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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란 압박 위해 PKK 활용"

[분석] 터키와 이란, PKK 문제로 동병상련

최근 국제유가 급등의 주요 요인으로 꼽히는 터키- 쿠르드 반군 분쟁으로 터키가 언제든 이라크 국경까지 넘어 쿠르드노동자당(PKK) 반군을 소탕하기 위한 대규모 군사작전을 벌일 일촉즉발의 위기가 계속되고 잇다.

에르도간 터키 총리는 최근 미국에서 발간되는 유태인 주간지 <포워드>와의 인터뷰에서 "PKK 소탕을 위해서는 누구와도 협력할 용의가 있다"면서 "필요하다면, 누구의 의견을 구하지 않고 작전을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라크 북부까지 들어가는 군사작전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미국을 겨냥한 발언이다.

이와 관련해, 중동전문가 사미 무바예드는 3일 <아시아타임스> 기고문에서 "쿠르드 반군은 터키 못지 않게 이란에도 큰 위협"이라고 주장해 주목된다. 그는 PKK 진압작전에 터키 뿐 아니라 이란이 협조관계에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제시하며 쿠르드족과 얽혀있는 중동국가들의 속사정을 전했다.


특히 그는 이란의 핵프로그램을 문제삼아 강력한 제재에 나선 미국이 이란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쿠르드족을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미국이 이란 공격에 앞서 터키를 확실한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 쿠르드 반군을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과 연관돼 주목된다(☞ 관련기사:전쟁에 한 발 더 다가간 미국과 이란).


다음은
'Roots of the Kurdish struggle run deep'의 주요 내용을 번역한 것이다.<편집자>

PKK는 터키에 못지 않게 이란에게도 큰 위협이다. 지난 2월 영국의 <선데이텔레그래프> 보도에 따르면, 이란의 7000만 인구 중 40% 가까이가 페르시아인이 아닌 상황에서 미국은 이란 정권에 타격을 주기 위해 소수민족 분리주의자들에게 자금을 대고 있다.

미국의 <뉴요커> 탐사보도기자 세이머 허시도 이런 비슷한 기사를 쓴 바 있다. 이란 내의 소수민족에는 쿠르드, 아제리, 아와즈 아랍 등이 있다.
▲ 터키-이라크 국경에 배치된 터키군.ⓒ로이터=뉴시스

"미국, 이란의 소수민족 분리주의자들 지원"

미국은 이란의 소수민족 분리주의자들을 지원함으로써 이란의 정권을 분쇄할 수 있다고까지는 기대하지 않지만,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가 핵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효과는 충분히 발휘할 것으로 기대할 가능성은 있다.

미국 등 외부의 지원을 가장 많이 받는 소수 민족은 바로 PKK다. 지난해 이란은 이란-이라크 국경에서 활동하는 PKK 요원들을 추적해 이라크 영토 안으로 들어와 40명의 쿠르드 반군을 체포했다.

이란과 터키의 최고위급 외교관들은 PKK에 대한 공동대응책을 긴밀히 논의했다. 논의 과정에서 이란 측은, PKK를 테러단체로 지정한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외치면서도 PKK와 접촉하고 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갖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인 모술과 키르쿠크에서 미국과 PKK 사이에 군사령관급 회담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지난주 압둘라 굴 터키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갖고 이란도 터키와 마찬가지로 PKK의 테러행위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터키의 PKK 진압작전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힌 것도 이런 배경과 관련이 있다.

이란의 쿠르드 문제는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불거져온 것이다. 쿠르드족들은 터키, 이라크, 이란 등 국경에 걸쳐있는 '쿠르디스탄'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독립국가를 세우려는 꿈을 갖고 있는데, 이란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이 세우려는 독립국가는 '동쿠르디스탄'이라고 불린다.

'동쿠르디스탄'은 이라크, 터키의 국경지대와 아르제바이잔, 케르만샤, 일람, 로레스탄 등의 일부 지역을 포함한다. 이 일대에는 이란의 400만 명 쿠르드족 대부분이 살고 있다.

1920년대, 1940년대 이란에 수립된 쿠르드 독립국가

제1차 세계대전 와중에 이란의 중앙정부가 약화됐을 때 심코라는 쿠르드 족장이 우르미아 호수 서쪽 지역에 쿠르드 자치정부를 세운 적이 있다. 1918~1922년까지 지속된 이 자치정부 이외에 자파르 술탄이라는 또다른 쿠르드 지도자가 마리반과 할라비아 북쪽 사이의 영토를 장악했다. 이란의 중앙정부에 환수된 1925년까지 이 지역은 쿠르드족 지배에 놓여있었다.

이란 중앙 정부에 의해 1920년대에 혹독한 탄압을 받은 쿠르드족들은 숨을 죽여오다가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하마 라시드라는 쿠르드 족장은 사르다시트, 바네, 마리완 등 이란 서부 3개 지역을 장악했다. 이란 정부는 1944년 이 지역을 무력으로 다시 되찾았다.

하지만 이후 쿠르드족은 세번째로 봉기했다. 이번에는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 소련의 지원 하에 1945년 12월 이란 북서부 도시 마하바드에 카지 무하마드를 최고지도자로 하는 쿠르드 국가가 수립됐다. 이 국가는 1991년 걸프전 이후 쿠르드족이 이라크 북부에 자치권을 요구할 때 선례가 되어주었다.

마하바드 공화국으로 알려진 이란 내 쿠르드 독립국가는 1941년 쿠르디스탄 독립국가 수립을 목표로 하는 모임에서 출발했다. 카지 무하마드가 쿠르드민주당 의장을 맡고, 물라 무스타파 바르자니가 쿠르드 군사령관이 맡아 쿠르드 독립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물라 무스타파의 아들이 현재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정부 대통령 마수드 바르자니이다. 마수드 바르자니는 바로 마하바드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2차 대전이 끝난 뒤 1년도 못돼 이란의 중앙정부의 무력 진압에 의해 마하바드 공화국은은 사라졌다. 카지 무하마드는 1947년 처형됐다.

당시 바르자니는 이라크 북부로 탈출해 쿠르디스탄 건설을 위해 투쟁을 계속했고, 아들에 이르러 이라크 북부에서 이 과업이 달성됐다.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정부는 이란의 마하바드 공화국 국기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쿠르드족의 역할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이란의 샤 왕조가 무너졌을 때 쿠르드족은 다시 한 번 희망을 가졌으나,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니이도 쿠르드 독립을 용납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라크와 터키와 입장을 같이 한 것이다.

1980년대 초 이란 내 쿠르드 족의 두 분파가 출현했다. 한 분파는 호메이니가 조금만 양보해도 협상할 용의를 보인 아마드 무프티자데가 이끌고 있었고, 또다른 분파는 쿠르드 독립과 이란의 유전에서 나오는 일정한 부를 쿠르드족의 확실한 몫으로 요구하는 압둘 라만 카셈루가 이끄는 강경파였다.

이들은 이란 중앙정부가 쿠르드 독립국가에 보내는 모든 공문을 쿠르드어로 표기하는 등 쿠르드어를 공용어로 채택할 것도 요구했다. 호메니이는 이런 요구를 일축하고 이 분파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일어나면서 쿠르드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은 소강상태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1983년 다시 2차 진압작전이 벌어지면서 쿠르드족 지도자 대부분이 이라크로 탈출했다. 이란과 전쟁 중인 사담 후세인으로서는 쌍수를 들어서 환영할 일이었다. 이라크를 후원하고 있던 미국도 당연히 승인해준 일시적 동맹이 이라크 중앙정부와 쿠르드족과 맺어진 것이다.

이와 반대로 호메이니는 이라크 쿠르드족들이 이라크에서 독립하는 것을 원하게 되었다. 1997년 무하마드 하타미가 대통령이 되어 이란 중앙정부와 이란 내 쿠르드족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기 전까지 이런 긴장은 지속되었다.

하타미는 이란의 쿠르디스탄 지역 주지사로 압둘라 라메잔자데를 임명하는 등 유화책을 썼다. 라메잔자데는 이란-쿠르드족의 화합을 상징하는 직위에 오른 최초의 사례다.

하지만 PKK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이 체포된 1999년 전세계적으로 쿠르드족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이란 내의 쿠르드족이 무력에 의해 진압되는 사태가 다시 발생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2003년 터키와 이란 내의 쿠르드족들은 또다시 쿠르드 독립에 대한 야망을 되살렸다. 미국이 이라크 북부에 쿠르드 자치정부를 인정한 것처럼 그들에게도 비슷한 조치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에 따르면 이란의 한 관료는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면 그들은 마수드 바르자니와 잘랄 탈라바니(현재 이라크 대통령)가 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말했다.

1920년대 터키에도 쿠르드 독립국가 수립

터키와 이란이 PKK에 대해 동시에 우려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80년 전인 1927년에 일어난 상황이 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당시 또다른 쿠르드 독립국가가 있었다. 터키의 영토 내 아그리(쿠르드어로는 아라라트) 주에 '아라라트 공화국'이 수립된 것이다. 1940년대 마하바드 공화국이 이란 내에 세워졌던 것과 흡사하다. 아라라트 공화국은 완전한 쿠르디스탄 독립국가가를형성하기 위해 근대 터키 영토의 55%를 잘라내는 목표를 세웠다.

이산 누리 파샤가 이끄는 이 반란에 대해 터키는 1927년 5월 아라라트를 쳐들어 갔을 때 이란-터키 국경에 걸쳐있는 아라라트 산악지대에서 작전을 벌이도록 허용하는 등 지원을 했다. 터키의 아라라트는 이란의 마하바드에게 영감을 주었고, 마하바드는 2007년 이라크 쿠르디스탄 수립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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