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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에 갇힌 이명박, 촛불과 소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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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에 갇힌 이명박, 촛불과 소통하라!

[이창현의 소통과 미디어] 촛불 1주년, '불통'의 암울한 풍경

촛불 1주년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아직도 촛불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있다. 촛불을 바라보고 그 속에 담겨있는 국민의 목소리를 찾아내야 하는데, 지난해 있었던 촛불에 대한 트라우마로 촛불이 행여라도 번질까 두려워 경찰을 통한 강제진압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촛불은 경찰의 진압으로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다. 1년 전 촛불의 의미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시대에 첨단통신기술로 무장한 촛불의 의사표현이 아날로그 시대의 경찰 버스와 방패로 막힐 수는 없는 것이다. 촛불과 소통하며 국민들이 원하는 바를 정치의 장으로 끌어안아야 대통령도 살고 국민들도 함께 사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소통이 아니라 불통이다. 대통령이 촛불과 소통하려고 하지 않으며 미디어 또한 촛불의 목소리를 제대로 국민에게 전달하지 않는다. 불통과 왜곡된 소통만이 암울하게 교차한다.

촛불 1주년, 그리고 경찰진압

▲ 촛불 1주년, 이명박 정부는 더 억압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뉴시스
5월1일 노동절과 촛불 1주년을 맞이하여 열린 집회에서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경찰에 연행되었고, 이러한 강제진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참석자들까지 경찰에 끌려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촛불집회가 열릴 예정이었던 청계광장은 경찰버스에 의해 봉쇄되었으며, 광화문 거리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경찰로 메워져 있었다. 경찰이 무려 16개 중대 1만 1000명을 동원해 집회장소를 원천봉쇄한 것이다. 촛불 1주년을 맞이하여 국민들은 촛불의 의미를 기억하기 위해서 다시 모였지만, 청계광장 주변의 상황은 1년 전에 비해서 더욱 억압적으로 바뀐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경찰의 수는 더욱 많아졌고, 더욱 공격적으로 변해 있었다. 공안당국에서는 일찍부터 '공안대책협의회'를 열었고, 법무부·문화체육관광부·행정안전부 장관은 촛불 집회를 앞두고 '폭력시위를 그만두라'는 대국민 담화문도 발표했다. 정부에서는 촛불에 대한 대비를 빈틈없이 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정부가 촛불과 소통하려고 한 흔적은 발견하기 힘들다. 공안당국과 장관들 어느 누구도 촛불에 담겨있는 민심을 파악하고자 노력하지 않았다. 불행히도 이명박 정부에게 있어서 촛불은 일찌감치 진압의 대상으로 간주되어 공안 대책이 필요했던 것이지, 촛불과 대화를 하기 위한 소통전략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촛불의 의미가 무엇인가?

촛불은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진화한다. 지난해 촛불은 광우병 쇠고기 문제로 촉발되었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새로운 사회적 이슈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면서 촛불 소녀가 탄생하여, 이들이 교육 현장에 닥쳐올 무한경쟁의 비극을 막고자 하였으며, 나아가 촛불은 국토를 파괴하는 대운하 건설과 공공부문의 사유화를 반대하였다. 나중에는 촛불이 한강을 건너 여의도로 넘어가 KBS, MBC 정문 앞에서 공영방송을 지켜내고자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듯 촛불은 이명박 정부의 핵심적인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담아낸 것이다.

그러나 촛불 1주년을 맞이하여 돌이켜보면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는 어느 것 하나 촛불의 민심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 없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따른 제도적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캐나다 쇠고기 수입의 압력이 거세게 일고 있으며, 교육현장에서는 무한경쟁의 광풍으로 학생들이 사교육을 위한 학원으로 내몰리고 있다. 아울러 국토를 파괴하는 대운하는 '4대강 살리기'라는 미명 아래 속도전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세계적인 금융위기라는 위험신호 속에서도 공기업의 사기업화는 계속 추진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하여 MBC <PD수첩> 담당 PD가 체포되는 등 언론탄압이 계속되고 있다. 그렇기에 촛불은 1주년을 맞이하여 새롭게 불을 밝히려고 하는 것이며, 그럼에도 정부는 촛불의 의미를 애써 외면하려 하는 것이다.

진압의 대상이 된 촛불

경찰의 촛불 강경진압이 뜻하는 것은 정부가 촛불과 소통하지 않겠다는 것의 상징적 표현이다. 촛불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촛불이 모일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정부를 비판할 수 있고 그러한 의사를 표현하는 집회는 당연히 허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촛불시위의 현장에서 무수히 들었던 노래가사처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에 헌법적인 권리인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해야한다. 지난해 광화문을 가로질렀던 콘테이너 명박산성이 촛불의 함성을 막아낼 수 없었던 것처럼 경찰버스로 '차벽'을 만들어 집회장소를 봉쇄한다고 하여 촛불이 없어질 것이 아니다. 시청앞 광장이 막히면 청계광장으로 나올 것이며, 청계광장이 막히면 광화문으로 나갈 것이다. 아울러 광장과 대로가 막히면 골목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것도 힘들다면 사이버 공간으로 옮겨서 촛불 대장정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청계광장에서 학생들 몇 명만 모여도 전경 몇 십명이 다가와 집회 자체를 막으려는 모습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연출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시위현장을 취재하고 있는 외신 기자가 연행되는 모습도 다큐멘터리 필름 속에나 나옴직한 시대착오적 현실이다. 국가의 브랜드 가치를 따지는 이명박 정부가 왜 이런 무리수를 두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서울의 광장을 선점하여 봉쇄한 공권력의 모습과 과도한 경찰 진압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성난 얼굴들, 그리고 촛불 시민들의 손 피켓에 담겨있는 메시지를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폭력적 경찰의 모습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국민들의 기억에 남아 이명박 정부와 경찰을 평가하는 중요한 이미지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 촛불은 진화한다. 촛불을 끄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촛불을 바라보고 그것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소통해야 한다. ⓒ프레시안

촛불과 불통하는 미디어

그렇다면 과연 미디어는 제대로 촛불을 보도하고 있는가? 1년전 미디어가 그러했던 것 처럼 촛불 1주년에 대한 보도 역시 촛불의 현실을 제대로 보도하고 있지 못하다. 보수신문의 경우 '시위대가 망친 서울의 주말', '훼방꾼 시위대에 시민축제 아수라장'이라는 헤드라인을 달아 시위대의 폭력성만을 강조하였다. 그 어느 곳에서도 촛불시위가 요구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전달해주지 않았다. 방송뉴스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KBS 뉴스에서는 경찰의 강경진압을 비판하는 내용을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SBS 뉴스에서는 시민과 시위대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았다. 제도권의 미디어가 제대로 촛불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은 진화한다. 막히면 돌아가고,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서 촛불은 소통한다. 기존 미디어가 촛불을 왜곡하면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한다. 이른바 웹2.0시대에 전통적인 미디어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아주지 않는다고 촛불이 슬퍼하지는 않을 것이다. 촛불은 다음의 아고라를 통해서 소통할 것이며, 그것이 막히면 아마도 유튜브와 구글 등을 통해서 자신들의 사이버 공간을 확보할 것이다. 이른바 촛불의 '사이버 망명'이 본격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촛불을 끄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촛불을 바라보고 그것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소통해야 한다.

촛불과 대통령의 소통방식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할 것이 촛불이다. 현재 가장 소통이 힘든 사람들은 한나라당 내의 박근혜도 아니고 야당의 대표들도 아니다. 박근혜와 야당의 대표와는 소통의 창구가 열려있다. 해외순방을 전후로 만날 수도 있고, 긴급한 정치적 사안을 둘러싼 비밀회동도 가능하다. 그래서 이견을 확인할 수도 있고 또 논의를 통해 이견을 좁힐 수도 있다. 그러나 촛불과의 소통은 불통 그 자체이다. 촛불이 소통의 대상이 아니라 진압의 대상이 된 상황에서 더 이상 이성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다.

촛불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촛불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개인들의 촛불이 합쳐져서 국민 모두에게 들불처럼 일어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촛불을 들고, 소리칠 때 그들이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들이 들고 있는 손 피켓의 메시지를 되새겨야한다. 지난해 6월 "청와대 뒷산에서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며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라는 말을 한 대통령의 모습을 국민들은 기억한다. 또 다시 그러한 말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촛불을 진압하려고 하지 말고, 촛불과 소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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