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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면 매사가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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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면 매사가 행복해집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5/08] 치매홍보대사 된 효녀 가수 현숙 씨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치매와 중풍으로 고생하는 부모님을 30년 가까이 지극히 보살펴 효녀 가수로 잘 알려진 현 숙씨가 이번에는 치매 바르게 알기 전도사로 나섰습니다. 그동안 현 숙씨는 남다른 효심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은 물론 무대에서의 열정적인 공연만큼이나 선행에도 앞장서왔는데요. 앞으로는 치매노인홍보대사로서 치매가 무서운 병이 아니라 고칠 수 있는 병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릴 계획이라고 합니다.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어버이날을 맞아 가수 현 숙씨를 초대해 치매노인홍보대사로서의 활동계획과 그녀를 더욱 빛나게 하는 효심과 선행에 대해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가수 현 숙씹니다. 현 숙씨는 '타국에 계신 아빠에게'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28 장의 앨범을 통해 '포장마차', '정말로', '춤추는 탬버린', '사랑하는 영자씨', '요즘남자 요즘여자' '오빠는 잘 있단다.' , '월화수목금토일'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꾸준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투병생활을 했던 부모님을 30년 간 모시면서 정성껏 간호해 효녀 가수로 불리며 불우노인을 위해 이동 목욕차를 기증하는 등 선행에도 앞장서왔습니다.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여자성인가요상과 KBS 가요대상, PD가 뽑은 인기가수상, 방송의 날 방송 대상을 비롯해 1996년부터 지금까지 KBS 가요대상을 12년간 연속 수상했습니다. 또 제24회 어버이날 국민포장과 효령대상 효행부문상, 김제시민의 장 효열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박인규 : 안녕하십니까?

현숙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박인규 : 어버이날을 맞아 '효녀가수'로 잘 알려진 현 숙씨를 모시게 됐습니다.

현숙 : 아유, 죄스럽고 쑥스러워요.

박인규 : 워낙 5월 달에 바쁘시죠? 행사가 많아가지고.

현숙 : 네, 아무래도 어버이날이 있고 또 노동절 날이 있고. 각종 축제가 많아서 많이 바쁘게 활동하고 있어요.

박인규 : 저희가 소개 해드렸습니다만 이번에 치매노인 홍보대사를 맡게 되셨어요. 어떻게 해서 맡게 되셨나요?

▲ ⓒ프레시안

현숙 :
글쎄요. 부족한 건 참 많지만 그 동안에 부모님 모시면서 제가 겪었던 그런 경험담으로 치매 환자와 가족들에게 격려와 희망을 주고 또 우리나라에 65세 이상 되신 부모님들이 치매가 많으시데요. 34만 명이 치매로 고생하신다고 해서. 치매를 두려워하시지 말고 잘 이해하고 가족이니까 따듯한 애정으로 잘 보살펴 드리면 더 진행되지 않고 치매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애기를 나눠드리는 거예요.

박인규 : 그럼 치매 노인 홍보대사가 되시면 강연 같은 걸 나가시는 건가요? 어떻게 되나요?

현숙 : 아무래도 학회에도 참석해야 되겠고 또 치매 가정에 방문도 해서 제가 겪었던 경험담 같은 것도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들을 같이 환자들한테 가족들이 더, 본인은 당신은 모르시지만 가족들이 당황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 등등을 같이 나누는 거예요.

박인규 : 현숙씨 아버님도 치매를 오래 앓으시다가 돌아가셨죠?

현숙 : 그렇죠. 96년도 12월 25일 날, 80에서 5일을 못 사시고.

박인규 : 크리스마스에 돌아가셨네요?

현숙 : 네, 크리스마스 날. 참 이상하죠. 제가 정말 바빴는데 바쁜 그 일을 들어 온 일을 다 마무리 지은 다음에 아셨는지 그렇게 편안하게 가셨어요.

박인규 : 한 7년 동안 치매를 앓으셨다고 그러는데. 그 동안 병수발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어요?

현숙 : 글쎄요. 부모님이니까. 가장 사랑하는. 절 낳아주신 부모님이시기 때문에. 어려운 점은 뭐……. 매일 소리를 밤에 안 주무시고 계속 소리를 지르시는 거예요. 그런 거나 또 아니면 불장난을 하시더라고요. 그런 거나 집 나가시면 길을 잃으시니까. 겉옷은 벗을 수가 있기 때문에 저는 일과 끝나면 집에 가서 아빠 속옷에 전화번호하고 이름을 적어 드렸어요. 그랬더니 다른 분이 보시면 집으로 연락이 금방 오면 또 모셔오기도 했으니까 뭐 힘든 것은 없었어요.

박인규 : 그래도 누가 항상 옆에 있어야 되는데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어요?

현숙 : 늘 걱정이었죠. 밤새 소리를 지르시니까. 그 땐 참 힘들었어요. 정말 잠을 자야 되는데. 밖에 가서 일을 하고 집에 와서 잠을 자야 되는데.

박인규 : 치매 환자분들은 특히 밤에 더 활동적이신 것 같더라고요?

현숙 : 네, 그런데 이웃에서 시끄럽다고 그러시지. 그러니까 그게 참 힘들었는데. 세월이가고 지금에 얼마 후 지나니까 아빠가 힘이 없으시니까 소리도 못 지르시더라고요. 그럼, 그 땐 이미.

박인규 : 체력도 떨어지시는 거군요.

현숙 : 체력이 떨어지시니까. 아, 우리 아빠 그 때 소리 지르실 때가 참 그때가 그리운 것 있죠. 그 때만 같았어도 그랬는데 나중에는 결국은 편찮으셨어요.

박인규 : 치매 노인 홍보대사시니까 치매 환자를 가지신 가족들이 어떻게 해야 가장 잘 모시는 건가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가족만의 힘으로 쉽지는 않은데.

현숙 : 한 살짜리 어린아이랑 똑같아요. 금방 밥 드렸는데 안 드셨다고 밥 더 달라고. 또 머리채도 잡으시고 그렇거든요. 그런데 그거 당황하시지 말고. 무서워하시면 어떻게 해요. 나 낳아주신 부모님인데. 어떻게 하겠어요. 그냥 애기처럼. 길 가다가도. 전 차에 항상 꼭 엄마 아빠 같이 모시고 다녔어요. 일하는 사람 안 뒀어요. 가면서 아빠, 여기는 한강이야. 아빠, 여기는 KBS 방송국이에요. 꼭 그렇게 가르쳐 드리니까. 자꾸 되풀이 되풀이 하니까 아시더라고요. 잠깐 잠깐.

박인규 : 사랑과 관심으로 계속 보살펴라?

현숙 : 그럼요, 남 아니고 나 낳아주신 부모님 안 계시면 제가 이 자리에 어떻게 있고, 노래를 어떻게 하고 이렇게 건강하게 낳아주셨는데. 그래서 이렇게 따뜻하게 얘기를 계속 해 드리면…….

박인규 : 계속 말을 붙여 드리고?

현숙 : 네, 말을, 치매에 걸리시고 아프셨다고 그냥 딱 문 닫고 혼자 계시게 하면 정말 더욱더 심해지시는 거예요.

박인규 : 아버님 같은 경우는 7년 정도 치매를 앓으시다가 96년도에 돌아가셨는데…….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20여 년간을 앓으시다가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올 해 어버이날은 사실은 작년 어버이날은 그래도 어머니라도 살아계셨는데. 올 해는 안 계신 상태에서 어버이날을 맞으시니까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실 것 같아요.

현숙 : 지금도 눈물 나려 그래요. 네, 많이 가슴이……. 그런데 사실은 엄마를 제가 모신 게 아니고 제가 김제에서 어린 나이에 가수의 꿈을 안고 서울에 오니까 처음엔 막 반대하셨거든요. 그런데 어린 딸이 가니까 엄마가 못 미더우셨던 거예요. 그러니까 농사짓던 거며 뭐 다 아버지까지 정말 다 뿌리치고 그냥 서울에 엄마가 오셔서 저를 보살펴 주신 거예요. 제가 모신 게 아니고.

박인규 : 아……. 그러니까 딸이 걱정돼서 올라오신 거군요.

현숙 : 예, 딸 이기는 부모 없다고. 그냥. 아빠 몰래. 처음에는 제가, 저희 아버지가 워낙 남 퍼 주길 좋아하시고. 남 어려운 일 있음 다 도와주시고 농사를 지으면 다 가져다 드리고 해서.

박인규 : 워낙 부자셨는데 그래 가지고 나중엔 좀 그러셨다고.

현숙 : 네, 외가댁 것까지 다 가져다. 그러면 저는 처음에는 저도 우리 아빠처럼 남을 위해서 법관이 돼서 참 어려운 분을 도와야겠다. 그랬는데 꿈이 자꾸만 바뀌더라고요. 배구선수도 되고 싶고 또 어느 날 가수도 되고 싶고.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다, 친척들은 다 고시 공부하러 다 서울에 갔는데. 저 어린 딸이 가수하면 그 집 딸 다 버린다고 그랬어요.

박인규 : 그 당시만 해도 사실은 뭐, 가수에 대한 인식이 썩 좋지는 않았을 때라서.

현숙 : 네, 그 집 딸 다 버린다 그랬는데. 엄마가 그래도 돈 만원하고 쌀 한 말, 노란 들통에 김치 한 통을 주셨어요. 그걸 가지고 밤기차를 탔는데. 지금 KTX 두 시간 반이면 오는데 그때는 아홉 시간 반이 걸려 서울역에 내렸는데 왜 이렇게 눈이 많이 왔는지요. 지금은 눈도 안 오는데. 제가 지금 생각하면 겁도 없었죠. 큰일 날 뻔 했죠.

박인규 : 그럼, 혼자 올라오시고 어머니가 따라 올라오신 건 언제에요?

현숙 : 그 이듬해요. 바로 엄마가. 그래서 농사일을 지으시다가 가만히 계시니까 무릎이 처음엔 아프시더라고요. 왜냐면 일을 많이 하시다가……. 그러다가 차츰차츰 혈압이 높아지시고 그러다가 뇌졸중으로 한 번 쓰러지셨죠. 그래서 많이 걷지는 못하시고 엎드리셔서. 근데 제가 참 어머니께 감사하는 건 모든 대한민국 부모님 다 그러시지만. 제가 정말 실망시켜드리지 않으려고 우리 가족과 우리 고향 분들과 모든 친척 분들한테 실망시켜드리지 않으려고 정말 남들 잘 때 새벽까지 일하고 새벽에 일어나서 또 일하고 그랬어요. 근데 제가 밖에 나갔다오면 새벽에 네 시에 오더라고 문을 딱 열어주세요. 문 바로 옆에 계셨던 거죠. 그런데 그 이후에는 엄마가 못 그러셨어요. 그런데 제가 딱 오면, 키를 갖고 다니면서 문을 딱 열면 방에서 왔냐하고 주무셨거든요. 그런데 아버지가 가시니까. 그 해에 바로 말문을 닫으시고 물 한 모금도 못 드시고 그냥 드러누워 계셨어요.

박인규 : 아버님이 돌아가신 게 어머니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 거로군요.

현숙 : 그렇죠. 아무리 병든 아버지지만 같이 계실 때 참 의지가 되셨던 거죠. 그래서 72세부터 85세 운명하시는 날까지 물 한 모금 못 드셨어요. 호스에 의해서 그냥 계셔서 늘 마음이. 지금도 가장 걸리는 것은 그런 것들이 많이 걸리는 것 같아요.

박인규 : 어머님 돌아가신 게 현숙씨 생일 즈음이었다고 들었는데?

현숙 : 네, 엄마가요. 6월 3일 날 먼저 운명을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녹화를 하다가 막 돌아가셨다고 해서 병원에 갔는데. 엄마가 또 깨어나셨어요.

박인규 : 딸이 보고 싶어서 못 돌아가신 모양이네요.

▲ ⓒ프레시안

현숙 :
심폐술로 이렇게 해서 그랬는데 또 6월 22일 날 또 한 번 운명하셨어요. 오전 6시쯤요. 그러니까 담당 주치의 선생님께서 한양대학병원 교수님께서 어머니 그 정신력이 대단하시다고. 의지가. 85세 되신 어르신이 정말 대단하시다고 그래서 두 번째 또 깨어나셨어요. 그런데 한 번 사람이 운명하시면 가장 먼저 장기가 상해요. 콩팥이 망가져서 인공 신장기를 돌리는데 하루만 소변을 못 누시면 얼굴이 못 알아 뵐 정도로 커지시더라고요. 부으셔가지고. 소변 한 방울을 그렇게 기다렸어요. 그런데 엄마 생신 지나시고 6월 29일 날 세 번째 정말 운명하셨는데 다시 안 깨어나셨어요. 정말 가셨어요. 그래서 7월 1일 날, 제 생일날 고향 땅에 모셨는데. 제 생일을 돌봐주고 가시려고, 보고 가시려고 그러셨던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박인규 : 뭐,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도 있는데 현숙씨 효성 때문에 그렇게 가신 것 같네요.

현숙 : 아니에요. 엄마가…….

박인규 : 현숙씨같이 그렇게 20년, 30년 가까이 병드신 부모님을 모시는 효녀가 있는가 하면 요즘엔 이상하게 돼서 그런지 재산이나 그런 것 때문에 부모한테 해코지하고 이런 사건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 사건을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현숙 : 분명히 후회할 거란 생각을 해요. 세상에 부모만큼, 부모는 드실 것도 안 드시고, 입을 것도 안 입으시고, 전부 자식을 위해서 다 주시거든요. 그런데 엄마 안 계시니까, 우리 형제는 정말 우애도 깊고 다 잘하지만, 안 계시니까 계실 때만 못해요.

박인규 : 형제도 부모가 있어야 형제라고 하잖아요. 부모님 계셔야 모이고.

현숙 : 그럼요. 아무리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고, 아내를 얻고 남편을 얻어도, 부모만큼 생각하질 않아요. 분명 후회를 정말 많이 하실 거예요. 안 돼요, 그거는요.

박인규 : 현숙씨는 형제분들이 굉장히 많다고 들었는데요?

현숙 : 저희 엄마가요, 열둘을 낳으셨대요. 제가 열 한 번짼데.

박인규 : 12남매. 열 두 명 중에 열한 번째.

현숙 : 네. 지금은 한 명 두 명 키우기도 힘든데 어떻게 하셨는지 모르겠어요.

박인규 : 그 중에 생존해 계신 분이 몇 분이나 되세요?

현숙 : 낳으면서 잃으시고, 키우면서 잃으시고 해서, 3남 3녀요. 저도 글쎄, 생일이 5월 달이잖아요.모 심으시다가 혼자서 문고리 잡고 낳으셨대요, 엄마가. 그리고 또 논 일 하러 또 나가셨대요, 저희 엄마가.

박인규 : 현숙씨를 낳자마자?

현숙 : 예.

박인규 : 예전엔 참 그랬군요. 근데 3남 3녀면 그 중에 현숙씨만 특별히 효심이 뛰어난 겁니까? 이 방송 들으시면 다른 형제분들이 뭐라고 안 그러시나요?

현숙 : 아니에요. 제가 우리 형제들 너무 죄스러운 거는요, 우리 올케언니도 그렇고 형부도 언니도 오빠도. 우리는 간병하시는 분을 안 모셨어요. 형제간에, 주중에는 오빠 올케, 주말에는 형부 언니, 밤에는 제가 보고, 이렇게 해서 가족이 다같이.

박인규 : 합심해서 하셨군요.

현숙 : 그럼요.

박인규 : 저희는 현숙씨가 효녀가수라고 해서 혼자 다 하셨나 했더니.

현숙 : 그러니까요. 올케 언니한테 미안한 거죠. 형부한테 도요.

박인규 : 고맙다는 말씀을 오빠나 언니나 올케한테 한번 해보시죠. 여기서 한번.

현숙 : 정말 죄스러운 건 우리 형부. 정말 장모님인데, 기저귀 다 갈아주시고, 목욕 다 시켜 주시고, 올케 언니야 며느리니까 당연히 하지만, 형부한테 너무 죄송했고 감사하고, 또 우리 자식들은 가족이니까 당연히 한 거고요. 제가 정말 두고두고, 우리 형부, 우리 올케언니, 친동생 이상으로 잘 할게요, 언니 형부. 사랑하고 고마워요.

박인규 : 역시 효성도 형제가 많아야 잘 되는가 봅니다.

현숙 : 그럼요, 혼자는 힘들어요.

박인규 : 살아생전에 아버님은 어떤 분이셨고, 어머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현숙 : 우리 아빠는요, 정말 꽃을 좋아하세요. 그리고 남을 위해서 다 주세요. 당신 것까지도. 그래서 정이 많으시고 항상 잘 웃으세요, 저희 아버지는. 또 저희 엄마는 정말 지혜롭고 오직 자식 위해서 희생과 봉사하시다가 당신 인생이란 없으셨어요, 저희 어머니는. 그리고 또, 나누는 걸 좋아하셔서 저희 엄마는 김장만 하셔도 동네에 오십 몇 집을 다 저한테 심부름 시키셨어요. 그런 거 보고 배웠고 여자는 항상 밝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또, 예쁜 것만 보고 예쁜 생각하고, 말을 아껴야 된다, 그러셨어요. 그리고 저희 엄마는 저한테 항상 강아지라고 하셨어요. 복덩이라고.

박인규 : 상당히 귀여워하셨군요.

현숙 : 예, 그런데 밥을 먹잖아요. 그 어린 아기가, 엄마가 칭찬을 하잖아요. 우리 강아지, 많이 먹어서 예쁘다, 예쁘다고 하시면, 저는 막 배가 터졌어요. 그런데도 엄마 칭찬받기 위해서 밥을 두 세 그릇 먹어서 제가 오늘날 이렇게 건강한 것 같아요.

박인규 : 아버님이나 어머님이나 다 남에게 퍼주시길 좋아하시고, 특히 어머님은 항상 명랑하게 살아라, 자극을 받으신 것 같은데, 제가 알기로는 최근에 이동 목욕차라고 해서 지방에 계시는 노인 분들이 목욕하기 쉽게 차를 계속 기증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요. 말하자면, 부모님한테 물려받은 건가요?

현숙 : 사실은 뭐하고 했다 했다고 하는 건 죄스러워요, 부끄럽기도 하고. 근데 알게 됐으니까 말씀드리는 건데, 이제 환자가 집안에 계시면, 엄마가 애를 많이 낳으셔서 항상 배가 불러 계셨어요. 목욕시켜 드리는 건 자식이니까 하는데, 무거워서 이불에 요령껏 끌고 다니기도 하고, 힘에 부닥쳐서. 그런데, 저도, 건강한 사람이 귀에 물 들어가면 답답하고, 눈에 물 들어가면, 코에 물 들어가면 그런데, 엄마는 말씀 못 하시는데 혹시 엄마 모시고 가다가 문턱에라도 찧을까봐. 목욕 시켜드리면 멍이 들으셨어요. 그런 것들 때문에 그랬는데, 어느 날, KBS 3라디오에서 목욕 봉사를 가게 됐어요. 구로구청에. 그런데 정말 눈이 둥그레졌어요. 정말 따뜻한 물 나오고, 차로 모셔다가 시켜드리는 거예요.

박인규 : 차 안에 그런 시설이 있다는 말씀이시죠?

현숙 : 예, 골목골목까지. 그래서 아~ 그동안 많은 사랑도 받았는데 이제는 우리 엄마 아빠 못 해드리는 거 다른 부모들한테 내 부모처럼 해 드리자. 저는 항상 그래요, 저 혼자 행복한 것 보다 우리 가족이 행복한 거,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걸 원하는데, 그 목욕 차량을 가지고 가서 한 달에 한 번 시켜드리기도 힘들데요. 그런데 어린아이 같아요. 처음엔 안 하시려고 머리도 잡고 문지방도 잡고 막 힘을 쓰시는데, 해 드리면 한 살짜리 애기처럼 잠을 너무 뽀얗게 잘 주무시는 거예요.

박인규 : 말씀하기는 좀 뭐하지만, 지금까지 몇 대나 기증하셨어요?

현숙 : 고향에 먼저 해 드리고, 그 다음에 울릉도에 하고, 하동. 그 다음에 청양에 어르신들이 제일 많더라고요. 청양에 하고 전라도, 경상도, 울릉도, 충청도 했으니까 이번에는 강원도로 가서 올해는 정선.

박인규 : 매년 한 대씩 하시나보죠?

현숙 : 제 꿈이요, 부자여서 하는 건 아니고, 열심히 해서 제 꿈은 전국에 어디든지 이동목욕차량 한 대씩 다 해드리고 싶어요.

박인규 : 하긴, 뭐, 어떤 분이 말씀하시길 혼자만 행복하면 무슨 재미냐고 하시던데, 참 좋은 일을 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럼 여기서, 어버이날을 맞아서 현숙씨가 부른 노래를 하나 듣겠습니다. 나의 어머니.

현숙 : 저희 엄마노래예요. 동료가수 설운도 씨가 작사 작곡해서, 저희 엄마를 보고 가사를 쓰고 곡을 써서 만들어주신 거예요. 저희 엄마 팔순 잔치 때, 산수연, 2002년도에.

박인규 : 한 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숙 : 네, 들어봐 주세요.

박인규 : 박인규의 집중 인터뷰, 오늘은 어버이날을 맞아 효녀가수 현숙씨 함께 하고 있습니다. 현숙씨가 부른 나의 어머니를 들어봤는데요, 아버지가 좀 섭섭해 하시겠어요. 나의 아버지란 노래도 하나 만들자고 하시는 건 아닌가 모르겠어요.

현숙 : 아버지 안 계실 때 만들어가지고요.

박인규 : 네. 가수되기 위해서 굉장히 일찍 올라오셨다고, 언론보도를 보니까 돼 있던데, 가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셨어요? 어떻게 보면, 현금 만원과 쌀 한 말, 김치 한 통, 굉장히 어렵게 올라오셨는데.

현숙 : 저도 지금 생각하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신기한 게 김제 시골에서 꼬마가 와 가지고 내가 어떻게 여기 KBS를 와서 앉아있나, 신기하기도 해요. 그냥 무조건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면 된다는 그런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 했어요. 운이 좋았던 거죠.

박인규 : 현숙씨 노래가 대개 보면 신나거나 발랄하거나 명랑한데, 근데 부모님의 사연을 보면 그렇게 신나기가 쉽지가 않은데, 원래 성격이 그러신 겁니까, 나름대로 비결이 있습니까?

▲ ⓒ프레시안

현숙 :
제가 늘 지금도 엄마한테 너무 감사하는 게, 정말 일도 다른 사람보다 많은 양을 해요. 그리고 또 뭐든지 부정적인 것 보다는 낙천적이고. 아침에도 감사하고 저녁에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행복하다, 어머 난 다 할 수 있어 행복해, 어머 난 노래 할 수 있어서 감사해, 꽃이 예쁘다, 뭐, 성격이요, 안 좋은 걸 생각을 안 해요. 어떤 사람은 정말 나쁘게 했어요. 상처를 많이 줬어요. 그래도 아, 그 사람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겠지 라고 생각을 하니까 정말 그런 것 없었어요.

박인규 : 사실 행복은 환경에 있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고 그러던데, 항상 마음속에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모양이군요. 현숙씨 정도면 원로까지는 아니더라도 굉장히 이름 있는 가순데, 대개 가수가 되면 매니저다 코디다 해서 말하자면 보조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현숙씨는 혼자 활동한다고 그래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현숙 : 제가 인연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해요. 한번 만나면 끝까지 정말 좋은 관계가 돼요. 매니저 선생님은 원래 계셨거든요. 김상범 선생님인데, 그 선생님이 맨 처음에 저랑 박일준 씨를 픽업을 하셨어요. 그래서 가수로써 좋은 곡도 주시고 매니지먼트도 하셨는데 건강 때문에 2004년에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저는 한 번 만나면 끝까지 가는. 지금 우리 집에 운전하는 박 부장도 22년째거든요. 총각 때 와서.

박인규 : 의리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군요.

현숙 : 목욕탕도 그 집, 미장원도 그 집, 친구도 한번 만나면 그 사람, 늘 제 곁에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돌아가셨는데 지금은 새로운 사람을 접하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늘 주시는 스케줄 하고. 지금은 어떤 걸 해야 되겠다 해야 되겠다는 거 보다는 지금 이 순간이 감사해서 그냥 잘 지키고 또 오는 전화는 섭섭하지 않게끔.

박인규 : 욕심 부리지 말고? 김상범 씨가 매니저였다는 건 제가 몰랐습니다.

현숙 : 네, 가수로서 키워주셨어요. 사회 나와서 부모님이랑 똑같아요.

박인규 : 올해부터는 부모님이 안 계신, 말하자면 진짜, 많은 분들이 고아라고도 하는데, 이제 활동을 하셔야 하는데 앞으로 가수로서, 또 사회 선행과 관련해서 어떤 활동 하실 건지, 마지막으로 청취자들에게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현숙 : 네, 그동안 거의 30여년 가까이 많은 사랑 주셨기 때문에 현숙이가 있고, 여러분이 안 계셨으면 저도 좌절해서 많이 어려웠을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항상 힘을 주셔서 늘 감사했고요, 앞으로 많은 사랑 주신 거, 제가 많이많이 나누고 또 어려운 사람 있으면 같이 슬픔도 기쁨도 나누겠습니다. 그러니까 예쁘게 봐주시고요, 또 이 방송 들으시는 모든 분들, 제 노래 중에 '월화수목금토일'이 있어요. 가사처럼 늘 행복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어떻게 말로 못하겠어요.

박인규 : 어려운 가운데서도 계속 웃음과 효행과 노래로 우리 사회에 기쁨을 주셨는데, 앞으로 5월에 행사 잘 하시고 좋은 노래, 좋은 선행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현숙 : 여러분도 가정의 달인데요, 온가족 모두 행복하십시오.

박인규 : 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어버이날을 맞아 효녀 가수 현숙씨를 초대해, 치매노인홍보대사로서의 활동계획과 그녀를 더욱 빛나게 하는 효심과 선행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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