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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과대평가 말고, 우리가 남북관계 주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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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북한 과대평가 말고, 우리가 남북관계 주도해야"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6/23] 회고록 '피스메이커' 펴낸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최근 6.15 공동선언 8주년을 맞아 금강산에서 이를 기념하기 위한 민족통일대회가 열렸는데요. 2000년 6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정상회담 추진 과정과 대화록, 그리고 숨겨진 비화 등이 담긴 회고록이 출간됐습니다. 바로 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2000년 6.15 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 남북관계의 중요한 고비마다 숨은 주역을 맡았던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의 회고록인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현재 세종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을 초대해 회고록을 내게 된 배경과 지난 20년 동안 현장에서 지켜본 남북관계와 북핵문제에 대해 자세한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입니다. 임동원 전 장관은 1957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고 서울대 철학과에서 수학한 이후 육사 교수생활을 시작으로 27년 동안 군사전략가로 군에서 복무했습니다. 1980년 육군소장으로 예편과 동시에 외교관으로 임명돼 나이지리아와 호주대사, 외교안보연구원장을 지냈으며 1990년대 초에는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로 「남북기본합의서」와「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와의 정책 공조를 이끌어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본격적으로 추진했고 2000년 6월에는 분단역사상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6?15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 내는데 기여했습니다.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과 국가정보원장, 통일부장관 그리고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별보좌역을 역임했고 현재 세종재단 이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청조근정훈장, 황조근조훈장, 보국훈장 천수장과 삼일장 등을 수훈했습니다.

▲ ⓒ프레시안

박인규 :
우선 축하드립니다. 최근에 회고록도 내셨고, 금강산도 다녀오셨죠? 이번 금강산 민족통일대회는 아마 6.15공동선언 이후 가장 조촐한 대회였다. 남북 정상이나 당국자도 참석하지 않았고, 마음이 착잡하셨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어떠셨습니까?

임동원 : 서울에서 열었어야 되는데 사정이 여의치 못해서 금강산에서 개최했습니다. 차분하게 남과 북, 그리고 해외에서 오신 대표들이 모여서 6.15공동선언 실천의지를 다지는 좋은 계기가 됐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깨지지 않고 유지됐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어쨌든 북미 간의 북핵문제가 잘 풀린다고 하니 숨 좀 골라가면서 앞으로 남북관계가 발전하는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고요. 이번 회고록의 제목이 피스메이커에요. 평화를 만드는 사람. 책을 봤더니 군에 계실 때는 피스키퍼. 평화를 지키는 사람이었고 지금은 피스메이커로서 활동하신다고 하셨는데 지난 20년 동안의 활동에 대해서는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임동원 : 약 20년 전에 국제냉전이 종식되고 미국진영과 소련진영이 대결하는 냉전이 끝나고 공산권이 붕괴되고 국제정세의 지각변동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한반도에서는 아직 냉전이 지속되고 있는데, 역시 새로운 시대를 맞아서 냉전을 한반도에서도 끝내고 평화를 튼튼히 다져서 통일에 접근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이 있기 때문에 이런 시대적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난 20년 동안 노력해왔습니다.

박인규 : 보통 회고록이라는 게 시간 순서로 배열하는데 이번 책에는 맨 앞이 6.15 공동선언을 첫 장으로 만드셨어요. 그만큼 6.15공동선언에 가치를 크게 두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6.15공동선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까지 상당히 많은 난관이 있었을 것 같은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어떤 거였습니까?

임동원 :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죠. 그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평양을 방문하면 김일성 주석의 주검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 기념궁정을 방문해야 한다는 북측의 요청 이건 일종의 국가의전이죠. 북측으로 보면. 그러나 우리로서는 6.25전쟁을 겪은 국민들의 앙금이 아직 남아있는 마당에 별로 바람직하지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건 생략하기를 원했는데 그렇게 한다면 남북정상회담 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됐기 때문에 북측 최고당국자를 만나서 직접 이 문제를 논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해결되기 어려웠던 과정이 있었습니다. 결국 북측에서 양보해서 방문하지 않게 됐는데 저로서는 이게 제일 어려웠던 일로 기억됩니다.

박인규 : 남측 인사 중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직접 가장 많이 만나보신 분이 임동원 전 정관이라고들 알고 있는데요. 그때 처음 만나보신 겁니까? 6.15 공동선언 때가

임동원 : 아니죠. 6.15공동선언, 남북정상회담 하기 전 제가 먼저 가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서 남북정상회담에서 협의할 내용을 사전에 협의하는 대통령 특사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때 처음 만났어요.

박인규 : 회고록 보니까 김대중 대통령은 좌뇌를 많이 이용하는 것 같고 김정일 위원장은 우뇌를 이용하는 것 같다. 좌뇌는 주로 논리적이고 우뇌는 직관적이라고 많이 얘기하는데 그동안 여러 차례 만나보신 김정일 위원장의 사람 됨됨이랄까요? 어떻게 보십니까?

임동원 : 사실 남북정상회담 이전까지는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정보가 대개 부정적인, 방탕한...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께서도 사실 걱정을 많이 했어요. 협상할 상대가 어떤 인물인지 무척 알고 싶어했는데, 그래서 제가 처음으로 만나서 5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는데 제가 받은 첫인상, 그 후에도 비슷하지만 30여 년간 요직을 맡아서 지도자 수련을 받은 사람답게 식견있고 머리회전도 빠르고, 판단력과 결단력도 있어요. 이런 지도자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아주 경청합니다. 자기도 말하기를 좋아하지만 우선 상대방의 말을 100% 다 진지하게 듣는다는 데 호감을 가졌고 유머감각이 풍부해요. 아까도 얘기가 나왔습니다만 논리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상당히 직관적이고 상당히 감성적인 측면이 강한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왜 사람의 뇌는 오른쪽과 왼쪽 뇌가 있다고 하는데 우뇌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은 감성적 예술적 직관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축에 속하는 분 아닌가 생각했고, 이와 같은 제가 받은 인상은 그 후 여러 사람들, 심지어는 미국의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똑같은 거의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박인규 : 회고록에 보니까 김정일 전 장관이 임 전 장관께 공동경비구역JSA는 참 좋은 영화다, 그런데 춘향전은 좋지 않은 영화다. 김정일 위원장이 남측의 여러 가지를 상당히 많이 살피는 모양이죠?

임동원 : 남측 영화, TV에서 방영되는 역사드라마를 많이 보는 것 같고, 남측의 노래, 대중가요를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그 분야에 좀 약합니다. 시간이 없어서 JSA같은 좋은 영화도 보지를 못하고.

박인규 : 임장관님도 좌뇌를 많이 쓰시는군요

임동원 : 그래서 이런 얘기가 나올 때 상당히 당혹스러웠어요. 공동경비구역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더라고요. 그래서 당 간부들과 인민군 장성들한테 전부 보여줬대요. 다 보라고. 저도 돌아와서 보니 굉장히 잘 된 영화더군요.

박인규 : 제가 지나친 확대해석인지 모르겠는데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라든가 그런 고위간부들이 남측 사정을 아는 것보다 남측에 계신 정치인들이 오히려 북한을 잘 모르는 거 아닙니까?

임동원 : 북에서도 전문적으로 남측문제를 관여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은 잘 모를 겁니다. 우리도 비슷할 겁니다. 전문가들은 많이 알고

박인규 : 이번 책을 보시면 많은 분들이 의아하게 생각하실 것들이 한두 가지 있을 것 같은데요. 우리는 아직도 6.15의 기억 때문에 북한이 우릴 침략하려 한다, 이런 걱정을 하시는데 책을 보면 북한이 북침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가 북한을 과대평가할 필요가 없다. 어떤 의미인가요?

임동원 : 6.15공동선언 나오기 전 이야기인데, 우리 남쪽에서는 북한의 남침위협, 적화통일기도에 대해서 상당히 경계하고 시달려 왔지 않습니까

박인규 : 예전에 불바다발언 할 때는

▲ ⓒ프레시안

임동원 :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한 10년 전만 해도 그랬죠. 그런데 북측은 국제냉전이 종식되고 공산권이 다 붕괴되고 1990년대 이후부터 또 독일이 통일되고 난 후부터는 남쪽에서 북침해올까봐 상당히 두려워하고 흡수통일의 공포증에 시달렸어요. 서로가, 한 쪽에서는 북침위협, 한쪽에선 남침의 위협에 시달렸는데 우리가 남북 간의 국력격차도 크게 벌어졌고 국제정세도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1970년대 80년대 가졌던 피해의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좀 더 자신감을 갖고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관리해나가는 자신감을 갖고 추진해나가야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북측의 위협에 대해 너무 과소평가해도 안 되지만 과대평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에서 한 얘깁니다.

박인규 :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주한미군이 통일된 뒤에 남한에 있으면 좋겠다는 얘길 했다고 보도됐는데 이번 회고록에도 보면 92년도에 김영순을 미국 특사로 보내서 주한미군이 있어도 좋다, 그런 말을 했다고 해요. 이것도 그런 의미인가요? 미군이 남한의 북침을 막아 달라는 거라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던데요

임동원 : 남북정상회담 때 북측의 최고당국자가 한 얘기는 이런 뜻이었어요. 남북 간의 기본합의서에 보면 불가침 합의가 있죠? 서로 불가침 합의가 됐고 전쟁 안 하기로 했다. 그런데 주한미군이 계속 남아서 남북 간 평화뿐 아니라 동북아평화를 위해서 기여해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뜻을 미국 정부에 공식 전달했다는 겁니다. 92년 초에.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나 역사적 경험으로 보나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해서 이 지역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기여해 주면 좋겠다는 전략적 사고를 갖고 있어요. 그런 표현이죠.

박인규 : 그런데 많은 한국에 계신 분들은 북한은 주한미군의 한국철수를 주요한 전략적 목표로 계속 요구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잖아요.

임동원 : 과거 죽 그런 입장을 취해왔죠. 오히려 주한미군이 남북 간의 전쟁을 방지하는데 기여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물론 주한미군의 위상과 역할이 변화한다는 전제하에서 한 얘기죠. 미군이 북한의 적대적 군대가 아니라 평화를 유지하는 군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박인규 : 냉전이 종식되고 난 89년 90년부터 남북 간의 화해를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해왔는데 잘 안 됐고 그러다가 6.15 공동선언이라는 작품을 만들어냈는데. 임동원 장관께서는 6.15공동선언이 남북의 평화로 가는 과정에서 어떤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고 보십니까?

임동원 :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6.15공동선언은 민족의 나아갈 길을 밝혀줬어요. 당장 갑자기 통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평화를 만들어서 통일에 접근해나가야 된다. 통일은 점진적 단계적으로 해나가야 한다는 데 합의한 겁니다. 대단히 중요한 거죠. 지금까지 북측의 연방제 통일방안이라는 건 남북의 민족대표들이 모여서 연방공화국 선포하고 통일부터 하고 그 후에 남북 교류협력하자는 게 아닙니까 그 공식이 아니라 남북간 교류협력을 통해서 평화를 만들어나가면서 종국적으로는 통일에 이르자는 데 합의한 최초의 합의서죠. 두 번째로는 불신과 대결의 반 세기 역사를 청산하고 화해 협력의 새 시대를 연 선언이죠. 세 번째 또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남북 간에 그 전에 합의한 합의서들이 있지만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해서 오히려 불신만 자아냈죠. 그런데 6.15공동선언은 남북 사이에 합의한 문서 중에 최초로 실천에 옮겨서 신뢰를 다져나가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박인규 : 사실 저희가 6.15공동선언이 나왔을 때 생각으로는 김정일 위원장이 다음해 아니면 김대중 정부 내에, 노무현 정부 내에는 답방하겠지 했는데, 겨우 작년에서야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에 가셔서 2차 정상회담을 했어요. 생가보다는 실천이 빠르지는 않다. 어디에 그런 원인이 있다고 보십니까?

임동원 : 김정일 위원장은 제가 2002년 4월 특사로 갔을 때 이 문제를 제기했어요. 답방문제를 제기했을 때 뭐라고 했는가 하면 2001년 봄에 합의한 대로 서울에 방문하려고 했다. 사실 준비했었어요 남북 간에. 그런데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당선됨으로써, 부시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처음부터 공포하고 나왔지 않습니까. 나중에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군사적 선제공격으로 제거해야 할 정권이라는 것이 부시독트린이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남쪽에 가느냐, 남쪽에는 부시대통령이 최고사령관으로 있는 주한미군도 많고 위험한 지역이다. 주변에서 가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못 간다 하는 얘기를 했어요.

박인규 : 임동원 장관 보시기에도 부시 대통령의 한 6년, 최근까지 그게 남북관계나 북미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고 보시나요?

임동원 : 그렇습니다. 지난 부시대통령 초기 6년 동안 대북적대시정책은 남북관계 발전의 아주 저해요인이 됐죠. 그런데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작년 초 이래로 완전히 180도 전환해서 대북포용정책을 취해서 북핵문제 해결의 길이 열리고 해결의 분수령도 조만간 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진작부터 그랬으면 한반도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을 텐데 그런 적대시정책을 취함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핵개발 핵실험을 촉진하는 역효과를 나타냈다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평가죠.

박인규 : 어쨌든 6년이 지났지만 부시 정부가 마음을 고쳐 잡고 나왔으니 기대를 해봐야겠습니다. 개인적인 질문을 한 가지 드려볼까 합니다. 군인이셨잖아요. 60년대에는 대공전략 이런 책도 내셨고 70년대에는 율곡사업도 하셨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의 전도사가 되셨어요. 제가 이번 책을 보고 놀란 게 김대중 대통령을 처음 만나신 게 95년도 아태재단, 일면식도 없는데 맡아달라고 부탁하셨다고 해요. 그 책을 보니 고향인 평안북도 분이라든가 군대 동기들은 상당히 반대가 많으셨다는데 어떻게 해서 김대중 대통령과 인연이 됐고 남북관계의 적극적인 옹호자로 나서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임동원 : 김대중 대통령과의 만남은 저는 사실 처음에 같이 일하고 싶다고 제의가 왔을 때 세 번이나 거절했어요. 그런데 만나서 같이 일하게 됐는데, 1990년대 초에 제가 남북 고위급회담 대표로 죽 참석하면서 새로운 사고를 하게 됐습니다. 세상이 변했거든요. 국제냉전이 끝나고 공산권이 붕괴됐죠. 전 세계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전환하고 공산주의는 체제나 이데올로기로서 존립가치를 다 잃어버리기 시작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만 한반도에서만은 냉전이 계속되고 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됐던 나라들이 모두 통일했는데 한반도는 못하고. 지금 시대적인 요청은 반공이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에서도 냉전을 종식하고 평화적 통일을 이루는 일이 우리의 시대적 요청이고 과제거든요. 그래서 시대에 맞는 새로운 소명의식을 갖고 나서게 된 거죠. 또 하나는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로 제가 평양에 여러 번 다녀왔는데, 그리고 북측 대표들, 북측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협상해본 결과 괜히 우리가 불필요하게 피해의식을 갖고 북한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구나 하는 걸 절감하게 됐어요. 그래서 과소평가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과대평가야말로 바람직하지 않다.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우리가 주도해서 관리해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평화와 통일운동에 나서게 된 겁니다.

박인규 : 지금 현안에 대해서 질문을 안 드릴 수가 없는데 저희가 거의 한 달 가까이 전에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김숙 본부장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 당시에는 북핵신고가 곧 끝나고 6자회담이 열릴 것 같다고 했는데 아직 안 되고 있어요. 물론 북핵신고가 되면 핵불능화가 되고 그러겠지만, 북핵문제 해결과정 어떻게 보십니까? 어려움은 없을까요?

임동원 : 지금 중요한 분수령, 고비를 넘으려는 찰나인데 곧 넘길 수 있으리라고 낙관적으로 봅니다. 북핵문제는 18년이나 된 문제에요. 미국과 북한의 적대관계의 산물입니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정상화가 될 때 북핵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겁니다. 동시에. 그것이 제네바합의 정신이고 또 6자회담정신이에요. 그런데 부시대통령이 작년 이후 대북적대시정책에서 포용정책으로 돌아서면서 북한과 상대로 안 하겠다던 사람이 직접 협상에 나섰지 않습니까? 많은 진전을 이뤘어요 지난 1년 반 동안. 우선 북한의 핵시설을 못쓰게 만들고, 불능화하고 해체하고 하면 미국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제외시키기로 했는데, 이것이 완성단계에 지금 오늘내일을 다투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이 고비를 넘으면 그 다음 고비가 또 몇 년 걸려야 될 일이 남아있죠. 지금까지는 핵시설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이제부터 할 일은 이미 갖고 있는 핵물질이 얼마나 있느냐를 검증하고, 그 다음에는 이걸 어떻게 폐기하느냐. 미국으로 다 내간다, 돈 주고 사간다든가 이런 방법으로 해결돼야 되는데 이 협상이 곧 시작될 겁니다. 6자회담이 열리면 그런 것들이 시작돼요. 그 협상이 시작되기 전에 있습니다. 아직 완전히 해결되려면 수 년이 걸리겠지만 대단히 중요한 핵시설을 해체하는 고비를 넘고 다음은 핵물질을 폐기하는 일에 나서게 될 겁니다

박인규 : 한 가지 걱정은 부시행정부가 마음을 돌려서 북미관계가 잘 되고 있는데 한국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6.15선언보다는 남북기본합의서가 더 우선이다.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있어요.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서는 이렇게 하는 게 좋지 않겠나, 그런 제안의 말씀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임동원 : 남북관계가 경색된 가장 중요한 원인은 6.15남북공동선언을 현 정부가 부정하는 건 아닌데 북측으로선 이걸 무시하고 묵살하고 경시하는데.... 이 얘기는 6.15공동선언은 화해협력하자. 화해협력의 시대를 위한 선언인데 이걸 부정하고 묵살하는 것은 북한에 대해서 적대시정책 대결정책을 쓰려는 게 아닌가, 이런 오해를 갖게 만드는데 이걸 빨리 풀어야 돼요. 그래서 현 정부가 6.15공동선언을 결코 부정하는 건 아니라고 저는 보고. 그런데 명백하게, 그거 존중한다, 실천해나가자 할 것 같으면 그 해결의 물꼬가 트이리라 확신합니다.

▲ ⓒ프레시안

박인규 :
결국 상호간의 신뢰가 중요하겠군요.
임 전 장관께서는 스스로 피스메이커를 자임하셨는데, 한반도의 적극적인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정부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국민이나 북한측도 마찬가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해나갔으면 좋겠다, 그런 마무리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임동원 : 첫 번째는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서 남북관계발전방향에 합의하면서 앞으로 평화공존해나가자 했더랬지요. 그것이 실천에 옮겨지고, 그 다음 두 번째로는 6.15공동선언을 통해서 미국과 공조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정착해서 오늘날 같은 화해협력의 시대를 열었죠. 이제부터 할 일은 6자회담에서도 합의했지만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입니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가 남아있어요. 그것은 분단을 고착시키는 평화체제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체제가 돼야겠죠. 이게 이제부터 우리가 해야 될 일이고 저는 앞으로 한 5년이 이런 통일지향적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보고 국민이 떨쳐 일어서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분단고착적 평화체제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체제를 만들어나가자. 이번 피스메이커 출판기념회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동원 전 장관은 아직도 할 일이 많으신 분이라고 하셨다는데, 앞으로도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위해서 많은 역할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임동원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최근 회고록을 낸 세종재단 이사장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을 초대해 회고록을 내게 된 배경과 지난 20년 동안 현장에서 지켜본 남북관계와 북핵문제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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