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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부세 무력화' 시동 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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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종부세 무력화' 시동 거나?

[기고] 재경부의 돌연한 태도 변화를 보며

종부세 근간 허물기에 나선 재경부
  
  재경부를 불쌍하다고 해야 할까, 기민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용감하다고 해야 할까? 감히 인수위조차 입에 담지 못하던 종합부동산세 무력화 방안을 서슴없이 내놓는다고 하니 말이다.
  
  지난 6일자 언론 보도에 의하면, 재경부는 7일 인수위에 대한 업무 보고에서 종부세 과세 기준(주택의 경우)을 공시가격 6억 원 이상에서 9억원 또는 10억 원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방안을 밝힐 예정이라고 한다. 그 동안 종부세 과세 기준을 9억 원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은 있었지만, 재경부는 한 술 더 떠서 10억 원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파격적인 방안까지 검토한다고 하니 놀랍기 짝이 없다. 언론에서는 이렇게 될 경우 종부세 대상자가 얼마나 줄어들지 계산하느라 여념이 없다.
  
  2005년 8.31대책에 의해 종부세가 강화된 이후, 종부세 비판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 온 논리가 있다. 그것은 소득이 없는 은퇴 고령자나 1세대 1주택 장기 보유자에 대해 '무거운' 종부세를 부과하는 것은 투기꾼이 아닌 사람을 벌 주는 것과 같으므로, 그들에 한해 종부세 부담을 감면해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 주장을 접할 때마다 필자의 머리 속에는 "전체 종부세 과세 대상자가 소수이고 그 중에서도 은퇴 고령자나 장기 보유자는 정말 극소수에 불과한데 왜 이렇게 이들을 보호하지 못해서 안달일까? 이들은 진심으로 '억울한 피해자'를 구제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종부세 구멍내기를 통해 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리려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2007년 7월 9일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종부세를 재산세와 합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던 적이 있다. 이 방안을 발표하자마자 종부세 무력화 방안이라는 비판이 강력하게 제기되었고 여론의 집중포화가 이어지자,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는 이례적으로 이 공약을 자진 철회한 적이 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이명박 당선자 측의 공식 입장은 1세대 1주택 장기 보유자에 한해 양도세와 종부세를 감면하겠다는 것이었다.
  
  1세대 1주택 장기 보유자에 한해 종부세를 감면하는 것과 종부세 부과 기준을 상향 조정해서 부과 대상자를 대폭 줄이겠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전자는 본심이야 어디에 있건 내용상으로는 종부세를 제도적으로 보완하겠다는 것이지만, 후자는 노골적으로 종부세 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리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경부의 낯 뜨거운 태도 변화
  
  재경부의 방안이 인수위와의 사전 조율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인수위가 일하기 편하도록 재경부 쪽에서 미리 '알아서 긴' 결과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재경부의 핵심 간부들이 대거 나서서 종부세 옹호에 열을 올리던 모습을 생각하면, 낯 뜨거운 태도 변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재경부는 1주택 장기 보유자에 대한 조세 감면을 넘어서 아예 종부세 과세 기준을 올려 전체 대상자를 줄이는 방안을 마련하게 된 이유를, "1주택자에게만 과세기준을 완화해 주면 9억 원짜리 1주택자는 종부세를 내지 않고 3억 5천만 원짜리 두 채로 7억 원 상당의 주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세금을 내는 결과를" 가져와서 공평과세의 원칙이 무너진다는 데서 찾는다고 한다. 재경부는 그 동안 이 논리를 '종부세 후퇴 절대 불가'의 의지를 표명할 때 사용해 왔는데, 이것을 '종부세 무력화'의 논거로 둔갑시키는 것을 보니 그 '명민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종부세 무력화는 위험한 발상
  
  종부세는 보유세 강화 정책의 핵심으로서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의 오랜 숙제를 해결한 획기적인 세금이다. 중앙정부의 공공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걷기 시작했다는 점(종부세는 국세 보유세다)에서나, 2017년까지의 정책 내용을 구체적으로 예고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정책 내용을 장기적으로 예고한 예는 거의 없는데, 이런 방법은 다른 경제정책을 수립할 때 모델로 삼을 만하다. 그리고 국민들도 참여정부의 정책이라면 무조건 싫어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종부세만큼은 확실하게 지지하고 있다. 과세 대상자들의 자진 신고율도 100%에 가깝다.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정도가 그만큼 높은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이를 무력화시키고자 한다면, 그것은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을 또다시 냉온탕식 정책에 내맡기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고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가격 변동을 조절하는 단기정책과 부동산 불로소득을 근원척으로 차단하는 장기정책을 병행해서 실시해야 한다.
  
  보유세 강화는 부동산 불로소득의 차단에 가장 효과가 큰 정책으로서, 부동산 시장의 동향이나 정권의 소재에 상관없이 수십 년 간 꾸준히 추진해야 할 장기정책이다. 단기정책으로서 가장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큰 것은 미시적 금융대책, 즉 주택 담보 대출 규제 정책이다. 인수위와 재경부가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종부세 완화를 통해 부동산 시장을 부양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정말 위험한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004년에도 꼭같은 일이 있었다. 종합부동산세법을 입법화하는 과정에서 애초에 과세 기준을 공시가격 6억 이상으로 잡았던 정부 원안을, 국회의원들이 9억 이상으로 후퇴시켜 버렸던 것이다. 종부세의 결정적 후퇴와 재건축 규제 완화 방침의 발표가 어우러져서 2004년 내내 안정되었던 부동산 값이 2005년 들어 다시 폭등하기 시작했다. 이때 다시 우리를 빠져나온 투기라는 괴물을 도로 우리 안에 가두는 데는 그로부터 2년이 걸렸고, 한때 최고의 정책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최악의 정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종부세 무력화는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 부동산 제도의 선진화를 막고, 단기적으로는 부동산 값 폭등을 재연시킬 우려가 큰 정책이다. 이명박 정부가 이를 실행에 옮긴다면 그것은 아마도 실책 중의 실책이 될 것이다. 2005년 8.31대책 수립 때부터 비교적 일관성 있게 종부세 정책을 추진해 온 재경부가, 종부세 무력화의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이를 적극 제안하는 것을 바라보자니 씁쓸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노 대통령, 책임자 문책으로 경고라도 남기라
  
  며칠 전 노무현 대통령은 인수위가 정부 각 부처 실무 국장들에게 위압적으로 행동한다고 비판하며 참여정부 관료들을 감싸고 나섰는데, 큰 착각을 한 듯하다. 종부세 문제를 처리하는 태도로 봐서는, 인수위가 위압적으로 행동할 필요도 없이 참여정부의 관료들은 인수위 앞에 알아서 기고 있고 마음은 이미 이명박 당선자에게 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부세 무력화 시도를 안타깝게 생각한 노무현 대통령이 또다시 인수위와 각을 세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노 대통령에게 약간의 힘이라도 남아 있다면, 인수위와 각을 세우기 전에 재경부에서 이번 방안 마련을 주도한 책임자를 색출해서 문책하는 것이 순서다. 이렇게 해서라도 확실한 경고를 남기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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