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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제공동체도 "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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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제공동체도 "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

[정상회담, 할 말 있다 ⑪] 남북CEPA론의 네오콘적 속성

놀라운 일이다. 경이롭기조차 하다. 좌우, 그리고 조야는 물론이고, 여야를 망라한 정치권을 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남북경제공동체'라는 말만을 놓고 보면 지금 우리 사회는 '통일'되어 있다.

가장 오른쪽이라 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언젠가 남북경제공동체를 두고 '작은 통일'이라 부른 적이 있다. 북핵 폐기를 전제한 것이지만 박 전 대표는 미국을 방문했을 때 "굳이 정치적·영토적 통일을 하지 않더라도 군사적 대결이 사라져 왕래가 자유로워지고 남북이 한반도를 경제공동체 정도로 생각하면 그것도 하나의 작은 통일이라 생각한다"며 자신의 '통일관'을 밝혔다.

며칠 전에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도 비슷한 생각을 밝혔다. 이 후보는 '남북경제공동체협력협정'을 언급하면서 남북경협 활성화, 투자무역 편리화, 남북교역 자유화를 주장하고 남북경협을 일방적 지원이 아닌 투자 개념으로 전환할 것을 강조했다.

이는 노무현대통령이 8.15경축사를 통해 남북경제공동체 건설을 언급하면서 '생산적 투자협력', 쌍방향협력, 단기적 소비지원에 그친 남북경협을 넘어 경제공동체라는 서로 윈윈(win-win)하는 장기적 투자개념으로 전환하자고 한 것과 사실 별 차이가 없다.

범여권을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손학규 후보 역시 남북경제공동체를 강조하고, 이해찬·유시민 두 후보는 남북FTA까지 주장하고 있다. 개성공단 이슈에 대한 오너쉽을 주장하는 정동영 후보 역시 오래전부터 남북문제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아 왔음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 남북경제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대담한 대북 공공투자와 지원을 위주로 한 경협의 확대·심화는 언제든지 필요하다. 그러나 북한 체제변형론을 근거로 한 성급한 경제통합론은 위험하다. 사진은 개성공단 1단계 부지(좌)와 개성공업지구 개발총계획 모형으로 본 개성공단의 최종 청사진(우) ⓒ프레시안

남북경제공동체로 통일된 대한민국

이들의 남북경제공동체론의 토대가 되는 논의 가운데 단연 시선을 끄는 것은 '남북한 경제협력강화약정'(CEPA, Closer Economic Partnership Arrangement)이다. 이른바 '포괄적인' 혹은 '사실상의' 남북FTA론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발표 주체가 삼성경제연구소다.

"삼성이 만들면 다르다"는 것은 한미FTA 협상 개시 선언 직후인 작년 3월에도 확인이 된 바 있다. '도대체 왜 한미FTA를 해야 하는가'와 관련해 당시 무슨 경제 선진화, 소비자 후생, 미국 시장 선점, 포괄적 안보동맹 등 오리무중의 추상적 담론만이 떠돌던 때, 삼성경제연구소에서는 한미FTA를 통한 '서비스시장 개방론'을 적극 개진한 바 있다.('투자부진 탈출의 활로-서비스산업' <CEO-Information> 2006년 3월 15일)

그러자 그 직후인 3월 말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상의 특강을 통해 '경제를 획기적으로 성장'시키고,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늘릴 방도'로 고용유발효과가 제조업보다 높은 서비스 산업을 활성화하자고 주장한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서비스산업이 선진국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될 것이라고도 했다.(<청와대브리핑> 612호, 2006년 3월 28일)

삼성-정부, 통상정책 독점공급계약이라도 맺었나

삼성연이 지난 8월 초 남북CEPA에 관한 보고서('남북한 경제협력강화약정(CEPA)의 의의와 가능성', <Issue Paper> 2007년 8월)를 발표한 후 나온 정부 쪽 발언들은 한미FTA 당시와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다. 발표 직후인 8월 16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남북FTA 추진을 정상회담 의제 중 하나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기선을 잡고 나섰다. 물론 어디까지나 "아이디어 차원에서 다른 나라의 유사한 사례 등을 살펴보고 있으나 확정해 검토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하긴 했다.

이와 관련한 청와대의 반응은 자못 신중하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CEPA 문제가 정상회담 의제로 검토돼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민간경제연구소에서 제기된 것으로 알고 있고 정부는 원칙적으로 사회 각계각층에서 제기되는 생산적 의견을 모두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그러나 회담에 어떤 의제가 포함될 지는 아직 결정된 바 없고, 의제는 또한 상대가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하며 CEPA 문제도 마찬가지"라며 "의제 포함 여부와 관계없이 중장기적으로 남북경제공동체 구상과 관련한 사회의 활발한 논의는 환영할 일이지만 당장 이번 회담에 포함될 가능성은 높게 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한발 물러서긴 했다.

그러나 과연 삼성이 만들면 다르다. 삼성이 만들어 공급하면 국정 의제가 되고, 정부는 이를 발표한 뒤 여론의 반응을 떠보는 식이다. 삼성과 정부사이 통상정책 독점공급계약이라도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렇게 삼성의 국정 영향력이나 의제생산능력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 내용이다. 남북경제공동체 구상에 대한 매우 높은 수준의 사회적 합의가 있는 마당에 굳이 '누가 하면 어떠냐, 설사 그것이 재벌 연구소라도 말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기에 더욱 더 그 논리의 전제와 지향을 찬찬히 따져보는 것은 중요하다.

북한 체제변형론의 새로운 변주곡

삼성이 말하는 남북CEPA의 기대효과를 보자. 여러 가지가 있지만 "CEPA를 통해 북한 내부에 경제교류의 지속성에 이해관계를 가지는 경제세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 관건"(<Issue Paper> 보고서 20쪽, 이하 쪽수는 이 보고서의 해당 쪽수를 말함)이란 말이 먼저 눈에 띈다.

즉 북한에 친자본주의·시장친화세력을 심고, 확산시켜 '변화의 역전불가능성(irreversibility)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경우, 한미FTA에 따른 구조조정 필요성과 고비용 등으로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기업들의 새로운 활로를 북한에서 찾을 수"(20쪽) 있다고도 했다. 북한의 값싸고 우수한 노동력은 한미FTA 구조조정 비용을 전가시키기에 참으로 적절한, 즉 북한이 노동력 공급기지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의미일 게다.

다음으로 특별히 주목할 부분이 남북CEPA를 통한 대중국 견제론이다. 중국 자본의 대북진출로 인해 '남남북중(南南北中)' 곧, 개성과 금강산은 남한이, 신의주와 나진·선봉은 중국이 양분화, 즉 '나눠 먹어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삼성연은 "북한 경제의 대중국 의존도 심화를 방치할 경우, 한국의 외교적·안보적·경제적 이익은 심각하게 침해"(24쪽)될 수 있다. 왜냐 하면 "중국은 북한 체제의 유지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삼고 있기 때문에, 북한 지도부에 변화의 필요성보다는 체제 고수의 자신감을 불러일으킬 우려"(24쪽)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냉전 시기, 북한이 중소분쟁을 기회적으로 이용하여 경제개발을 추진한 것처럼, 한국과 중국의 대북접근 경쟁을 부추겨 외부 수혈을 위한 기생전략을 지속할 가능성"(24쪽)이 있다고도 우려했다.

이를 통해 삼성연이 하고 싶은 말은 쉽게 말해 중국이라는 체제유지의 젖줄 때문에 북한 지도부의 '버릇'이 더 나빠지는 것이기 때문에 차제에 남북CEPA를 맺어 중국 의존도를 아예 끊어 버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남북 경제통합, 급할수록 돌아가야

남북CEPA의 경험적 준거는 중국-홍콩 CEPA다. 그런데 삼성연 보고서도 지적하듯이 CEPA는 국가간 조약이나 협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국내 기관간의 약정(Arrangement)이다. 따라서 중국-홍콩 CEPA도 중국 상무부와 홍콩특별행정구 재정국이 맺은 일종의 '기관간 양허각서(MOU)'다. 두루 알다시피 홍콩은 엄연히 중국의 주권 하에 있는 중국의 영토다.

그렇다면 남북CEPA 약정 체결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나. 남한은 재경부라 치고, 그러면 북한은 어느 부처가 될까? 홍콩이 중국 영토라 할 때, 북한은 남한 영토일까?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듯이, 중국-홍콩 CEPA가 서해를 건너 그저 유치한 대북 와해전술이 됐을 뿐이다.

삼성연의 남북CEPA론은 지금도 무관세인 남북한 경협이 활성화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의 제소가능성이 있음을 그 명분으로 내걸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주장은 저 케케묵은 미 네오콘(신보수주의자)류의 중국위협론을 전제로 해서, 중국 자본의 대북 영향력을 차단하고 남한 자본 주도로 북한 경제체제를 '시장화'하자는 프로젝트에 다름 아니다.

기존 네오콘식 북한 체제교체론이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에 기초해 기획된 것이라면, 남북한 CEPA는 남한 자본의 우월적 지위에 기초한 북한 체제변형론의 신변주곡이라 부를 만하다.

대북 공공투자 확대·심화는 언제든 필요

강조하건대, 남북경협 나아가 남북경제공동체 구상 자체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고 본다.

하지만 남북한의 경제력은 그 규모로 약 30배, 1인당 GDP로도 20배가량의 격차가 있다. 동서독 경제통합의 사례로 볼 때, 한 지역의 경제력 수준이 다른 지역의 적어도 60%는 되어야 급격한 노동력 이동으로 인한 노동시장 붕괴를 억제할 수 있다.

그렇다면 1인당 GDP로 1000달러 수준의 북한과 2만달러 수준의 남한을 놓고 볼 때, 북한 주민의 일인당 소득이 못해도 1만 달러는 넘어야 남한의 노동시장이 붕괴되지 않으면서 경제통합의 연착륙을 기대라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경제력이 10배 이상 차이가 나던 동서독이 통합 이후 매년 GDP의 5% 이상을 통일비용으로 지불하고 있다고 볼 때, 우리로 치자면 이는 복지예산과 국방예산을 다 합한 규모와 맞먹는다. 한국 경제의 규모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란 말이다.

그렇다고 할 때 통일을 전제로 한 남북의 경제통합은 여전히 '상상력'의 영역이지, 당장 실행가능한 일은 아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담한 대북 공공투자와 지원을 위주로 한 경협의 확대·심화는 언제든지 필요하지만 말이다.

2006년을 기준으로 남북경협의 총규모(13.5억 달러)는 남한의 명목 GDP(8880억 달러)대비 0.15%에 불과하다. 이중 관세가 문제가 되는 남북한 상업성 거래(9.3억 달러)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1%수준이다.

비관세 대상인 0.1%의 '민족내부거래'에 대해 다른 WTO 회원국의 '제소빈발우려'를 막기 위해 남북CEPA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아무리 봐도 과도하다. 더군다나 그 계획의 전제가 의심스러운데 말이다.

북한의 현 정권과 중국을 겨냥한 칼을 흉중에 품고 한반도 평화를 말할 수는 없다. '주머니 속 송곳'처럼 언젠가 그것은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판 남북CEPA가 바로 그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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