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요동치는 체스판, 오바마의 잠 못 이루는 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요동치는 체스판, 오바마의 잠 못 이루는 밤

[해외시각] 美 권력교체기 가열되는 '그레이트 게임'

버락 오바마 차기 미 대통령은 최근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가니스탄 문제 때문에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와중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습 사태까지 터졌으니 오바마의 밤잠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팔레스타인 사태는 미국의 사활적 이해가 달린 중동 지역 전체의 정세를 뒤흔들 것으로 전망된다. 설령 휴전이 성사되더라도 이스라엘은 물론 아랍권, 이란 등 중동 각국에서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1월 9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임기 종료, 1월 31일 이라크 지방선거, 2월 10일 이스라엘 총선, 6월 이란 대선 등 줄줄이 이어지는 정치 일정에 그 같은 경향이 반영될 경우 중동 평화는 요원해진다. 부시 대통령의 '민주주의 확산' 전략에 의해 반미적인 민심이 중동 각국의 정국을 장악하는 '민주주의의 역설'이 오바마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되는 것이다.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윤곽 드러낸 미국의 전략

당초 오바마의 밤잠을 설치게 했던 아프가니스탄 문제도 그대로 남아 있다. '침략자의 무덤'이라는 그 나라에서 오바마의 병력 증파 전략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냐는 군사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 문제는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 지방을 둘러싼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의 한복판에 자리한 중차대한 이슈다.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체스판'을 장악해야 하는 미국의 고전적인 전략과 관련된 문제다. 러시아, 이란, 중국, 인도, 파키스탄, 유럽 등 오바마 대외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다투는 상대들이 모조리 걸려 있다.

최근 들려오는 심상치 않은 소식들은 미국의 권력 교체기에도 이 지역을 둘러싸고 치열한 각축이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내년 1월 4일 미국과 그루지야의 '전략적 동반자 조약' 서명, 중앙아시아 핵심 국가인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에 새로운 미군 기지가 건설될 것이라는 러시아 육군 참모총장의 주장, 러시아가 이란에 최신예 S-300 방공미사일 및 SA-20 미사일을 판매할 것이라는 보도 등.

인도의 고위 외교관이었던 M K 브하드라쿠마르(Bhadrakumar)가 지난 20일 <아시아타임스>에 기고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그리고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이란 글은 그러한 움직임들이 어떻게 엮여 돌아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브하드라쿠마르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렁에 빠져 있고 오바마의 증파 전략은 실패할 것이라는 통념을 뒤집고,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불리한' 전황을 영리하게 이용해 중앙아시아 그레이트 게임을 주도하고 있다고 평가 했다.

하지만 그는 그간 보이지 않았던 그같은 큰 그림이 최근 윤곽을 드러내면서 러시아, 이란, 중국 등이 대응책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아프간 전략을 추구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으로 게임의 판도가 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오바마가 진정으로 아프간의 유혈 참사와 고통을 끝내고 테러리즘을 영원히 근절시키고자 한다면 미국의 안보 정책을 주무르는 군산복합체, 석유 대기업, 냉전적 기득권 등과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하드라쿠마르는 과거 소련, 한국, 스리랑카, 독일,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쿠웨이트, 터키 등에서 근무했다. 이 글은 <아시아-퍼시픽 저널>과 <제팬 포커스>에도 게재됐다. 다음은 그 주요 내용이다. (☞
원문보기)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그리고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이 제시한 새로운 '아프가니스탄 전략'은 조지 부시 행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지정학적 과제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얼마나 분리해 낼 수 있는지에 따라 그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파키스탄 군부부터 얻어내고 있는 협조만큼이나 러시아와 이란의 협력도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오바마가 아프간 전략을 수행함에 있어 러시아와 이란을 테이블로 끌어들이기만 한다면, 오바마는 훨씬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러시아와 이란은 오바마가 자신들에 대한 봉쇄 전략을 포기할 용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나오고 있는 조짐들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오바마가 구성한 외교안보팀의 면면이나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을 유임시킨 것도 문제지만, 부시 행정부의 임기가 몇 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중앙아시아에 있는 러시아와 중국의 '뒷마당' 지역에 주둔 병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고 있는 것은 더욱 문제다.

▲ 2007년 10월 이란 방문 중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오른쪽)를 예방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현 러시아 총리(가운데). 이란의 강경파 대통령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배석해 있다. 팔레스타인 사태는 내년 6월 이란 대선에서 하메네이가 또 다시 강경파인 아마디네자드를 밀어줄 수밖에 없는 환경을 제공했다. 대통령 복귀설이 나돌고 있는 푸틴 총리는 경제위기 때문에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30일 대통령 임기 연장안에 서명함으로써 푸틴 복귀의 제도적 환경을 정비해놨다. 오바마 시대 러시아와 이란의 협력이 주목된다. ⓒ로이터=뉴시스
러시아와 이란의 협력

러시아와 이란이 손을 잡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두 나라는 이미 그렇게 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중국, 인도는 이러한 불길한 힘의 각축전을 예의 주시할 것이다. 그 나라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는 그레이트 게임에 따른 부수적인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해 당사자들이다. 미국이 아프간에서 벌이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은 이미 파키스탄을 뒤흔들어 놓았고, 그 여파는 인도로까지 번지고 있다.

지난달 인도 뭄바이에서 일어난 테러는 아프간 전쟁에 의해 야기된 군사적 혼란과 따로 떼어 놓고 볼 수 없다. 지난 16~17일 테러 문제를 협의하는 러시아와 인도의 실무그룹 고위 관계자들이 델리에서 만났을 때에도 (이란에서) 아프간 문제를 다루는 다른 고위급 외교관이 (러시아 관리들과의 협의를 위해) 델리에 왔다. 그는 바로 이란의 외무 차관인 모하메드 마흐디 아코운자데(Akhounjadeh)였다.

니콜라이 마카로프 러시아 육군 참모총장은 지난 16일 부시 행정부가 중앙아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에서 마지막 피치(last fling)를 올리고 있음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아프간의 지정학에 관한 중요한 사실을 폭로했다. 미국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새로운 군사 기지를 건설하는 계획을 밀어 붙이고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공개한 것이다. 이 같은 폭로는 크렘린궁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를 통해) 러시아는 오바마 캠프에 대한 실망감을 표한 것으로 보인다.

그와 동시에 러시아가 이란에 S-300 미사일방어 시스템(방공 미사일)을 판매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S-300은 한 번에 100기의 탄도미사일이나 비행체를 요격할 수 있는 사거리 150km의 최신예 지대공 미사일이다. 미 국방부에 오랫동안 자문해온 댄 구르(Goure)는 "이란이 S-300을 손에 넣는다면 군사적인 판도를 바꿀 수 있다(game-changer)"며 "모든 서방의 공군을 두렵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와 이란은 오바마 행정부가 자신들을 고립시키거나 구(舊) 소련의 일부 지역(near abroad)으로부터 자신들을 떼 놓겠다는 미국의 정책을 가속화하는 쪽으로 나갈 경우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을 준비하고 있는 듯 하다.

또한 항공 잡지 <Aviation Week>는 최근 러시아가 벨로루시를 통해 SA-20 미사일을 이란에 판매하려고 한다는 미국 관리들의 말을 보도했다. 한 관리는 "이란은 SA-20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며 "우리는 과거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거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우리는 지난 20년간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했고 어느 지역에서나 자유롭게 작전을 펼 수 있었기 때문에 방심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SA-20이 이란 핵 시설에 배치된다면 이스라엘의 첨단(그러나 스텔스 기능은 없는) F-15I와 F-16I 비행단에 직접적인 위협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이스라엘의 아모스 길라드 국방부 군사정책국장이 러시아의 S-300 판매를 따지기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한다고 16일 보도했다.

소련 정부는 현재 일어나는 일에 대해 '건설적인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지난 10월 러시아는 "문제 지역(volatile regions)"에 S-300을 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17일 러시아의 <노보스티> 통신은 S-300 관련 계약이 체결되고 있다고 보도했고, 러시아 연방 군사기술협력부의 알렉산더 포민 부장관은 러시아와 이란의 군사 협력은 "이 지역의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그는 특히 S-300 같은 시스템이 "새로운 군사적 갈등을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러시아의 뒷마당인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 지역(러시아 남부 카스피해~흑해)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은 S-300에 대한 러시아-이란의 협력과 관련되어 있다. 러시아와 이란은 나토군이 아프간 전쟁에서 궁지에 몰리더라도 워싱턴의 냉전적 매파들이 힌두쿠시 산맥(중앙아시아 남부)에서 그레이트 게임을 계속해 나갈 것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을 것이다.

군사 보급로의 정치학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미군 보급로와 관련된 이야기는 미국의 의도를 분명히 보여준다. (보급로에서 벌어지고 있는 탈레반의 기습 공격 등) 최근 벌어진 일들은 무장세력이 파키스탄 카라치항(港)을 경유해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가는 보급로를 혼란스럽게 함으로써 나토군을 공경에 빠뜨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에 따라 미국은 새로운 보급로를 찾아야 한다.

카라치 루트 말고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가는 길은 세 가지다. 하나는 중국의 상하이에서 출발해 대륙을 가로질러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또 하나는 러시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을 지나 아무다르야강(江)의 아프간 국경에 닿는 육로. 세번째는 가장 짧고 가장 많이 이용되는 '이란 경유로'이다.

러시아는 아프간 접경까지 이어지는 도로와 철로를 다 가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현재 신장자치구 우르무치에서 시작해 카자흐스탄 국경에서 끝나는 철로를 통해서만 중앙아시아로 들어갈 수 있다. 중국은 현재 카자흐스탄 접경 코르가스에서 알마티까지 가는 길, 카스에서 키르기스스탄으로 들어가는 길을 추가로 만들고 있다. 이 두 코스는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가는 전통적 관문인 우즈벡의 남부 항구 도시 테르메즈로 이어지는 소련 시대 중앙아시아 철로를 통해 중국을 중앙아시아와 이어준다.

그러나 미국은 이 보급로들을 이용할 수 없다. 이란을 통해 들어가는 건 안 되고, 러시아나 중국의 신세를 진다면 두 나라가 나중에 전쟁에 대한 발언권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수행하면서 러시아와 중국에 의존하게 되면 바로 그 두 나라에 대한 봉쇄 전략을 계속할 수 없게 된다. 중앙아 지역에 새로운 미군 기지를 만드는 문제는 물론이고, 나토를 이 지역까지 확대하는 계획도 중단해야 한다. 그것은 이 지역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한다는(rolling back) '거대한 중앙아시아' 전략을 보류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찾는 해법은? 세 가지로 가닥을 잡았다. 첫째, 파키스탄의 불만스런 군부 지도자들이 파키스탄을 통과하는 나토군 호송차량에 대해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의 존 케리 상원의원은 최근 이 지역을 방문해 파키스탄에 수십억 달러의 군사 지원을 추가하는 것과 별도로, 핵무기 수송이 가능한 F-16 전투기를 업그레이드해 달라는 파키스탄의 요구에 즉각 응하겠다고 약속했다.

둘째, 미국은 이란·러시아·중국을 피하고, 러시아·이란 봉쇄 전략에 부합하는 동시에 그 전략을 더 강화할 수 있는 전혀 새로운 루트를 확보하려 하고 있다.

카프카스 지역으로 진출하는 미국

미국은 남부 카프카스 지방을 통과해 아프간으로 들어가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육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보급 물자를 흑해까지 배로 수송한 후 그루지야의 포티항에 보내고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영토를 통과시킨다는 구상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루지야에서 아제르바이잔을 경유해 투루크멘-아프간 국경까지 가는 지선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가 현실화된다면 소련 붕괴 후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에서 미국이 벌인 최고의 지정학적 쿠데타가 될 것이다. 미국은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과 한꺼번에 양자 군사협력 관계를 맺으려 할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미국은 이 나라들을 나토 파트너십 프로그램에 끌어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특히 현재 나토의 특별 지위국(privileged status) 자격을 얻고 있는 그루지야가 나토 회원국이 되는데 대한 유럽국들의 반대를 무마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미국은 러시아가 주도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와 상하이협력기구(SCO)에 일격을 가할 것이다. CSTO와 SCO가 아프간 문제에 참견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며, 중앙아시아의 중요한 국가인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이 두 조직에서 나와 미국 및 나토와 직접 거래할 경우, 두 조직은 지역 안보 문제에서 힘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셋째, 러시아 <코메르산트>의 12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카자흐스탄 알마티에도 군대를 주둔시키려 하고 있다. "미국이 중앙아시아에서 벌이고 있는 일련의 협상은 어떤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카자흐스탄 의회는 지난주 미국이 아프간에서 벌이고 있는 '항구적인 자유' 작전을 지원한다는 외교각서를 비준했다. 미국이 비상시 알마티 공항을 이용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관련된 러시아의 외교적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나토가 러시아를 통과해 아프간으로 가는 보급로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협상을 벌이도록 미국이 용인했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나토의 협상 제안을 거절하기 힘들 것이다. 협상을 위해 나토에서 중앙아시아를 담당하는 로버트 시몬스가 지난주 모스크바에 갔다. 러시아는 나토에 보급로 문제를 협조할 경우 러시아와 서구 사이의 다른 문제나 아프가니스탄 문제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러시아에 의존하거나 협력할 필요가 별로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매우 영리했다. 나토가 러시아의 도움을 받게 하는 동시에, 자신들은 CSTO를 망쳐놨고, 카프카스와 중앙아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이해관계에 파열구를 냈다.

미국이 추진하는 카프카스 루트가 현실화할 경우 러시아의 최대 골칫거리는 미군이 남(南)카프카스 지역에 장기 주둔하게 된다는 점이다. 지난 8월 이 지역에서 일어난 러시아와 그루지야의 충돌 이후 미군은 흑해에 해군을 계속 주둔시키면서 정기적으로 그루지야에 들른다. 그루지야에 지상군을 주둔시키는 문제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있는 징후도 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그루지야가 나토 가입에 필요한 기준을 충족시키는데 도움을 주고 "안보 협력 및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내용의 문서 작성을 거의 완료해 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남카프카스 루트 개발은 돈이 많이 들긴 하지만 매우 안전하다. 러시아의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도 자유롭고 보급량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그루지야와 아제르바이잔 영공에 대한 통제권도 가질 수 있다."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을 지나는 육상 수송로는 또한 에너지 수송로로의 전환이 쉽고, 카스피해에서 생산된 석유와 가스를 러시아를 통과하지 않고 수송할 수 있다. 그것은 미국의 오랜 숙원이었다. 유럽국들은 에너지 수송로가 통과하는 나라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나토는 카프카스와 중앙아시아로 확장되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부활하고 전투가 격렬해지는 것은 미국에게 훌륭한 구실이 된다. 미국은 처음으로 카프카스 지역에 미군을 주둔시킬 것이고, 유럽 시장으로 연결되는 카스피해 에너지 수송로가 등장할 가능성이 커졌다. 러시아와 이란은 국경 지역에 주둔한 미군 때문에 직접적인 위협을 느끼게 될 것이고, 카스피해 에너지에 대한 경쟁에서 미국에 졌다고 여길 수 있다.

보급로 확보 경쟁은 힌두쿠시 산맥 주변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벌어지는 지정학적 쟁투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그간 알카에다와 탈레반에만 관심이 쏠렸기 때문에 그런 그림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지난 7년간의 전쟁은 아프가니스탄과 팔레스타인 사람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유럽국가의 병사들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지정학적 관점에서 미국은 그간 실로 커다란 성과를 거둬 온 것이다.

▲ 대선 승리 직후 백악관을 방문해 조지 부시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버락 오바마 차기 대통령. 오바마가 부시의 유산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군산복합체, 정보기관, 석유 메이저 등의 압력을 얼마나 버텨내느냐에 달려 있다. ⓒ로이터=뉴시스
꽃놀이패를 쥔 미국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장기 주둔 기지를 건설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전황이 악화되면서 중앙아시아에 새로운 미군 기지가 건설되고 있다. 미국과 파키스탄 군부의 긴밀한 관계가 계속되는 한편으로, 새로운 보급로를 확보하는 것은 미국이 중앙아 지역 러시아와 중국(그리고 이란)의 뒷마당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훌륭한 명분이 되고 있다.

인도와 관련해 카슈미르 문제를 다시 제기하는 것도 유용하다. 러시아, 중국, 이란, 인도 등 성향이 비슷한 나라들이 연합해 아프간 전쟁과 관련된 견해를 주고받기 시작할 경우 미국은 지정학적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미국은 이러한 국가들을 각기 따로 상대함으로써 그러한 움직임을 막는데 성공해왔다. 지역 강국들의 상호 관계에 숨은 모순을 이용해 이득만 챙겨온 것이다.

미국은 중국-인도 관계, 중국-러시아 관계, 이란을 둘러싼 상황, 인도-파키스탄 관계, 이란-파키스탄 관계, 러시아-파키스탄 관계에 모순적인 요소가 들어 있는 상황에서 몇 개의 꽃놀이패(trump cards)를 쥐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의 최우선 외교 과제는 아프간의 평화 프로세스와 관련된 지역 강국들의 공동 행동을 막는 것이다. 미국은 아프간 문제에 관한 국제회의를 열자는 상하이협력기구의 제안이 현실화되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16~17일 델리에서 러시아와 인도 그리고 이란과 인도의 협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보여주듯, 지역 강국들은 서서히 깨어나고 있고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국의 지정학적 전략에 대해 눈을 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힌두쿠시 산맥, 파미르 고원, 중앙아시아의 초원(steppe) 지대, 그리고 카프카스에 영구 미군 기지를 확보함으로써 러시아와 중국, 인도, 이란을 굽어볼 수 있는 전략적 허브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지역 강국들이 깨달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제 중요한 것은 오바마의 진정성(sincerity)이다. 진정으로 아프간의 유혈 참사와 고통을 끝내길 원한다면, 테러리즘을 영원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근절하길 원한다면, 아프가니스탄의 안정과 남아시아의 안정을 원한다면, 오바마는 선택해야 한다.

그레이트 게임이 야기한 '부수적인 피해'에 넌덜머리를 내고, 미국의 이 지역의 안보와 안정에 책임이 있다는 관점에서 아프간 문제에 관한 포괄적인 해법을 찾기만 하면 된다. 그것은 오바마가 주장한 가치에도 부합할 것이다.

그러나 물론 오바마는 미국의 안보를 주무르는 세력과 군산복합체, 석유 대기업, 냉전 전사들의 기득권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오바마의 등장으로 힌두쿠시 산맥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미국의 새로운 세기' 프로젝트의 결정적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