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해 국제사회는 파키스탄의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대변인을 통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파키스탄 상황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면서 "구금 인사를 당장 석방하고, 민주체제 복귀를 위해 조속한 조치를 취할 것'을 파키스탄 정부에 촉구했다
미국에 이어 영국도 파키스탄 지원 프로그램을 재검토하기로했으며, 네덜란드는 수백만 달러의 지원금 동결을 발표했다. 유럽연합도 비상사태 선포에 우려를 표명하고 헌정체제로의 조속한 복귀를 촉구했습니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5일 터키의 에르도안 총리와 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역행하는 조치"라며 "우리는 선거가 가능한 빨리 실시되기를 바라며 (무샤라프) 대통령이 군복을 벗어야 한다"고 말하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무샤라프 정권은 9.11 사태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에 협조하면서 10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미국의 이같은 원조가 끊기면 무샤라프 정권은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무샤라프 대통령은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이날 외국 대사들과의 만남에서 조건이 성숙하면 현재 유지하고 있는 참모총장직을 포기하고 민간 대통령 신분으로 돌아가 직무를 수행하겠다면서, 당초 내년 1월로 예정된 총선을 가능한 한 일정에 가깝게 실시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도 말릴 힘 없는 무샤라프의 독자행보
그러나 부시 대통령과 무샤라프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들은 '립서비스'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뉴욕타임스>도 "테러와의 전쟁 협조 때문에 미국이 무샤라프 정권에 원조를 중단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부시 대통령은 무샤라프 대통령이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미국이 파키스탄에 대한 지원을 축소할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샤라프 대통령과 함께 협력을 계속하는 것이고, 그가 나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그 문제를 다룰 것 "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무샤라프 대통령의 비상사태 선포 자체가 미국의 승인을 받아 이뤄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비상사태 선포가 무샤라프의 치밀한 계산에 따른 것이며, 미국이 말릴 힘이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와 주목된다.
인도의 고위급 외교관 출신의 중동전문가 바드라쿠마르는 6일 <아시아타임스> 기고문에서 "무샤라프는 비상사태 선포에 앞서 미,영과 협의를 거쳤으며, 테러와의 전쟁에 무샤라프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라 미국도 끝까지 말리지 못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파키스탄의 민주지도자로 인기가 높은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를 내세워 무샤라프와 권력 분점을 통해 파키스탄의 민주화를 앞당기려는 미국의 어설픈 구상이 오히려 파키스탄 정정을 불안하게 해 무샤라프가 미국의 압박을 벗어나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고 지적했다(.☞관련기사: "파키스탄 테러, 부시에게 악몽의 시나리오").
다음은 'Pakistan shakes off US shackles'의 주요내용을 번역한 것이다.<편집자>
파키스탄의 최근 사태를 '민주주의'의 문제로 보는 시각을 떨치기는 힘들다. 하지만 파키스탄의 현실정치에서 민주주의는 부주제조차 되지 못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무샤라프가 대통령이라기보다는 군참모총장으로서 비상사태를 선포한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파키스탄 군부가 그의 조치를 지지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무샤라프는 비상사태 선포에 앞서 지난 2일 미국과 영국 등 동맹국과 협의를 거쳤다. 특히 무샤라프와 부토의 '권력분점' 밀약을 주선한 영국에 대해 감정을 상하지 않도록 무샤라프는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에게 동의를 구했다.
미 중부군 사령관 윌리엄 팰런은 마침 파키스탄을 방문하고 있었고, 무샤라프는 라왈핀디에 있는 참모총장실에서 비상사태 선포를 위한 발표문에 마지막 손질을 가하고 있었던 것도 우연의 일치로 보기 힘들다.
팰런은 무샤라프의 비상사태 선포계획을 말렸지만 결국 포기했다. 무샤라프는 미국이 자신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계산을 이미 끝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을 미국의 꼭두각시로만 보는 것은 실수하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파키스탄에 늘 관심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적인 사례가 미국의 만류를 일축하고 파키스탄이 1998년 핵실험을 한 것이다.
10년 전 당시 파키스탄의 군부 실력자 지아 울하크는 미국과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중동의 중립적 국가로 만들려는 정책에 합의하고 이에 따라줄 것을 요구받자 응하지 않았다. 파키스탄이 아프가니스탄에 영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부토 전 총리가 지난 2일 돌연 두바이로 출국한 것은 무샤라프의 비상사태 선포를 앞두고 그를 보호하려는 미국과 영국의 조언에 따른 것임이 뒤늦게 드러났다.
미국의 위선적인 태도는 무샤라프의 비상사태 선포에 대해 백악관이 체념에 가까운 맥빠진 비난 성명을 낸 것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파키스탄 군부 입장에서는 미 국방부 대변인 성명이 더 중요하다.
미 국방부가 유화적인 성명을 낸 속사정
미 국방부(펜타곤)는 "이번 사태로 파키스탄에 대한 미국의 군사 지원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며, 파키스탄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동맹국"이라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파키스탄 군부에게 중요한 것은 미 국무부나 CIA가 아니라 펜타곤의 입장이다.
무샤라프도 국민들의 인기나 국제사회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이 악화되면서 미국은 자신과 함께 일할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란과 국경을 마주한 아프가니스탄 서부의 파라 주와 납부의 칸다하르의 상황은 최근 상황이 특히 심각해졌다.
미국은 최근 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국방장관 회담에서 회원국들의 병력 추가지원을 얻어내지 못했다. 지난 3일 아프가니스탄을 처음 방문한 앙엘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아프간 남부에 병력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일본의 후쿠다 내각은 아프간 전쟁에 투입된 미 군함에 대한 연료공급을 중단하는 등 지원을 축소했다. 폴란드는 신임 총리가 미국이 주도한 전쟁에서 병력을 철수시킬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무샤라프는 앞으로 갈수록 미국은 자기에게 더 의존해 올 것을 알고 있다.
미국의 '부토 카드'가 무샤라프에게 숨통 터준 결과
미국이 부토와 권력분점을 하라고 압박한 어설픈 계획이 오히려 무샤라프가 비상사태를 취하는 상황으로 몰고 간 요인이 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토를 투입하면서 계획했던 미국의 파키스탄 민주화 그림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파키스탄의 기존 체제에 부토가 받아들여지기 힘들어 파키스탄의 정정이 더욱 불안해 지고 있다는 것을 미국도 뒤늦게 깨달았을 때 미국은 대안을 갖고 있지 못했다.
미국의 압박에 힘겨워했던 무사랴프는 오히려 자기 소신대로 밀고 나갈 기회를 잡게 됐다. 내년 1월로 예정된 총선이 일정대로 열릴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지만, 무샤라프로서는 총선이 있기 전까지 대통령과 군참모총장을 겸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새로 구성된 대법원으로부터 대통령 자격을 인정받아 집권 2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무샤라프는 '권력 분점' 거래가 논란을 빚으면서 부토의 정치적 이미지가 크게 훼손된 것도 계산에 넣었음이 틀림없다.
테러와의 전쟁을 이용한 무샤라프의 교묘한 처세
파키스탄 근대사에서 부시가 써내려간 역사가 이제 1년 남짓 남은 시점에서 복잡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지난 2001년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에 파키스탄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폭격을 해 석기시대로 돌아가도록 하겠다고 위협을 했다. 무샤라프는 재빨리 테러와의 전쟁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무샤라프는 국제사회에서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성과를 올렸다.
또한 무샤라프는 테러와의 전쟁에 참여하는 파키스탄의 역할에 대한 대가도 곧바로 챙겼다. 무사랴프는 미국과 열심히 협상해 지난 6년 동안 무려 110억 달러의 원조를 받아냈다. 그 덕분에 파키스탄 경제는 활기를 찾았고, 무샤라프의 지지 기반이 군에 대한 지원도 늘었다.
무사랴프는 이처럼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교묘하게 이익을 챙겨왔다. 부시도 이런 사실을 알아챘지만, 이라크 전쟁에 빠진 형편에 다른 대안도 없는 실정이다. 파키스탄의 역대 군사독재자 중 미국을 상대로 무샤라프처럼 입지조건을 최대한 활용한 인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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