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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아, 부디 전지전능해 다오"

[이근 칼럼] '神'이 되고픈 보수세력의 '맹랑한' 꿍꿍이

<PD수첩>은 전지전능한가?

광우병 관련 <PD수첩>에 대한 정부와 보수언론의 공격 논리를 쭉 읽어 보면 '아, 대한민국 국민과 정치는 <PD수첩>이 좌지우지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 방송국의 PD가 마음먹고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방영하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마치 실에 매달린 인형과 같이 조종당하면서 그 PD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촛불도 들고, 심지어는 폭력도 행사하게 된다. 가히 기독교의 신과 같이 전지전능한 힘을 일개 프로그램의 PD가 가지고 있다.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전지전능한 PD라면 사전에 자신에게 불리한 정부가 들어설 것을 예상했을 터인데(전지전능하므로 예지능력도 있을 것이다), 왜 마음먹고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 선거 등에 영향을 미치고 국민을 조종하지 못했을까? 왜 지난 5년, 아니면 10년 동안 권력의 축이 소위 '진보'에서 '보수'로 이동하는 것을 막지 못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PD수첩>이 전지전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혼자서 큰 흐름을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당연하고 상식적인 얘기다. 그렇다고 <PD수첩>이 아무런 힘도 없는 허깨비라는 것은 아니다. 그 동안 쌓여온 국민의 불만에 또 한 번의 불만을 얹을 수 있는 힘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불만들이 쌓이면 어느 순간 행동 유발의 임계점(tipping point)에 달해서, 순간 빠른 대중적 규모의 운동으로 이어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부터 <PD수첩> 혼자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전부터 쌓여왔던 불만과 기타 다른 요인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PD수첩>이 공공의 적이 되어야 하는가와 관련해 두 가지의 문제를 따져야 한다. 하나는 <PD수첩> 하나가 국민의 불만을 폭발적으로 발산시킨 것인지, 아니면 방영 이전에 국민들의 불만이 쌓여있었는데 거기에 또 하나의 불만을 얹은 것인지에 관련한 문제이다. 다른 하나는 <PD수첩>이 실제로 임계점(tipping point)을 제공했느냐의 문제이며, 그것이 공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정도의 문제인가이다.

첫 번째의 답은 상당히 분명하다. '문제'의 <PD수첩> 광우병 보도(4월 29일) 이전에 '그동안 쌓여온 국민들의 불만'은 틀림없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불만의 근원에는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인수위의 실수들, 이명박 정부의 코드 인사, 무책임한 인사, 몰역사적 대일외교, 국민보다는 협상의 성사 자체에 몰입한 미국산 쇠고기 협상, 서민과 동떨어진 경제정책과 말 뒤집는 대운하 계획, 1970년대식 물가관리와 새벽별 보기 운동 등 이명박 정부의 실정은 틀림없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실정을 국민에 알린 것은 <MBC>나 소위 '진보언론'뿐만이 아니었고 보수언론도 다 함께 보도했다. 이런 실정은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지 않고 알려졌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이 일정 시기 10%대(혹은 그 이하)로 떨어졌던 것이다. 즉 진보가 아닌 쪽도 불만이 쌓여 있었다.
▲ ⓒ연합뉴스

두 번째의 <PD수첩>이 임계점을 제공했는가의 문제, 그리고 설사 제공했다 해도 그것이 공적으로 비난받아야 하는 문제인가는 사실 그리 간단하게 답을 낼 수 있지 않다. (비판 언론의 필요성과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매우 상식적인 이유는 여기서 거론하지 않겠다) 임계점의 문제는 검찰이 아니라 사회과학자, 자연과학자가 모두 동원되어도 증명하기 어렵다. 인간사회에서 임계점이 언제 어떻게 오느냐에 대해 예측하는 권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그 이론적 혹은 경험적 증명도 매우 빈약한 상태이다.

4월 29일 <PD수첩>이 방영된 이후 바로 다음 날도 아닌 3일이 지난 5월 2일에 첫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광우병 국민 대책회의의 발족도 5월 6일이었다. 그리고 훨씬 규모가 커진 시위는 5월 31일, 6월 10일 등 한참 후에도 지속적으로 발생했는데, 이렇게 끊임없는 대규모 시위와 <PD수첩> 간에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은 상당히 무모한 일이다.

또한 합리적인 보수 논객인 중앙대 법대 이상돈 교수가 지적했듯, <PD수첩>이 좌파적 반정부 방송이었고, 그래서 대규모 집회의 임계점을 제공했다면 집회 이후 이명박 대통령의 두 번에 걸친 사과는 무엇이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설사 불만이 쌓여온 상태에서 <PD수첩>이 임계점을 제공했다고 천재 과학자가 나와 증명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PD수첩>이 단순히 하나의 시점에서 또 하나의 불만을 보도했을 뿐이기 때문에 국민적 행동을 유발한 책임을 혼자서 뒤집어 쓸 수는 없다.

따지자면 불만의 원인을 제공한 정부와 이를 지속적으로 보도한 보수언론, 진보언론, 구전통신 등이 <PD수첩>과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러한 공동 책임에서 <PD수첩>만을 분리해 책임을 물으려 한다면 다시 일개 PD의 전지전능함으로 논리가 회귀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 정부와 보수 세력은 황당하게도 <PD수첩>의 전지전능함을 인정하고 이들에게 족쇄를 채우려 하고 있다.

왜 좌파와 '친북·반미' 세력은 전지전능해야만 할까?

위협은 커져야만 제거의 명분이 서고, 확실한 제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위협이 크면 클수록 제거하는 것이 이상적인 처방이 된다. 역으로 만일 제거하고 싶은 대상이 있으면 이들의 위협을 과장해야 제거의 명분이 서고, 확실한 제거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자신들의 자유로운 권력 행사, 특권 독점 등에 방해가 되거나 비판하고 견제하는 세력이 있을 때, 이들이 엄청나게 전지전능한 세력으로 과장·과대 포장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이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된다.

한국에서 이러한 거대한 위협 세력, 때때로 전지전능성마저 부여받는 위협 세력은 대개 '좌파' '친북' '반미'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최근 정국에서는 <MBC> <KBS> <YTN>과 같은 방송, '노조' '촛불' '인터넷 포털'이 이러한 좌파·반미의 거대 위협 세력으로 분류되고 있다.

주장은 이렇게 진행된다: 방송국이 마음먹고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방영하면 순식간에 대한민국은 공산화되고, 북한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촛불도 그냥 놔두면 정권을 전복하고 헌정을 무너뜨리며 좌파의 손에 정권을 다시 넘겨주게 된다. 좌파의 역사교과서에 대한 조직적인 침투는 한국인 전체를 친북적으로 세뇌시키고 있고, 그러다 보면 젊은 세대는 모두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친북적인 사람이 된다. 포털사이트는 전부 좌파에 의해서 점령당했고, 포탈에서 표현의 자유를 그냥 놔두면 포탈을 이용한 여론조작으로 대한민국은 순식간에 공산화된다.

냉전이 한창이던, 그리고 북한이 상당히 잘 나가던 60~70년대에는 먹힐 수 있는 논리였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국제사회와 세계화의 큰 흐름 속에 들어가 있는 한국에, 그리고 경제의 무역의존도가 70% 이상인 한국에는 대단한 위협의 과장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은 이미 실패국가로 향하고 있고, 매일같이 들려오는 북한의 소식은 굶주림과 기근, 마약 암거래 등이다. 북한은 국제정세를 한국의 중앙일간지 사설을 통해 파악하기도 하고, 인공위성으로 밤에 찍은 북한의 사진을 보면 한반도 북부 지역이 시커멓게 나올 정도로 경제사정이 안 좋은 암흑의 나라다.

반면 한국의 초중등 교육은 세계적인 수준이고, 대학 진학률도 매우 높다. 문맹률도 거의 제로이고, 인터넷 접속률과 휴대전화 보급도 세계에서 수위를 다툰다. 한국은 국제사회와의 교류도 활발하고 다양한 문화와 정보를 접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실패하는 북한이 뭐가 좋아서 젊은 세대들이 그저 텔레비전 방송을 보고, 포털사이트의 토론을 보고 한국을 북한에 넘겨주고, 북한식 사회주의를 도입하자고 할 것인가?

좌파 역사교과서에 세뇌되어 한국의 젊은 세대는 민족적 자긍심도 하나 없이 피해의식만 가지고 있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한다고 보수 세력은 걱정하지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내고 세계적이고 역동적인 경제와 시민사회, 그리고 한류라는 문화를 만들어 낸 우리의 역량과 잠재력에 젊은 세대들은 열광하고 무한한 자긍심을 느끼고 있다.
▲ ⓒ프레시안

저들이 말하는 '좌파 세력'이 정말로 전지전능하고 엄청난 위협세력이었다면, '잃어버린 10년' 동안 지금 한나라당은 대한민국에서 사라졌고, 보수신문도 다 폐간되었을 것이다. 그 동안 대부분의 기업은 국유화되었고, 한미관계는 이미 절단 났어야 한다. 역사 교과서뿐만 아니라 국어교과서, 경제 관련 교과서도 다 좌파의 문학과 경제이론으로 채워지고, 대학의 경제학과는 마르크스 경제이론이 주류가 되었어야 한다.

세금은 최소한 북유럽 수준으로 걷었어야 했고, 분식회계나 탈세, 비자금을 마련한 기업주와 공범들은 아직도 다 감옥에 있어야 한다. 북한과는 이미 통일이 되었거나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들어가 있어야 하고, 주한미군은 철수했어야 한다. 저들이 말하는 '좌파 세력'이 그렇게 전지전능하고 일거에 나라를 뒤집을 수 있는 세력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잃어버린 10년 동안 가장 성장을 한 세력은 한나라당과 보수언론, 상위 1%의 특권 세력이고 법질서를 흔들어 댄 재벌 총수들은 치외법권에 존재했다. 역사교과서를 다시 쓰자는 뉴라이트는 엄청난 정치세력이 되었고, 대학의 경제학과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자는 나날이 도태되었다.

오히려 최근 자본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학문인 경영학이 최고의 인기학과 중 하나가 되었다. 세금은 아무리 올리려 해도 '우파' 국가인 미국보다 높이 올리지 못했고, 북한과의 관계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커녕 낮은 단계의 이산가족 상봉도 제대로 못했다. 좌파의 전지전능함은 산산이 부서졌고, 오히려 '우파'의 저물지 않는 힘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날이 강대해진 '우파'는 민주주의에서의 비판 세력, 견제 세력을 '좌파의 전지전능함'이라는 엄청남 위협으로 포장해 이들을 제거하고 통제하는 노력에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이는 결국 이들은 비판세력과 견제세력이 없는 자유로운 권력의 세상에서 살고 싶은 것이다. 보통사람들의 투명한 세상은 사라지고 감추어지고, 신비스러운 성역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 이명박 대통령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연합뉴스

바벨탑을 쌓는 보수 세력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존재는 아마도 전지전능한 신일 것이다. 세상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비판과 견제에서도 자유롭기 때문이다. 완벽하기 때문에 비판과 견제가 애초에 필요 없고,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있기 때문에 인간의 비판은 무식한 것이다.

문제는 종교의 세계에나 존재하는 신은 비판과 견제가 없는 절대적 권위와 권력을 가졌음에도 타락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비판과 견제가 없는 절대 권력을 가진 인간은 반드시 타락하게 되어 있다는데 있다.

인간은 탐욕과 어리석음 때문에 비판과 견제가 없으면 자기가 어떤 상황으로 가는지 제3자의 시각에서 성찰할 수 없으며, 그러다가 무한한 방종을 하면서 타락하고, 그 결과 타인들의 불만이 쌓여서 어느 순간 폭발의 임계점(tipping point)에 이르게 된다.

요즘 막 터져 나오는 외교 당국의 문제들은 비판과 견제 세력이 없이 한쪽으로만 돌진한 관료사회의 잘못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전지전능한 위협 세력인 '자주파'를 제거하고, 냉전사고의 '동맹파'만 남아 외교부 특유의 '비밀주의' '엘리트주의'로 자유로운 특권을 추구한 결과가 요즘 연속으로 터져 나온 외교적 추태들이다.

쇠고기 협상, 독도문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 사건, 금강산 총격 사건 등, 외교안보통일을 다 독식한 외교부가 견제와 비판 세력을 다 제거하고 보수 세력의 코드에 맞추어 홀로 독주하다 생겨난 안이함이 너무나도 뚜렷하게 보이는 사건들이다.

정보화, 세계화, 민주화가 진행된 한국 사회에서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작은 정부를 주창한 현 정부가 결국은 보수 세력과 함께 신의 영역으로 가고자 하는 무시무시한 바벨탑을 쌓으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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