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빈씨는 1983년 서울 출생으로 2002년 서울대 경제학부에 입학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사립학교법 개악 반대 시위를 주도했고 2002년 서울대에 입학한 후 타고난 모험심과 끼를 주체하지 못해 북미 여행과 인도 여행을 비롯해 군 복무 시절에는 아프가니스탄 파병까지 자원했습니다. 2005년 독도 라이더 모임을 결성해 광복절 기념 모터사이클 독도 투어를 했고 2006년 독도라이더 세계횡단 프로젝트를 시작해 전 세계를 누비고 돌아와 지금은 GT모험동아리를 기획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한중일 평화와 화합을 위한 중국 대륙 사이드카 일주를 했습니다.
박인규 : 안녕하십니까?
김영빈 : 안녕하세요.
박인규 : 독도가 또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잊을 만하면 항상 문제가 되고 있는데, 최근에 책을 냈어요, 친구들과 함께 전 세계를 돈 독도라이더라는 책을 냈는데 실제로 갔다 오신 건 2006년이죠?
김영빈 : 2006년 3월부터 10월까지 다녀왔습니다.
박인규 : 우선 이른바 독도 알림이 활동을 하고 계신 건데, 독도를 모터사이클을 타고 전 세계를 다니면서 알려야겠다. 하는 특별한 계기가 있어요?
김영빈 : 저희한테 있어서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건 2005년에 3월 16일에 다케시마의 날 조례가 통과되는 걸 봤고, 2005년 2월에 일본에서 망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 했는데요, 당시의 분위기가 지금의 독도에 대한 열기보다 훨씬 더 뜨거웠어요. 정부도 그때 강경 대응으로 돌아섰고, 언론, 국민들 할 것 없이 온 국민들이 독도를 지키기 위한 열의, 일본에 대한 분노가 대단했는데요, 저희도 한국의 청년들이고 피 끓는 나이다 보니까 어떻게 이럴 수 있냐 하면서 주먹을 치면서 이야기 하던 중에 안 그래도 여행을 함께 가자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단지 여행을 우리만의 여행, 또 우리들끼리 재미있게 떠나는 여행을 할 게 아니라 가치 있는 여행을 해 보자, 또 모두를 위한, 독도를 지키기 위한 여행을 해 보는 건 어떨까 하면서 독도를 전 세계에 알리는 홍보를 해 보자는 결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연한 계기였고요, 당시에는 그렇게 거창한 마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시작은.
박인규 : 2005년 시마네 현에서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제정하는 걸 보고 해 보자 해서 떠나는 건 2006년인데, 4명이 김영빈 씨하고, 나머지 3명은 어떤 분들이죠?
김영빈 : 군대에서 제 선임으로 있었던 이강석 형과 저랑 미국에서 UC버클리에서 같이 계절 학기를 들었던 카이스트 다니는 김상균 형이구요, 마지막으로는 서울대학교 모터사이클 동아리 후배인 홍승일 군, 이렇게 하께 하게 되었습니다.
박인규 : 그럼 2006년 3월부터 어디, 몇 개 나라를 다닌 겁니까?
김영빈 : 저희가 총 다녔던 나라는 21개국이구요, 제일 쉽게 루트를 말씀 드리면 횡단이요.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일단 미국에서 부터 여행을 시작을 했고요, 미국 대륙 다음에는 유럽 대륙에 들어가서 북유럽을 뺀 거의 모든 유럽 나라들을 돌았고요, 동유럽을 지나서 터키, 이란, 파키스탄, 원래는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이렇게 지나가려고 했는데, 국경 하나 통과하기 너무 힘들어서 나중에 이를 악물고 히말라야를 넘어서 중국으로 들어가고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저희 여행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박인규 : 아프리카와 중남미 빼 놓고는 거의 모든 세계를 다녔다고 볼 수 있는데, 실제로 다닌 거리가 얼마나 되요?
김영빈 : 모터사이클로만 순수하게 라이딩을 한 거리로는 한 2만 7천 km 정도 이구요, 총 저희가 이동한 거리는 3만 4천 km 정도 됩니다.
박인규 : 지구 한 바퀴가 4만 2천 km 라고 하니까 거의 다 한 바퀴 돌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저희가 젊었을 때는, 지금도 그런데 보통 오토바이라고 하는데 요즘은 모터사이클이라는 말을 많이 써요. 어떤 이유가 있나요?
김영빈 : 오토바이라는 단어 자체가 일본에서 건너온 단어이거든요, 이를테면 국민학교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것처럼 라이더들 사이에서 오토바이라는 말 대신에 모터사이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독도를 알리기 위해서 다녔는데 일본 사람이 만든 오토바이라고 하면 안 되겠군요. 그런데 원래 김영빈 씨는 원래 모터사이클을 좋아했습니까?
김영빈 : 저 같은 경우에는 대학 입학 하자마자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모터사이클에 대한 동경이 강했고요, 그런데 반면에 다른 멤버들은 승일이를 빼고는 사실 모터사이클을 잘 못 탔어요.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바이크를 배워서 같이 떠났죠.
박인규 : 아직도 어른들은 모터사이클을 굉장히 위험한 거다, 다치기 쉽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걱정을 많이 하는데, 몇 달 동안이나 전 세계를 다니는 모터사이클 여행을 한다고 하면 부모님들의 반대가 상당히 심했을 것 같은데요.
김영빈 : 그래서 사실 저 같은 경우에는 파병 같은 것도 다녀오다 보니까 부모님이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거의 포기를 한 상태이구요, 그런데 1년간 휴학을 하는 거에 대해서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공부를 너무 쉰다, 군대도 갔다 온 다음에,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반대가 심하셨고, 다른 멤버는 상균이 형 같은 경우에는 심지어는 계속 집에 비밀로 하다가 동아일보에 신문에 나가서 부모님이 보신 거예요. 그때는 반대를 하실 수 없죠. 이미 전 국민들에게 떠납니다 해 놨는데, 부모님들 입장에서도 그래, 자랑스러우니 잘 갔다 와라 하는 그런 반응이었죠.
박인규 : 떠나는 게 쉽지 않았군요. 언론 보도를 보니까 원래 김영빈 씨가 갖고 있었던 모터사이클 기종이 일본 거였다고 하던데, 실제로는 뭐 갔고 떠났어요?
김영빈 : 처음에 제가 산 기종이 파병 갔다 온 다음에 모터사이클 일제 오토바이를 샀었어요. 그런데 그게 독도 라이더로 활동 하면서 일제 바이크를 타는 게 누군가, 또는 일본 사람들에게 있어서 놀림거리가 될 수 있어서 제가 4개월 정도 밖에 못 타고 팔구요, 그 다음엔 국산 바이크를 타면서 조심을 했었죠.
박인규 : 자동차로 세계일주도 쉽지 않은데, 모터사이클로 7개월 이상, 거의 8개월 가까이 다니려면 준비도 많아야 할 것 같고, 중간에 사고 같은 것도 있었을 것 같은데, 문제가 없었습니까?
김영빈 : 문제가 엄청 많았죠. 그런데 저는 그 문제가 많은 점, 위험하고 누구나 생각하기에 쉽지 않다는 그 점 때문에 모터사이클을 선정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기자가 인터뷰를 하면서 저한테 묻더라고요. 왜 일부러 모터사이클을 했냐, 독도를 알리는데, 그래서 제가 반문을 했죠. 만약 우리가 모터사이클을 타고 전 세계를 도는 무모한 도전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직접 와서 연락을 한다면 인터뷰를 하셨겠습니까, 하고 물으니까 웃으면서 그렇다고 대답을 하더라고요. 관심을 갖게 하고 그런 관심을 자연스럽게 독도로 이어 가는 게 저희의 목적이었죠. 사실 처음엔 모터사이클을 선정 했을 때는 깊은 생각이 없었고요, 그런데 나중에는 경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사실을 알고 모터사이클을 포기하고 싶었어요. 그래도 우리가 독도를 잘 알리기 위해서는 되게 좋은 수단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고집을 피우고 끝까지 타고 돌게 되었죠.
박인규 : 왜 경비가 많이 듭니까? 모터사이클 여행을 하면?
김영빈 : 제일 많이 드는 게 일단은 기름 값이 아니냐고 종종 저한테 묻기는 하는데, 그것보다는 대륙을 건널 때 모터사이클을 타고 바다를 건널 수 없잖아요. 그래서 거기에서 운송비가 생각보다 굉장히 많이 들어요. 그래서 비용들이 굉장히 큰 부담이었고, 또 컨테이너 실어서 운반을 하는데, 대륙을 총 세 번 건너죠. 한국에서 미국 대륙, 유럽, 마지막으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이 세 번 건널 때마다 비용이 많이 들어서.
박인규 : 그게 사람 운임 비보다 훨씬 더 비쌉니까?
김영빈 : 네, 그래서 저희가 굉장히 제대로 못 먹고, 한 방에서 꾸겨서 자고, 험하게 생활을 한 데에도 너무 많은 경비를 쓴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언론 보도 보니까 1억 썼다고 하던데...
김영빈 : 총 경비가, 지원 받은 돈이 1억 가까이 됐었고요.
박인규 : 1억이면 굉장히 호화판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중에 모터사이클에 든 비용이 어느 정도입니까?
김영빈 : 절반 이상이죠. 모터사이클 구입비용과 운송비가 절반 이상이었고, 나중에는 파키스탄에서 돈이 다 떨어져서요, 돌아 올 때는 빚 져서 돌아왔어요.
박인규 : 4명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무모하게 미국 횡단을 하면서, 독일 횡단을 하면서 어떤 식으로 독도를 알린 겁니까?
김영빈 : 저희가 독도를 홍보한 방법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요, 첫 번째는 길거리 홍보활동 이에요, 그리고 두 번째는 세계 UC 대학 독도 세미나, 그리고 세 번째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독도 알리기인데요, 첫 번째 길거리 홍보활동 같은 경우를 설명 드리면 저희가 유명 관광지나 혹은 WBC 경기장, 그때 경기가 있었는데, 또 저희가 운이 좋게 유럽에 맞추기도 했었죠. 독일 월드컵, 그런 데에 가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사물놀이 공연을 해요. 저희가 3, 4개월 밖에 배우지 못하고 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물놀이 공연을 굉장히 즐겁게 보세요. 호기심 많게, 공연 시작하면 주변에 외국인들이 빙 둘러서 구경을 하는데, 끝나고 나면 간단하게 스피치를 해요, 5~8분정도? 그리고 독일에 가면 독일어를 짧게 외우고, 파리에서는 프랑스 어를 외워서 불어로 이야기 했는데 그러다 보면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요, 박수도 쳐주고 도와줄 게 없냐고 하면 저희가 독도 엽서를 나눠주면서 이 엽서를 주변의 친구들에게 쓸 때 이곳은 한국의 아름다운 섬 독도입니다를 추신에 붙여 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더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알고 싶어 하시는 분들에게는 서명을 받아요. 그중에는 독도를 알기 전에 한국조차 모르시는 분들도 계셔서 저희가 웰컴투코리아라는 한국 홍보 팸플릿이 있어요. 그걸 나눠 드리면서 이게 한국입니다 라고 소개를 해 드리고..
박인규 : 아직도 한국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군요.
김영빈 : 한국이 어느 위치에 있는 지 정확히 모르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래서 한국과 한국 지도, 그리고 독도가 제대로 표시 된 한국 지도거든요? 그걸 나눠드리면서 한국 홍보 활동도 함께 겸하고 왔습니다.
박인규 : 또 대학 가서는 어떤 대학에 주로 가서 강의를 하셨어요?
김영빈 : 저희가 아무래도 전 세계 UC 대학이라고 할 만한 첫 번 째 세미나 했던 곳이 UCLA였고요, 거기에는 한인 교포 2세들도 많아서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그리고 중간에 아틀란타 상공회의소에서 지역 주변에 있는 CEO들, 언론인들, 유명 인사들 모아서 거기에 있는 한동화 사장님께서 준비를 해 주셨는데, 뜻 깊은 자리에서 독도 이야기를 했었고요, 미국 대륙에서 마지막이 하버드 대학에서 세미나를 하면서 MIT와 하버드 학생들을 불러서 저희 독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사실 독일 월드컵 기간이 길거리 홍보가 잘 되어서요 당시에는 독일의 레겐스부르크 대학 정도만 가서 세미나를 하고 나머지 마지막으로 북경 대학에 가서 세미나를 하려 했지만 공안의 취소로 안타깝게 못한 사연이 있습니다.
박인규 : 중국에서는 왜 공안이 못하게 했을까요?
김영빈 : 당시에 일본과의 외교가 좀 더 진전이 된 상황이었는데, 이런 걸로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는 입장이었던 것 같아요. 정확한 이유는 설명해 주지 않지만 또 중국 학생들이 열의가 대단해서, 취소 공지를 다 돌리고, 그 날 온 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세미나 실 앞에 있었는데 취소 공지를 듣고 나서도 오셔서 같이 이야기 할 수 없냐, 듣고 싶다고 해서 열 댓 분과 함께 카페로 이동해서 조촐한 세미나를 거기에서 했어요.
박인규 : 안타깝네요. 중국과 일본이 앙숙인 것 같으면서도 우리와 끼면 그런 문제가 있네요. 유명한 언론하고도 인터뷰를 했다면서요.
김영빈 : 미국 같은 경우에는 샌프란시스코는 크로니클이 뉴욕타임즈같이 영향이 가장 큰 신문인데 거기에서 인터뷰를 해서 미국 사람들이 길에서 알아보고 인사를 해 주시거나, 미국에 있는 분이 저화를 하셔서 도움을 주시기도 하셨어요. 오토바이 다 수리해 주시고, 아틀란타에서는 AJC와 귀넷 데일리에 나오기도 하구요, 중간에 홍콩의 애플, 사과 신문에서 인터뷰를 한 번 하고, 유럽에서는 월드컵 기간 동안에 언론에서 스케치를 많이 해 가구요, 나중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프랑스에 있는 기자 한 분이 직접 오셔서 인터뷰를 직접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독도 민간 홍보 대사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까 말씀 드린 중에 독도는 물론이고 한국이 어딘지도 모른 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셨는데, 230일 동안 다니면서 외국 사람들과 독도 문제라든가 이야기 하면서 어떻던가요? 한국에 대한 인식이라든지, 많이 알고 있던가요?
김영빈 : 그래도 모르시는 분들보다는 한국에 대해서 아시는 분들이 훨씬 더 많아요. 그리고 확실히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정부의 노력도 있고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동시에 기업들의 역할도 크더라고요. 그래서 LG나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역할을 해 준 덕분에 한국의 이미지가 좋았고, 특히나 한국을 엄청 좋아하는 나라가 이란이었는데요, 제가 박물관에 갔을 때 이란의 여학생들이 차도르를 쓰고 수줍음이 많은데, 저한테 와서 사진을 한 번 찍고 싶다고 해서 한 번 찍고 나더니 줄을 서서 같이 사진을 찍는 거예요.
박인규 : 그게 한국인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까 아니면 젊은 남자여서 그런 거 아닌가요?
김영빈 : 아니요, 한국인이 이란에서 그렇게 인기가 좋아요. 이란에서 한국에 있는 테헤란 로가 있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이 강하고요, 이란에 있는 자동차의 절반이 프라이드에요. 한국 기업들의 역할이 대단하구요, 또 한국의 이미지가 굉장히 좋더라고요. 한국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잘 모르는 주재원들 또 그런 분들이 각지에 나가서 고생하는 거 보면서 자부심도 많이 느꼈습니다.
박인규 : 서명도 받았다던데 서명 중에는 북한 대사분도 한 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김영빈 : 저희가 독일에서 북한 공연단이 공연을 하는데 찾아갔었어요, 그래서 남북한이 함께 독도 문제에 대해서 뜻을 같이 하자는 의미로 갔었는데요, 거기에서 북한 대사님이 계시더라구요. 저희가 독도가 우리 땅임으로 전 세계에 홍보하고 있습니다. 서명을 해 주실 수 있습니까 라고 하니까 웃으시면서 서명을 해 주셨어요, 그리고 국적에 조선 사람이라고 적으시는데, 조선 사람이라는 말에 괜히 뭉클하더라구요.
박인규 : 그러면 서명은 전부 다 해서 몇 분이나 받았습니까?
김영빈 : 저희가 서명은, 부수를 늘리기보다 아무래도 뜻을 정말 공감할 수 있고 깊이 있게 아는 분들한테만 받아서 여행하면서 400부 정도 저희가 서명을 보았습니다.
박인규 : 그 서명은, '독도는 한국 땅이다'에 찬동하는?
김영빈 : 지지하고, 일본의 그런 행동을 저지해야한다고 지지하는 서명입니다.
박인규 : 그 서명을 받아서 활용을 좀 했습니까?
김영빈 : 원래는 일본 측에 전달을 하는 방안이나 일본을 방문하는 계획을 했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우리끼리 많은 논의 끝에 이러한 것들이 일본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이용되거나, 무엇보다도 염려되는 것이 일본의 우익 신문들이, 독도 라이더로서 이벤트 같은 활동들이 많은데 일본에서 그런 활동을 했을 때 이쪽이 오히려 이용함으로써 일본 국민들의 독도에 대한 감정을 자극하는 건 아닐까 걱정을 해서요, 사실 잘 보관하고 있다가 우리가 나중에 정말 중요한 순간에 쓸 수 있도록 가지고 있자. 또는 독도 라이더 2기가 됐을 때 일본의 젊은 청년들과 대중들이 아닌 함께 공감할 수 있고, 진정으로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인지에 대해서 이해해 줄 수 있는 일본의 청년들을 상대로 하는 활동을 기획하고 있고요, 그때 서명을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여행하는 도중에 혹시 일본사람을 만난 적은 없습니까?
김영빈 : 종종 있죠. 일본 분들도 묻기도 하시고요. 또, 오랜 토론을 한 분도 계시고요.
박인규 : 어떤 입장들이던가요? 일률적이진 않겠지만.
김영빈 : 다 공감을 해 주세요. 얘기를 하면, 아, 자기는 잘 몰랐다고, 독도에 대해서. 그런데 서명을 부탁하면 서명은 또 안 해주시더라고요.
박인규 : 영토 문제는 민감하죠.
김영빈 : 쏘 데쓰까, 이런 다음에 서명을 부탁하면, 그건 조금 더 생각을 해보겠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더라고요.
박인규 : 너희들 입장은 이해는 하지만, 독도는 우리 땅이다, 일본 땅이다. 그런 입장인가 보죠?
김영빈 : 굉장히 신중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일본의 청년은 좀 달랐어요. 그때 서명 용지를 준비를 안 했는데, 두 명 기억나는 청년들이 있었는데, 다 얘기를 하니까, 아, 한국 땅 맞지. 라고 해 주더라고요. 서명도 부탁하면 기꺼이 해줄 것 같았는데. 일본의 청년들에게는 희망을 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박인규 : 아까 말씀 하신 중에 2기 라이더, 그런 얘길 했는데, 김영빈 씨 팀을 이어서 한번 해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죠?
김영빈 : 도전 동아리를 서울대에 만들면서 제가 꼭 추진하고 싶은 프로젝트 중의 하나가 독도 라이더 2기거든요. 이게 1회성이 끝나기보다 앞으로 꾸준히 이어지면서, 이번에 서울대뿐만이 아니라 전국의 대학생들에게, 아무래도 책도 출간하게 됐고요, 이것을 읽고 공감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저는 뒤에서 적극 지원하고 싶고요, 꼭 2기를 출범시켜서 내년에는 전 세계를 누비는 독도라이더 2기가 있었으면 합니다.
박인규 : 한번 기대를 해 보겠습니다. 2기 독도 라이더, 나올 수 있을지.
박인규의 집중 인터뷰, 오늘은 독도 라이더의 대장인 서울대 김영빈씨를 초대해 네 명의 젊은 청년들이 독도라이더로 세계 횡단을 결정하게 된 배경을 비롯해 그들의 독도사랑과 7개월 동안 벌인 독도 지킴이 활동에 대해 얘기 나누고 있습니다.
독도 문제로 돌아와서 말이죠, 최근에 KBS방송에서 본 것 같은데, 호사카 유지라고 우리나라에 귀화한 일본인. 그 분이,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너무나 많은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도는 우리 땅이다, 라고 주장만 하지 여러 가지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게 부족한 것 같다, 그래서 안타깝다, 그런 말씀을 하세요. 김영빈 씨는 독도 알림이를 위해서 공부를 많이 하셨으니까 만약에 외국인 만나서 독도가 우리 땅이다, 라는 걸 설명할 때 주로 어떤 식으로 설명했어요?
김영빈 : 일단은 외국인들에게 얘기할 때는, 역사적, 국제법적 논리는 세미나에서 주로 얘기를 하고요, 좀 더 쉽게 설명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저희가 또 그렇게 믿기도 하지만, 독도가 단지 한일 간의 영토 문제, 밥그릇 싸움만이 아닌 진실과 거짓의 문제라고 접근을 했거든요. 우리는 보통 진실이 너무나 많은 경우에, 권력, 돈 또 힘이 의해서 가려지는 경우를 보잖아요. 실제로 일본이 이런 식으로 우리를 끊임없이 도발하는 건 그들이 좀 더 강한 힘, 경제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전 세계 사람들이 이러한 불의에 대해서 눈 감아 버릴 때, 여러분에게 있어서도 똑같은 일을 당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연대해야 된다는 설명을 해 드리고요, 국제법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일본이 주장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때, 독도가 누락되면서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케핀 677조나 다양한 부분에서 독도가 한국 땅임을 명백히 주장하는 자료들이 많은데요, 안타까운 게 지금 국제법을, 여름학기 수강하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요, 만약에 ICJ, 국제 사업재판소에 가서 재판을 한다면 한국이 패소할 확률은 드물어요. 만약에 여기에 권력이나 돈이 개입하지 않는 이상. 그런데 그 전에 많은 자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과거에 영토, 주권을 뺏기고 외교권을 뺏겼을 당시에도 독도를 지키기 위해서 나라에서, 정부에서 많은 노력을 했는데, 현재에 와서 이를 테면, 신한일어업협정 같은 경우에는 국제법적으로 굉장히 불리하게 해석될 수 있는 조항들이 있거든요. 오히려 가까운 지금에 와서 명백히 주권을 주장할 수 있고, 우리나라가 힘을 갖춘 상황에서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많이 느끼고 공부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박인규 : 어떤 전문가들은 국제사업재판소에 가면 우리가 불리하다는 얘기도 하던데, 김영빈 씨는 우리가 불리할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시는군요.
김영빈 : 거기 갈 이유가 없죠. 명백히 우리나라 땅인데, 그곳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건, 저는 생각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이번 사태가 나고 나서 어떤 시사 주간지의 표제를 봤더니, '냄비와 50년 대계의 싸움이다'. 누가 이기겠냐. 냄비는 한국이고 50년 대계는 일본이다, 뭐, 그런 얘긴데, 어떻습니까. 김영빈 씨는 민간 홍보대사로서 독도 알림이 역할을 했지만, 아무래도 중요한 건 정부에서 지속적인 로비라든가 홍보활동을 해야 되는데, 우리 정부에 대해서 학생 입장이긴 합니다만, 독도를 알리기 위해서 이런 걸 좀 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게 있나요?
김영빈 : 독도 문제가 터질 때면 매번 이렇게 여기 저기 일각에서 일어나요.
박인규 : 그야말로 벌떼 같이.
김영빈 :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비판하지는 않아요. 예를 들면 독도의 유인도화라든지 최근에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굉장히 반가운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도 그랬어요. 2005년에 그 분위기 속에서 독도 특위라고 해서 국회의원들도 그런 걸 설치하고, 저희는 여행 준비를 1년 정도 했으니까요. 국회를 찾아가서, 도움을 구합니다, 지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라고 했을 때, 사실 이미 그때는 유야무야 돼 있더라고요. 이거 해 봐야 국민 지지 받는 것도 아니고, 뭐랄까, 독도 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거나 이용하지 않았으면 하고요,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면서 또, 국민들이 지켜보든 그렇지 않든 혹은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일본이 그런 대응을 하기 이전에 미리 미리 독도에 관한 치밀한 계획들을 세워놓고, 이런 대응에 있어서 우리는 이런 걸 준비해왔다 라고 오히려 국민들을 향해서 그때 가서 얘기하면 저는 더 큰 신뢰를 얻을 거라고 생각해요.
박인규 : 하긴 7개월 여 간의 독도 라이더를 위해서 1년을 준비했는데, 국가 차원에서는 몇 십 년 준비해야겠죠. 계속. 지금 몇 학년이죠?
김영빈 : 4학년 재학 중입니다.
박인규 : 졸업을 앞두고 계신데, 앞으로 라이더만 하진 않을 테고 앞으로의 활동 계획, 진로 같은 건 어떻게 갖고 있어요?
김영빈 : 앞으로 제 꿈은, 독도 라이더를 하면서 오히려 한국, 중국, 일본이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극복을 하고 평화와 화합, 공동번영을 지향해서 된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이런 쪽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쪽으로 관련된 일을 하기 위해서 지금은 법을 전공하려고 로스쿨을 생각하고 있는데요, 혹은 로스쿨이나 유학을 해서 공부를 좀 더 해보는. 아무래도 제가
꿈과 진로에 더 적합한 길을 모색 중입니다.
박인규 : 무슨 미스코리아나 미스유니버스 대회하면 꿈이 뭡니까, 라고 하면 세계 평화, 라고 하는데, 약간 허망하게 들리지만 김영빈 씨에게는 그래도 약간 내용을 있을 것 같네요.
김영빈 : 저한테 있어서는 정말, 평화라는 단어나 전쟁이라는 단어는 단어가 아니에요. 왜냐하면 아프가니스탄에서 갔을 때 끔직한 것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평화가 얼마나 중요하고, 전쟁이 사람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고 가난과 굶주림들이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지 그런 걸 눈으로 봐서요, 기꺼이 사실 우리가 배타적 민족주의로 대항을 하고, 일본은 그들의 제국주의적 야욕을 끝까지 유지해 나가고, 중국 또한 자신들의 제국을 미국을 대체할 만한 제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팽창하는 순간, 그런 욕망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충돌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러한 것들을 지금 청년들한테 많이 기대를 해요. 우리들이 변화를 이끌어가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우리들한테 올 미래가 그렇게 장밋빛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제가 최근에, 호주 가서 3, 4개월 돈 벌어서 1년 동안 세계 여행을 한 대학생을 인터뷰 한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 젊은이들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대단한 것 같고, 혹시 젊은이들에게 못 다 하신 말씀 있으시면 마무리 말씀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영빈 :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충고를 할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절대 아닌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한 가지 이야기 한다고 하면, 전 항상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더 큰 사람이 돼서, 더 훌륭한 사람이 돼서, 더 잘난 사람이 돼서 뭔가 바꿔야지 이야기하기 전에, 지금 내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불의, 혹은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잘못된 일들에 대해서 눈 감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실, 우리 청년들이 외면을 하면 나중에 우리에게 돌아올 사회라는 건 더욱 더 잔혹하고 냉혹하기만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제안하고 싶은 건, 굳이 희생해가면서, 혹은 뭔가 다 몸 바쳐 가면서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방법이 있다는 걸 제안하고 싶어요. 독도 라이더는 나라를 위해서 저희 한 몸 희생하는 사람들 아니고요, 저희의 배움과 성장, 또 즐거움, 이것도 굉장히 큰 요소였어요. 함께 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가면서 다 같이 둘러봤으면 하는 욕심입니다.
박인규 : 김영빈 씨 같은 젊은이들만 있으면 대한민국의 앞날은 밝을 것 같고요, 꿈과 포부가 잘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김영빈 : 네, 지켜봐주십쇼.
박인규 :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영빈 : 감사합니다.
박인규 :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독도 라이더의 대장인 서울대 김영빈씨를 초대해 네 명의 젊은 청년들이 독도라이더로 세계 횡단을 결정하게 된 배경과 그들의 독도사랑과 7개월 동안 벌인 독도 지킴이활동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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