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한미 관계에 있어서 대외신인도에 무척 신경을 쓰는 것 같다. 한국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너무나도 미숙하게 처리하는 와중에 부시 대통령의 방한이 연기되면서 정부가 더욱 초조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과의 약속을 어떻게든 지켜내기 위하여, 그리고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미국에 보여주기 위하여 공권력 발동을 포함한 쓸 수 있는 카드를 전부 꺼내들고 있다.
국가의 대외 신인도라는 것은 외국 정부와의 약속을 수행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 그리고 한 번 한 약속을 뒤엎지 않을 것인지에 의하여 결정된다.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된 한미 FTA 협상 과정을 보면 미국과의 협상에서 이러한 대외 신인도와 관련된 문제가 어떻게 처리 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미국 정부는 한미 FTA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스크린 쿼터 축소 등을 포함한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이라는 것을 내 세웠다. 이 4대 선결조건이라는 것은 미국의 협상 전략 상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나는 한국 정부가 단독으로 4대 선결조건을 선결하는 것을 보면 한국이 한미 FTA 협상을 국내적으로 설득하고, 추진해 나갈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한미 FTA 협상이 실패하더라도 이 4대 부문에서 자국의 통상이익을 우선 실현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는 한국 정부가 실제로 한미 FTA 협상의 의지와 실행의 능력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대외 신인도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한미 FTA의 협상결과 혹은 비준결과와 상관없이 이 4대 부문의 소득을 보장받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한국의 협상팀은 임기 내에 한미 FTA를 추진한다는 목표때문에 퇴로(exit)를 만들지 않았고 그래서 미국이 원하는 국가의 신인도를 보여주는 4대 선결 과제 해결에 너무나도 조급하였다. 그리하여 국내의 많은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크린 쿼터를 축소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였으며, 의약품에 대한 새로운 가격정책 도입을 슬며시 중단하고,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기준에도 예외를 마련해 버렸다. (☞관련 기사 : 몰래 퍼주기가 주도적 여건 조성인가)
한국정부가 4대 선결조건을 풀어주면서, 즉 대외신인도를 높임으로서, 한미 FTA 협상은 본 궤도에 오른다. 거기다 이른바 逆進방지조항 (rachet)이라는 것이 한미 FTA에 포함되어 있어 한번 체결된 한미 FTA의 내용은 이전으로 되돌릴 수도 없게 되어 있다. 따라서 약속 이행의 능력과 의지, 그리고 약속 불번복의 의지라는 내용의 한국의 대외 신인도는 거의 완벽하게 미국에 보여주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국은 미국의 대외 신인도, 즉 약속을 이행하고, 약속을 뒤엎지 않을 수 있는 미국의 능력과 의지에 대해서는 한번도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고 또 선결조건을 요구하지도 못 했다. 그래서 지금 미국 의회에서 한미 FTA 비준이 매우 불투명해도 아무 소리 못하고 오히려 미국으로부터 또 다른 선결조건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협상의 시각만으로 볼 때 퇴로를 만들어 놓지 못한 노무현 정부의 통상팀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이 바로 미국 쇠고기 수입에 대한 완전개방이다. 한미 FTA와 미국 쇠고기 수입 개방의 사안은 서로 연계되어 있지 않다고 정부가 누차 주장해 왔지만 워싱턴에서 흘러나오는 얘기와 저간의 흐름을 볼 때 미국은 두개의 사안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연계시키고 있었다. 즉 미국은 쇠고기 시장이 개방되지 않으면 한미 FTA 의회 비준에 너무나도 핵심적인 미국의 의원들을 움직일 수 없고 (Beef Belt출신 의원들), 따라서 한미 FTA 미 의회비준이 불투명해 진다는 논리를 집요하게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는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미국의 협상전략상, 한미 FTA가 미국 의회에서 비준이 안 되더라도 한국 쇠고기 시장을 얻어낼 수 있는 매우 일방적인 협상 전략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다.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 FTA의 조기 성사에 외교정책의 최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4월 한미 정상회담에 맞추어 또 다른 사실 상의 선결조건인 미국 쇠고기 시장개방이라는 선물을 부시 대통령에게 선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기대하는 보상은 미국 내의 조속한 한미 FTA 비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예상과 다르게 이명박 정부의 대외 신인도가 여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대외 신인도라는 것은 약속을 이행할 능력과 의지, 그리고 약속을 뒤집지 않을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나도 반갑게도 미국 쇠고기 수입개방이라는 약속을 받아낸 부시 정부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명박 정부가 약속을 지킬 능력도 없는 매우 부실한 약속을 한 것을 확인하게 된다.
국민의 쇠고기 시장 개방에 대한 저항이 상상을 초월하고 있으며,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먼저 약속해 준 것을 자신이 자꾸 바꿔달라고 몇 차례나 미국에 와서 떼를 쓰고 있으니 미국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한국이 이런 약속을 해 주었는지 기분이 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미국에서의 이명박 정부 대외 신인도가 무참하게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대외신인도를 깎아 먹은 것은 이명박 정부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은 이명박 정부가 약속을 해 놓고도 지키지 못해서 이명박 정부에 실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처음부터 가지고 와서 괜히 부시 행정부의 국내적 입장만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는 데에 화가 났을 것이다. 최근 워싱턴 포스트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부시의 애완견으로 비유하거나, 이명박 정부에 별로 감동을 느끼지 않는다는 표현 등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이명박 정부 스스로 미국과 미국정부에 호구를 잡혔기 때문이다.
대외 신인도 및 대내 신인도 해결의 길
그렇다면 여기서 이명박 정부가 대외 신인도의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나온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지율 20% 밖에 안 되는 정부는, 그리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은 정부는 약속을 이행할 의지가 있어도 실제로 집행하기 어렵다.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그냥 폭력적인 힘으로 밀어 붙이면 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적 합의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대외 신인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당연히 국내에서 지지율을 올리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또한 대외 신인도라는 것이 미국 쇠고기 수입이라는 단일 사안에만 걸려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 모든 경제통상 사안, 그리고 여타의 외교적 사안에 다 걸리기 때문에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속적으로 높은 지지율이 대외 신인도에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대외 신인도 회복의 문제를 민주주의 국가의 방향이 아닌 권위주의 국가의 방향에서 접근하고 해결하려 하고 있다. 이행하지도 못할 약속을 한 자신의 실수를 국민이 비과학적인 괴담을 유포하여 약속이행이 안 되고 있다고 오히려 국민에게 책임을 덮어씌우고 있다. 그리고 약속 이행이 안 되도록 국민의 배후에서 반체제 "좌빨"세력이 조종을 하고 있다는 역공격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내 놓은 해법이 표현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촛불집회를 불법폭력시위로 규정하고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해결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러한 권위주의적인 해결방법은 오히려 국민의 지지율을 더욱 깎아먹게 된다. 더군다나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물론 이러한 강경진압에는 이명박 정부의 대외 신인도문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지기반인 보수세력에 대한 "대내 신인도"의 계산도 깔려 있을지 모른다. 즉 여기서 계속 밀리다 보면 보수세력 전체가 궤멸할 수 있으므로 이제는 더 이상 국민에게 조롱당하지 말고 단호한 힘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는 판단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계산과 판단은 매우 단견이 아닐 수 없다. 우선 대외 신인도의 측면에서부터 보자면 위에서도 분석한 것과 같이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우선적으로 회복하지 않으면 출범한지 몇 개월 되지도 않은 이명박 정부는 앞으로의 모든 대외 관계에서 약속 이행과 약속 불번복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합리적으로 국민의 마음을 사기 보다는 국민의 지지도와 신뢰를 오히려 비인권적인 방법으로 짓밟아 버리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의 모든 정책을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밀어붙이려는 모든 정책들은 국민의 일상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음식문화, 직장, 가족, 자녀교육, 물가 등과 관련된 사항이어서 단순히 강압적인 방법으로만 해결될 수가 없다. 국민을 직접 만나서 설득하고, 여러 번의 진지한 공청회를 하고, 전문가의 심층적인 심의를 하고, 투명하게 정책을 추진, 집행하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대대적인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문제들이다. 그래서 결과에 못지않게 과정의 정당성이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들이다. 이러한 국내적 신뢰를 사지 못한 정부를 미국이 아니라 유럽, 동남아시아의 국가들도 믿기 어려울 것이다.
보수세력에 대한 국내적 신뢰도 이명박 정부가 강경책을 씀으로 인하여 일단 이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지만 이는 보수세력 전체의 국민적 신뢰 저하로 연결되게 되어 있다. 즉 보수세력은 합리적으로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는 세력이 아니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5공식 무력진압을 하는 폭력적 반민주세력이라는 인식이 국민에게 각인된다는 것이다. 사실 요즘의 무력진압과 비도덕성은 사진과 동영상, 문서 등으로 모두 기록되고 남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실증적 증거들이 앞으로 계속 반복되어 인터넷을 장식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은 역사 청산의 대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지금 보수세력과 이명박 정부가 선호하는 강경진압 정책은 대외신인도의 면에서나 대내 신인도의 면에서나 모두 단견인 자살골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 시대의 폭력적 진압은 국민의 기억에 강하게 각인될 것이고, 그 결과는 결국 보다 높은 정치 참여와 투표로 나타난다. 이명박 정부와 보수세력은 민심의 변화를 결코 안이하게 봐서는 안 된다. 지금은 국민과 시민사회가 정부와 보수세력보다 더욱 전문적이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정부를 감시하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정부를 바꿀 수 있는 힘을 정기적으로 행사하게 되어 있다.
다른 글에서도 누차 강조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제라도 강경진압의 하드 파워가 아니라 국민의 자발적 지지를 살 수 있는 소프트 파워를 개발해야 한다. 지금 이명박 정부는 너무나도 매력이 없다.
* 이 칼럼은 미래전략연구원에 7월 3일 '이명박 정부의 대외 신인도 제고 전략에 대한 비판'이란 제목으로 발행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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