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집단적 자위권 문제이다. 한-미-일 3자 관계의 앞날을 설명해줄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단적 자위권이란 동맹국인 미국에 대한 공격을 일본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일본도 대응에 나선다는 개념이다.
이를 놓고 군대 보유 및 전쟁 포기를 명시한 평화헌법(헌법 9조)에 배치된다는 해석이 유력했다. 그러나 아베 신조 총리는 헌법 해석을 바꿔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하고 다음 달에 예정된 미·일 정상회담의 의제로도 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엇갈리는 한미 간의 시선
아베 신조의 강경 드라이브를 바라보는 한미 간의 시선은 엇갈린다. 일제의 야만적인 식민 지배를 경험했고, 역사 인식, 교과서, 독도, 위안부 문제 등에 있어서 사사건건 도발을 일삼는 일본 정부의 숙원 사업을 한국으로선 환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왼쪽부터 박근혜 대통령당선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뉴스 |
특히 집단적 자위권은 일본의 '군사대국화'와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이미 최첨단 무기체계를 중심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날개마저 달게 되면 군비증강과 역할 확대는 불 보듯 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군국주의의 최대 희생양이었던 한국으로선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미국의 시각은 다르다.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미일동맹 강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인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집단적 자위권이 행사되면 미·일 동맹을 미·영 동맹의 수준으로 격상시켜 일본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기축으로 삼을 수 있다고 여긴다. 중국을 겨냥한 '재균형(rebalance)'를 추구하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에서 집단적 자위권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미국의 전략, '역사와 안보를 분리하라'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취하고 있는 태도는 '역사 문제와 군사안보 문제의 분리 접근'이다. 최근 오바마 행정부가 아베 총리의 방미를 늦추고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려는 아베 정권의 움직임을 견제하고 나선 데에는 단순히 일본의 역사 인식의 후퇴와 비인도주의적 행태를 우려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보다 본질적이고 전략적인 이유는 일본의 국수주의적 우경화가 한일 군사협력 및 한-미-일 3각 동맹 구축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질 것으로 본다는 데에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국이 일본의 우경화 가운데 역사 문제에 대한 국수주의적 우경화에는 난색을 표하지만, 집단적 자위권 인정과 같은 친미주의적 우경화는 적극 환영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미국은 한국에도 분리 접근을 시도해왔다. 부시 행정부는 참여정부를 상대로 한일 간의 역사 문제와 안보 문제를 분리하자고 제안하면서 한일 간의 군사안보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고(故)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역사 및 독도 문제에 대한 특강을 듣고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반면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라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를 경험했다. MB 정부는 한-미-일 3자 국방대화에 적극 참여, 군사훈련 상호 참관 등 한일 군사협력을 크게 강화하는 한편 군사협정 체결까지 시도했다. 그러나 군사정보호호협정 추진이 작년 6월에 들통 나면서 호된 역풍을 맞았고 8월에는 독도를 전격 방문하고 일왕에게 사죄를 요구해 한일관계에 일대 파란을 몰고 왔다.
오바마 행정부는 물론이고 <뉴욕타임스>와 같은 매체까지 나서 아베 정권에 자제를 촉구하고 나선 것도 위와 같은 학습효과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는 미국이 박근혜 정부를 본격적으로 상대하기에 앞서 사전정지 작업에 나섰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일본의 경거망동을 막아줄테니 한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장점을 이해하고 일본과의 군사협력에도 적극 나서달라'는 메시지를 들고 박근혜 정부를 상대할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
엄밀히 말해 집단적 자위권 문제는 미·일 간 양자 이슈여서 한국이 개입할 여지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이 문제 자체가 일본의 우경화 및 군사대국화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고, 그 주된 상대도 북한과 중국이라는 점에서 한국이 결코 제3자의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다. 더욱 중요하게는 집단적 자위권을 고리로 한 미·일 동맹의 강화가 한-미-일 3각 동맹 추진이라는 미·일 동맹의 보다 큰 전략적 그림 하에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한일 군사협정 체결 추진이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전문들에서도 잘 나온 것처럼, 한일 군사협정의 핵심적인 본질은 한-미-일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에 있다. 그런데 MD는 그 자체로도 한일 간에도 느슨한 형태의 집단적 자위권이 적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이 일본으로 날아가는 탄도미사일 정보를 일본에 제공하는 것 자체가 집단적 자위권의 범주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한국이 미·일 동맹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반대할 명문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대일 외교의 원칙을 분명히 하면서도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동북아 안보 정세에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남북관계 개선 및 6자회담 재개이다. 한반도 정세의 안정화는 집단적 자위권 추진의 가장 큰 구실 가운데 하나를 해소해준다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6자회담 재개 시 실무그룹 가운데 하나인 동북아평화안보체제도 본격 가동해 동북아 역내의 군사안보 갈등을 완화하려고 시도해야 한다.
상황이 어렵고 복잡할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한국에 그 기본은 바로 한반도 문제 해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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