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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강도귀족의 사회'를 꿈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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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강도귀족의 사회'를 꿈꾸는가"

[이근 칼럼] 대한민국 공동체'를 생각한다 (상)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선택

학자로서 가장 기쁜 일 중의 하나는 자신이 만든 가설이 검증되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필자는 이명박 정부와 관련해 작년 말과 금년 초 '권력의 트릴레마(trilemma)'라는 가설을 제시했다.(☞필자의 관련 칼럼 : "정권 교체가 아니라 우파 정권의 재창출이다" ; "노무현 정부에서 배워야 할 것") 이에 대해선 이미 앞선 글에서 자세히 언급했기 때문에 여기서 간단히만 다시 정리하겠다.

'트릴레마'는 세 가지의 옵션 중 한꺼번에 세 개를 다 가질 수 없고 이 중 최대 두 개만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권력의 유지, 자유방임적인 권력의 사용, 그리고 권력사용에 있어서 투명성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가질 수 없다는 게 필자의 가설이었다.

권력을 잡은 정치세력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는 권력의 유지이기 때문에 이 가설에 의하면 이명박 정부와 보수세력은 결국 권력 사용을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절제하거나, 아니면 권력 사용의 투명성을 줄이거나 두 개 중 하나 만의 옵션을 갖게 된다.

필자는 이명박 정부와 보수세력이 과연 권력 사용을 민주적으로 절제하고 투명성을 열어놓을까에 대하여 사실 처음부터 매우 회의적이었다. 보수세력은 언론 등을 통제한 상황에서만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통제가 불가능한 민주화·정보화의 시대에서는 김영삼 정부 시절의 IMF 사태와 같이 무참하게 무너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통제의 시절을 추억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필자의 관련 칼럼 : 이명박 정부와 '통제의 추억')

특별히 뼈를 깎는 반성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 아닌 보수세력이 정권을 잡게 되면 이들은 다시 통제라는 패러다임으로 돌아가 권력을 맘껏 휘두르지 않을까 매우 우려됐었다. 그런데 이 우려는 생각 이상으로 빨리 현실화되고 있다. 정권의 언론 장악과 규제 시도, 시위에 대한 강압적 진압과 배후설의 유포 등 통제의 강도가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트릴레마 가설'에 의거할 때, 통제를 시도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로부터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결과는 권력유지의 어려움, 즉 지지율이 하락한다는 것이다. 민주화와 정보화가 진행된 한국에서는 정보 흐름에 대한 통제 자체가 불가능하며, 또한 무차별적인 통제는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발과 민주적 절차에 대한 항의를 불러오게 된다. 거기다 능력발휘가 안 되지만 권력 좀 마음대로 써보고 싶어서 조장하는 통제에 대해서는 더욱 심한 국민의 반발을 불러온다.

이미 한자리 수까지 떨어졌던, 그리고 아무리 회복해 봤자 20%대를 넘지 못하는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이 이러한 분석과 가설을 증명해 주고 있다.

이러한 가설의 증명은 물론 일회적으로 짧은 시간대에서 완전히 증명되었다고 할 수 없을 뿐더러, 설사 지금 증명되었다 하더라도 역설적으로 학자로서 그리 기쁘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국가가 역사를 등지고 뒤로 후퇴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통제가 다시 시작되고 있음에 격분만 할 것이 아니라 보수정권의 통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냉정히 따져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시작하는 통제는 그 모양이 과거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통제와 비슷해 보이지만, 그 내용과 함의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성격의 통제에 대처하고,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지금 닥치고 있는 통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누가, 누구를, 왜 통제하나

통제는 주체와 대상, 그리고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정권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았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정권의 성격을 보다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정권교체의 대상이 되었던 전(前) 정권, 즉 노무현 정권의 성격도 알아야 한다.

노무현 정권의 성격은 지난 글에서도 누차 강조했듯이 매우 민주적인 정부였지만 사회복지와 시장규제라는 기준에서 보면 우파정부라고 할 수 있다.(☞필자의 관련 칼럼 : 노무현 정부는 실용정부였다) 유럽 좌파인 사민주의와는 비교도 안 되는 신자유주의 우파정부였다. 종합부동산세와 같이 세율을 올리고 한편에서는 복지를 확충하려는 노력을 하긴 했지만 유럽, 일본과 비교할 때 세율과 복지 면에서 한참 못 미친다.

고이즈미 정부 시절 신자유주의로 전환한 일본과 부시 행정부 8년의 미국에 비하여 노무현 정부의 법인세 및 부동산 보유세도 매우 낮았다. 법인세는 오히려 인하했고, 부동산 보유세는 미국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을 포함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있어서도 이들 국가와 비교가 되지 않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였고, 재벌 규제도 완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더구나 정권의 종반기에는 무한경쟁의 사고를 받아들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마저 추진했다. 경제자유구역, 동북아 허브, 기업도시, 소득 2만 달러 시대 등 신자유주의적 성장정책은 수없이 많았다. 사실 필자가 개인적으로 대화해 본 경험에 비춰 보더라도, 노무현 정부의 고위 관료와 열린우리당의 상당수 의원들이 신자유주의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다.

정경유착과 국가의 시장개입이 심했던 과거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지만, 개혁의 방향이 좌가 아니라 우로 움직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우파 정부의 경제적 결과인데, 수많은 통계에 의해 증명되고 있듯 양극화의 심화로 이어졌다. 중산층이 붕괴되기 시작했고, 상위 소수로 부가 집중되었으며, 청년실업이 증가했고, 대기업 위주의 성장만 이루어졌다. 사회안전망이 부실해 바닥의 고통은 심해지고, 비싼 사교육 기회를 박탈당한 서민층은 미래에 대한 기회마저 박탈되는 게 아닐까 불안해했다.

문제는 보수세력과 보수언론이 노무현 우파정부에 의해 생산된 양극화를 좌파정부의 정책실패로 규정하면서 더욱 신자유주의적으로, 더욱 오른쪽으로 단추를 잘못 끼게 되었다는 데 있다.

과도한 복지부담에 의해 국가경제와 사회전체의 효율이 떨어질 때 즉, 경제성장이 멈추고 실업이 늘어나고 공공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때 정부가 균형을 맞춘다는 명목으로 신자유주의적 요소를 도입하면 국민들로부터 어느 정도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정책이 과도하게 왼쪽으로 움직여서 부작용이 생겼을 경우 오른쪽으로 이동시켜 균형을 맞추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 신자유주의 정부를 좌파로 규정했기 때문에(정권교체를 위한 정치적인 프레이밍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우파라고 규정한 이명박 정부와 보수세력은 이미 계속 오른쪽으로만 이동한 한국의 정치·경제를 순식간에 최우측으로 이동시키게 된 것이다.

복지제도와 사회안전망 구축에 대대적인 노력을 한번도 한 적이 없었던 한국이 순식간에 약육강식의 살벌한 정글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마치 최상위 부유층에 최소한의 세율을 보장하고, 이들의 권익을 지키는 역할 외에 정부가 하는 일이 별로 없었던 19세기 말, 20세기 초 미국의 금권정치(plutocracy), 또는 강도귀족(robber baron)의 시대를 보는 것과 같다.
▲ 이명박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의 만남 ⓒ연합뉴스

19세기 미국의 모습

잠깐 미국 얘기를 해보자.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뉴딜 이전)의 미국은 매우 심한 빈부격차를 기록하고 있었다. 대공황 직전인 1920년대 총소득 중 43.6%가 상위 10%로 집중되었고, 총소득의 17.3%가 최상위 1%로 집중되었다.(자산소득 제외) 또한 1929년 주식 배당금의 70%가 상위 1%에 돌아갔다. 당시 소득세 최고율도 24%에 지나지 않았으며, 상속세도 최고율이 20%였다. 기업의 법인세도 14%에 머물고 있었다. 이러한 빈부의 격차는 대공황 이후 루즈벨트(FDR) 대통령이 실시한 뉴딜 정책 이후 상당히 축소된다.

많은 논쟁이 있지만, 빈부격차 축소의 중요한 원인은 분배를 강조하는 정책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설득력을 가진다. 최상위와 그 이하간의 세전(before tax) 소득 격차는 뉴딜 이전과 이후에 별 차이가 없었지만, 세후(after tax) 소득 격차가 뉴딜 이후 상당히 줄어들었다. 즉 부유층으로부터 세금을 더 많이 걷은 것인데, 소득세의 최고율이 루즈벨트 대통령 당시 79%까지 올라갔고, 1950년대 중반에는 91%까지 이르렀다. 연방 법인세도 1955년에는 45%까지 올라갔다. 부동산에 부과되는 최고 세율도 77%까지 올라갔다.

결국 1929년 상위 0.1%가 미국의 전체 부의 20%를 보유하던 것이 1950년대 중반에는 10% 정도로 떨어졌다. 뉴딜 이후에는 노조의 결성과 단체교섭을 장려했고, 친노동 정책을 펴서 중산층의 증가로 이어졌지만, 동시에 미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이러한 진보적인 경제정책을 깨기 시작한 것이 공화당 보수정권이고, 레이건의 집권과 함께 시작된 그 이동은 현 부시 행정부에 들어서서 우경화가 너무 심해지다 보니, 빈부 격차는 다시 1920년대 수준으로 돌아왔다.(통계의 유사함이 놀라울 정도다). 미국의 신자유주의 보수정부는 부유층을 대변하고 보호하고 있으며, 경제정책의 대부분을 강자에게 유리한 시장에 맡기려 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인 버락 오바마가 '변화'라는 구호를 들고 나온 것인데, 따라서 자연스럽게 이번 미국 대선의 핵심 쟁점은 이라크 전쟁 못지않게 경제와 의료보험 등 복지문제로 모아지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의 경제정책은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진보적인 방향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상의 논의는 2007년 출판된 폴 크루그먼의 저작 <The Conscience of a Liberal>를 참조했다. 한국에서는 <미래를 말하다>로 번역된 이 책은 미국의 정치·경제뿐만 아니라 지금 한국의 정치경제를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므로 일독을 권한다)

야당 모습도 빼닮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부로 규정하고 더욱 완벽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하는 이명박 정부와 보수세력은 한국을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미국과 유사하게 만들고 있다.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약한 경제구조를 최극단의 오른쪽으로 움직여서 최상위로 부의 집중을 심화시키고, 정부와 보수세력은 그 특권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의 완성과 공권력의 사용을 추구하게 된다.

부의 집중이나 세제 면에서 한국은 19세기 말의 미국과 상당히 유사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보수세력의 핵심 어젠다인 공기업 민영화, 규제완화 및 철폐, 한미 FTA, 직접세 감소, 대기업 중심의 성장정책 및 복지혜택의 축소 등은 상당부분 19세기 말의 미국과 다름이 없다.

잘 알려져 있지만, 당시 미국에서의 일방적인 자본주의 흐름은 유럽에서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사상을 낳았고, 1917년에는 결국 러시아혁명까지 일어나는 역사의 흐름을 보게 된다.

한국이 19세기 말의 미국과 더 한층 유사해 지는 것은 정치지형, 특히 야당의 정책적 정향에서도 나타난다.

당시 미국은 대기업과 부유층을 옹호하는 공화당이 남북전쟁과 대공황 사이에 16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12번을 이겼고 의회도 대부분의 기간을 공화당이 장악했다. 이때 야당의 역할을 한 민주당이 대통령 선거에 이기거나 상당히 가능성을 보였던 적은 민주당 후보가 소위 말하는 '버번 민주당원(Bourbon Democrat)'으로서 공화당과 매우 유사한 성향을 보이는 후보들일 경우였다. 즉, 대다수의 중하위 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상위층를 대변하는 세력만이 대권에 근접해 있었음을 의미한다.

한국의 제1야당인 통합민주당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이어 받은 신자유주의 성향의 의원들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고, 더더욱 신자유주의적인 성향인 한나라당 대선주자 중의 한 사람이 그 당을 대표하고 있다. 한미 FTA에 대한 지지도에 있어서도 한나라당과 별반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성장이 시대정신이라고 외쳤다는 점에서도 우파 보수세력과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제 통제의 주체와 대상, 그리고 통제의 목표가 어느 정도 윤곽을 잡는다. 그 주체는 바로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세력이 되고 이들은 많아야 상위 10%이내를 대변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 저항하는 90%이상의 세력, 특히 이번 광우병 쇠고기 파동의 전과정을 통해 보수세력이 서민이 아니라 극소수 상위층만을 대변한다는 실체를 알게 된 대다수의 국민들은 통제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통제의 목표는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19세기 말의 미국과 같은 사회를 창설하는 것이다. 그에 맞는 정치형태는 상위 대기업과 부유층, 그리고 정치세력이 연결되는 금권정치(plutocracy)가 되는 것이다. 대기업에 돈이 몰려도 고용은 증대하지 않고, 경제가 성장해도 대기업만 혜택을 받고, 대기업과 상류층이 범법을 해도 대충 빠져나가게 된다.

이러한 체제에 저항하거나 불만을 가지면 공공질서의 확립, 헌정질서의 수호라는 이름으로 공권력을 발동해 탄압, 통제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충고를 받들어 사람들이 많이 보지 못하도록 정보의 흐름을 통제해 많이 알지 못하도록 한다.

따라서 지금 '촛불'과 정부의 대결은 정부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느냐와 관련된 대결이다. 그리고 90% 이상의 한국 국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극단적으로 최상위층만을 대변하는 자본주의가 균형을 잡아 한국에 정의로운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들어서기를 바라는 것이지 사회주의 혁명이나 공산주의 혁명을 원하는 게 아니다. 촛불시위와 다음 아고라, '82쿡닷컴'의 토론방을 보면 이들은 자본주의에서 소비자로서의 주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지 체제전복 세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생겨나는 문제가 바로 공동체(community)의 문제다. 90% 이상이 하나로 연결되는 공동체의 문제가 생겨나는 것이다. 2편에서는 특히 새로운 '대한민국 공동체'의 문제를 자세히 보면서 현 정권이 시도하는 통제의 성격을 보다 명확히 규정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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