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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아리고, 쓰리고, 누가 우리네 심정 알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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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아리고, 쓰리고, 누가 우리네 심정 알리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5/23] 미국 유타대 이정면 명예교수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노래 한 곡 꼽으라고 한다면 제일 먼저 어떤 곡이 떠오르십니까? 아마 많은 분들이 아리랑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런 아리랑을 세계에 소개 할 영어 해설서를 발간하기 위해 아리랑의 숨결과 자취를 찾아 고국산천을 누비고 있는 팔순의 재미 지리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미국 유타대 이정면 명예교순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유타대 이정면 교수를 초대해 아리랑에 대한 그의 사랑과 해외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는 아리랑의 가치와 정신에 대해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미국 유타대 이정면 명예교숩니다. 이정면 교수는 1925년 광주 출생으로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했고 1961년 미국 미시간대에서 지리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의 제 1세대 지리학자로 아시아 지리학을 50여 년간 연구하며 경희대, 경북대 등 국내 대학과 일본 츠쿠바대학, 교토대학, 리스메이간대학,
미국의 캘리포니아대학, 유타대학, 그리고 말레이시아 국립대학 등에서 후학을 양성해왔습니다. 국제지리학회 농업지역 설정위원회 의장과 국제자원보존위원회 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미국 유타대 명예교수로 있습니다. 지난 2005년부터 아리랑의 숨결과 자취를 찾아 나서 전국을 답사하고 있고 지난해엔 '한 지리학자의 아리랑 기행'이란 책을 출간했습니다.

박인규 : 안녕하십니까?

이정면 :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정면 :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인규 : 2005년부터 국내에 여러 아리랑 관련 지역을 답사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번에 나오신 건 언제 또 한국에 나오신 겁니까?

이정면 : 지난 4월 2일에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 ⓒ프레시안

박인규 :
네, 작년에 한 지리학자의 아리랑 기행이란 한글판 책을 내셨고요. 지금 영문판 책을 준비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지금 그동안 아리랑으로 유명한 지역들을 다 다녀보신 겁니까?

이정면 : 네, 그렇습니다. 2005년부터 줄곧 정선, 밀양, 진도 이 지역을 두루두루 살펴보았습니다.

박인규 : 그렇다면 영문판도 다 준비가 되었겠네요. 어느 정도까지 되었습니까?

이정면 : 네, 초서가 다 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들어 온 목적은 자료보충, 문헌 조정, 그리고 또 현지에 계신 여러 아리랑 대가들과 만나서 최종 검토를 하려고 들어왔습니다.

박인규 : 빠르면 올 해 안에 책이 나올 수 도 있겠네요.

이정면 :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다른 출판 여건이 갖추어 지고 금년 내 적어도 가을까지는 나오지 않을까 보고 있습니다.

박인규 : 교수님 전공이 문화 지리학으로 알고 있는데요. 전공이……. 전공이…….

이정면 : 저는 말씀하신대로. 지리는 자연지리 인문지리 이렇게 둘로 나눠지는데요. 인문지리 속에는 아까 말씀하신 문화지리에서 인구지리, 교통지리, 경제지리가 있습니다만 제가 여기 속한 분야는 자연지리가 아니고 인문지립니다.

박인규 : 제가 궁금했던 거는 아리랑, 쉽게 말하면 민요인데. 아리랑과 같은 민요 연구도 지리학의 한 연구 분야인건지. 어떻게 책을 쓰셔야겠다고 결심 하셨는지 궁금해서요.

이정면 : 네, 그런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그런데 지리학에서의 두 분야, 인문지리 가운데 문화지리라는 분야가 있어 가지고. 거기에는 소속, 그 국가, 그 민족의 고유의 전통을 규명하는 것이 하나의 목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건 엄연히 지리학자가 접근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저는 보았기에 서슴지 않고. 우리 민족의 고유의 전통문화의 핵심인 민요 아리랑을 들고 나왔습니다.

박인규 : 네, 2005년부터 답사여행을 하셨다면, 연세가 사실은 만 80세부터 시작을 하신 건데. 굉장히 뒤늦게 아리랑에 대해 책을 써야겠다. 결심 하시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습니까?

이정면 : 그것도 2002년에 유타대학을 은퇴했을 때, 은퇴식에 참가했던 코리안 타임스 오브 유타, 그 신문사 주필이 오셨어요.

박인규 : 현지의 교민신문?

이정면 : 네, 그래서 그 다음 날 호텔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더만요. 그래서 가서 만나 뵈었더니, 우리 신문에 칼럼을 쓰세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칼럼은 도저히 못쓴다고. 제 연세에 무슨 칼럼이냐고. 아니 근데 어제 퇴임사를 듣고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어서 제가 부탁을 드린다고. 그래서 세 번이나 만났습니다. 한다, 안한다, 한다, 안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럼 하기로 하고. 조건을 신문에 오래오래 계속 하십시오 라는 조건을 내걸고 제가 칼럼을 쓰게 됐습니다.

박인규 : 정년퇴임하신 후에 현지 교민신문에 칼럼니스트를 하셨군요.

이정면 : 네, 그래서 제목은 제 맘대로 이것저것 뽑아서 쓰거든요. 어느 날 제가 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주제로 해서 그것도 상, 중, 하 세 번에 나눠서 원고를 썼습니다. 그래서 신문사에 넘기려니까 자신이 없어요.

박인규 : 내가 제대로 알고 쓴 건가?

이정면 : 네, 어쩐지 자신이 없어요. 그래서 바로 원고를 다시 회수해가지고 2005년 5월 24일 날 서울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아리랑의 고향을 찾는다하고.

박인규 : 회수하셨다는 건 그것을 출판하지 않고 내가 아리랑을 제대로 공부해서 써보자?

이정면 : 보충을 해서 내 양심의 떳떳하게 해서. 그래서 들어와서 그 다음 날 우리 제자들이 각 대학에 있습니다. 만나서 점심을 하면서 이번에는 뭣 때문에 오셨습니까? 내가 이번에 아리랑을 좀 조사하러 왔다니까? 깜짝 놀라요. 아리랑이 뭐냐고. 이만저만해서 내가 이렇게 했다니까.

박인규 : 아리랑하면 그냥 한국 민요인데. 그거면 끝인데.

이정면 : 그런데 또 선생님 지리하시는 분이 왜? 이렇게 나오시거든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대로 설명을 하니까 아 그러시냐고. 그럼 잠깐 기다시라고 핸드폰을 뽑아서 전화를 해요. 그래서 아리랑 하시는 분들한테 연락을 해가지고. 그 날로 김연갑 씨. 우리 한국의 아리랑…….

박인규 : 김연갑이라고 아리랑하고 유명한 분이 계십니다.

이정면 : 네, 아주 대단한 분이신데. 그분이 연락이 돼서 전화가 왔어요. 내일 정선 가시는데 같이 가자고. 그래서 같이 다음 날 정선에 갔습니다. 가니까 정선 땅에 들어서니까 정말 아는 분도 많고 군수이외 전부 다 만나서 얘기도 하고 자료도 얻고 현장도 가보고 다 했지요. 돌아와서 밀양에 간다니까. 아, 밀양도 같이 가겠습니다. 밀양도 같이 가줬어요. 진주도 갔다 오고. 그래서 저는 초년병이지만 많은 자료를 얻어서 아주 고참이 되었구나 하는 그런 기분을 가졌습니다. 하도 좋은, 많은 분을 알고 자료도 적극 이렇게 모아주시고.

박인규 : 아리랑에 대한 작은, 작진 않죠. 3부작이니까. 상당히 큰 칼럼을 쓰셨다가 이걸로는 부족하다. 제대로 공부를 해보자. 그래서 국내를 다녀 보신 거군요.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작년에 '한 지리학자의 아리랑 기행' 이란 한글판 책을 내셨어요.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미국 유타대 이정면 교수를 초대해 아리랑에 대한 그의 사랑과 해외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는 아리랑의 가치와 정신에 대해 얘기 나누고 있습니다.

박인규 : 원래는 책을 내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것이 영문판까지 내야 되겠다. 결심하게 된 어떤 계기가 있습니까?

이정면 : 김연갑 씨랑 같이 신문사 찾고 KBS 방송에 나오고 이렇게 할 때 그 분들이 생각하시는 방향. 꼭 한국의 아리랑을 제대로 해외에 알려야겠다는 그 의지가 참 단단하시데요.
박인규 : 한국의 상당수 분들이?

이정면 : 네, 조선일보, KBS, TV 아리랑에서 다 만나 뵙고, 연합뉴스 그 분들이 정말 진지하게 이 민족의 아리랑을 키워보겠다는 의사가 대단…….

박인규 : 아리랑을 세계에 알리는 일을 좀 해 달라.

이정면 : 김연갑 씨가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우리가 아리랑을 여러 번 연구한다고 해외에서 여러 번 오셨지만 연구한다고 간 뒤에는…….

박인규 : 결과가 없다.

이정면 : 아무……. 함흥차사더라. 그러나 이번에 이 교수님은 주제를 가지고 온 분이여서 자기도 느낀 바가 있다고. 길이가 많아요. 그러면서 꼭 하나 쓰시라고. 그것도 영어로 쓰라고 그러세요. 세계를 위해서.

박인규 : 기왕에 아리랑 쓰시려거든 영어로 써서 세계에 좀 알려 달라.

이정면 : 그런데 어떻게 제가……. 도저히 안 되겠어요. 그래서 우선은 방향을 잡아보고. 대가들도 있는데 섣불리 할 수도 없고. 우선은 그저 아는 것부터 해서 줄기를 잡아본다 하는 뜻에서.

박인규 : 그래서 작년에 한글판으로 '한 지리학자의 아리랑 기행'이란 책을…….

이정면 : 그것도 출판사에서는 김 선생님은 민족의 노래라고 아리랑이라고 하시자고 그러데요. 근데 전 그것이 아니고 그렇게 어마어마한 제목을 붙일 만한 것이 못 되고. 한 지리학자가…….

박인규 : 아,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정면 : 한 지리학자가 본 아리랑 이렇게 해서 정했습니다.

박인규 : 책을 보니까 말이죠. 세계적으로도 꽤 유명한 포크송 가수인데 피트 시거라는 분도 아리랑을 잘 알고 영문판으로 내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는데. 그 분하곤 어떻게 만나게 되신 겁니까?

이정면 : 2005년에 여기 조사 왔을 때. 아리랑 페스티발을 38선에서 한다고. 그때 꼭 시거 씨를 모셔야 한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이 박사님은 미국에 들어가시니까 가서 좀 만나 뵐 수 없냐고. 그래서 짐을 풀어 놓고 그대로 가서 뉴욕 베이컨 시에 계십니다. 뉴욕시 택시를 타고 들어갔죠. 사전에 물론 연락 다 해놓고. 대학에서. 여러 가지 얘기했습니다. 내가 천만 번 한국을 가고 싶다. 그러나 몸이 허락 못한다고. 그 때 그 '내 사랑하는 한국 민족의…….' 말을 써 주셨어요. 그래서 그걸 아리랑 페스티발 때 읽고. 제 책에도 나옵니다만. 그렇게 한국을 사랑해요.

박인규 : 그 분이 아리랑을 잘 알고 있던가요?

▲ ⓒ프레시안

이정면 :
네, 저더러 그러시데요. 이렇게 아름다운 이 아리랑을 왜 당신나라만 갖고 있소? 세계에. 누군가 하나 이걸 써서 세계에 알려야겠어요. 이런 말씀을 하시데요. 그래서.…….

박인규 : 책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드셨군요.

이정면 : 네, 그래서 그 소릴 듣고. 그 때 영어로 쓰게 된 하나의 동기, 하나가 그것이고. 또 하나 우리 현지의 언론계에 계신 분들 김연갑 씨 외 주변사람들이 그렇게 신신 부탁한 거. 또 해외에도 피트 시거 씨가 왜 그 아름다운 노래를 갖고만 있습니다. 세계에 알려야 합니다. 누군가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 말을 하셔서요. 제가 느낀바가 있습니다.

박인규 : 그 분이 남과 북의 민족이 같이 아리랑을 부르는 한 통일은 문제없다. 그런 말씀도 하셨다면서요?

이정면 : 네, 근데 그건 항상 그 사람은 우리 한국을 아주 사랑했고 좋아한 사람인데. 그 때도 그러데요. 남북이 그렇게 싸우고 있는데 어째서 싸우는 민족이 같은 노래를 부르냐 이 말이야. 남북 38선, 북이나 남이나 한 민족이니까 가만히 둬도 통일 되지 않느냐 그런 얘길 했어요. 한국민들이 색다른 민족이란 것을 얼핏 말씀하시데요.

박인규 : 사실 뭐 한국 사람치고 아리랑이 뭔지 모르는 사람도 없고 다 부를 수도 있고. 잘 부르시면 진도 아리랑도 부르시고 밀양 아리랑도 부르시는데. 그렇지만 책을 쓰시는 과정에서 저희가 모르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아리랑이라고 부르는데 아리랑에 무슨 뜻이 있는 거냐? 어떤 뜻이 있는 겁니까?

이정면 : 아리랑 얘기를 하면 백이면 백, 꼭 그 질문을 합니다. 아리랑이 무엇이냐. 아리랑 백 설, 아리랑에 대한 설명이 백 가지가 있다는 뜻인데요, 옛날에 구석기 시대에 사람들이 조각을 해 놓은 걸 보면, 사람들은 원래 미에 대해서 태어날 때부터 감각이 있나 봐요. 그래서 사람은 노래, 무용하고 댄스는 인간이 발생했을 때부터 존재하는 게 아니냐. 이렇게 보고 있었어요. 아리랑도 옛날부터 불렀다고 보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 중에서도 신라시대의 알령이, 아리랑이 됐다고도 하고, 또 밀양의 아랑 아가씨, 지금으로 보면 군수 딸 정도가 되겠는데, 군에서 일하는 주기라는 사나이가 죽였거든요. 죽어서 한이 된 아랑이, 아리랑이 됐다. 또, 우리나라 1865년 경복궁 중건 때 대웅전에서 대웅전 어르신이 각 지방에서 세금 강요하고 하니까 지쳐서, '세금, 어휴, 나 그 소리 안 들려.' 아이롱. 내 귀는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아리랑이라고 했다고도 하고. 그리고 설득력이 있는 얘기는 이성계가 고려를 치고 조선을 만들었을 때 고려왕의 신하들이 남쪽으로 남쪽으로 흘러 내려와서 강릉의 정선 산골에서 물만 먹고, 처자식 다 개성에 두고. 옛날에 벼슬 다 생각하면서 아리고 쓰리고 그런 심정을, '누가 내 심정을 알리오', 에서 아리랑이 나왔다고도 하거든요.

박인규 : 아리랑 백 설이라고 하니까 백 가지를 다 소개하려니까 시간도 없고. 그것 말고, 지역적으로 우리가 보통 아는 아리랑, 아리랑 하는 경기 아리랑 말고, 정선 아리랑, 진도 아리랑, 밀양 아리랑을 4대 아리랑으로 뽑으셨는데,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이정면 : 정선 아리랑은 참 애처롭습니다. 인문지리학자 이중환 씨가 택리지에, 정선골 외진 산골에서, 더군다나 엄동설한에 겨울에 눈이 오게 되면 완전히 두절된 사회에서 자기의 생활이 애달프고 고달프고 쓰라린 생활, 그래서 정선 아리랑은 애수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밑으로 내려와서 밀양아리랑은 아주 남성적이고, 그래서 김구 선생인 임시정부 때 군대에서 군가 만들 때 영천 아리랑을 쓰지 않았습니까. 그게 아주 남성적이고.

박인규 : 아리랑을 군가로도 쓸 수 있군요.

이정면 : 그리고 진도는 도서적이고, 바다를 상대로 해서 좀 더 도서적인, 활발한 색채를 가지고 있고, 여기 서울 아리랑은, 해외에서는 아리랑을 서울 경기 아리랑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각 지방의 아리랑이 색채가 다 다르고 특수한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인규 : 아리랑이 다르다는 걸 알릴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진도, 정선, 밀양이 다 다르다는 거고.

이정면 : 네, 각 지방색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미국 유타대 이정면 교수를 초대해, 아리랑에 대한 그의 사랑과 해외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는 아리랑의 가치와 정신에 대해 얘기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가 물론, 아리랑에 대해서 큰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외국에서도 상당히 아리랑을 평가한다고 하던데요. 예를 들면 유네스코에서 세계 인류 구비 유산 지원제도로 아리랑 상을 만들었다고 하던데요?

이정면 : 네, 그게 1999년입니다. 아리랑 상을 정해서 매 2년 마다 그 나라, 그 지역 인류의 구전 문화, 또는 무형 문화, 전통 문화에 대해서 뛰어난 업적에 대해서는 유네스코에서 상을 줍니다.

박인규 : 그 상의 이름이 아리랑 상이다.

이정면 : 네, 상 이름이 아리랑 상입니다. 그만큼, 아리랑이 세계적으로 이름이 떴습니다.

박인규 : 그렇다면 아리랑이란 것을 굉장히 우수한 구전 문화로 인정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정면 : 그렇죠.

박인규 : 외국에서 아리랑을 인정하는, 평가 받고 사랑받는 이유는 어디 있다고 보십니까?

이정면 : 그것은 역시 6·25 때 유엔군으로 한국에 온 병사들이 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아리랑을 외고, 동네에서 아리랑을 부르고, 또는 입양아들이 가서 살면서 영어도 모르고 우리나라 말은 몰라도 아리랑은 다 불렀거든요. 그리고 2002년 월드컵 등에 의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외에도 세계 각국에 아리랑이 다 번져 있습니다.

박인규 : 요즘 저희가 한류라는 말을 많이 쓰고, 우리나라 문화가 특히, 중국라든지 일본, 동남아로 많이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 문화를 널리 알려서 브랜드 가치화를 만들자, 문화 사업으로 만들자, 그런 논의들이 많은데요, 이제 말씀을 들어보면 아리랑이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잘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방법 중의 하나가 이 교수님이 만드시는 '아리랑 영문 해설서'도 있을 수 있는데, 어떤 전략이 있을까요?

이정면 : 저도 동감입니다만, 매년 들어오지만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네요. 일본 같으면 후지산을 세계적으로 팔고 있는데, 아리랑이 세계적으로 자리 잡고 있으니까 아리랑을 좀 더.

박인규 : 굉장한 잠재적 브랜드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정면 : 그래서 그런 것도 아울러서 아리랑 박물관 또는 아리랑 센터, 인사동 골목에 그렇게 외국 사람들이 왔다 기프트 숍도 좋지만, 한 코너에 아리랑 센터를 세워서 아리랑을 좀 더 알게 했으면, 그런 기관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다른 문화에 관심이 많은데, 우리 아리랑에 대해서는 소외돼 있구나 하는 걸 느껴요. 요즘은 책방에 가서 음악사 쭉 뒤져보면 아리랑에 대해서는 무게 있게 나와 있지 않은데, 물론 민요니까. 그래도 조금 더 민요가 그 민족의 정서를 대표하는 건데, 아리랑에 대해서 브랜드까지는 못 가더라도. 하하.

박인규 : 우리가 소중한 문화유산의 가치를 잘 모르고 있는 셈이네요. 이 교수님의 앞으로 내시는 영문 해설서가 아리랑 붐이랄까요, 그런 기폭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박인규의 집중 인터뷰, 오늘은 미국 유타대 이정면 교수를 초대해, 이리랑에 대한 그의 사랑과 해외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는 아리랑의 가치와 정신에 대해 얘기 나누고 있습니다. 어렵게 모셨으니까 개인적인 질문도 드려볼까 합니다. 교수님의 주요 연구 테마가 우리 민족의 이민사로 알고 있는데요, 실제로 구한말, 19세기 말부터 중국이라든가 일본이라든가 많이 퍼져나가지 않았습니까. 그런 타향살이 하는 분들이 많이 부르는 노래 중에 대표적인 게 아리랑이라고 할 수 있겠죠. 미국에서의 한국 이민자들의 생활은 어땠을까요?

이정면 : 제가 대학에서 강의 하고 있는 것이 인구 이동률, 토지 이용 계획, 원격 탐사라고 해서 우주사진가지고 토지 조사하는 것, 이런 걸 강의 했습니다. 그중에 인구 이동을 제가 대학에서 강의를 했기 때문에 유타 대학에 부임했을 때, 이곳에 제일 먼저 온 한국 사람이 누구였을까, 교수들한테 한번 물어봤어요. 그런데 전부 다 6·25이후에 들어왔다고 해요. 그러다가, 유타에 손님이 많이 옵니다. 그러면 제가 항상 데리고 유타의 케네코트 돔 광산, 유명한 돔 광산이 있습니다. 돔 광산에 몇 년 동안 안내를 하는데, 어느 날 제가 갔을 때 벽에 보니까 '이 돔 광산은 세계 40개 이상의 나라의 노동자가 와서 일하고 있다', 그래서 보니까 코리아가 있어요. 제가 깜짝 놀라서 그 길로 도서관에 가서 고문서관에 갔어요. 가서 보니까 자료가 없대요. 분명히 한국 사람도 왔단 말이에요. 그런데 도서관에는 없대요. 그러다가 며칠 뒤에 도서관에서 연락이 왔어요. 이 박사님 한번 와 보시라고. 며칠 전에 수 만 장에 달하는 노동자 명단이 왔는데 와서 보시라고. 가서 보니까 광산에 일했던 노동자 명단이 있어요. 그래서 보니까 한국 사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1910년대에 나라 잃고 일본에 갔다가 섞여서 온 사람들 해 가지고 광산에 온 사람들. 그래서 전부 카드를 쫙 뒤져보니까, 수만 장입니다. 뒤져보니까 411명. 411명이 우리 한국 사람이에요.

박인규 : 유타 주에요?

이정면 : 네, 유타 주 광산에.

박인규 : 그분들은 정말 아무도 모르게 돌아가셨겠네요.

이정면 : 네, 그래서 내가 신문에 내고, 그 다음에 또 한 번 조사해 봤더니 그 수가 나와요. 410명. 그래서 이 사람들이 어디에 갔을까. 카드에 보니까 2주일, 3주일, 열흘 있다가 다 떠나요. 말도 못하고 습관도 다르고.

박인규 : 오래 정착하신 게 아니고 다른 데로 옮겨가셨군요?

▲ ⓒ프레시안

이정면 :
네, 농부로 왔던 사람이 무슨 광산에 일하겠습니까. 그럼, 이 사람들이 어디로 갔을까, 하고 유타 주변의 농장을 쭉 찾아봤어요. 우리나라는 참 기록을 안 해 놓데요. 일본 사람이나 중국 사람은 다 해 놓는데. 그래서 결국 이 사람들이 죽지 않았냐. 죽었으면 묻혔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묘지에 가 보자, 묘지에 가서 묘지 대장을 보니까 이름이 나옵니다. 그래서 미국 중서부 산간 지방의 우리 노동자들을 찾았을 때 포천에 사는 분이 비석에 서 있으니까, KBS 프로그램에서 찾아서 손자가 왔어요. KBS에서 방송한 미국 이민 100주년 방송을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중서부 산간 지방의 이민사, 참 슬픈 이야깁니다.

박인규 : 1910년대에 이미 유타 주에 400명의 한국인 노동자가 있었다, 그분들도 아마 고향을 그리면서 아리랑을 불렀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앞으로 나올 영문판 아리랑 해설서가 의미가 있을 텐데요, 우선, 제목을 정하셨습니까?

이정면 : 우선 임시로 아리랑, 아시다시피 서민들이 부른 노래고, 사대부에서는 상대도 안 하고, 깔아뭉갠 노래아니었습니까. 그런데도 오늘날까지 밀고 올라왔는데, 우리나라 민족의 노래가 아니라 세계의 노래인데, 그래서 우선 아리랑, 제목을 지어놓고 <Song of Korea>. 한국의 노래, 민족의 노래다. 그래서 민족의 노래, 아리랑 이라고 지어봤습니다.

박인규 : 아리랑, <Song of Korea>. 한국인들의 아리랑. 이런 판도로 나가서 우리 아리랑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렸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작업 잘 하셔서 좋은 책 써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정면 : 좋은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박인규 :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미국 유타대 이정면 교수를 초대해, 아리랑에 대한 그의 사랑과 해외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는 아리랑의 가치와 정신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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