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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추억'에 젖은 北, 오바마의 부시화 바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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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성공의 추억'에 젖은 北, 오바마의 부시화 바라나

[정세현의 정세토크] 외교부, '글로벌' 좋지만 '로컬'도 챙깁시다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의장성명을 채택한데 대해 북한이 예상외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제재결의안도 아닌데...

유엔에서 로켓 문제를 논의하기만 해도 적대행위라고 경고하더니, 의장성명에 따라 제재 대상 기관이 선정되니까 드디어 폐연료봉 재처리를 시작했고 핵시설 재가동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이젠 우주개발이란 명분도 안 걸고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겠다고 바로 나와 버렸고, 핵실험도 하겠다고 했습니다.

한편 미국의 대응은 북한 입장에서 볼 때 상당히 헷갈릴 겁니다. 스티븐 보즈워스(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대화 의지를 계속 강조하지만, 상급자인 힐러리 클린턴(국무장관)의 얘기는 굉장히 강하게 나오고 있단 말예요.

힐러리는 장관 지명 직후에는 9.19 공동성명이라는, 북한에게 꽤나 매력적인 구도를 중시하겠다고 했는데, 로켓 발사 이후에는 북한에 굴복할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계속 이렇게 나오면 경제지원이고 뭐고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을 거라고 엄포를 놓고 있어요.

국제정치와 외교에서는 상대방의 리얼 인텐션(진짜 의도)을 정확히 읽어내는 페셉션(분석과 판단)이 중요한데, 힐러리의 그런 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북한 때문에 오바마도 결국 부시처럼 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시각. 다른 하나는 미국 내 대북 강경론자들의 주장이나 위상이 만만치 않은데 힐러리가 그들을 다독거리는 차원에서 세게 얘기할 뿐이지 일정한 냉각기만 지나면 대화 국면으로 넘어갈 거라고 보기도 합니다.

2009년은 '국방위원회 전성시대'…3년 전과도 달라

문제는 북한이 보즈워스가 아니라 상급자인 힐러리 쪽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럼 북한은 미국의 신호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지금처럼 국방위원회가 모든 대내외사항을 관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북한은 미국이나 남한이라는 협상 상대의 의중을 읽는데 조금 유연했다고 봅니다. 그러다 보니 대응 방안도 초강수라기보다는 상당히 유연한 쪽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1990년대 초반 1차 북핵 위기 때가 대표적입니다. 북한은 93년 3월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선언을 해도 미국이 적극적으로 안 나오니까, 5월 말 노동 1호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이 부랴부랴 베를린 양자협상을 시작했죠. 그런데 그래도 뭔가 잘 안 되고 북한이 계속 강수를 두니까 94년 5-6월에 접어들어서는 '안 되겠다. 채찍을 들어야 겠다'고 해서 북폭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한 미국대사관 가족들을 도쿄 쪽으로 후방 철수시키는 식으로 의지를 과시하고 있을 때, 야당 지도자였던 DJ의 권유로 카터(전 미국 대통령)가 움직였어요. 그래서 북한에 갔고, 김일성주석이 남북 정상회담이란 카드를 내놓으면서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돌파구를 만들었습니다.

북한은 정상회담이란 걸로 미북간 충돌 위험을 비켜가는 굉장히 유연한 대응을 한 겁니다. 김일성 시대는 선군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와 같이 기싸움을 하다가 남북정상회담이란 카드로 위기국면을 싹 비켜나간 거죠. 그러면서 제네바 미북 기본합의라는 큰 선물을 얻어냈습니다.

그런데 김정일 시대로 넘어와서 북한은 선군정치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강수를 두어 가면서 미국의 태도를 바꾸려고 하고 있어요.

선군의 기치 하에 강하게 나가서 미국을 이긴 성공의 추억도 있죠. 2002년 2차 북핵 위기가 일어나고 2005년 9.19 공동성명으로 진전을 봤는데, BDA 문제(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에 있는 북한 자금 2500만 달러가 미국에 의해 계좌 동결됐던 사건) 때문에 턱 걸리니까 북한은 2006년 미사일 발사에 이어 핵실험까지 가버렸습니다. 그랬더니 미국이 진짜 바뀌었죠.

그런 성공의 추억이 있기 때문에 '부시도 그렇게 굴복시켰는데 오바마쯤이야' 지금 이런 생각을 할 생각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그렇게 더 세게 나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더군다나 요즘 더 위험스럽고 걱정스러운 건...2006년엔 그래도 대외관계에 대해 국방위원회나 군부가 직접 전면에 나서는 시절은 아니었어요. 외무성 강석주(제1부상) 같은 사람이 상당한 발언권을 행사하던 시절이었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선군시대이기 때문에 강수를 뒀었는데, 지금은 개성공단까지 국방위원회가 직접 관리하고, 대미정책까지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이번에 최고인민회의 결과 국방위원회가 대폭 강화됐어요. 힘 있는 사람들은 다 거기로 갔더라고. 당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장성택(김정일 매제)도 가고, 그러면서 국방위원회가 모든 걸 관리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에 앞으로 더 세게 나오리라고 봅니다.

국방위원회가 국내정치와 대남·대미관계까지 총괄·조정·지휘한다고 볼 때, 정책에서 문민적인(civilian) 사고가 작용하고 역할을 할 가능성은 굉장히 낮아 집니다. 그래서 북한이 계속 저렇게 나오면 결국 오바마도 부시처럼 가버릴 수밖에 없어요.

미국이란 나라는 시스템에 의해서 움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책의 합목적성보다는 여론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습니다. 그러면 오바마의 부시화가 불가피한데 이걸 막을 수 있는 게...나는 이번엔 미국 내에서 나올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봅니다.

▲ 북한은 현재 국방위원회가 개성공단과 대미정책까지 좌지우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3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군부대 시찰 장면. ⓒ연합뉴스

94년에는 카터가, 2006년에는 선거가? 2009년엔?

94년엔 DJ가 "미국의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 미북관계를 조정하라"고 해서 카터가 파국을 막았고, 2006년엔 미국 여론이 막아준 셈이죠. 11월 중간선거로 부시의 정책을 바꾸게 했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선거도 없고 한데 누가 나서서 조정을 하느냐, 그게 누구냐? 나는 결국 중국이 움직여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해버리면 3차 북핵 위기로 갈 수 있습니다. 또 이번에 우라늄 농축 계획까지 공표했어요. 북한엔 우라늄이 2500-2600만 톤 정도로 굉장히 많이 매장되어 있기 때문에 우라늄 저농축 기술은 이미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무기급 우라늄을 얻으려면 고농축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이제는 감시가 심해서 원심분리기의 재료인 고강도 알루미늄을 필요한 만큼 사들여갈 수도 없고, 전기가 많이 드는데 전력사정도 안 좋아서 고농축에 대해서는 아직 크게 겁날 건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기존에 가지고 있는 핵물질입니다. 핵무기 몇 개를 더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가지고 핵폭탄을 또 만들어서 다시 실험을 해 버리면 3차 북핵 위기로 갈 수 있습니다. 그때 미국에서 이번에 또 북한에 끌려갈 거냐는 여론이 커지면 오바마도 부시처럼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2차 북핵 위기 후에 북핵 상황을 관리한 6자회담의 의장국으로 역할을 많이 했던 중국이 나서야 합니다. 중국도 북한의 핵보유는 절대 반대하는 입장인데, 그렇다면 이번에 가만있어서는 안 됩니다.

1차 위기 때는 중국이 끼어들 틈이 없었어요. 클린턴 정부가 직접 나섰으니까. 그런데 2차 위기 때는 부시가 중국에 북한 관리를 위탁한 경향이 있습니다. 미중관계라는 레버리지를 통해서 북한을 간접적으로 관리한 세월이 지금 벌써 5-6년 지났고, 그러면서 중국의 역할이 상당히 커졌어요.

북한은 2012년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라고 규정했는데, 남북관계가 끊어진 상황에서 외부로부터 경제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여력을 가진 나라는 중국뿐입니다. 중국도 겉으로는 '우리도 어려워서 도와줄 형편 못 된다'고 할지 모르지만 안보외교 차원에서 북한을 방치했을 경우 전략적 손실을 입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정 정도 지원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더구나 금년은 조중수교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안 도와줄 수 없을 거예요. 그런 만큼 중국이 적극 나서면 북한 관리라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 미국과 북한이 충돌하는 걸 막아야 중국 국가이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94년에만 해도 중국 경제가 지금처럼 번성할 때는 아니었으니까 동북아 안보 상황이 험해진다고 해서 중국이 급할 건 없었어요. 그러나 지금 미북이 충돌한다면 중국이 받는 대미지는 엄청나게 크죠. 국가 신용등급에 영향을 줄 수도 있죠.

한미동맹보다 한중협력 모색할 때…왜?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안정적으로 발전되던 시기에...부시 정부가 농축우라늄 문제를 만들어 냈잖아요? 그건 만들어 냈다고 봐야 합니다. 그건 내 얘기가 아니라 힐러리가 국무장관이 된 후에 그걸 사실상 공격하는 발언을 했어요.

김대중 정부 말기였는데, 미국은 혐의를 제기하면서도 정확한 증거를 못 댔어요. 심증 내지 방증 자료 정도만 가지고 있었죠.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미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에 가서 우라늄고농축 혐의를 제기하니까 북한은 자기네 방식으로 답했죠. '우리는 NPT를 탈퇴했고 주권국가이기 때문에 HEU(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그 보다 더 한 것도 가질 수 있다.' 그걸 미국이 거두절미해서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시인했다는 식으로 몰아갔죠.

그래서 미국이 중유를 끊고 북한은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관을 추방해 버리고 재처리를 시작하는 등 강수를 두니까 미국이 부랴부랴 양자회담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부시도 양자회담 하겠다고 했어요.

그러다가 노무현 정부 초기에 우리도 끼려고 했지만 북한의 반대를 구실로 미국이 우리한테는 오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서 2003년 4월 북미중 3자회담이 베이징에서 열렸죠. 그런데 당시에 켈리가 북측 대표인 리근(외무성 미국국장)한테 복도에서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협박을 받고 나서 다자방식으로 해야겠다고 해서 결국 6자회담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2003년 4월 27일 평양에서 10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열려요. 내가 수석대표로 갔는데, 그때는 노무현 정부가 햇볕정책을 계승발전 시킨다고 했고 교류협력과 인도적 지원도 활성화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남북대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우리의 말을 꽤 경청하고 존중할 땝니다. 쌀과 비료의 힘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때 내가 북쪽에 했던 얘기가 북한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는 걸 나중에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자랑을 하자는 게 아니라, 남북관계가 괜찮을 때 어떤 효과가 나는지 실례를 드는 겁니다.

내가 그랬어요. '미국이 3자회담을 해보고 나서, 절대로 당신들을 단독으로 안 만난다고 하더라. 5자회담(남북미중일)을 하자는데 나가는 게 좋을 거다. 중국도 미국의 요구에 상당히 협조하는 것 같더라. 그러니까 미국이 밀어 붙이면 결국 5자회담이 성사되는데, 거기에 나가는 게 좋지 않겠냐.'

그랬더니 북쪽 사람들은 '중국도 이미 미국 심부름이나 하고 있다'고 투덜대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내가 '그럼 당신네가 수정 제의를 해라. 6자회담 방식으로 하자고 하면서 러시아를 끌어들여라. 중국이 러시아의 눈치를 좀 보는 것 같으니까 미국 심부름만 하는 건 막을 수 있지 않겠냐'고 설득했죠. 결국 나중에 북한이 6자회담 방식으로 발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습니다.

'당신네와 미국 사이의 논쟁사를 보면, 당신들은 미국이 말하는 맥락, 콘텍스트보다 단어, 워딩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래서 미국의 의도를 제대로 못 읽어 내는 것 같은 느낌을 여러 번 받았다. 미국과 타협을 하건 흥정을 하건 결론이 나야 당신네도 살 길이 생길 텐데, 그렇다면 미국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 내는 게 중요하다. 앞으로 혹시 다자회담이 열리게 되면 남쪽 대표의 해설을 좀 들어라.

당신네는 목표를 향해서 무슨 얘기든 쏟아낼 수 있고, 뒤집지 않아도 되는 특수한 국가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했던 말도 여론 때문에 뒤집어야 할 경우도 있다. 그래서 쓰는 단어와 실제 의도가 다를 수 있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미국이 물밑대화를 시도할 수도 있는데 그런 찬스를 놓치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발언 중에서 어떤 게 중요한지에 대해 남쪽 대표단한테 과외를 좀 받아라.'


그런데 북쪽이 의외로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더라고요. 장관급회담 수석대표 단독접촉에서 말한 겁니다. 27일 도착해서 밤에.

그리고 돌아와서, 그때 북핵 문제 실무책임자인 이수혁 외교부 차관보한테 말했죠. '5자회담이나 6자회담이 열리면 우리도 갈 텐데, 내가 이렇게 얘기해놨으니까, 혹시 북쪽에서 사인이 오면 적극적으로 해설을 좀 해줘라.'

그러니까 이수혁 차관보가 알았다고 했는데, 실제로 8월 1차 6자회담이 개막하고 나서 오전 기조발언 끝나고 휴식으로 들어갈 때 걸어 나오면서 김계관 부상(북한 6자회담 수석대표)이 이수혁 차관보를 팔꿈치로 쓱 밀어서 빈 방으로 데려갔다고 해요. 그러면서 '미국의 얘기를 우린 이렇게 생각하는데, 남쪽에선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식으로 질문했죠. 신문에 이미 난 얘깁니다.

남북관계가 좋을 때 그러던 시절이 있었어요. 지금은 까맣게 옛일이 되어 버렸지만...이 정부 들어서 그걸 못하게 됐잖아요. 그래서 중국이 그 역할을 해야 되는데, 물론 우리만큼 그렇게 절박하고 간절한 심정으로 성의를 가지고 해줄지, 그건 몰라요. 그러나 지금 그나마 북한에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중국입니다.

이때 이명박 정부가 서둘러야 할 것은 미국과 북한이 상대방의 의중을 잘못 해석해서 충돌로 가는 국면을 막는 겁니다. 그럴 생각이 있다면, 이제 중국과 적극 협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 활용론, 중국 소방수론이죠.

지금 문제의 핵심은 북한인 셈이니까 평양을 먼저 달래든지 막든지 해야지 미국에 가서 한미동맹 얘기해봤자 소용없어요. 한미동맹 강화는 지금 해법이 아닙니다. 한중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서 중국이 미북의 충돌을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보즈워스가 이번 주부터 6자회담국 순방을 시작한다는데, 한국에 다시 왔을 때 미국의 입만 쳐다보거나 '당근과 채찍을 써야 한다' 이런 하나마나한 얘기 하지 말고, 보즈워스로 대표되는 미국 내 온건세력과 한국 정부가 손잡고 미국 내의 강경론을 의식하고 있는 힐러리...오바마와의 경쟁의 찌꺼기가 좀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아니면 역시 정치인이기 때문에 관심을 끌기 위한, 또는 여론을 의식한 발언을 하는지 모르지만...힐러리의 그런 태도가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보즈워스와 손잡고 중국을 움직이자는 겁니다.

청와대, 부처 조정·통제·장악 능력 발휘해야

그런데 우리 외교부의 마인드가 거기까지 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를 하겠다던 사람들, 또 개성에 억류된 현대아산 유 씨 문제를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소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 외교부가 과연 그렇게 가겠는가.

방법은 있습니다. 중요한 문제니까 외교부한테만 맡겨 둬서는 안 됩니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는 것도 방법이에요. 아니 하나의 방법이 아니라, 그 방법밖에 없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실이 좀 적극적으로 이런 사고를 해서, 생각을 고쳐서 보즈워스를 활용하고, 그걸 통해 중국이 좀 움직이도록, 또 우리가 직접 중국과 협조하는...그렇게 나가야 합니다.

외교부가 PSI 전면 참가를 공식화 하려고 하니까 대통령이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기분 나쁘게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보도가 있었어요.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한겨레신문한테 특종을 준 걸 보니까, 북한한테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했으면 좋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한겨레만 보지 않습니다. 다른 신문이나 방송도 세밀히 뒤져요.

어쨌건, "북한의 자존심 건드리거나 기분 나쁘게 하지 말라"는 대통령 지시의 연장선상에서 청와대와 관련 부처가 움직여만 준다면 유 씨 문제도 해법의 단초를 찾을 수 있고 남북관계도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유 씨 문제는 남북관계에서 생긴 문제예요. 그걸 풀 수 있도록 통일부한테 책임과 권한을 줘야지, 어떻게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소하겠다는 발상을 하느냔 말예요. 그거 북한 자극하는 거예요. 이미 한번 크게 반발하지 않았어요?

북한이 관여된 문제와 관련해서 외교부는 당분간 좀 뭐랄까...좀 쉬었으면 좋겠어요. 청와대가 조정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시기는 강경노선을 걷고 있는 북한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 외교부가 목소리를 낼 때가 아니에요.

PSI를 하겠다면서 글로벌 스탠더드니 뭐니 하던데, 외교안보는 글로벌 차원에서만 봐야 합니까? 리저널한 차원도 있고, 리저널보다 더 소중한 게 우리한테는 로컬입니다. 한반도라는 로컬 차원에서의 위기부터 예방하면서 동아시아라는 리저널 차원의 역할을 모색하고, 그 다음에 글로벌로 나가는 거지...로컬은 험악하게 만들면서 글로벌 스탠더드만 얘기하면 됩니까?

외교부는 그렇잖아도 북한과 관련해서 여러 번 실수했기 때문에...작년 7월에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 의장성명 파동도 있었고, 개성에 억류된 유 씨 문제가 본인이나 가족들한테는 죽고 사는 문제인데 PSI 카드나 만지작거리고...그러니 당분간 청와대에서도 조정을 좀 해가지고 뭐랄까 한반도 상황 악화부터 막는다는 관점에서 북한을 좀 관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국정원도 협조가 잘 될 거예요. 통일부와 국정원의 목소리를 청와대가 잘 활용하면 남북관계의 상황 악화를 예방하는 동시에 반전의 출로를 열 수도 있고, 또 북핵·미사일 문제에서도 상황 악화를 막고 반전의 계기를 조성할 수 있습니다. 결국은 대통령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청와대의 조정·통제·장악 얘기가 나온 김에 여기서 잠간 수석비서관의 역할과 관련해서 한마디 하고 끝냅시다. 정세토크가 비판만 하는 데가 아니라 대안도 내놓는 데니까. 그동안의 관찰과 실제 경험을 통해서 볼 때,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내각의 부처 출신인 경우에, 그 수석실은 대통령의 수석실이기 보다 부처의 수석실 노릇을 하는 사례가 많더라고요. 자기 돌아갈 자리를 챙기느라 그런지 시각 자체가 그래서 그런지 출신 부처 중심으로 대통령을 몰고 가더라고.

사례? 마~않지! 일일이 말할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청와대에 있으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부처이기주의에 빠지는 거죠. 그래서 차라리 돌아갈 부처가 없거나 낙하산으로 아무데나 내려가도 되는 정치인이나 학자 출신이 차라리 대통령 편에서 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부처 눈치 안 보고 이쪽저쪽 얘기 들어가면서 균형감 있게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요약합시다. 이번에는 중국이 좀 움직여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 한중간 직·간접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보즈워스의 순방 기회를 적극 활용하자. 그리고 북한도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오바마의 부시화를 막기 위해 스스로 김을 좀 빼는 조치를 해야 하는데, 보즈워스의 방북도 필요하지만 그런 걸 김정일 위원장한테 권장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고위급이 좀 나서도록 해야 한다. 이렇습니다.

- 북한의 의사 결정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군부냐 비군부냐를 나누어 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결국 김정일이 다 하는 것이다'라는 시각도 있는데...

그렇게 나누어 보는 분석 시각이 있죠. 1960-70년대 미국에서 중국이나 소련을 분석할 때 강경파와 온건파 나눠서 설명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중국이 개방되고 나서 중국 사람들이 그런 얘길 합디다. '과거에 밖에서 우리를 분석하는 걸 보고 코웃음을 쳤다. 아니, 모택동 앞에 온건파가 어디 있고 강경파가 어디 있냐. 모택동·등소평 앞에는 예스맨만 있을 뿐이다.' 북한도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김정일 위원장이 작년 건강 문제 이후 모든 걸 친재친결하기 위해 구체적인 문제까지 챙기느라 골머리를 앓을 수 있는 그런 여력은 줄었다고 봐야겠죠. 대신 기구를 키워주고 권한을 많이 실어준 데다가, 당을 관리하고 있는 장성택까지 포진시킨 국방위원회가 김 위원장의 의중을 더듬어 의견을 제시하도록 하지 않을까...김 위원장은 국방위원회에서 보고가 올라오면 '대체로 잘 됐군. 그런데 이것만 좀 고쳐라'는 식으로 지시가 나갈 것 같아요.

정책결정 과정에서는 초안(草案)이 중요한데, 김 위원장의 의중을 반영하더라도 국방위원회가 초안을 잡기 때문에 조직의 생리상 강경기조가 계속 될 수 있다는 거죠.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 한국이 남북관계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비판을 받고 있는데, 중국 활용론이 잘못 이해되면 앞으로도 한국은 계속 발을 빼고 적극적인 역할을 안 해도 된다는 논리 즉, 한국의 소극성에 면죄부를 주는 논리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94년 6월 카터가 방북해서 한반도 위기를 막았잖아요. 그리고 카터는 빠졌어요. 그것처럼, 중국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중국도 그런 충격완화제 역할만 하고 빠지라는 거죠. 그 후에는 6자회담 참가국 중 1/n로 돌아가야죠. 소방수 역할만 좀 맡기자는 뜻입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엔 한국이 미북간에 조정자라고 할까 완충자라고 할까 제법 역할을 했어요. 특히 9.19 공동성명 같은 건 2005년 6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김정일 면담으로 남북관계가 원상복구 되면서 가능했다고 봅니다. 우리가 북한을 잘 달래고 미국도 좀 설득하고서, 즉 한국이 북미간의 조정 역할을 하면서 중국과 손잡고...그래서 9.19 공동성명이 나온 겁니다.

한국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당연히 백번이라도 나서야죠. 그런데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이 북한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되잖아요. 지금 당장 우리가 나서서 미북을 중재해야 한다고 하는 건 솔직히 비현실적인 얘깁니다. 내 말은, 우리가 파국을 막으려면 중국을 소방수로 쓸 수 있는 지혜라도 발휘하자 이겁니다. 그래서 북한이 6자회담에 다시 돌아오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
북한이 지금은 6자회담을 완강하게 거부하지만, 중국이 다리를 놓고 미국이 잘 설득하면 9.19 공동성명의 매력 때문에라도 복귀할 겁니다.

물론 북한은 6자회담에 나오더라도 그러겠죠. 평양TV에 여자 아나운서가 나와서 비장한 목소리로 '동북아 평화와 세계 평화에 대한 우리의 기본 입장이 있기 때문에 관련국들의 소행에 몇 가지 괘씸한 면이 있지만 아량을 베풀어서 다시 나가기로 했다. 앞으로 그들의 태도를 지켜 볼 것이다.' 뭐 이런 식으로...

* '정세토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석좌교수)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격주에 한 번씩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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