 정상이 만나 담판을 짓는다면 해결의 길이 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랜드 바겐을 관철시키기 위한 필요조건은 바로 남북정상회담의 개최이다.

지금까지 밝힌 한국 정부의 입장을 근거로 해서 본다면, 남북정상회담은 북한이 이명박 대통령이 제시한 5가지 원칙을 수용한다면 언제든지 열릴 수 있다. 만약 북한이 5가지 원칙을 받아들인다면 한반도 비핵화의 전기가 마련되고 남북관계도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남북정상회담을 북핵문제의 돌파구로 활용할 방법은 무엇인가. 큰 틀에서 5원칙을 견지하면서 우선순위 조절을 통해 융통성을 발휘한다면 남북정상회담의 기회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북측 인사들이 몇 차례나 '모든 핵무기와 현존 핵프로그램'을 포기한다는 「9.19공동성명」의 합의를 존중한다고 말하고 있고,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밝히고 있는 점은 그랜드 바겐을 논의하기 위한 근거가 되고 있다. 따라서 남북정상이 만나 북핵문제를 의제로 삼는 데 북측이 동의한다면 적어도 세 가지 원칙 -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회담이고, 핵문제 해결을 전제로 그랜드 바겐을 논의하기 위한 회담이며, 만남을 위한 만남을 지양한다고 하는 원칙이 관철되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다.

나머지 두 가지 가운데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반대급부를 제공할 수 없다는 원칙은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을 우선 제공하고, 정상회담의 합의 결과에 따라 대규모 원조를 제공하는 등 탄력적으로 적용한다면 오히려 정상회담을 위한 분위기 조성용으로도 바람직할 것이다. 마지막 원칙인 상주대표부와 같은 상시적인 대화채널도 역시 정상회담의 성과로 얻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북측이 처음부터 서울과 평양에 상주대표부의 설치를 꺼려한다면 우선 개성공단과 서울에 경협대표부를 교환 설치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원제 : 남북정상회담이 북핵 돌파구가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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