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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국 입장 확실해야 중국의 대북 설득도 먹혀"

[정세현의 정세토크]<23> 中 "MB, 딴생각 하는 日 따라가면 안돼"

지난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수행하고 왔습니다. 오늘은 거기서 만난 중국 사람들이 했던 말 중에서, 언론에 많이 나오지 않은 얘기를 중심으로 소개해볼까 합니다.

정세토크는 격주마다 하는 건데, 시간 맞춰서 다음 주에 하면 중국 방문 얘기가 구닥다리가 돼버리니까 그 정례성을 지난 번 개성 접촉 때에 이어서 이번 한 번 더 깨겠습니다.

이번에 만난 중국 사람들은 상당히 비중 있는 인사들이었어요. 김대중 대통령이 비록 퇴임, 전전임 대통령이지만 한중관계라든가 동북아 평화 문제와 관련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은 위상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신경 써서 대접했던 것 같아요.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을 도착 다음날(5일) 만났는데, 1970년대 대학을 다닐 때부터 김대중이란 이름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2007년 상하이(上海)시 당서기로 있을 때에도 DJ를 한번 초청했었는데 일정이 안 맞아서 못 만났다고.

그렇게 개인적인 호감 때문에 이번 만남이 성사됐다고도 봐야겠지만, 북핵문제나 남북관계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김 대통령 면담 형식으로 간접적으로 알리고 싶었기 때문에 시진핑이 직접 나섰다고도 봅니다.

DJ가 중국 역할론을 얘기한다는 걸 알면서, 중국이 뭔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국도 뭘 좀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면담이 이뤄졌다고 나는 해석합니다.

처음에 중국 사회과학원 초청 형식으로 얘기됐다가 인민외교학회 초청으로 승격 된 것도 중국 정부가 DJ의 입장과 역할을 평가하고 존중하는 결과로 해석합니다.

인민외교학회 초청은 비정부 차원에서 국제문제를 다루는 방식인데, 전직이나 민간의 지도급 인사들을 초청해서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할 수 없는 얘기들을 전파하고 상대국에 영향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신분은 민간인데 구성은 대개 전직 외교관들이죠.

인민외교학회가 주선해 만난 사람들 중에는 한국에도 이름이 많이 알려진 탕자쉬안(唐家璇)이 있었어요. 외교부 부부장과 부장을 한 후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지낸 중국 외교계의 대원로죠. 탕자쉬안은 만찬을 하면서 상당히 긴 얘길 했어요. 또 사회과학원 연구원들과는 심도 있고, 그야말로 아카데믹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 김대중 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김 전 대통령의 왼쪽)의 기념촬영. 김 전 대통령의 오른쪽으로는 이희호 여사, 박지원 의원,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시진핑 부주석의 왼쪽으로는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양원창 중국인민외교학회장. ⓒ김대중평화센터

"남북은 같은 동포고 형제 아니냐…"

우선 김대중 대통령이 시진핑 부주석과 만나서 한 말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북핵문제는 기술적으로 세분화해 접근할 게 아니라 단순화해야 한다. 그건 바로 9.19 공동성명 체제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해법이다. 실천이 문제인데 실천만 되면 6개국이 모두에게 이익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에게 손해니까, 이해득실의 관점에서도 실천해야 한다.

그런데 참가국 사이의 몇 가지 오해라든지, 국내정치적 필요 때문에 잠깐 문제가 있는 걸로 비춰지니까 의장국인 중국이 북한을 설득해라. 9.19 공동성명은 6개국 모두가 협조·양보해서 일궈냈지만 의장국 중국이 오바마 정부 하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해 달라.'


시진핑뿐만 아니라 누굴 만나도 시종일관 그 얘기였어요. 그러기 위해서 인내심이 필요하고, 북미간의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해 지혜가 필요하다는 얘길 한 겁니다. 북한을 잘 설득해라. 그나마 제일 말이 통하는 나라가 중국 아니냐...

그에 대해서 시진핑은 '다 공감한다. 중국이 건설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하면서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6자회담 참가국 중 일부는 냉정과 자제력을 상실한 느낌이다. 그래서 한반도 정세가 위태롭게 가고 있다. 냉정과 자제력을 잃지 말아야 한다. 특히 남북한은 화해·합작(협력의 중국식 표현) 과정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그걸 기대하고 있다.

남북은 같은 동포고 형제인데 북한이 미국을 향해 하고 있는 몇 가지 압박 전술에 대해 흥분하고 분개하면서 감정적인 대응을 하면 안 된다. 인내심을 가지고 남북간 협력을 해나가면 현재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


시진핑은 남북의 화해협력이 6자회담이나 북핵 해결에 중요한 축이 된다는 걸 말한 겁니다. '우리보고 역할을 하라고만 하지 말고 너희들끼리도 좀 해라'는,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일종의 비판이었습니다.

"미국이 입장을 빨리 정해야 중국이 설득한다"

미국에 대한 얘기도 있었어요. 중국이 볼 때, 자기들도 뭘 해야 하지만 미국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거죠. 즉, 북한한테 확실한 메시지를 보내고 비전을 제시해 줘야 중국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북핵문제의 관련국들은 6자지만 핵심 당사국은 북한과 미국이잖아요. 미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북한이 바뀌는 거고. 그런데 미국의 입장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또 혼란스럽습니다.

스티븐 보즈워스(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유연하게 접근하는 것 같은데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과거 부시(전 대통령)나 라이스(부시 행정부의 국무장관)가 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의, 험한 단어를 쓰고 있다고 북한은 보는 겁니다.

미국이 구체적인 대북조치를 한 건 장거리 로켓 발사 후에 의장성명을 채택한 것 밖에 없어요. 그런데도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 건 대북비난 차원의 강한 표현들 때문이라고 봅니다.

북한은 언제나 그래요. 자기들은 협박해도 괜찮고, 미국이 자기네를 향해서 단어를 조금만 강하게 쓰면 그건 적대정책이라고 해석하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가 있지만, 북한의 입장에선 미국이 확실한 답을 주지 않기 때문에 그걸 확인하기 위해 강수를 쓰는 걸로, 강수를 쓰면 그렇게 나오리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더군다나 지금은 국방위원회가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상황이니까 더욱 그럴 텐데...어쨌든 중국은 '북한은 원래 그런 데니까, 미국이 확실하게 입장을 정리해서 중국이 북한을 달랠 수 있는 구체적인 컨텐츠를 달라'는 겁니다.

"일본은 북핵 풀려는 나라가 아니다"

탕자쉬안 전 국무위원도 인민외교학회 고문 자격으로 주최한 만찬에서 그런 얘기를 계속 했습니다. 거긴 차관보급이나 국장급 현직 외교관들도 많이 왔는데...탕자쉬안의 말은 이런 거였습니다.

'북한이 강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 객관적인 현실이다. 6자회담 프로세스가 북한 때문에 냉각기에 들어갔고, 중국이 볼 때 그런 상황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길게 보는 거죠. 쉽게 안 끝난다는 겁니다.

'그러나 6자회담은 여전히 중요하고 효과적인 플랫폼(강령)이다. 관련 국가들이 9.19 공동성명을 이행해 나간다면 한반도 비핵화는 확실하게 실현될 수 있고 동북아 지역의 안보 협력 체제까지 수립될 수 있다.'

DJ하고 같은 얘기죠. 중국 사람들은 '신심을 가져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탕자쉬안도 '신심, 내심, 항심'을 갖자고 하더라고요. 신심은 이렇게 가면 문제가 풀린다는 자신감. 내심은 인내심. 그리고 항심(恒心)은 왔다 갔다 하지 않는 것.

일희일비 하지 말고 대국적이고 장기적인 견지에서 대응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중국다운 말인데 그 속에는 미국 내 강온파간 갑론을박이 있어서 헷갈리고 있고, 미국이 큰 틀에서 보지 않고 비확산이라는 기술적인 접근만 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들어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탕자쉬안도 '한국은 굉장히 중요한 당사국이니까 중국만큼이나 자주적이고 독특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특히 일본으로부터 부정적인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일본은 북핵문제를 풀려고 하는 나라가 아니다. 북핵을 핑계로 군사대국화를 하고 심지어 핵보유까지 꿈꾸고 있다. 그런데 왜 한국 정부가 거기에 보조를 맞추는 것 같은 모양새를 취하냐.'

중국 사람들은 말은 완곡하지만 내용은 굉장히 강한 것들이 많아요. 일본으로부터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중국이 일본의 외교정책을 매우 못마땅하게 보고 있다는 거거든.

또, 자기들이 볼 때 북한은 남북대화가 추진되길 바라는데 몇 가지 원칙의 문제, 그게 바로 6.15 선언과 10.4 선언 얘긴데, 그것 때문에 북한이 남한과 대화를 하고 싶어도 못 나간다는 평가를 한 것입니다.

탕자쉬안은 이런 얘기도 했습니다.

'미국이 총괄적인 토론과 검토만 하고 있지 구체적으로 정책이 나오지 않으니까 북한이 초조해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동맹인 한국이 미국을 잘 설득해서 빨리 확실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해 달라. 북한은 우리가 달랠 테니. 다만 한국은 일본과는 손잡지 마라. 일본 우익 세력은 이 기회를 통해서 군사장비를 확충하고 핵무기 까지 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지난번에 김영일 북한 총리가 왔을 때 후진타오 주석하고 원자바오 총리가 겹쳐서 만나면서 오랜 시간을 들여 설득했다고 하더라고요. 외교부 직원들도 낮은 차원에서 북한을 계속 설득하고 있다고 하고요.

"중국은 6자회담과 북중관계 분리하고 있다"

실무 관료들의 정세 평가도 상당히 중요했습니다. 외교부 차관보급 현직 관리가 한 말을 소개하죠.

'중국과 북한은 많은 교류를 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중북 우호의 해다. 6자회담이 중요하지만, 중국은 6자회담과 양국관계를 분리하고 있다. 둘을 묶어서, 6자회담을 풀기 위해 북한에 압력을 가하거나 지원을 중단하면 북한이 고립감을 느껴 상황을 더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북한을 6자회담에 나오게 하기 위해 압력을 행사하라고 하지만 그건 방법이 아니다. 적어도 북한을 다루는 방법은 아니다. 6자회담에 끌어내기 위해서라도 양국관계를 그대로 끌고 가야 한다.'


탕자쉬안은 좀 오래 걸릴 거라고 했는데 실무 관료들은 '조건을 창출하면 6자회담은 열릴 수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결국 미국이 조건을 만들면 된다는 겁니다.

실무자들은 또 '박의춘 북한 외상이 해외 순방에 나가면서 베이징을 경유했고, 귀국하는 길에도 들를 것이다. 만나면 말하겠다. 그리고 우리 대표단도 지속적으로 방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들도 다방면으로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거죠. 그렇게 죽어라 노력하는데 미국도 좀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하더라고요.

남북관계에 대한 중국 측의 평가와 관찰도 재밌었어요. 단계론적으로 설명합디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 출범 전에는 남북관계에 대해 기대를 하다가, 출범 이후 한동안은 관찰하더라. 그러더니 실망을 하고, 현재는 남쪽 정부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기대-관찰-실망-반감 이런 식으로 표현하더라고요. 반감과 실망을 거둬들이고 '기대'의 상황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얘기겠죠. 남북관계도 리셋하라는 말입니다.

중국의 실무자들이 북한 외무성의 국장급이나 주중 북한대사관 참사관들을 만나면 두 가지 얘기를 듣는다고도 했습니다. 첫째, 국제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 둘째, 우려가 된다.

북한 사람들의 논리니까 그대로 소개할 게요. 그게 옳아서가 아닙니다. 그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문제를 풀려면 그 사람들의 논리를 알아야 돼요. 정책을 입안하려면 상대방 논리를 알아야 합니다. 정책 입안자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정세를 판독하는데 있어서도 상대방의 논리를 알지 않으면 비분강개밖에 할 게 없어요.

북한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다고 합니다.

'모든 나라가 인공위성을 발사하고 있는 거 아니냐. 왜 우리만 안 된다는 거냐. 6자회담 참가국들마저 북한만은 위성 발사를 해선 안 된다고 하는 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6자회담 참가국끼리는 평등한 위치에 있는 거 아니냐.'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북한 내에서 분노로 바뀌었고, 그래서 강경한 태도가 나온다는 게 중국 실무자들의 진단이었어요.

북한 사람들이 '우려 된다'고 하는 건 물론 안보 차원의 우려죠. '핵을 먼저 포기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농부한테는 농부의 말을 써야…"

한 마디 더 보태자면...DJ가 사회과학원 학자들한테 중국 역할론을 강조하실 때 보니까 중국 정부의 당국자들한테는 안 쓰던 용어를 쓰시더라고요. 천하태평(天下泰平).

중국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천하태평과 천하대란이라는 개념으로 정세를 설명했는데, DJ가 그 용어를 쓰니까 중국의 일종의 사명감을 확실히 자극하는 효과가 나는 것 같더라고요. 예컨대, 고개를 끄덕끄덕하거나 메모를 하는 겁니다.

과거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에서 중국이 잘 하면 천하태평이 되고, 잘 못하고 내치가 엉망이면 천하대란이 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하태평이란 개념이 있던 시절의 중국은 다소 제국주의적 성향이 있었죠. 지배, 약탈, 복속...소위 헤게모니로 찍어 누르는 게 있었는데 DJ는 '과거엔 그랬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안 통한다. 훨씬 더 부드럽게 책임을 먼저 다해야 한다'는 취지로 신강국론을 설파했죠.

DJ가 그걸 얘기하니까 중국의 학자들은 요즘 중국이 쓰고 있는 화해세계(和諧世界)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더라고요. 그걸로 이해해도 되느냐고 DJ한테 반문도 하고,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얘기 끝나고 내가 DJ한테 "아니, 어떻게 갑자기 그런 중국적인 용어를 쓰십니까? 어제는 안 쓰시던 용어인데, 미리 준비하신 겁니까?"하고 여쭤봤죠. 그랬더니 "정 장관, 농부를 상대할 때는 농부의 용어를 써야 되고, 노동자들한테는 노동자들의 말을 써야 하는 거요. 학자들한테는 그 사람들이 좋아하고 잘 아는 개념을 가지고 얘기해야지." 이렇게 답하시더라고요. 실제로 학자들하고 대화하면서 그런 용어를 쓰니까 분위기가 확 바뀌어 버리더만...학술 토론회처럼.

▲ 지난 9일 김대중 대통령을 예방한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 ⓒ김대중평화센터

보즈워스의 서울 행보 무엇을 의미하나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DJ 예방 얘기로 넘어 갑시다. 지난 9일이었는데, 시기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중국에서 중국 역할론을 강조하던 그 시점에 보즈워스도 베이징에 있었어요. 그때 주한 미국 대사관이 베이징으로 연락해서 DJ의 귀국 다음날인 9일 오전에 방문하겠다고 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의 북경 활동에 대해서는 주중 미국대사관이나 주한 미국대사관이 다 체크해서 보즈워스에게 보고했을 테니까, 그때 만나자는 건 DJ의 바로 그 말에 자기도 동조한다는 의미가 있지 않나...중국 역할론에. 그리고 미국도 확실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중국의 요구를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는 뜻도 있고.

동교동에서 한 시간 정도 주고받은 얘길 공개하지 않기로 했고, 나는 배석도 안 해서 알 수가 없지만, 짐작컨대 김 전 대통령은 중국에서 쭉 하셨던 말을 일관되게 했을 겁니다. 그리고 미국이 확실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는 말씀도 하셨을 겁니다. 핵심은 미국이란 거죠.

보즈워스도 거기에 동의했을 텐데요...그런데 서로 주고받은 말보다 더 중요한 건 보즈워스의 바로 그런 행보가 북한과 이명박 정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거라는 사실입니다.

지난번 클린턴 국무장관도 서울에 왔다 가면서 DJ한테 전화해서 '재임 시절 정책이 옳았다'고 했잖아요. 그건 이명박 정부가 대북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었거든요. 그것처럼 이번 DJ-보즈워스 만남도 미국의 정책적 의지가 실렸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

또 북한한테도 메시지를 보낸 겁니다. 미국의 확실한 대북정책을 촉구하는 중국과, 한국의 화해세력을 대표하는 김대중 대통령과의 공동행동을 망가뜨리는, 그래서 미국의 강경론이 다시 나오게 하는 그런 짓을 하지 마라는 거죠.

더 이상 강수를 두지 말고, 미국한테 분노만 할 게 아니라 미국의 시스템상 지금은 분명한 메시지를 보낼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해 달라는 보즈워스의 메시지죠. 큰 틀에서 오바마가 부시와 다르게 가겠다는 건 확실하잖아요.

- 남북 2차 접촉이 조만간 이뤄질 수도 있는데, 개성공단에 억류된 현대아산 유모 씨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언론에 비춰지는 걸 보면 남북 2차 접촉을 위한 물밑접촉이 없진 않은 것 같아요. 주거니 받거니 하는 형국인데, 공표를 안 해서 그렇지....

지난 4월 21일 1차 접촉 때 북쪽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은 유 씨 문제는 자기네 소관이 아니라는 논리를 폈잖아요. 추정컨대 그 입장은 지금도 계속 되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1차 접촉 때도 유 씨 면회를 조건으로 시간을 끌었고, 접촉 후에도 '유 씨 문제는 개성공단의 본질적인 문제'라고 했기 때문에 그걸 2차 접촉의 우선순위 1번으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 관할하는 공단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총국과 무관하진 않아요. 그러나 저 사람들의 논법을 보면, 유 씨의 행위는 총국이 적용할 수 있는 규정인 '개성공업지구 출입·체류 합의서'보다 상급 법률에 저촉됐기 때문에 우린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식으로 비켜가려고 할 겁니다.

따라서 1차 접촉 때 북측이 제기한 개성공단의 임금·토지사용료 사안과 유 씨 문제를 우리가 묶어서 하려고 하면 두 문제 다 안 될 가능성이 있어요.

그러니까 나는 두 문제를 묶어서 옥신각신하지 말고 유 씨 사안만 따로 떼서 논의하는 별도의 물밑접촉을 제안해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대화를 위해 만날 것 처럼 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사실상 북쪽과의 대화를 기피하고 그 책임을 북쪽에 넘기려는 계산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기왕 이렇게 만나기 시작했는데, 좌우간 유 씨 문제도 별도로 얘기해서 매듭을 지어야 할 것 아니냐'고 설득해야죠. 미국처럼 고위급 특사가 갈 상황도 아니니까, 유 씨 문제를 푸는 비공개 물밑접촉을 별도로 하자고 하는 거죠.

그런데...북쪽이 개성공단 임금이나 토지사용료를 국제수준으로 달라는 건 6.15 선언과 10.4 선언이 무시됐기 때문에 특혜를 베풀 수 없다는 논리란 말이죠. 다시 말하면 6.15와 10.4를 존중하면 특혜는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건데...사실 특혜가 없으면 개성공단의 경쟁력은 없어요. 중국이나 베트남에 있는 우리 기업들이 개성공단에 들어갈 매력을 못 느낀단 말입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
그런 점에서 6.15와 10.4에 대한 입장을 최고당국자가 분명히 언급하면, 그럼 유 씨 문제도 풀려요. 그렇게 되면 당국간 회담이 열릴 수 있으니까. 6.15와 10.4만 분명해지면 유 씨 문제를 풀기 위한 당국 회담도, 그게 아니라 다른 차원의 당국 회담이 열리면서 그 문제는 자연스럽게, 그야말로 팁으로 넘어올 수 있어요.

* '정세토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석좌교수)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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