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나가면 흔히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해외동포들은 요즘 조국의 발전을 보면서 대견해 한다. 그런데 국내에 와서 보면 다들 사는 게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일까. 처음으로 대선에 참여하는 재외국민들이 한 표를 올바로 행사하려면 국내사정을 알아야 한다. 그들을 위해 지난 3년간의 한국정치사회 개론을 작성했다.
양극으로 치닫는 사회
한국사회는 각종지표를 보면 이제 선진국에 진입했다. 1인당 GDP는 2만3천달러에 이른다. 지난해 12월 우리나라는 사상 처음으로 연간 무역규모 1조 달러 시대를 열었다. 무역규모는 수출 수입액을 합산한 것으로 1조 달러를 돌파한 국가는 전세계에서 9개국에 불과하다. 삼성전자는 소니 등 일본의 전자업체들을 일찌감치 따돌렸다. 한국 핸드폰 등 전자제품과 자동차는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1등을 하는 한국상품이 지난해 131개에 이른다.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 13개를 얻어 5위에 올랐고 LPGA 10위권에 한국여자 선수들이 절반에 이른다. 한국영화는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아시아에서 한국 드라마와 가요가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류가 절정이다. 사이의 강남스타일은 빌보드 2위에 올랐다. 국내 어디를 가도 도로 건물들이 번듯하고 터널 교량 등은 최신공법으로 건축된다.
먹고사는 문제 해결한 최초의 시대라는 말을 넘어서 이제는 단군 이래 가장 잘 나가는 시기라 불린다. 어떤 인류학자는 200년마다 국운 상승기가 찾아왔다고 말한다. 400년 전의 세종대왕 시기, 200년 전의 영정조 시기에 이어 지금이 그때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림자가 너무 짙다. OECD 나라 중에 1등하는 것을 모아보았다. 자살률, 노인빈곤률,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 대학등록금 등이 1등이고 출산율, 어린이 청소년 행복지수, GDP 대비 공공지출 등은 뒤에서 1등이다. 저임금 근로자 비율은 ILO 가입국 중 1위이다. 복지수준은 멕시코 다음으로 꼴찌에서 두 번째이다. 자영업자 수는 터키 그리스 멕시코에 이어 4위이고 GDP 대비 가계부채는 영국과 1, 2위 다투고 있다.
이중에 가계부채는 올해 3분기 937조5000억 원에 이르러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무역규모 1조 달러와 같은 수준이며 경제활동인구 1명당 4000만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셈이다. 한국경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시한폭탄으로 불린다. 양육과 교육의 어려움은 여성들의 출산파업으로 이어져 세계 최저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OECD 통계는 영국의 장하준 교수가 지난 9월 국내 강연에서 정리해준 것이다. 우리 현실이 얼마나 기형적인지, 양극화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통계가 웅변하고 있다.
이따금 만나는 해외동포 중에는 양극화라는 용어가 이해안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판잣집도 없어졌고 거리에서 거지를 보기도 어렵다. 전국민의 절반이 아파트에서 거주하므로 부잣집이나 극빈층의 집이나 카메라에 비친 모습은 별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단단히 뿔이 난 국민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전쟁 이후 60년 동안 한국사회는 성장을 위해 일로 매진해왔다. 오른쪽으로만 치달았다. 시대가 오른쪽으로 가자고 했고 국민들도 동의한 것이다. 이때 흔히 듣던 말이 파이를 먼저 키우자는 것이었다. 파이를 키우고 그 다음에 나누어 먹자고 하는 말에 다수 국민이 수긍했다. 너무 배고프게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보리고개의 기억이 남아있는 사람에게는 경제 발전을 위해 민주화를 보류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해전부터 심상치 않은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선진국에 들어섰다는 이 사회에서 나는 왜 여전히 생활이 고달프고 행복하지 못한가. 왜 여전히 기득권층의 부패는 계속되고 사회정의는 실현되지 않는가. 지난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번역서가 100만부 넘게 팔렸다. 내용을 보면 직장인이 읽기 어려운 철학책인데 이처럼 팔린 이유가 무엇일까. 그 제목이 주는 효과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정의가 없는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인당 GDP가 2만 달러를 넘어 지난해 2만3천 달러를 넘었다. 파이는 이만하면 충분히 커졌다. 그런데 파이가 커지면 나눠먹자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소위 낙수효과라는 트리클 다운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랫목이 따듯해지는데도 윗목에는 온기가 올라오지 않는다. 떡고물도 없다. 재벌기업은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곳간에 그득 담아두고 있는데 서민들은 빚잔치를 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재벌 개혁을 겨냥한 경제민주화가 나오게 됐다.
경제성장을 1% 하면 일자리가 30만개 생긴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경제성장을 해도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다. 정부자료에 따르면 올해 대학 졸업자는 56만 명인데 일자리는 30만 개이고 그중에서 취업자가 만족하는 일자리는 3만 개에 불과하다. 매년 대졸 실업자가 20만 명 이상 쏟아져 나오는 구조이다. 얼마 전 TV에 나온 삼성의 인사담당 부사장은 지금의 젊은이들이 과거의 어느 세대보다 능력이 우수하다고 말했다. 해외경험도 갖추고 있어서 글로벌 마인드나 영어실력 등이 우수하다. 앞 세대보다 능력이 뛰어난데도 취업을 못하고 있다.
국가차원에서는 잘 나가는데 왜 국민들은 불행한가. 이런 일이 생긴 이유가 무엇일까. 외국인들이나 해외동포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밖에서 보면 대단히 발전된 나라인데 들어와서 보면 국민들이 불행하다고 말해 놀란다. 왜 그런가. 엄살인가. 전보다는 잘 살게 됐는데도 욕심이 많아서 그런가.
성장 일변도 발전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쪽으로만 발전하다보니 생긴 왜곡현상이다. 오랫동안 오른쪽으로만 끌어당기니 몸이 뒤틀리고 있다. 이제는 왼쪽으로도 끌어주어야 몸이 바로 잡히고 앞으로 더 잘 나갈 수 있다. 일본을 눈여겨봐야 한다. 50년대 이래 보수우파 정당의 장기집권이 일본을 지금의 불균형상태에 빠뜨렸다. 우리도 그 전철을 밟을 것인가.
불균형 발전의 대표적인 사례가 부동산과 교육이다. 지난 80년대에는 주택공급률이 가구 수에 비해 현저히 미달했다. 남의 집에 방한칸 얻어 사는 일이 흔했다. 그래서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경기에 풀무질을 했고 여기에 돈이 몰렸다. 그 결과 건설경기가 살아났고 가장 짧은 시기에 다량의 공동주택이 공급됐다. 2002년에 주택보급률 100%를 넘어섰다.
문제는 빛나는 성장의 후과이다. 집값이 지나치게 올라 파리와 뉴욕의 수준에 이르렀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외식비, 택시비는 싼데 비해 주거비는 너무 비싸다고 말한다. 새로이 가정을 꾸려야 하는 30대는 도저히 집을 살 수가 없다. 전세값도 오르고 있어 주거권이 위협받고 있다.
교육문제도 부동산과 구조가 똑같다. 천연자원이 없는 우리에게 가장 풍부한 자원은 사람이다. 그래서 이들을 경쟁력 있는 자원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했다. 아이들이 고생스럽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그렇게 해서 길러낸 우수한 인재들이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그런데 그것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 브레이크 없이 한쪽으로만 치닫다 보니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청소년 행복지수가 꼴찌이고 자살율도 가장 높다. 이민 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면 첫 번째 이유가 아이 교육문제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교육평론가 이범 씨는 현행 교육제도에서 배출된 인력이 기업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개인 경쟁력 위주로 만들어낸 청년들이 정작 협력을 필요로 하는 팀제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문제가 있으면 이제는 반대쪽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주위사람들과 협력하는 능력을 가르치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할 때가 됐다.
2. 한국정치 지난 3년간 무슨 일이 있었나
흔히 한국의 선거에서 진보 보수의 불균형을 기울어진 축구장에 비유한다. 진보가 한번 이기려면 천신만고 끝에 이기고 보수는 밥먹듯이 쉽게 이긴다는 것이다. 김대중이 집권할 때를 보자. 집권세력이 나라를 거덜낸 뒤에 치러진 97년 15대 대선에서 김대중은 김종필과 손을 잡고서 2위 후보와 겨우 1.6%포인트인 39만 표 차이로 이겼다. 이 선거는 3파전으로 치러져서 보수표가 분산됐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 2002년의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은 정몽준과 손을 잡고서도 2위 후보와 2.3%포인트인 57만표 차이로 이겼다. 다들 기적이라고 했다.
축구에서 후반전이 되면 선수의 위치가 바뀐다. 한국사회도 오랫동안의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된 것일까. 지난 몇 해 사이에 게임의 양상이 바뀌고 있다. 혁명은 썩은 문짝을 걷어차듯이 이뤄진다는 말이 있다. 모순이 충분히 누적되면 비로소 큰 변화가 온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그런 변화의 초입에 들어섰다. 그런 징후가 처음 나타난 사건이 바로 무상급식이다.
무상급식이 국민정서의 뇌관을 때렸다
2009년 4월의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난데없이 무상급식이 나타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무상급식을 전면적으로 도입하자는 진보진영과 단계적으로 추진하자는 보수진영의 대립이었다. 무상급식 전면도입은 알고 보면 지나치게 급진적인 정책이다. 좌파성향이 강한 프랑스에서도 부모의 수입에 따라 4등급으로 나누어 소득이 많은 사람이 급식비를 더 낸다.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나라는 북유럽 나라밖에 없다. 그런데도 무상급식이라는 말이 왜 이슈로 떠오른 것일까. 당시 유권자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만큼 발전했으면 우리 아이들 밥 먹이는 것쯤은 국가가 해줄 수 있지 않나. 이런 요구에조차 토를 달고 되니 안 되니 하는 보수정당에 대해서 화가 난다. 국가보안법보다 무섭다는 국민정서법이 발동한 것이다. 그 결과 무상급식을 내세운 진보성향의 김상곤 후보가 당선됐다. 그 뒤로 무상급식이 이슈가 된 투표에서 여당은 판판이 패했다.
무상급식은 복지 문제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한국의 GDP 대비 복지수준은 OECD에서 꼴찌에서 두번째이다. 이런 불균형의 문제점을 오래전부터 주장해왔던 한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갑자기 복지문제가 이슈로 떠오르자 탄식을 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했을 때 아무도 들어주지 않더니 갑자기 복지를 말하는 이 시대가 너무나 놀랍다고 했다. 그의 발언은 복지문제가 얼마나 갑작스럽게 떠올랐는지를 보여준다. 좌파진영의 기획이 아니라 다수 국민들의 마음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터져나왔다는 말이다. 무상급식이라는 말이 국민정서의 뇌관을 때린 것이다.
진보시대로 한걸음씩 진군하다
새로운 움직임이 뚜렷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1년 후인 2010년 6월의 지방선거이다. 여당은 이 당시 발생한 천안함 사건을 보수표를 결집시키려는 등 선거에 이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30대 유권자들이 오히려 화를 냈다. 아이를 안은 젊은 엄마들이 투표장에 줄을 섰다. 이들은 오히려 왜 북한을 잘 다루지 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했는가 따졌다. 2011년 북한의 1인당 GDP는 720달러로 남한의 2만 3,749달러에 비해 3%수준에 불과하다. 북한에 비해서 국력이 수십배에 이르는데 왜 형님노릇 제대로 못하냐는 것이다. 이들은 고교와 대학생 시기를 진보정권 치하에서 보낸 사람들이었다.
그 결과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대승을 거두었다. 한나라당은 광역선거에서 대부분의 시도지사 자리를 내줬으며 서울의 25개 구청장 중 21개를 빼앗겼다. 이전선거에서 25개 모두 석권했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국민들은 이 선거를 통해 보수정권이 싫다고 분명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이에 놀란 한나라당은 허둥대기 시작했다.
이런 새로운 흐름을 감지하지 못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악수를 두었다. 2011년 8월 무상급식 반대카드를 꺼내들고 도박을 했다. 오세훈은 시대가 바뀌는 전환기에 서있었는데도 그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단지 무언가 잘못 돌아가는 신호로만 보였다. 그래서 그 변화에 저항했다. 그는 무상급식 문제를 주민투표에 붙였다. 전면적 실시와 단계적 실시중 하나를 시민들이 선택하도록 했다. 결과는 패배였다. 8월 24일 실시된 주민투표의 투표율은 25.7%였다. 투표함을 개봉할 수 있는 투표율 33.3%를 달성하지 못해 투표함이 폐기됐다. 오세훈은 이틀 후 시장직을 사퇴했다.
오세훈의 주장은 무상급식 반대가 아니었다. 그의 주장은 무상급식을 단계적으로 실시하자는 것으로 하위 50%계층부터 차차 늘려나가자는 것이었다. 냉정하게 보면 이 안이 더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화가 나있었다. 석달 후인 10월26일 실시된 서울시장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은 패했고 시민운동가 출신 박원순이 당선됐다. 진보시대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면 올해 4월 총선에서 왜 민주당이 패한 것일까. 국민들은 진보시대로 가라는 신호를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여론조사를 하면 매번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신호에 취한 민주당은 개혁을 외면했다. 그 결과 당명까지 바꾸며 절치부심해온 박근혜의 새누리당이 역전승했다. 민주당의 무능이 민심과 다른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4월 총선은 야당이 패했지만 민심은 데이터로 자기의 마음을 보여주었다. 의석은 새누리당이 과반을 얻었지만 득표수의 총합은 야당들이 얻은 표가 더 많았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의석수는 152석대 127석이었지만 여권정당 득표율과 야권정당 득표율은 48.2%대 48.5%였다. 4월총선이 국회의원 선거가 아닌 대통령 선거였다면 결과가 뒤바뀌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진보시대로의 진전이 멈춘 것이 아니었다.
이번 대선의 클라이맥스 중 하나는 중도 부동표를 안고 있던 안철수 후보의 사퇴가 꼽힐 것이다. 그런데 그가 사퇴한 이유를 놓고 언론이 갑론을박하고 있다. 보수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처럼 단일화협상 중에 안철수가 문재인에게 분노해서 마음이 돌아섰을까. 양자간의 TV토론 중에 안철수의 대북정책이 MB정권과 같다고 말해서 상처를 받았을까. 유언비어 수준의 발언도 나왔다. 안철수 문재인의 비공개회담에서 서로 눈싸움하며 몇십분간 말이 끊기기도 하며 감정대립했다는 말도 나왔다. 그런 이유로 사퇴했다고 말한다면 안철수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다름없다.
안철수가 사퇴 결심을 한 이유를 직접 찾아가서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 단일화협상이 시작된 11월중순부터 사퇴 발표를 한 23일까지 뚜렷한 변화가 일어났다. 적합도 지지도 조사에서 뿐 아니라 3자대결 여론조사에서 2-3위가 바뀌어 문재인에게 밀려났다. 이것이 결정적 원인이다. 이 당시 부산대 강연에서 좌석을 3천개 준비했지만 학생들이 5백명만 모였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한 선택을 한 국민여론이 그를 하차시킨 것이다. 중도가 아니라 진보를 선택한 시대정신이 그를 물러나게 했다고 봐야 한다.
투표율 70%가 이번 대선의 승부처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율은 선거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난 선거를 보면 김대중이 당선될 때는 80.7% 노무현이 당선될 때는 70.8% 이명박이 당선된 선거에서는 63%였다. 이 같은 전례에 비춰보면 대선에서 70%를 넘기면 진보후보가 유리하고 넘지 않으면 보수후보가 유리하다. 그래서 18대 대선의 승부처는 투표율이 70%를 넘길 것인가 여부라는 말이 나온다.
박빙의 양상을 보이는 이번 선거의 긴장감을 감안하면 투표율 70%는 넘을 것 같다. 만일 70% 투표율을 보인다고 가정해보자. 지난 4월 총선의 투표율은 54.3%였으므로 약 15%의 유권자가 새로 참여하게 된다. 15%이면 총유권자 4000만 명 중 600만 명이다. 이들 중에는 그동안 투표에 불참했던 수도권 유권자와 2030 유권자가 다수 포함돼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야당 성향이 강하다.
그러므로 선거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구도의 측면에서 보면 야당 필승국면이다. 기울어진 축구장에서 선수들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언론은 이 사실을 부각시키기를 꺼려한다. 보수 진보언론이 각각 자기 진영의 패배주의나 자만심을 경계하기 때문인 듯하다.
게다가 지금 같은 선거 막바지에는 양 진영이 화력을 총동원하므로 혼전양상으로 보인다. 선거판을 정확히 읽으려면 자욱한 화약연기 속에 숨어 있는 큰 구도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구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한국선거의 특징은 예측이 대단히 어렵다는 점이다. 정치선진국과 달리 한국 선거는 돌발변수가 많아서 판세가 엎치락뒤치락한다. 선거를 잘 치루는 쪽이 또는 운이 따르는 쪽에 승리가 돌아간다.
▲ 재향군인회 창설 60주년 행사에 참석했을 당시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프레시안(최형락) |
3. 60년만에 찾아온 진보의 시대
역사는 진보의 시대와 보수의 시대를 거치면서 나선형적으로 발전한다. 그것을 추동하는 힘은 시대정신이다. 시대정신이란 다수 국민이 절실히 원하는 가치이다. 보수가 집권해서 성과를 거두다가도 그 한계에 이르면 진보가 요구된다. 진보정권도 국민들에게 외면당하면 보수로 바뀐다.
한국사회는 오랫동안 보수 이념으로 지금의 성장을 이뤄냈으나 이제는 사회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보수정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서 보수세력도 진보적인 가치를 내세운다. 새누리당 박근혜가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선점해서 문재인의 공약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보수세력도 진보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지난 총선시기 한 신문의 기사에는 "새누리당은 왼쪽으로 민주당은 더 왼쪽으로"라는 제목이 붙었다. 이 기사 제목이 현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국제 환경을 봐도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표를 먹고 사는 정치권은 진보시대의 도래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마침내 우리 현대사에서 처음으로 진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열어갈 진보의 시대를 어떤 세력에게 맡길 것인가이다.
노회찬의원은 최근 필자와 같은 인식을 보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진보의 시대를 열어갈 시기이다. 이번 대선은 진보시대의 개막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를 선택하는 선거다. 그러면서 노 의원은 87년 상황을 예로 들었다.
87년 6월 항쟁은 민주화시대를 열었다. 한국사회는 오랜 군사독재 체제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것을 87년 체제라고 부른다. 민주화 시대를 열어나가는 과업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를 87년 연말 대통령 선거에서 결정했다. 그런데 군인출신 노태우가 당선돼 그 역할을 맡게 됐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나서 친구인 전두환을 유배보내야 했고 북한과 공산권에 대해 개방적인 입장을 취해야했다. 남북관계의 이정표가 되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이런 진보적인 정책을 군사반란의 주모자인 노태우가 해냈다. 그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이 같은 자기배반적인 일을 하다 보니 정체성의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끝까지 자기 생긴 대로 살고 있는 전두환과 비교된다.
그런데 노태우와 정반대의 자리에서 괴로워했던 사람이 있었다. 노무현은 그의 유저 '진보의 미래'에서 참여정부는 보수시대의 진보정권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대외환경이 좋았으며 이에 발맞춰 경제성장정책을 추진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참여정부는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 만들기라는 기치를 들고 집권했으며 이 부분에 대해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보수시대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미FTA 추진, 이라크 파병, 아파트원가 공개 거부, 비정규직 노동자 정책 등 보수정책을 채택했다. 진보가 진보답지 못하고 보수를 기웃거렸고 이 때문에 많은 지지자들을 잃게 됐다. 노무현이 지금 대통령이 됐다면 우리 역사의 순풍을 맞았을 테고 개인사적으로 불행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진보시대를 여는 일을 보수에게 맡길 것인가
새누리당 박근혜는 오래전부터 여론조사에서 1위를 유지해 대세론을 만들어냈다. 만일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진보시대의 보수대통령이 될 것이다. 민주화시대를 여는 일을 수행했던 군인출신 노태우와 같은 위상에 놓이게 된다. 노무현이 억지춘향 격으로 보수정책을 채용했던 것처럼 박근혜는 진보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지난 연초에 우리는 이미 예고편을 보았다. 보수정당이 당 강령에 있는 보수라는 말을 삭제하려고 시도해 파문이 일었다. 그 뒤에 계속된 좌클릭 행보로 보수지지자들을 실망시켰다.
보수가 좌클릭하고 강령을 바꾼다고 진보가 되지는 않는다. 국민을 현혹시키는 효과만 있을 뿐이다. 그 결과로 진보시대를 여는 대통령의 자리에 보수인사가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 순조로운 역사 발전과 국운의 순항에 차질이 생길 것이다. 노태우와 노무현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시대와 맞지 않는 정권은 그 자신을 불행에 빠뜨리고 국민은 피곤해진다.
정치인들은 흔히 집권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들 자신에게나 적용되는 말이다. 국민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진보 또는 보수 정치를 필요로 한다. 정치인은 국민의 요구에 따라 불려나와 복무할 뿐이다. 지금 국민은 진보를 호출하고 있다. 22만 재외국민 유권자들이 한국정치사회를 이해하는데 이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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