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는 대외정책에서 서툴고 무르다' 혹은 '테러리스트들을 놔두고 도망쳐 올 것이냐'는 경쟁자들의 공세에 맞서려면 이라크전이 아닌 '무엇'을 내놓아야 했고, 그 때문에 아프간이 선택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됐건 아프간 증파는 이제 오바마의 대표적인 약속이 됐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시행해야 할 정책이 되었다.
그러나 조지 부시 현 대통령에게 이라크가 '수렁'이 됐듯, 아프간은 오바마의 수렁이자 덫이 될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관련 기사 : '침략자의 무덤' 아프간, 오바마의 무덤 될까)
2003년 이라크 전쟁이 시작될 당시 이라크는 미국에 제2의 베트남이 될 것이라는 비유가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산악 지형을 이용한 탈레반과 알카에다의 저항, 주민들의 협조, 전세가 불리해질 경우 도망칠 수 있는 배후지(파키스탄)의 존재 등에서 이라크보다 아프간이 베트남과 더 닮았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이 베트콩을 섬멸한다며 캄보디아를 공격했듯 알카에다를 쫓아 파키스탄을 침공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미군이 파키스탄 쪽으로 자주 월경공격을 하는 최근의 전황은 그같은 전망이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국의 저명한 언론인이자 <뉴레프트리뷰> 편집인 중 하나인 타리크 알리(Tariq Ali)는 이같은 아프간의 상황이 미국에 '항구적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키스탄 출신으로 서남아시아 정세에 정통한 알리는 지난 16일 미국의 정치 논평 사이트 <카운터펀치>에 미군의 아프간 작전명 '항구적 자유 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에 빗댄 '항구적 재앙'이란 글을 기고, 미국이 20만 대군을 증파해 남서부에 융단폭격을 퍼붓지 않고서는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고 주장했다. (☞원문 바로가기)
▲ 미군의 폭격에 삶터를 잃은 아프간 아지자바드의 주민 ⓒ로이터=뉴시스 |
항구적 재앙 작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거의 30년 동안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을 합한 것 보다 더 긴 기간이다. 전쟁과 전쟁 사이 짧은 휴지기 동안 탈레반이라는 매우 위험한(malignant) 세력이 나타났다. 탈레반은 파키스탄 군부의 도움으로 탄생했고,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지난해 테러로 사망)는 탈레반의 카불 접수를 승인했다.
지난 2년 동안 미군과 나토군의 아프간 점령은 심각한 군사적 문제를 낳았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터졌고, 스타일이나 지적능력, 기질 면에서 전임자와는 다른 미국의 새 대통령이 탄생한 상황에서 아프간 철수(exit strategy)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봉착한 곤혹스런 상황은 표면적인 정책 변화만으로는 바꿀 수 없다.
워싱턴의 매파들은 미국이 처해 있는 군사적인 상황은 여전히 극복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기술적으로 볼 때 맞는 말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아프간 남부와 파키스탄 일부 지역에 융단폭격을 해야 하고, 수 십 개의 마을과 소도시들을 파괴해야 하며, 수없이 많은 파슈툰족 사람들을 죽여야 하며, 최소 20만 병력을 추가로 지원하고 그에 따른 장비, 공수 및 병참 지원을 필요로 한다. 그게 정치적으로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는 너무나 무시무시해서, 딕 체니 부통령조차도 군사적 해법을 말할 때 조심스러워했다.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과 그의 가문이 미국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해졌고, 그렇다고 카르자이 대신 유엔 주재 미국 대사 잘마이 칼릴자드(아프간 파슈툰족 출신)를 대통령으로 내세우기에는 너무 늦은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생존(실제 목숨일 수도 있다)을 위해 싸우고 있는 카르자이는 엄청난 마약 거래에 연루되어 기소된 동생 아매드 왈리 카르자이를 계속 보호하고 있다.
악화되는 상황
카르자이는 미국 정부로부터 눈총을 받고 있지만, 미군이 너무 많은 아프간 민간인들을 죽이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으로 그 눈길을 피하고 있다. 지난 8월 헤랏주(州) 아지자바드 마을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91명의 민간인(그중 60명은 아이들)이 사망했을 당시 카르자이가 보여줬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카르자이는 피해자들에게 콩고물을 나눠주고 생존자를 지원한다며 사람을 파견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건 주민들의 돌팔매였다.
최근 몇 년간 수 천 명의 아프간 사람들이 사망하는 상황에서 신(新)탈레반에 대한 주민들의 지지도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파슈툰족 거주지가 아닌 곳에서도 그렇다. 많은 아프간 사람들은 구(舊)탈레반에 냉담(hostile)하지만 자신들의 집을 파괴해 버리는 (미군) 헬리콥터와 미사일 장착 무인 비행기들과 맞서는 그들의 저항을 여전히 지지한다.
마이클 매코넬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지난 2월 미 하원 정보특별위원회에서 현지 상황에 대한 우울한 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아프간의 정치지도자들은 고질적인 부패와 만연한 양귀비 재배, 마약 밀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저항세력을 물리치는 것은 궁극적으로 아프간 정부가 치안 상황을 개선하고, 공공서비스를 실시하며, 경제적 기회를 확대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외국군들과 아프간 정부군이 탈레반과의 전투에서 전술적인 승리를 거두고는 있지만, 남부 일부 지역에서의 치안 상황은 악화되어 왔다. 탈레반은 과거엔 평화로웠던 서부와 카불 인근에까지 작전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탈레반 저항세력은 국제안보지원군(ISAF, 나토군)과 그들의 '항구적 자유' 작전 때문에 작전상 혼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역을 넓혀오고 있다. 지난해 3명의 탈레반 고위 지도부가 처음으로 사살되거나 체포됐음에도 불구하고 저항 공격은 치명타를 입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후로도 상황은 나빠지기만 했고, 미국군과 나토군이 증파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나왔으며, 나토 내에서도 심각한 분열상이 나타났다. 카불 주재 영국 대사인 쉐라드 카우퍼 코울스 경은 한 프랑스 동료에게 전쟁은 패했고 병력 증파는 답이 아니라는 메모를 보냈다.(유출되어 알려짐) 조크 스터럽 영국 공군 참모총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라크에 있는 군대를 빼서 카불에 보내는 것을 공공연히 반대했다.
스페인 정부는 아프간 철군을 고려하고 있으며, 독일과 노르웨이의 대외정책 엘리트들 사이에서도 이 문제에 관한 심각한 내분이 있다. 캐나다 외무장관은 2011년 넘어서 까지는 아프간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이미 발표했다. 미 국방부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미국 정부 내에서도 아프간 전쟁은 이길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세력들이 있는 것은 분명해지고 있다.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관이었다가 미 중부군 사령관이 된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장군은 이라크에 미군을 증파하는 작전이 '성공'하는 것을 지휘했지만, 예수가 죽음에서 살렸던 나자로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있다. 이라크 증파 작전은 반대파(수니파 저항세력)를 돈으로 매수해 일시적인 안정을 가져오는 것에 불과했다.
이라크의 상황은 너무나 지독했기 때문에 희생자가 조금만 줄어도 엄청나게 큰 성과로 비춰진다. 그러나 바그다드와 다른 지역에서 폭력 사태가 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작전이 성공했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공허하게 들린다. 아프간에서 새로운 미군 증파 작전(surge)을 하는 것은 성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민사작전(public relations)의 승리조차도 어렵게 할 것이다. 퍼트레이어스가 임명한 100명의 자문단 중 일부는 아마 이러한 문제를 강하게 제기할 것이다.
▲ 미국에게 '계륵' 같은 존재가 돼버린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 ⓒ로이터=뉴시스 |
퍼트레이어스가 아프간에서 기적적인 성공(miracle cure)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리석다. 암세포는 너무 멀리 퍼져 있고 미군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언론이 아프간 현지 병사들과 익명을 조건으로 인터뷰를 한다면 병영 내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말해 줄 것이다.
나는 최근 캐나다에서 만난 20살 미군 병사 줄스(Jules)로부터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프간에 근무하던 그는 전쟁에 환멸을 느끼고 탈영했다. 그는 많은 동료 병사들도 자신과 유사한 감정을 가졌으며 자신들과 아프간 사람들의 인간성을 빼앗는 전쟁을 증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병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아프간 민간인들에 대한 공격 뒤에는 심각한 정신적 상처가 숨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동료들에게 같이 탈영하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줄스는 이길 수 없는 전쟁이란 걸 확신하고 있고, 친구들이 더 이상 죽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오바마는 아프간에서 나와야 한다"라고 써진 티셔츠를 입고 있는 건 그 때문이다.
"2007년 1월 아프간 동남부 지역에 배치됐어요. 잘랄라바드에서 그 아래쪽에서부터 칸다하르 북쪽 끝 지역까지를 관할했죠. 우리 부대는 파크티카, 파크티아, 코스트 지역에서 저항세력을 평정하는 일을 했죠. 그 지역은 전쟁 초반 미국의 공격으로 파괴됐지만 어떤 구호도 이뤄지지 않은 곳입니다. (2002년) 아나콘다 작전은 탈레반을 섬멸하자는 것이었는데 군 지도부는 자랑처럼 얘기하지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웃는 작전이었습니다."
"나 같은 어린 병사들을 (아프간 전쟁에) 적응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간단해요. 인종주의적 쇠뇌를 하는 거죠. '아랍인들, 이라크인들, 아프간인들은 모두 하지(Hajj. 무슬림들의 메카 순례를 말하나 여기서는 무슬림에 대한 편견적 용어로 쓰임)다. 하지는 너를 증오하고 너희 가족들을 해치려 한다. 하지의 아이들은 언제나 구걸만 한다.' 이건 어리석은 선동이지만, 나 같은 세대의 군인들을 분노케 하기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나는 그가 상원 외교위원회에 나가 증언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명령을 수행하는 이들에게 전쟁이 남긴 상처는 과거 제국주의 전쟁이 남긴 상처만큼이나 깊다. (오바마가 선거 구호로 사용한) '우리가 믿는 변화'에는 아프간 철군이 포함되어야 한다.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지키며 아프간을 재건하기 위한 정치적 해법을 찾기 위해 아프간의 이웃 나라들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미군과 나토군 그리고 그들의 꼭두각시 정부(quisling regime)가 물러간 뒤 십년 간 진정한 아프간 정부를 유지하는 정치적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파키스탄은 물론이고 이란, 러시아, 인도, 중국이 개입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미군을 더 증파하는 데에 초점을 주고 있는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나 오바마 당선자가 제안하고 있는 계획의 맥락 안에서는 그같은 해법이 나올 수 없다.
당면한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기반시설을 만들고 그를 통해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서방 국가들과 수많은 엔지오들이 하려고 했지만 실패한 것들이다. 외국의 기업들이 지어준 학교에는 책걸상과 교사와 아이들이 없다. 그것은 서구 세력이 아프간에서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나를 보여준다.
2001년 시작된 '항구적 자유' 작전은 분명 '항구적 재앙' 작전이 되었다. 오바마 행정부가 과거로부터 완전히 단절할 수 있을지, 아니면 군사적 해법에다 약간의 다른 것만 가미할지는 분명치 않다. 조지 W 부시, 딕 체니, 도널드 럼스펠드가 아프간에서 만든 재앙으로부터 완전히 결별할 때만이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국내외적 압력이 가해져야 할 것이다. 중국은 나토군이 아프간과 중국의 국경 지대에 배치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의 대외정책을 변화시키기 위해 경제적인 압력을 행사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까지 이 지역에서 외교적인 완력(diplomatic muscle)을 쓰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은 계속되지 않을 것이다. 그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뭐가 있나? 파키스탄과 관련된 외부적인 압력은 아프간 전쟁을 뒤흔드는 분명한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파키스탄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고, 군부는 내적인 갈등을 빚고 있다.
아프간 철군을 요구하는 미국 내부의 압력은 약하지만, 사태의 심각성이 분명해지고 나토 동맹국들이 증파를 거부하면 그 압력은 급속히 커질 것이다.
그러는 동안 아프간에서는 이번 겨울 기근이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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