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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제로금리, 이미 타이밍 놓쳤다"

[분석] "FRB, 돈 찍어내는 수단밖에 안 남아"

지난 2일 유럽 최고의 석학 중의 한 명으로 꼽히는 윌렘 뷰이터 영국 런던정경대(LSE) 교수는 영국의 금융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FT)> 블로그를 통해 유동성 함정에 빠진 나라들이 '명목 정책금리'를 선제적으로 0%(제로)로 낮추는 특단의 조치를 취할 것을 제안했다.

이 제안은 디플레이션 성격의 불황에 빠져드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처하려면 이른바 '미친 정책'을 쓸 수밖에 없다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등과 기조를 같이 하는 정책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충격적이었다.
▲ FRB가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췄지만, 경기침체 극복을 위해서는 발권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어차피 미국과 일본, 유로존의 금리는 내년 중반 이전에 제로금리로 갈 수밖에 없는데,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선제적으로 하면 훨씬 큰 누적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복잡한 심리적 기제가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대부분의 이코노미스트들과 중앙은행 관료들은 이런 기제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실현가능성은 낮게 봤다.

실제로 지난 4일 유럽중앙은행(ECB)은 한 달 만에 기준금리를 다시 0.75%포인트 내려 2.5%를 만들었으며, 영국중앙은행(BOE)도 이날 기준금리를 3%에서 57년래 최저인 2%로 낮추는데 그쳤다.

오마바 "금리 인하로 침체 극복 못해"

이에 따라 그는 미국의 경우 내년초에나 제로금리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장에서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공개시장위원회(FOMC)가 16일(현지시간) 일단 0.5%포인트 금리 인하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뷰이터 교수의 권고를 받아들인 것인지 FOMC는 이날 정책금리 목표를 0~0.25%로 결정했다. 흔히 '제로금리 정책'으로 불려온 일본의 0.3%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FRB의 결정은 이미 '타이밍을 놓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중금리를 끌어내리기 위해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이 아니라 이미 은행간 금리는 제로 수준으로 떨어진 것을 반영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17일 <뉴욕타임스(NYT)>는 "명목 기준금리를 제로로 결정한 것은 어느 정도 상징성이 있다"면서도 "FRB가 기준금리를 1%로 유지하고 있을 때 이미 은행간 자금 수요가 거의 없어 실제 연방금리는 제로 수준이었다"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도 16일(현지시간) FRB의 금리 인하 결정 직전 "금리를 내려 침체를 극복하는 통상적인 방법이 더는 먹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시장에서는 FRB의 마지막 수단으로 대대적인 '돈 찍어내기'에 관심이 쏠려 있다. FRB도 기준금리를 1%로 낮춘 지난 10월말 금리 결정 회의 이후 불과 2개월 사이에 경기침체가 급격히 악화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필요한 만큼 통화량을 늘릴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언젠가는 찍어낸 돈 파괴해야 한다"

당면 문제는 디플레이션이며, 대대적으로 돈을 찍어내 풀어도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위험은 거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특히 11월 소비자 물가지수(CPI)가 이 통계가 작성된 1947년 이후 가장 가파른 추락세(전달 대비 1.7% 하락)를 보였으며, 근원물가(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품가격 제외)는 사실상 제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내년 1월에는 CPI 자체가 제로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시장조사기관 하이프리퀀시 이코노믹스)도 나왔다.

FRB가 구사할 유동성 공급 방안에는 발권력을 동원해 장기 재무부 채권, 패니매와 프레디맥 등 정부후원기업(GSE)들이 발행한 주택저당증권(MBS), 민간업체들과 소비자금융업체들이 발행한 회사채 등을 매입해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12월말 패니매 등 GSE들의 증권 매입에만 FRB는 6000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쓸 계획이다.

<NYT>에 따르면, 지난 9월 이후 FRB가 발권력에 의존한 새로운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에 따라 이미 FRB의 자산은 9000억 달러에서 2조 달러 이상으로 급격히 불어났다. 현재 계획된 프로그램이 완료되면 FRB의 자산은 무려 3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프린스턴대 교수로 FRB 부의장을 지낸 앨런 블라인더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FRB는 찍어낸 돈을 다시 파괴해야만 한다"면서 "상황이 정상화되면 은행들이 대출하려고 나설 텐데 그동안 찍어낸 돈을 그대로 둘 경우 인플레이션 압력이 극도로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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