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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158억 손배? 외국은 '야만적인 한국'으로 볼 것"

[강자의 무기, 손배·가압류 ③] 노동계 "노조법 개정해 파업권 보장하라"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33조 제1항이다. 여기서 말하는 단체행동에는 잔업 거부, 태업, 부분 파업, 전면 파업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막상 노동자들이 단체행동을 하면,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은 손쉽게 제한된다.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악랄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평가받는 게 손해배상청구소송(손배)과 가압류다.
지난해 12월 21일 최강서 한진중공업 노조 조직차장을 자살이라는 벼랑 끝으로 몰았던 것도 이 손배·가압류였다. 최 조직차장은 유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노동 현장이 수십 억, 수백 억대의 손배·가압류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강자의 무기, 손배·가압류>

① 내 가족 죽게 만든 '연쇄 살인범', 알고 보니…
② 대한민국, 국민 목에 '돈의 칼'을 들이대다

"업무방해죄, 애초에 노동운동 탄압 목적으로 탄생"

혹자는 "야만적 자본주의 시대"라 부르는 19세기, 유럽에는 '단결금지법'이란 것이 있었다. 노동자들의 단결은 계약의 자유를 해치는 '죄악'으로 간주됐다. 여러 유럽 국가는 단결을 공모죄로 엄하게 처벌하는 '단결금지법'을 만들고, 노동자 파업을 철저히 차단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다음의 법조문이다.

임금 인상이나 임금 인하를 강요할 목적으로, 혹은 산업 또는 노동의 자유로운 수행을 방해할 목적으로, 폭력·폭행·협박 또는 위계로써 노동의 조직적(공동) 정지의 결과를 발생케 하거나 그 정지를 유지·존속케 하거나 혹은 그 실행에 착수한 자는 6일 이상 3년 이하의 구금 또는 500프랑 이상 1만800프랑 이하의 벌금을 매기거나 이를 병과한다. - 1864년 프랑스 형법 제414조(업무 방해)

쉽게 상상되듯, 이 조항은 파업을 원천 봉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와 관련,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이호중 교수는 "이처럼 '업무방해죄'란 애초에 노동운동을 탄압할 목적으로 탄생했다"며 "1864년 프랑스 형법은 일본 형법에서 '위력업무방해죄'로 변경된 후, 우리나라 형법에까지 반영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업무방해죄가 폐지돼, 지금은 없다. 우리와 법체계가 비슷한 일본도, 위력업무방해죄가 존재하긴 하나 노동자 파업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많은 노동자의 피와 눈물의 대가로, 이들 국가가 단결권을 비롯한 노동3권을 '기본권'의 하나로 인정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왜?…"파업을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논리 때문"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업무방해죄'가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에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파업이 개시되면, 거의 곧바로 업무방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및 가압류가 자동으로 따라붙기 마련이다.

이는 '파업권'을 매우 협소하게 인정하는 상황과 관련이 있다. 현행 형법 제314조(업무방해)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단, "노조법상 파업의 요건을 준수하면 예외적으로 업무방해죄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는다. 149년 전의 프랑스 형법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이 형법에 따르면, 업무방해가 본질인 '파업'은 기본적으로 불법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곧 민형사상 처벌로 이어진다. 이를 두고, 이호중 교수는 "(한국의 업무방해죄는) '파업은 일단 나쁜 범죄'란 전제를 깔고 있다"며 "정당화되는 파업을 아주 예외적인 것으로 풀어가는 이 논리 구조로 노동자의 권리는 제약되고 있다"고 말했다.

손배 금액 산정은 누가, 어떻게?

손배 금액의 규모와 그 산정 방식에 대해서도 노동계는 할 말이 많다. 한국의 경우, 기업들이 '일단 세게 걸고 보자'는 태도를 취하는 까닭에, 손배 규모가 수백억 대까지 치닫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진중공업이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158억 원 손배를 두고 노동계는 "말도 안 되는 산정 논리"라고 비판한다.

박성호 한진중공업 지회 부지회장은 "노조가 정리해고 철회를 걸고 2011년 파업했을 당시, 회사가 수주한 선박은 하나도 없었으므로 손해가 발생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게다가 사측이 노조에 청구한 158억 원 가운데 3분의 2는 2009년부터 2010년까지 합법 파업 기간에 청구한 금액"이라고 주장했다.

영업 손실을 측정할 수 있는 원자료(재무제표 등)를 애초에 사측만 가지고 있는 까닭에, 관련 소송이 노동자 쪽에 훨씬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태욱 변호사는 "영업 손실을 감정할 때, 사측이 가진 자료가 일단 기초가 된다"며 "그런데 이 자료가 어디까지 사실이냐를 검증하는 건 쉽지 않다. 자료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외부인(감정인)이 봐도 모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사측은 영업 손실을 청구할 때, 생산한 만큼 다 판매된다고 전제한다"며 "하지만 피고(노동자) 측에서는 생산해도 안 팔리면 오히려 손해라는 지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노사 시각 차이가 손배 소송에서 항상 쟁점이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사법부는 보통 "원고 편(사측)"이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권두섭 변호사는 "사측이 해괴망측한 논리로 손배 규모를 키워도, 법원은 아무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글로벌 스탠더드?!…"158억 손배, 외국은 '야만적'으로 볼 것"

반면, 외국에서는 파업의 불법성이 인정되더라도, 손배는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권 변호사는 "해외에서는 사측이 노동자에게 수십 억, 수백 억 원대 손배를 청구하는 것이 사회적인 지탄 대상이 된다"며 "오히려 사회적 비난에 따른 손실이 (손배 청구로 벌어들이는 이득보다)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다 보니 설령 법적으로 손배 소송이 가능해도, 사측이 이를 피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조경배 교수는 "영국의 경우, 사용자가 노동자를 상대로 한 손배 청구의 상한선이 약 1억 원 수준으로 제한돼 있다"며 "158억은 (영국에선) 상상할 수 없다"고 전했다.

조 교수는 "외국에서는 '한국의 손배가 야만적'이라고 볼 것"이라며 "갚을 능력도 없는 노동자와 노조에 수백 억대의 손배를 청구하는 건 누가 봐도 '보복'성 소송"이라고 말했다.

"국회가 나서야"…노동계, "민주당 의지 보여라"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대안은 노동법 개정"이라고 말한다. 노동계 역시 손배·가압류를 지금보다 더 제한할 수 있도록 관련 법안을 개선할 것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7월 노동계의 요구를 담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 등 10명이 공동으로 발의한 이 개정안은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개정안을 보면, "사용자든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 그 밖의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및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다만, 폭력이나 파괴 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대목이 나온다.

또 "손해배상에 영업 손실로 인한 손해 및 제3자에 대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는 포함되지 아니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아울러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 그 밖의 노동조합 활동으로 발생한 손해배상청구권의 강제 집행을 보전할 목적으로 가압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문제는, 이 같은 개정안이 과연 이른 시일 안에 국회를 통과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전부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 무소속 의원들이다.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 소속 의원은 아무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김태욱 변호사는 "민주당이 의지와 책임감을 가지고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자신들이 집권 여당이던 참여정부 당시에도 손배·가압류로 많은 노동자가 희생됐던 만큼 지금이라도 제도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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