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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화'를 외치던 그들, 다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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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화'를 외치던 그들, 다 어디로 갔나

[이근 칼럼] 정권 장악과 함께 허구로 드러난 그들의 '선진화'

노무현 정부 시절 정권교체를 원했던 수많은 정치세력, 단체, 언론 등이 주장했던 핵심 구호는 '선진화'였다. 이명박 정권에 참여하는 정치인, 학자, 뉴라이트, 보수언론, 그 이외의 외곽단체, 대형교회 등 모두가 이 나라를 선진화하기 위해 정권교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가 그들의 승리로 끝난 지 약 반년이 지난 지금 언론과 사회의 주요 담론에서 선진화 논의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미국산 쇠고기뿐만 아니라 정권교체 세력이 내걸었던 핵심구호에 또 다시 얼마나 제대로 속고 있는지를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정권교체가 이 나라를 선진화로 이끌고 가고 있는지, 소위 선진화 세력은 정말로 선진적이었는지 이 시점에서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

1.

선진화의 핵심 가치는 국민의 인권 보장이다. 국민이 자신의 인권을 언제 침해받을지 모르고 불안하게 산다면, 국민이 폭력과 공포의 위협에 처해 있을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선진사회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 촛불문화제 혹은 시위와 관련해 다양한 폭력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에서 확인되는 경찰의 폭력적 진압이다. 경찰의 폭력적 진압이 발생하는 상황이 반드시 일방적이지는 않을 터이지만 이러한 폭력에 대한 소위 선진화 세력의 태도가 가장 문제다.

선진화를 외치던 이명박 정부에서는 오히려 폭력진압을 묵인, 방관하고 심지어는 노고를 치하하기까지 했다. 뉴라이트를 비롯해 소위 선진화 단체에서 폭력진압에 대해 비난하는 성명을 대대적으로 낸 경우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이들이 얼마나 '후진적인' 단체임을 알 수 있다.

국제 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에서 이명박 정부에 항의서한을 보냈어도 이에 대한 반성의 뜻을 보이는 '선진화' 단체는 없다. 그동안 가장 목소리 높여 선진화를 외쳐왔던 보수언론의 보도 태도를 보면 이러한 폭력진압에 너무나도 관대하거나, 국민의 압력에 떠밀려 마지못해 보도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힘 센 편의 인권만 일방적으로 옹호하고 약하고 짓밟히는 자의 인권은 좌파와 배후로 몰아 무시한다는 것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대를 보는 듯하다. 이것은 6월 12일 간이 화염방사기까지 동원된 시민에 대한 물리적 위협과 공공건물에 대한 무단침입 시도 등에 대한 보수언론과 '선진화 세력'의 태도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이것이 선진화이고 21세기인가?

반면 촛불문화체 참여자들은 끊임없이 '비폭력'을 외치고 있다. 과거와 달리 화염병을 들지도 않고 돌을 던지지도 않는다. 물론 대규모 군중이라는 유기체는 원하는 대로 통제되는 것이 아니어서 일부 불상사가 일어나긴 했지만 인터넷이나 국민들의 여론은 일관되게 '비폭력'이고 폭력 행사자에 대한 비난이 지속되고 있다. 진압 주체인 경찰과 전경에 대해서도 같은 국민으로서 포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심지어는 꽃을 꽂아주거나 음식과 음료를 나누어 주기까지 한다. 연행되는 시민도 폭력적으로 저항하기보다 가장 선진적인 방법으로 법적인 대응을 구하고, 자신의 권리를 세련된 방식으로 지키고 있다. 과연 누가 더 선진적인가?
▲ 올 1월까지만 해도 '선진화'를 외쳤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연합뉴스

2.

선진국을 대표하는 또 다른 가치는 환경친화다. 어떤 선진국을 보더라도 국가 전체를 파헤치는 개발주의식 토목공사를 하는 나라를 발견하기 어렵다. 수많은 전문가와 국민의 반대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공사를 추진하는 경우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 선진화를 외치는 세력은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에 관해 환경보호를 외치는 경우를 거의 볼 수 없었다. 최근 다양한 논의와 국민의 반대를 보면서 입장을 바꾸는 '선진화 단체'가 있지만 이렇게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세력이 어떻게 선진화를 끌고 나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상황이 종료된 후에 이를 평가하고 진단하는 일은 선진화 세력이 아니라 후진화 세력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트렌드를 먼저 읽어 대비하고 국민을 선도할 수 있어야 선진화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개발주의가 시대정신이라고 외치는 선진화 세력은 그야말로 기네스북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반면 시민사회의 수많은 전문가와 네티즌들은 대운하 프로젝트에 대해 전문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고, 외국의 사례를 수집하며, 공개토론을 제안하고 있다. 나아가 대운하 지지자들이 그 동안 보여줬던 비전문성, 말바꾸기, 궤변을 체계적으로 비판한다. 그야말로 합리적인 공론의 장을 만들고, 폭력적이고 비인권적인 방법이 아니라 상식적인 방법으로 대운하 프로젝트를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와 소위 '선진화 세력'은 "전문가도 아닌 사람들이 비판하고 있다"는 인격적 비난과 궤변을 쏟아내고, 심지어는 정치적인 공격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더욱 후진적인 것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선진국에서 이렇게 인격을 모독하고, 앞말 다르고 뒷말 다르게 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선진적이라고 칭찬하는지 모르겠다. 선진화 세력은 너무나도 후진적으로 입을 다물고 있다.

3.

정부의 인사와 관련해 선진화의 최우선 가치 중의 하나는 정직과 투명성 즉 'integrity'이다.(☞필자의 관련 칼럼 : 근면하고 성실해서 더욱 위험한 MB 정부)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기대로 국민들이 대통령 후보의 도덕성을 용인해 주었다 하더라도 선진화 세력은 그러면 안 된다. 공직자의 청렴성, 정직성, 준법성을 가장 먼저 나서서 성토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의 흐름에 그냥 묻어가고 있다. 속으로는 안 되는데 하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공식적으로 이를 비판하고 정화운동을 이끌어 간 '선진화 단체와 언론'을 발견하기 너무 힘들다. 오히려 이러한 정권에 동참하고, 공천을 받고, 구태 정치인들이 하던 행태를 그대로 보이는 '선진화 단체'의 멤버들이 더욱 많이 보인다. 과연 이들이 선진화 세력인가?

4.

국민의 안전 역시 가장 중요한 '선진'의 가치 중 하나다. 여기서 말하는 안전이란 아동, 청소년,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안전뿐만 아니라 작업장의 노동자, 그리고 소비자의 건강 등 국민 모두의 안전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화 정부'는 이러한 안전에 관한 복지 예산을 삭감하고, 거기에 국민 건강에 가장 핵심적인 먹거리 문제를 너무나도 안이하게 처리해 버렸다. 그리고는 "너희들의 안전은 너희가 책임져라" "너희들의 안전보다는 우리들의 국제적 체면이 더욱 중요하다"라는 너무나도 '후진적인' 메시지만 국민들에게 보내고 있다.

이 정부 들어서 아동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적은 일산 어린이 납치 미수사건에 격분해 이명박 대통령이 파출소에 간 일회성 이벤트 이후에는 본 적이 없고, 오히려 촛불 시위에 자녀를 데리고 나온 시민에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심지어는 촛불 시위에 자녀를 데리고 온 엄마에게 자녀를 납치하겠다는 협박전화가 와도 선진화 단체는 아무런 대응조치와 성명을 내놓지 않았다.

이 밖에도 후진적인 '선진화 단체'의 행태는 너무나 많다. 자신들의 이익과 권위가 도전을 받을 때면 항상 경제위기나 국가신인도의 하락, 안보의 위기라는 은근한 위협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전근대적인 역공, 비판의 논리는 무조건 '좌빨'로 매도하는 매카시즘, 시스템에 의한 정치가 아닌 인치(人治), 법에 정해진 임기 무시, 언론 장악 기도, 조선시대의 궁정정치를 방불케 하는 권력투쟁, 신뢰붕괴 등 셀 수가 없다.

이런 모든 사례에 대해 선진화 세력이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고 진정으로 선진화를 하겠다는 운동을 하는 사례는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개각 인사 명단에 오르고, 침묵하고, 더욱 선진적인 시민사회를 비난하고 있다.

두 눈을 뜨고 똑바로 봐야 한다. 과연 누가 선진적이고 누가 후진적인지. 어느 쪽을 따라 배워야 하고 어느 쪽을 교육시켜야 하는지. 인터넷에서 합리적 토론을 벌이고, 비폭력 촛불 시위를 주도하는 한국의 시민사회가 그야말로 선진적이다. 진보이든 보수이든 후진적인 관념과 행태를 가지고 이러한 선진 시민사회를 호도하고 방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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