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칠레를 강타한 강진이 지난달 아이티 지진 보다 1000배 이상의 위력을 가졌지만 그로 인한 사망자 수는 오히려 '1000분의 1'에 그친 것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규모 7.0의 아이티 지진에서는 30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지만 규모 8.8의 칠레 지진에서는 발생 하루가 지난 28일 오후까지 300명 정도의 사망자가 나왔다.
정부-개인 상시 지진 대비 태세
우선 칠레는 지구상에서 지진이 가장 잦은 나라로 그에 대한 대비가 어느 나라보다 철저하다는 게 첫 번째 원인으로 꼽힌다.
칠레에는 지진 자체를 느낄 수 없는 '무감(無感) 지진'을 포함해 연간 200만 번의 지진이 찾아온다. 그중에는 규모 8 이상의 강진도 1번 이상 포함된다.
그러다 보니 칠레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불문하고 지진에 대한 대비책을 철저히 세워뒀고, 개인별로도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이를 '준비된 상태(preparedness)'라고 규정하고, 칠레 정부와 국민들이 평소 긴급 사태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국제 원조금이 정부 재정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최빈국 아이티는 정부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지진은 물론 매년 닥치는 허리케인에도 속수무책으로 큰 상처를 입는다.
지진 대비의 최우선 항목으로 꼽히는 건물별 내진 설계도 피해를 막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AP> 통신은 칠레의 건축 법규가 매우 엄격하고 지진 전문가들도 세계에서 가장 많아 피해 예방과 재난 대비에 큰 도움을 줬다고 설명했다.
중도좌파 현 대통령 중도우파 대통령 당선자 '합심'
지진 발생 후 보여준 정부의 대응 능력도 크게 달랐다. 아이티는 지진 직후 르네 프레발 대통령의 행방이 묘연해졌을 정도로 국가 기능이 정지됐었다. 대통령궁과 의회 건물까지 무너진 '무정부 상태'에서 주민들은 배고픔과 목마름에 신음했다.
그러나 칠레의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은 지진 발생 직후부터 실시간에 가까운 정보를 국민들에게 제공했다. 이어 직접 비행기를 타고 최대 피해 지역 콘셉시온을 돌아보며 구조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지난 달 대선에서 중도우파 야당에 정권을 빼앗긴 인물이다.
내달 취임하는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 당선자도 지진이 나면서 사실상 대통령으로서의 업무를 시작했다. 그는 "바첼레트 대통령과 함께 강진 피해복구 및 피해지역 재건을 위해 가능한 모든 지원을 실시할 것"이라면서 올해 예산의 2%를 강진에 따른 피해 복구와 재건 활동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진원 깊고 진앙은 인구 밀집지에서 멀어
지진 자체의 특성이 달랐다는 점도 피해 수준을 갈랐다.
아이티 지진의 경우 진원지는 지표면에서 불과 13km 떨어진 지하에 있었다. 또한 진앙은 수도 포르토프랭스 시내에 있는 카루프 지역이었다. 그 자체가 인구가 밀집된 지대였고, 주변 지역으로의 전파도 순식간이었다.
그러나 칠레의 경우 진원지가 34km로 아이티보다 깊었다. 진앙지는 칠레의 2대 도시 콘셉시온에서 115km나 떨어져 있었고, 수도 산티아고로부터는 300km 이상 멀어 지진이 인구 밀집지까지 오면서 에너지를 잃었다.
또한 양국의 지질 환경도 다르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었다. 마이애미 대학의 지질학자인 팀 딕슨은 아이티 포르토프랭스의 지질은 칠레보다 덜 안정적이어서 마치 '젤리'처럼 흔들거렸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 국립 지질예방소의 알레한드로 히우리아노 소장도 현지 언론 <클라린 푼토 콤> 인터뷰에서 칠레는 단단한 지질을 가졌지만 아이티는 그렇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이번 지진이 2004년 인도양 쓰나미를 부른 지진과 비슷한 '메가스러스트(megathrust)' 지진에 해당된다고 말했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메가스러스트 지진은 지각 판들이 마찰하며 가라앉는 섭입대(subduction zone)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이번 지진도 나즈카 판이 남미 판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나즈카 판은 남미 판과 마찰하며 1년에 80㎜씩 가라앉는데, 이 때문에 칠레 연안에서는 세계에서 지진이 가장 활발하게 나타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