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처럼 힘없고 아무것도 아닌 노동자도 국민이거든요. 저도 이 나라 국민이고, 저희 남편도 이 나라 국민이고, 강서 씨도 국민이었어요. 제발 회사랑 대화라도 할 수 있게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높으신 분들 있는 데 와서 이렇게 소리 지르면 안 되는 거 아는데…. 그런데요.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정말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한진중공업 노동자 가족인 송지영(가명·31) 씨가 이렇게 말하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흥분한 나머지 책상 위로 올렸던 손을 슬그머니 상 아래로 내린다. 그러고는 "죄송합니다"라고 말한다. 송 씨의 남편은 지금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안에서 고(故) 최강서 씨의 주검을 지키고 있다.
송 씨의 옆에는 고 최강서 씨의 아버지 최용덕(64) 씨가 앉아 있다. 양팔로 작은 배낭을 끌어안고 있는 최 씨. 짐이 별로 없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서울로 온 것은 아님이 분명했다. 한숨도, 눈물도 보이지 않는다. 극단의 상황에 놓인 사람만이 풍길 수 있는 침착함이다.
최 씨는 "국회에 올 일이 살다가 생길 줄은 정말 몰랐다"고 했다. 물론 서른다섯 살밖에 안 된 아들이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현실'이다. 끔찍한 공포 영화나 악몽이 아니라,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당면한 현실.
최 씨는 자신의 그 '현실'을 무서우리만큼 담담하게 읊었다. 아들의 시신이 차가운 공장 아스팔트 바닥 위에 누워 있고, 며느리와 딸이 매일 한 번씩 아들의 관을 열고 새 드라이아이스를 집어넣는다. 그러나 최 씨의 주검에선 이미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다섯 살배기 손자는 "아빠가 보고 싶다"며 새벽까지 울어댄다. 고혈압에 힘겨운 늙은 아내가 손자를 달랜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은 말이 없다.
이에 앞서 고 최강서 씨는 "민주노조 사수", 사측이 제기한 "손해배상 158억 철회"를 주장하는 유서를 남기고 지난해 1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한진중공업은 손해배상을 철회하지도, 유족과 대화하는 자리를 만들지도 않고 있다.
최 씨와 송 씨에겐 이 잔인한 현실을 넘어설 힘이 없다. 그래서 이들은 서울로, 국회로 가기로 했다. "우리는 조남호 회장을 못 만나도, 국회의원들은 회장을 만날 수 있겠지"란 생각에서였다. "기자들이 우리를 아무리 외면해도, 국회의원들을 외면할 수는 없겠지"란 생각도 했다.
지난 5일 최용덕 씨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아내 7명(이하 가족 대책위) 등이 국회를 찾았다. 아무런 대책도, 계획도 없었다. 가진 것이라곤 '절박함'뿐이었다. 온종일 국회 이곳저곳을 다니며 이들은 "정치권이 나서 노사 대화의 물꼬를 터 달라"고 호소했다.
[오전 11시, 민주통합당 지도부 면담] "공장에 들어가고 싶었던 게 아니다"
▲ 고(故) 최강서 씨의 아버지 최용덕 씨와 한진중공업 노동자 가족들이 5일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등을 만나 사측과 대화를 주선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하얀) |
최 씨 등을 처음 만난 건 민주통합당이었다. 오전 11시,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한정애 의원, 전순옥 의원, 은수미 의원, 이석행 전국노동위원장과 면담이 이루어졌다.
이 자리에서 최 씨는 지난달 30일 최강서 씨의 주검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안으로 들어가게 된 경위를 설명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원래는 우리가 갈 적에 회사 정문 앞에, 거기에 시신을 옮기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막 그 뭐냐, 토끼몰이를 당하다 그리로 들어가게 된 겁니다. 거기 들어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시작된 겁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못 나오게 하고, 음식물도 못 들어가게 하고…. 이게 사람이 할 짓입니까."
한상철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 부지회장도 민주통합당 의원들을 향해 같은 설명을 했다. 한 부지회장 설명에 따르면, 당시 유족들은 사측이 대화에 나서지 않자 영안실에서 최 씨의 주검을 꺼내 조선소 정문 앞으로 옮긴다는 결정을 내렸다.
시신을 볼모로 싸운다는 비판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영안실에 주검을 그대로 두어서는 회사가 대화에 나서지 않으리란 게 확실했다. 이미 네 차례 교섭 요청에도 응답이 없는 회사였다.
결국, 노조는 유가족 뜻에 따라 영안실에서 주검을 꺼내 조선소로 행진했다. 그러다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충돌이 생겼다. 최 씨의 주검을 든 이들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마침 하나 있었던 퇴로는 조선소 서문. 시위대는 주검을 들고 공장 안으로 '어쩌다 보니' 들어가게 됐고, 그 길로 공장 문은 닫혔다.
이후 언론은 시신 농성이란 단어를 기사 제목에 넣고, 앞뒤로 작은따옴표를 붙였다. 최강서 씨의 아내 이선화(37) 씨가 나서 자초지종을 설명도 해봤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의 싸움은 '시신 농성'이란 끔찍한 단어로 손쉽게 묘사되고 있다. (☞ 관련 기사 보기 : 故 최강서 부인 "어떤 부인이 남편 시신 볼모로 싸우냐")
애타는 이들, 돌아오는 건 "기다려라" "기다려라"
▲ 고 최강서 씨의 아버지 최용덕 씨. ⓒ프레시안(최하얀) |
면담 자리에 있던 민주통합당 의원 중 일부는 이미 최 씨를 만난 적이 있다. 지난달 16일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등은 최강서 씨의 빈소를 찾아 위로의 뜻을 전했다. 당시 문 비대위원장 등을 만난 최 씨는 "조문만 하고 끝내면 안 된다"고 호소했다.
"그 난리를 치고 있는데 국회의원 60명인가 70명인가 왔다 갔습니다. 오는 사람한테마다 얘기했습니다. 절 한 번 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고. 오셨으면 책임을 지시라고. 그런데 국회의원 배지 구경시켜주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못 풀 문제라 생각이 들면 손 확 들어버리시고, 풀겠다고 말을 했으면 행동을 보여달란 말입니다."
최 씨의 이런 토로에 자리에 있던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민주당이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는 뜻을 거듭 내비쳤다. 하지만 "사측과 대화가 성사되기 전에라도 장례를 치르는 건 어떠냐"는 설득도 계속됐다.
한정애 의원은 "이재용 한진중공업 사장을 만나 유가족과 교섭이 아닌 간담회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전했다"라며 "노조도 손해배상·가압류 철회와 노조 인정 문제까지 포함해 사측과 일괄 타결하려 하지 말고, 우선순위를 바꿔서 장례와 유가족 보상 문제를 먼저 푸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이에 한상철 부지부장은 "우리는 이미 어제 조건 없이 협상을 시작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며 "그냥 대화만 시작할 수 있도록 중재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측이 일전엔 시신을 빼면 대화하겠다고 했다가 이제 와선 공장에서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시신을 보내야 대화하겠다고 대화 조건을 바꾸었다"고 전했다.
한정애 의원이 다시 말을 이었다. 한 의원은 "대화를 진행하는 동안 유가족은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니냐"라며 "유가족의 삶이 정상적인 위치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장례를 먼저 치르도록 도와주고, 남은 것들은 우리 몫(민주통합당과 노조)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한 의원의 말을 가로막았다. 문 비대위원장은 "한정애 의원님, 지금 말씀하시는 건 사측과 어느 정도 얘기를 나누고 하시는 말씀이세요?"라고 묻더니 "그런 얘기를 함부로 하면 안 돼요"라고 말했다. 방 안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다시 말문을 뗀 사람은 이석행 민주통합당 전국노동위원장이었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그는 "제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참…"이라는 말로 시작해, "우선해야 할 일은 새누리당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 비대위원장에게 '새누리당 대표를 만나 최 씨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힘을 쏟자는 얘기를 해달라'고 제안했다"며 기다려달란 뜻을 전했다.
"기다려달라", "새누리당을 설득해보겠다", "대선에서 이겼어야 하는데" 등의 말들은 송 씨 등의 가슴을 들쑤셔 놓았다. 40여 분의 면담이 끝나자마자 가족 대책위 7명은 복도에서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송 씨는 "선화 언니(최강서 씨 부인)가 생각나면 밤에 잠을 못 자겠다"며 "우리가 그렇게 욕심을 부리는 거냐"고 물었다.
[오후 2시, 새누리당 지도부 면담 요청 거부] "대선 때는 다 만나주지 않았나"
▲ 최용덕 씨와 한진중공업 가족 대책위가 새누리당 지도부 면담을 요구하다 무산된 후 국회 방호과 직원들에 의해 끌려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이들은 다음 장소로 향했다. 정오께 노회찬·조준호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를 만났고, 점심 후엔 통합진보당 오병윤 원내대표, 이상규 의원, 이혜선 최고위원 등을 만났다.
같은 호소가 매 자리에서 이어졌다. 최강서 씨의 주검이 공장 안까지 들어가게 된 경위, 사측과 대화를 주선해달란 호소, 긴박한 영도조선소 상황 등. 같은 노래가 반복해 나오는 라디오처럼, 이들은 같은 이야기를 오전 중에만 세 번에 걸쳐 쏟아냈다. 지칠 법도 했지만, 눈물은 마를 줄을 모르고 때마다 흘러내렸다.
오후 2시께, 먼 길을 떠나온 이들은 "국회까지 온 김에 새누리당 지도부도 꼭 만나고 가야겠다"며 새누리당 대표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채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국회 방호과 직원들이 이들을 막아 세웠다. 곧 몸싸움이 벌어졌고, 복도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가족대책위 김순애 씨는 "왜 다 만나주는데 새누리당만 안 만나주는 것이냐"며 "대선 때는 재래시장도 가고 쪽방촌도 가서 다 만나주지 않았냐"고 항변했다.
열 명이 되지 않았던 방호과 직원들은 순식간에 수십 명으로 늘어났다. '한진중공업 사람들이 국회 안에 있다'는 소식이 이미 나돌았는지, 이날 경비는 유난히 삼엄했고 무전은 특히 신속했다.
여기저기서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울며 주저앉는 가족들과 사지가 들린 최 씨의 모습을 향해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결국, 새누리당 지도부는 만날 수 없었다. 최 씨 등은 방호과 직원들에 의해 국회 본관 후문 근처로 쫓겨나갔다.
[오후 3시 40분,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 면담 성사] "당내 여론이…"
▲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인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과 만난 최용덕 씨와 가족 대책위원들. ⓒ프레시안(최하얀) |
본관에서 쫓겨난 이들은 본관 옆 국회의원회관으로 향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인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서였다. 하지만 이미 본청에서 '난동'을 부린 인물로 낙인찍힌 이들은 의원회관에서도 '출입 정지'를 당했다.
최 씨 등은 의원회관 로비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김성태 의원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사이 최 씨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로비에 전시돼 있던 설 선물 상자들이었다. 건물 밖에 주차된 택배 트럭들은 쉬지 않고 설 선물들을 쏟아냈다. 최 씨는 "저건 의원들 주는 겁니까"라더니 "국회의원은 좋네. 아들 똑똑하게 키워 국회의원 시킬 걸 그랬네"라고 말했다.
오후 3시 40분, 김성태 의원이 회관 로비에 모습을 드러냈다. 국회를 방문한 열두 명 중 최용덕 씨를 포함한 2명만 의원실에서 만나자는 가족 대책위 쪽 제안은 이미 거부된 후였다. 대신 김 의원이 로비로 나와 이들을 만났다.
김 의원은 "다각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다만, 대화가 시작되기 전에 시신을 영안실로 옮길 수는 없겠냐"고 말했다.
가족 대책위 전 대표 도경정 씨는 "밖에 있을 때 사측이 안 만나주지 않았냐"며 "지금 시신을 영안실로 옮기면 대화하겠다는 회사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설 전에 사측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다각도로 노력하겠다"면서도 "당내 여론이 기업 노사 관계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쪽이라, 당 대표 면담을 주선하기는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오후 5시, 한진중공업 본사 피켓 시위] "조남호 회장 얼굴 한 번 봤으면…"
별 소득은 없었지만, 달리 할 일도 더는 없었다. 이들은 국회를 떠나기로 했다. 대신 서울 용산구 한진중공업 건설 부문 본사에서 잠깐이라도 피켓 시위를 벌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얼굴을 한 번이라도 봤으면 좋겠다"고 가족대책위 도경정 씨는 말했다.
이동 차량에는 곧바로 경찰차가 따라붙었다. 40분을 운전해 도착한 본사 건물 앞에서는 이미 노란 형광 조끼를 입은 전투경찰들과 본사 직원 수십 명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은 비로 바뀌어 있었고, 아내들은 남편들의 동료, 최강서 씨의 영정을 들고 본사 앞에 일렬로 앉았다. 그러나 이들은 이날 조 회장을 끝내 만날 수 없었다.
형체를 잃어가는 주검, 깊어가는 슬픔
▲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정문 뒤로 최씨의 주검이 담긴 관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국회부터 한진중공업 본사까지 두루 다녔지만 이들은 이날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사측과 대화하는 자리를 약속받는다는 소박한 바람도 이뤄지지 않았다. 시신을 옮기고 장례부터 치르라는 이야기만 들어야 했다. 야당 의원들은 속 시원한 답을 주지 않았고, 여당에서는 이들을 사실상 찬밥 취급했다. 서울로 올라올 때보다 더 무거워진 마음으로 이들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제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드라이아이스로 최 씨의 주검이 부패하는 것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조금씩 형체를 잃어가는 최 씨의 주검 옆에서, 아내 이선화 씨는 언제까지 찬바람을 맞으며 슬픔에 겨워해야 할까. 아버지 최용덕 씨는 "나도 아들을 따라 죽고 싶다"고 습관처럼 말한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라는 절박한 외침이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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